[스크랩] 월터 마샬, "성화의 신비", 11강 즉각적인 믿음의 필요
열한 번째 원리
즉각적인 믿음의 원리
지금까지는 신자가 거룩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이 원리들을 우리 일상에 적용할 것인지 알아보겠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거룩한 삶의 토대라는 사실은 이제 어느 정도 분명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는지도 성경을 통해 살펴보았다.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거룩하게 살 능력을 그리스도에게서 받는다. 믿음은 그리스도와 신자를 하나되게 하는 은혜다. 믿음을 통해 신자는 그리스도와 신비로운 혼인을 하게 된다. 믿음으로 신자는 그리스도라는 포도나무의 가지가 된다. 믿음으로 신자는 그의 몸의 지체가 되어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살아간다. 믿음으로 신자는 그리스도의 신령한 전의 산 돌이 된다. 믿음으로 신자는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해 오신 생명의 떡과 생수를 먹고 마신다. 믿음을 통해 신자는 타락한 본성의 상태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거룩한 상태로 옮겨진다. 죄로 말미암아 사망에서 의로운 생명으로 옮겨진다. 믿음은 신자를 위로하여 모든 선한 말과 행실에 든든히 서게 한다.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하는 물음에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하셨다(요6:28-29). 믿는 일을 먼저 말씀하신다. 믿음은 모든 일의 으뜸이다. 모든 선한 일은 믿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믿음으로 사는 삶과 관련하여 세 가지를 당부하려고 한다.
첫째, 그리스도를 믿는 일에 부지런히 힘쓰라. 믿음을 얕보는 사람들이 많다. 믿음을 다른 많은 도덕적 의무들과 같이 보고 이성의 빛으로 그것을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믿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초자연적인 복음의 계시를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다. 믿는 것을 어렵게 생각한 나머지, 마음에 성령의 역사를 느끼기 전에 믿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믿기 위해 온 힘을 다하라. 믿음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너무나 소중하고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다.
불신앙의 죄를 가볍게 보지 말라. 사실 불신앙이야말로 가장 파괴적인 죄다! 불신앙은 만 가지 죄의 뿌리다.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살후1:7-8).
둘째, 그리스도를 믿는 일에 전심전력해야 한다. 불신앙의 본을 따르다가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히4:11).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히6:11-12).
믿기 위해서는 힘과 노력이 필요하다. 마음에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만 믿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도 힘써야 한다. 믿음은 성령이 주시는 것이 맞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믿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안에 성령의 역사를 느끼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그리스도를 믿는 일에 힘써야 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성령께서 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믿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큰 열심히 믿어야 한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2-13).
성령은 우리 마음에 믿음을 불러일으키신다. 복음으로 촉구하시고, 명령하시고, 초청하신다. 이미 자기 안에 그리스도 외에 의지할 만한 것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런 초청이 별 가치가 없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성령이 자기의 행위를 보고 믿음을 주신 것이라 여긴다. 싹을 보고 땅 속에 있던 씨앗이 어떤 종자인지 아는 것처럼, 열매를 보아 그 속에 역사하는 은혜를 알 수 있다. 우리가 행하지 않으면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을 알 길이 없다. 걸음마를 배우려 하지 않는 아이들은 자신이 두 발로 설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실천하지 않으면 자기 속에 있는 영적인 능력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성령이 믿음을 주시기만을 기다리면서 가만히 앉아 있지 말라!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알고 깨달을 때 성령께서 믿음을 주신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성령이 믿음을 주시는지 보자 하고 기다리고만 있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믿으라. 그렇게 할 때 믿게 된다! 하나님이 누구에게 믿음을 주고, 누구에게 주지 않을지 계산하지 말라. 복음을 믿으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다. 복음을 믿으면, 그리스도의 성령이 믿을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성령의 신비한 역사를 계사하려고 들지 말라. 성령은 우리가 도무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믿음을 주신다. 성령은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사람을 가르치시고,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나아오게 하신다(요6:45).
셋째,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백성인지 알기 전이라 할지라도 복음을 믿으라고 명하신다. 성령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만 구원 얻는 믿음을 주신다. 사람들이 복음을 믿지 않는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양무리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요10:26). 그래서 성경은 믿음을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이라고 한다(딛1:1). 그러나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은 그것을 믿어야 할 의무가 있다. 또한 하나님의 도덕법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 만약 복음을 믿지 않는다면, 자신의 불신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정죄에 대한 책임을 다른 이에게 물을 수 없다.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8).
복음을 믿기 전에는 자신이 택함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은 신비한 하나님의 경륜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라야 자신이 선택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을 보고 바울은 그들이 선택받은 자라는 것을 알았다(살전1:3).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지 알고 싶은가?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렇지 않고서는 결코 자신이 선택받았는지 알 수 없다!
선택받았는지 여부도 알지 못하면서 영생을 얻고자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주제넘은 것이 아니다. 구원 얻기 위해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우리의 위대한 의무다. 믿지도 않으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택한 자인지 아닌지 알려고 하지 말라. 그리고 복음을 믿기 전에 자기 안에서 선택 받은 증거를 찾으려고 하지 말라.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의지하라.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주시고, 택한 백성에게만 속한 것들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 택함”을 입은 자들에게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실 것이다(엡1:3-4). 그러나 이런 모든 신령한 복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의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여호와여,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로 나를 기억하시며 주의 구원으로 나를 돌보사 내가 주의 택하신 자의 형통함을 보고 주의 나라의 기쁨을 나누어 가지게 하사 주의 유산을 자랑하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라(시106:4-5).
이 문제와 관련하여 두 번째로 내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복음을 믿어 구원받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복음을 믿되 바르게 믿어야 한다. 믿음이라고 다 같은 믿음이 아니다. 거짓된 믿음이 있고, 참된 믿음이 있다. 자신의 믿음이 참된 믿음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율법의 성취요 성화의 주된 열매인 사랑이 거짓된 믿음에서 비롯되어서는 안된다(딤전1:5). 진실로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지 않는 거짓된 믿음이 있다. 이런 믿음은 그 어떤 참된 순종이나 사랑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시몬 마구스가 가졌던 믿음이 이런 것이었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믿기는 했지만, 여전히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된 사람이었다(행8:13, 23). 유대인들이 가진 믿음이 이런 것이었다. 하나님의 택한 자들이 갖는 참된 믿음, 보배로운 믿음이 자신에게 있음을 분명히 하라.
참된 믿음과 거짓 믿음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가? 결국 이 문제는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보여주신 대로 믿는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사람들이 구원을 놓치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 하나가 바르게 믿지 않는 것이다. 믿음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복음 진리를 믿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복음을 통해 구원을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바르게 믿고 있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복음 진리를 항상 분명히 신뢰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첫째,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신은 악한 존재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인정하기 어렵고 괴롭겠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복음이 얼마나 위대하고 놀라운지 알고 싶은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존재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본질상 진노의 자녀다. 첫째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분리된 자이며, 죄와 허물로 죽은 자다. 하나님의 율법의 저주 아래 있고, 사탄의 권세 아래 있다. 영원한 비참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실 수 있다.
이 진리를 믿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자신의 죄악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알기를 두려워 말라. 자신이 얼마나 악하고 나쁜 존재인지를 깨달을 때마다 기뻐하라. 자신의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임을 기꺼이 믿으라(렘17:9). 이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참된 겸손과 자기 절망에 이르게 된다. 비로소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간절히 찾게 된다. 그것만이 자신이 해야 할 유일한 일임을 안다. 자기의 죄에 질리고 기진한 사람은 위대한 의사가 자기에게 얼마나 절실한지 깨닫고, 아무리 큰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의사가 처방해 준 대로 하게 된다. 더 이상 자신의 생각과 지혜대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는다(마9:12).
둘째, 부분적인 구원은 없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를 믿으면 이 구원이 가져다주는 모든 복을 받는다. 죄사함을 받을 뿐 아니라 성령도 받는다. 의롭게 될 뿐 아니라 거룩하게 된다.
왜 이 사실이 중요한가?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죄는 용서받고 싶어 하면서도 거룩한 삶을 살려고 하지는 않는다. 죄는 용서받고 싶어 하면서도 그 죄를 버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칭의와 성화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정죄에서 벗어난 사람들만이 거룩한 삶을 살 능력-육체를 따라 살지 않고 영을 따라 사는-이 있다(롬8:1).
죄사함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를 믿으려고 하면서도, 거룩하게 사는 것만큼은 자기 노력으로 이루려다가 영혼을 망치는 사람들이 많다. 율법에 대하여 죽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을 향하여 거룩한 삶을 살 수 없다.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거하시는 사람만이 경건한 삶을 살 수 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를 능히 구원하실 자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그분의 공로가 충분함을 믿는 것이다. 그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한다(요일1:7). 이것은 복음의 위대한 진리다.
끔찍하고 가증한 죄에 빠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을 구원하고 거룩하게 하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을 믿지 않다가 그대로 멸망에 이른다. 또한 성령을 거스르는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다는 생각에 엄청난 죄책과 절망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옳지 않다. 그들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른 죄를 회개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다만 그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긍휼을 베풀어 주시라고 하나님께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죽는 순간까지 이 완악한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없다. 이런 사람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한다(히6:5-6). 그리스도의 공로는 복음을 믿고 긍휼을 바라고 나아오는 모든 자를 구원하기에 충분하다.
자기 안에 있는 죄의 정욕을 절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고 아예 소망조차 갖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당신이 만약 이런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의 은혜는 그 정욕을 이기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을 믿으라. 자신의 죄와 허물이 너무 커서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끝없는 긍휼과, 보혈의 무한한 공로와, 성령의 능력을 경시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을 죄악된 삶에 그대로 방치한다. 사악함에 빠져 지낸다.
넷째, 모든 믿는 자는 복음이 주는 약속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임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주셨다.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이 약속은 자기 것이 된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약속에서 배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도 자신을 배제해서는 안된다. 자신이 아무리 악하고 무가치하다 해도,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악하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지 말라. 다른 사람들도 다 “죄와 허물 가운데 죽은 자”들이다. 겉으로 아무리 좋아 보여도 그들의 마음 역시 다르지 않다. 그리스도를 믿는 일을 너무 미뤄서 이제 도저히 믿을 수 없을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말하는 복음 진리를 믿어야 한다(고후6:2). 혹시 자신이 버려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의 숨이 붙어 있는 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복음으로 부르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구원 얻는 것을 자신의 유일한 행복으로 알고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사람은 결코 쫓겨나지 않는다.
그리스도와 그분을 통한 구원은 선물로 값없이 받는 것임을 믿으라. 그리스도를 누릴 자격을 얻으려고 하지 말라. 불의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그분을 믿기만 하라(롬4:5). 그리스도를 누리기 위해서 합당한 자격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그리스도를 누리지 못할 것이다.
다섯째, 자신이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으라.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도록 도우신다. 무엇이나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들을 할 수 있도록 항상 도우신다. 이 사실을 깨닫는 사람은 기쁨으로 믿을 수 있다.
여섯째, 복음을 믿을 때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구원을 보겠다고 다짐하라. 그리스도가 우리의 참된 행복이어야 한다. 그분이 주시는 평강과 기쁨과 영광으로 우리 잔이 영영히 차고 넘쳐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그밖의 모든 것은 해로 여길 줄 알아야 한다(빌3:8). 이런 확신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보화로 여기고 끌어안게 될 것이다. 그분만을 기뻐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만족이 없을 것이다. 예수님을 기뻐하지 못하게 하는 그 어떤 것도 거부할 것이다. 모든 참된 신자의 마음에는 그리스도가 가장 소중하다(벧전2:7). 값진 진주를 구하는 사람처럼, 이들은 그리스도를 향한 열망으로 모든 소유를 팔아 그리스도를 얻는다(마13:46). 이런 사람들은 “주여,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을 저에게도 주십시오.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여기 계신데 우리가 어디로 가겠습니까?”하고 말한다(요6:33, 34, 68 참조). 이들의 눈에는 그리스도가 “만인 가운데 으뜸이다”(아5:10, 새번역).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영광은 성전의 놀라운 영광으로 나타나고, 이로 인해 땅의 가장 먼 곳에서도 예배자가 나아온다. 마찬가지로, 복음에 온전히 감화된 신자는 성전의 영광으로 예표되는, 비할 데 없는 그리스도의 탁월함에 전적으로 매료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영광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세상의 신인 마귀는 잘 안다. 그래서 마귀는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리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고후4:4).
복음을 진리로 받는 사람은 그리스도만이 자신의 기쁨과 구원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믿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되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로서 영접해야 한다. 그분의 사랑을 얻기 위해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라. 자기 믿음도, 자기 안에 있는 사랑도, 혹은 자기에게 있는 그 어떤 좋은 성품도 의지하지 말라. 그것들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의지할 근거로 삼지 말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값없이 주시는 은혜만을 믿으라!
죄사함의 은총을 바라고 그리스도께 나아가야 할 뿐 아니라, 새롭고 거룩한 마음과 삶을 위해서도 그리스도께 나아가야 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모든 죄를 용서받는다. 그리스도는 신자를 하나님의 진노와 지옥의 저주에서 구원하신다.
세 번째 요지는, 그리스도를 믿는 일을 조금도 미루지 말라는 것이다. 기다리지 말라! 그리스도를 믿기 전까지 사람은 죄와 사탄의 권세 아래 있고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 사람들이 복음을 믿지 못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탄은, 복음을 믿는 것을 미루게 해서 그들의 영혼을 파괴한다.
복음에 대한 사변적인 의문에 빠져서 믿기를 주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복음을 있는 그대로 받으려 하지 않는다. 외적인 은혜의 방편을 의지하는 사람들 역시 그리스도 믿기를 미루고 자기의 영혼을 파멸에 이르게 한다. 이런 사람들은 종교적 의식을 아주 꼼꼼하게 지킨다. 복음이 진리임을 믿지만, 예수만을 믿기 보다 자신이 행한 종교적 행위들을 의지한다.
자신의 회심을 위해 정해진 때를 기다리고 있는가? 지금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속하면, 그분 안에서 생수를 얻을 것이고 성령이 영혼을 치료하고 생명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성경을 통해서 바로 지금이 회심할 때라고 말씀하셨다.
네 번째 요점은, 가장 거룩한 믿음 안에서 계속 자라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구원 얻는 믿음이 있고 자기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알았다면, 믿는 일에 있어서 부주의해지거나 느슨해져서는 안된다. 오히려 살아 있는 동안에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골1:23). 계속해서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어야 한다(히3:6). 거듭나서 새로운 본성을 받은 사람은, 믿음 안에서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계속 자라가고자 하는 열망을 갖는다(벧전2:2).
애굽을 나와 가나안으로 들어갔던 이스라엘처럼, 천국의 가나안을 향해 세상이라는 광야를 행진하는 교회는 많은 어려움을 만날 수밖에 없다. 성숙한 신자가 되어 갈 때도 역시 많은 어려움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처음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보다 훨씬 더 큰 어려움을 마주하게 된다. 더 성숙한 신자일수록 남아 있는 죄의 공격을 더 많이 받게 되고, 사탄의 미혹을 더 많이 받게 된다.
우리의 믿음은 불완전하다. 세상에 사는 한, 우리는 많은 불신앙의 문제에 시달리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막9:24). 그리스도를 더 놀랍게 누리기 위해서는 더 큰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이 자라갈수록 믿음을 통해 선한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경험이 더해 갈수록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를 더 의지하게 된다. 하지만 어려움도 있다. 율법주의 자들처럼,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기보다 점점 자신의 선행에 주목하려고 한다. 참 미묘한 일이다. 믿음이 성숙해 갈수록 선행이 더해 가고, 선행이 더해 갈수록 자신의 선행을 의지해서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유혹이 더 커진다.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의지하기보다 믿음 자체를 의로운 행위로 생각하고 의지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원하는 만큼 거룩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 해도 믿는 일을 중단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더욱더 의지하라. 믿음이 연약하면 열매도 부실하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 의지할수록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더 섬기게 된다. 베드로나 다윗처럼, 그리스도께로 나아온 뒤에 엄청난 죄에 빠졌다 할지라도 움츠려 들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진노하실 것이라고 미리 짐작하지 말라.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이전보다 더 약해지고, 또 다른 죄악에 빠질 수 있다. 오히려 나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의로운 중보자가 계시고, 그분이 나의 모든 죄를 대속하셨다는 사실을 더욱 굳게 붙들라(요일2:1-2).
어떤 죄책도 우리의 양심을 더럽히지 못하게 해야 한다. 단 한 순간도 틈을 주지 말자. 그리스도의 보혈의 샘으로 속히 나아가 씻으라. 우리는 우리의 죄로 인해 더 낮아져야 한다. 우리의 죄악됨을 더욱 미워하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경건한 슬픔으로 아파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기도로 베드로의 믿음을 붙들지 않으셨다면, 그리스도를 부인한 베드로 역시 가룟 유다와 같이 멸망당했을 것이다(눅21:31-32).
자신에게 어떤 선함이나 은혜도 찾아볼 수 없다면, 불의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그리스도를 더욱 의지하라.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신 분을 믿으라.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믿음에 더욱 자라가기를 힘쓰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믿음을 실천하라.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라(빌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