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1/31 설교, 오직 믿음의 법
본문: 롬 3:27-31
율법은 행위를 정한 법이다.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는 절대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을 수가 없다.
율법이 정한 행위들은 지키다가도 하나만 못 지켜도 율법을 범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잘 지키니 자기들은 의인이라는 착각 속에 살았다.
다른 사람들은 정죄하고 자기들은 의인이라 여기며 살았다.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냐고 힐문하였다.
주님은 병든 자에게라야 의사가 쓸 데 있다고 하셨다.
주님은 그들의 외적인 위선과 속에 있는 불법과 죄악들을 여지없이 드러내셨다.
회칠한 무덤이라 하셨고,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킨다고 하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신학교수들)과 바리새인들(목사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마23:25-26)
믿음의 법은 믿음을 정한 법이다.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 법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하나님이 의롭다 하시는 법이 바로 믿음의 법이다.
무엇을 믿기에 하나님이 죄인들을 의롭다 하시느냐가 중요하다.
죄인이 의롭다 함을 받을려면 그의 죄가 속량을 받아야만 한다.
죄인들 스스로는 속량할 수가 없어서 하나님의 아들이 육체를 입고 오셔서 대신 속량해 주셨다.
구약에서는 죄를 속량 받을려면 짐승의 머리에 안수하여 죄를 전가시키고 그 짐승의 피를 뿌렸다.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정한 법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흘리심으로 우리 모든 죄를 속량하시는 예표였다.
십자가에서 단 한번의 영원한(영단번의) 속죄 제물이 되셔서 죄를 속량하시는 제사를 드리셨다.
그 제물은 우리를 대신하는 대속 제물이요, 죄로 가로막혔던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화목제물이었다.
이 영단번의 제사가 십자가에서 드려졌다는 사실과
그 일을 감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의롭다 함을 받게 한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고 하는 것이다.(고전2: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갈6:14)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가 없었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을 길이 없고 구원 받을 길이 없는 것이다.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십자가는 사람들이 악세사리로나 차고 다니는 장식품이 아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피를 흘리심으로, 하나님의 의를 충족하셔서,
하나님도 의로우시고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함을 받게 하신 것이다.(롬3:26)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롬3:23)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였고, 영화로운 존재가 되지 못하였다.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받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인류 역사와 인간이 세운 종교들은 인간 스스로 의로워지는 길을 추구해 왔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인간의 의와 교만이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유대인들도 하나님께 열심은 있었으나 올바른 진리를 따르지 않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를 않았다.
율법 외에 하나님의 다른 한 의가 나타났다는 것을 믿지 못하였다.
율법과 선지자들이 그렇게 증거하고 예언하였는데도 성취되었을 때는 믿지 못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미치는 하나님의 의였다.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인 것을 유대인들도 믿지 못하였다.
율법은 의인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었다.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을 육체가 없음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인간의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도들의 선포이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4:12)
하나님은 건축자들이 정죄하고 골고다에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 하나님이 친히 열어주신 구원의 길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2:14)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을 받았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고 믿을 수가 있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구원을 이루시고 주님은 가셔서 성령을 보내 주셨다.
그래서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고 하셨다.
믿음의 법에서 중요한 믿음은 인간의 의지와 결단의 산물이 결코 아니다.
부흥회나 전도 대집회에서 믿기로 결단하고 손들고 나간다고 해서 구원 받는 믿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세례 받았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영접 기도 따라했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믿음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가져지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모태 신앙이라고 구원 얻는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가질 수 없는 믿음이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져야 하고,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셔야만 한다.
사람에게서 결코 나올 수 없고 사람이 낳을 수도 없는 것이 구원 얻는 믿음이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3:27-28)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이 믿어진 것은 참으로 크게 감사하고 감격할 일이다.
우리의 잘난 행위, 의로운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랑할 데가 어디 있으며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 받았으니 이제 다 된 것이냐?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았으니 이제 무슨 짓을 해도 되느냐?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다고 죄를 지을 수 있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이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3:31)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고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고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는 것이지만,
의롭다 함을 받은 후 우리가 지켜야 할 하나님의 법이요 성화와 믿음생활의 기준이고 준칙(원칙)이다.
그래서 율법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그것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고 온전케 하기 위해 오셨다고 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기 전에는 지킬 수 없는 율법이
의롭다 함을 받은 이후에는 주신 믿음으로 주신 은혜로 주신 성령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이다.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나도 힘을 다해 수고함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것은 죄로부터 해방되어 이제는 의에게 종이 된 것이다.
이제는 우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러야 한다.
죄가 더 이상 우리 몸과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고 몸의 사욕에 순종치 말아야 한다.
의롭다 함을 받은 그 믿음으로 이제 우리는 거룩함의 열매를 맺어가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성령으로, 예수의 피로, 하나님이 의롭다 인정하심으로, 믿음의 사람이 되었는데,
행함에 있어 그 열매가 없다면 그 믿음은 사람에게서 난 것이지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 아닐 것이다.
믿음의 열매는 회개의 열매요, 성령의 열매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의 열매이다.
의롭다 함을 받았다고 의인이 된 것이 아니다.
칭의와 성화는 분리될 수 없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의 합력으로 칭의가 이루어지는데
어찌 그 칭의가 성화로 이어지지 않고 영화로 이어지지 않겠는가?
성령의 역사로 칭의가 이루어졌다면 먼저, 회개의 열매를 낳아야 할 것이다.
성령에 의해 칭의를 받기 전까지는 우리의 모든 행위들이 자연스럽고 다 통하는 것들이었지만
그것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가운데 행해진 것들이었다.
그것들이 아담의 원죄에서 흘러나온 죄의 열매들인 것을 알고 버리는 작업(회개)이 있어야 한다.
세례 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세례를 받으라고 하였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 우리 주님의 제 일성이었다.
믿음 이후 회개가 없다면, 그 열매가 없다면, 그 믿음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이나 성취가 먼저가 아니고, 회개와 변화가 먼저이다.
성품과 삶에서, 회개의 변화가 없다면, 그 믿음은 뭔가 이상한 믿음이다.
제대로 회개한 적도 없는 사람들이 목사, 선교사가 된다고 하고, 주의 일을 한다고 한다.
소가 웃을 일인데도, 오늘날 너무도 많이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주인이 누군줄 알고 주인의 종이 되고 주인의 일을 한다는 말인가?
의롭다 하시고 구원하시고 자녀 삼으시는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다.
그 거룩의 표현이 공의와 정의이고 사랑은 그 다음이다.
거룩도, 공의와 정의도, 싹 무시하고서, 하나님은 사랑이라 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한다.
그러나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의 불경건(하나님께)과 불의(이웃과)에 대하여는, 하늘로부터 진노가 내린다.
회개하지 않는 죄에 대하여는,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다.
죄를 회개함으로 변화의 열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421장 찬송은 이를 말해 준다.
“내가 예수 믿고서 죄사함 받아 나의 모든 것 다 변했네” 해야 한다.
“나의 모든 것 변하고 그 피로 구속받았네” 해야 한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 하면, 이신칭의하였다면, 이제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야 한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이다.(갈5:22-23)
이와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다고 하였다.
칭의를 받았다고 절로 되는 것은 없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린다. 성령은 육체를 거스린다.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한다고 하셨다.
육체와 성령의 갈등이 있다는 것 자체가 칭의를 받았다는 증거 거듭남의 증거이다.
칭의를 받지 못한 사람은 성령이 없으니까 아예 갈등이 없다.
감사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이기는 자에게 주님은 많은 상과 면류관과 천국 본향을 주신다.
성령의 열매는 곧 성화의 열매이기도 하다.
주님의 성품과 삶을 닮아가는 것이 성화이다.
그 성화 끝에 영화가 있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것이다.
칭의는 성화의 시작이면서 영화의 시작이기도 하다.
우짜둥둥 우리는 주님을 닮아가야 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야 한다.
그 열매가 바로 나의 칭의를 입증하는 것이고, 그 열매가 바로 성화의 열매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율법을 폐기하지 않고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워가는 것이다.
유대인의 눈으로 보면 율법은 자기는 의인으로 만들고 남은 정죄하는 고약한 재판관이다.
그러나 칭의의 눈으로 보면 율법은 하나님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거룩의 표현이다. 축복의 기준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은 우리가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고 그대로 지켜야 할 하나님의 법이다.
하나님의 축복은 율법의 계명을 지킬 때 주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그분의 계명을 준수하는 데 있다.
우리 주님도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하셨다.(요14:15)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라고 하셨다.(요14:21)
마지막 부탁 말씀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이었다.(마28:20)
칭의를 받기 전에는 죽이는 율법이 칭의를 받은 후에는 우리가 살아야 할 하나님의 법인 것을 알자.
신구약에서 율법은 이제 성경 66권의 한 책이 되었다.
하나님을 알고 나를 알 수 있는 책이요 성령이 머무는 서제요 진리의 보물창고가 되었다.
성경이 아니고서는 구원을 알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알 수가 없다.
성경을 사랑하고 호흡하고 살자.
오직 그 길만이 축복과 영광을 보장하는 것을 믿자.
오직 믿음의 법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신 하나님께, 칭의를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이 칭의를 선물로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리시며 고난을 받으신 주님을 항상 기억하자.
이 모든 사실을 믿을 수 있도록 우리 마음 가운데 역사하신 성령님께 감사를 드리자.
은혜로 주신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5:1)
우리에게 이루어질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자.
고난 중에도 즐거워하고 시련 중에도 기뻐할 줄 알자.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과 축복과 영광을 이룸을 믿자.
우리가 잠시 받은 고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룸을 믿자.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때가 이르면 거두게 됨을 믿자.
주께서 심은 작은 가지가,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는 것을 믿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