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세상은 ‘쾌락’과 ‘이익’이라는 두 가슴을 내보인다/ 토마스 왓슨
우리는 세상을 침노해야 한다. 세상은 자신의 황금 사과를 우리 앞에 내민다. 우리는 세례를 받을 때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서서 세상을 대적하겠다고 약속했다. 세상의 관능적인 쾌락에 취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자극적인 포도주를 견뎌낼 수 있는 강한 정신력을 지녀야 한다. 재산이 많은 사람은 많은 지혜와 은혜가 필요하다. 재물은 종종 사람의 머리를 교만으로 어지럽히는 독한 냄새를 뿜어낸다. 신32:15은 “여수룬이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라고 말한다. 너무 많은 재물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산을 오르기란 매우 어렵다.
세상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은 유혹에 사로잡히기 쉽다. 세상은 아첨을 일삼는 원수다. 미갈이 다윗에게 그랬던 것처럼, 세상은 우리를 옭아매는 올무다. 세상은 ‘쾌락’과 ‘이익’이라는 두 가슴을 내보인다. 많은 사람이 그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잠에 빠진다. 세상은 우리를 속이려는 생각으로 우리에게 입을 맞춘다. 세상은 우리의 목을 조르는 비단 끈과 같다. 세상은 은혜의 원수다. 세상은 하늘의 것을 사랑하는 마음을 질식시킨다. 세상은 거룩한 열정을 가라앉힌다.
“내가 내 소망을 금에다 두고”(욥31:24)라는 말씀대로, 우리에게는 세상을 사랑하는 본성이 있다. <70인역>은 이 말씀을 “내가 나의 금과 결혼했다”고 번역했다. 재물과 결혼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그들은 재물과 부부처럼 살아간다. 이런 쾌락의 올무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하라. 바위와 같은 수치스런 죄는 피했지만 유사(流沙)와 같은 세상 즐거움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세상을 유익하게 이용하지 않고 사랑한다면 죄를 피할 수 없다.
요일2:15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한다. 우리가 신자라면 마땅히 세상을 침노해야 한다. 신자들은 세상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 신자들은 세상에 있지만, 거기에 속하지 않는다(요17:16). 세상에 대해 죽은 사람은 세상을 위해 살지 않는다. 참 신자는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갈6:14). 참 신자는 세상의 영광과 쾌락에 대해 죽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악한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내주셨다(갈1:4). 구원받으려면 세상을 침노해야 한다. 살아 있는 물고기는 강물을 거슬러 헤엄친다.
세상을 침노하려면 다음 몇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1) 세상은 우리를 속인다
주님은 세상이 우리를 속이는 것에 대해 “재물의 유혹”(마13:22)으로 일컬으셨다. 세상은 행복을 약속하지만, 불행을 가져다준다. 세상은 우리에게 라헬을 약속하지만, 결국에는 눈이 어두운 레아를 주어 보낸다. 세상은 독이 든 환약을 주면서 그것을 설탕으로 감싼다.
2) 세상은 우리를 더럽힌다
약1:27은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고 말한다. 세상은 우리를 더럽게 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 세상은 먼저 사람들의 양심과 그들의 이름을 차례로 더럽힌다. 벧전5:2이 이를 ‘더러운 이득’으로 일컬은 이유는 사람들을 더럽히기 때문이다. 세상을 얻으려는 사람은 저주스런 삶을 자초하기 마련이다. 나봇의 포도원을 탐했던 아합은 결국 자신의 손에 피를 흠뻑 묻히고 말았다.
3) 세상은 사라진다
고전7:31은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라”고 말한다. 세상은 잠시 향기를 풍기다가 시드는 꽃과 같다.
- 토마스 왓슨, 「천국을 침노하라」, PP 109-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