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목회의 성공은 현재 보이는 것 그 이상의 연장선상에서 보아야 한다/ 찰스 브리지스
우리가 흙 속에 눕게 될 때까지 씨앗이 흙덩어리 밑에 누워 있다가 싹이 틀 수도 있다. 옛 선지자들 중에 “한 사람은 씨를 뿌리고, 다른 한 사람이 거둔다”고 말한 사람이 있는데, 그 말은 사실이다. 선지자들은 씨를 뿌렸고, 사도들은 추수를 거둬들였다. 우리 주께서 그들에게 상기시키시기를, “다른 사람들은 수고를 하였고 너희들은 그들의 수고에 참여하였다”고 하셨다.
우리가 하는 사역이 미래의 추수를 위한 파종의 시기에 해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위로일까? 우리가 추수를 거둬 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씨 뿌리는 일을 소홀히 해야 하겠는가? 비록 우리가 밭에서 직접 추수하는 일꾼은 아닐지라도, 추수의 기쁨을 함께 나누게 되지 않을까?(요4:36-38) “여러 날 후에 도로 찾게” 되는 것은, 우리의 “떡을 물 위에 던지게” 하기에 충분한 격려의 말씀이 아닌가?
지혜자가 우리에게 권한다.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라”(잠11:1,6).
윈체스터 주교는 말한다.
“끊임없는 실망을 방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안목을 확대할 줄 알아야 한다. 오직 즉각적인 결과와 눈에 보이는 결과들 속에서 영적인 일꾼들이 생산한 진짜 수확을 찾는 것은, 유한한 육신의 눈이 미칠 수 있는 제한된 시각으로부터 무한한 우주를 측량하는 것 못지않게 터무니없는 일일 것이다. 또는, 현재 시간의 눈이 가진 일시적인 순간으로 끝없는 영원의 시간을 추정해보려 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하나님이 당분간 그의 축복을 보류하시는 일은 자주 일어난다. 그물이 오른 쪽에 던져졌을 때 그물 안에 들어있는 엄청난 고기는, 주님이 주님이신 것을 확실히 보게 하기 위함이다.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성공의 공로를 잘못된 곳에 돌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며, 자기 자신의 그물에 제사를 드리고, 자기 자신의 그물에 향을 사르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이것에 “적은 수확의 날”로부터 막대한 결과들을 얻었던 사실을 보태도 좋을 것이다. “마게도냐 사람”을 본 환상의 직접적인 열매로 나타난 것은 오직 두 사람뿐이다. 그러나 왕성해지고 있는 그 지역의 교회들이 거둬들인 궁극적인 수확은 얼마나 풍성했는가(행16:5-6,롬15:16), 그러므로 우리의 명백하고 고무적인 의무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다. 씨를 뿌리는 것이다.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인내도 있어야 하지만, 기대감 또한 있어야 한다. 성공의 보장은 확실하다. 외부로 보이는 개혁뿐 아니라, 진보적인 영향력과 보편적인 영향력을 받은 영적인 변화라는 면에서도, 성공은 보장되어 있다. 목사의 수고의 열매는 그 성공의 징후가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 결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며, 양육에 비례해서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믿음과 인내를 가져야 한다. 때로는 아주 심한 정도로 가져야 한다. 그러나 고생스럽게 눈물을 흘리는 파종의 시간이 끝난 후에는, 우리는 우리의 단을 기쁨으로 가지고 들어와 그 단을 하나님의 제단 위에 올려 놓을 것이다. 그 단들은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께 열납될 것이다(시126:5-6,롬15:16).
한편, 우리는 다음의 말씀에 주목하여야 한다.
“주님은 속히 자기 일을 서두르시어 우리에게 그 일을 보게 하소서”(사5:19)
평가와 시간은 주님의 일이다. 우리는 주님께서 자신의 일을 하시도로 맡겨야 한다. 우리의 영역은 사역이고, 성공을 주시는 것은 주님의 영역이다. “추수의 주인”께서 언제, 무엇을, 그리고 어디에서 그 추수를 할 것인지를 결정하셔야 한다.
- 찰스 브리지스, 「청교도 목회학」, pp 140-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