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인간 본성의 부패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다 측정할 수 있겠는가?/ 토마스 보스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렘17:9). 그 부패의 지독함을 신속하게 파악하는 만큼 중생의 절대적인 필요를 발견하게 된다. 사람은 본성상 전부 부패했다. 영혼에 있어서 본성의 타락은 모든 기능 전반, 곳 이해 의지 감정 양심 기억에 다 퍼졌다.
가장 중요한 기능인 이해(깨달음, 총명)의 기능은 원래의 영광을 잃고 혼동으로 덮였다. 삼손이 블레셋의 손에 떨어져 두 눈을 뽑힌 것처럼 우리는 원수의 손에 떨어져 우리의 눈을 빼앗겼다. 아무도 깨닫는 자가 없다(롬3:11).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딛1:15). 인간은 본성적으로 부패했기 때문에 신령한 것들을 깨달을 수 없다.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시50:12).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여 사람의 생각과 이성은 판단과 더불어 늘 악할 뿐이다.
인간의 지각은 영적인 것들과 관련해서 본성적으로 약하다. 맹인이라 보지 못한다(벧후1:9). 사람들에게 우리의 거룩한 종교의 공통 원리들을 가르쳐 그들이 그 진리들을 분명하게 알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해야 한다(사28:10). 그들은 하나님의 일들에 대해서는 매우 미련하여 배우지 못하지만, 어떻게 부자가 될 수 있는지 또는 어떻게 자신의 탐욕을 채울 수 있는지 알려 주면 신속하게 이해한다. 그러나 자신의 영혼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자신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찾을 수 있는지 알려 주면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것과 관련해서 사람들이 얼마나 위험한 실수를 하는지! 다른 면에서는 가장 지혜롭지만 영혼의 유익과 관련해서는 지독히 어리석은 자들을 보지 않는가? 잠시 있다 사라지는 하찮은 것들에 대해서는 독수리처럼 예리한 눈을 가지고 있어도, 영원한 실체들의 빛에 대해서는 마치 올빼미와 박쥐 같다. 참으로 모든 인간의 삶은 단지 꿈과 망상의 연속일 뿐이며, 오직 하늘로부터 쏘아진 새로운 빛이 그의 영혼에 들어와서 정신을 차리게 되거나(눅15:17), 지옥에서 고뇌 가운데 그의 눈을 위로 치켜들 때까지(눅16:23) 그는 절대 깨어나지 못한다.
사람의 이해는 영적인 것들에 대해 본성적으로 지독한 어둠에 휩싸여 있다. 사람은 마귀의 선동에 따라 자신의 지각에 새로운 빛을 더해 보려 했다(창3:5). 하지만 그의 지각은 새로운 빛은커녕 무저갱의 문을 열게 되었고, 그곳으로부터 나오는 연기에 의해 어둠에 쌓이게 되었다. 죄가 영혼의 창문들을 닫자 어둠이 영혼 전체를 덮는다. 이제 영혼은 어둠의 땅이며 죽음의 그림자다. 우리는 영적으로 맹인으로 태어나며 은혜의 기적 없이는 회복될 수 없다. 예수님 오셨을 때, 그들은 미신과 우상에 잠겼고 셀 수 없이 많은 우상들을 만들어 널리 퍼뜨림으로서 유럽에만 3만개 이상의 우상이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유대인들의 울타리를 들여다보면,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며” 신음하는 몇 사람 외에는 그 세대 전체에 지독한 어둠이 덮여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맡겨져” 있었더라도, 여전히 유대인들은 자기의 교리에 있어서 대부분 부패해 있었다. 그들의 전통들은 많아졌지만 종교의 생명을 담은 지식들은 상실되었다. 이스라엘의 선생들은 중생의 속성과 필요성에 대해 알지 못했다(요3:10). 그들은 거짓된 광택으로 율법을 치장한 후 겉으로는 율법을 거의 다 지키는 것처럼 행세했다(마5장).
이처럼 참 빛이신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어둠은 온 세상을 덮고 있었다. 주님이 샛별로 그 마음에 떠오를 때까지는 모든 영혼 위에 어둠이 덮여 있었다. 샛별은 어둠에 대한 증거다. 결론은 우리 지각의 본성적인 어둠은 아무런 치료제가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으로부터 나오는 안약만이 우리로 하여금 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계3:18)
- 토마스 보스톤, 「인간 본성의 4중 상태」, pp 68-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