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4/10 설교, "부르심에 합당한 자"
본문: 살후 1:11-12
1.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받도록 기도한다.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살후1:11)
은혜로 사랑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그에 합당한 자로 사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 않다면 배은망덕한 자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지도 모르고 세상 따라 정처 없이 흘러가고 있는 교인들이 많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만한 일을 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때가 되어 부르셨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3-6)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그리스도 안에서 주셨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신 복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소망이요 영광의 소망이시다(골1:27).
그리스도를 얻으면 우리는 다 얻은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자기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여기고 버렸다고 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버리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다.
부르심의 목적은 둘이다.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기쁘신 뜻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 앞에 거룩한 자가 됨으로써 영광의 찬송을 하는 것, 그것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다.
우리가 항상 잊는 것은 이 부르심의 목적이다.
부르심에 합당한 성품과 삶을 살 때 우리는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는 것이다.
성품과 삶은 분리되거나 따로 놀 수가 없다.
좋은 나무가 먼저 되어야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연단을 통하여 거룩한 성품을 만들어 가시는 것이다.
주를 닮은 거룩한 성품에서 거룩한 삶의 열매가 맺고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된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엡6:26-27)
성령의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셔서 거룩하게 하는 것.
티나 주름 잡힌 것도 없이 거룩하게 하는 것,
그렇게 하셔서 그분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시기를 원하신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과 갈망을 우리의 주된 관심으로 가져야 한다.
사람은 어떤 것에 관심을 갖느냐에 따라 모든 것을 갖다가 쏟는다.
거룩을 이루어 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다.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받게 되는 것이다.
거룩은 무엇인가?
세상과 구별되는 것이요, 주를 닮아가는 것이다.
닮아가야 구별이 되고, 구별이 되어야 닮아간다.
주름 잡힌 것이나 티가 없이, 책망할 것이 없이, 완전한 자가 되어 가는 것이다.
빛과 어둠처럼 구별이 있어야 한다.
사고방식과 가치관과 삶의 방식에 변화가 와야 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
탐심은 우상숭배인 것을 알고, 바벨탑이 아닌 거룩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를 져야 한다.
세상은 내게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나는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
그 흔적들이 우리 몸에 영광의 상처로 있어야 한다.
바울은 이 거룩을 이루기 위해 날마다 죽어야 했고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켜야 했다.
우리는 상대의 문제만 보고, 상대를 바꿀려고만 분투노력하고 있다.
남에게 있는 들보만 보고 내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은 내 들보를 보게 하고 고치게 할려고, 바로 내 앞에 남의 들보를 직면하게 하고 있다.
내게 있는 들보를 해결하지 않으면, 내 앞에 있는 들보는 좀처럼 물러가지 않는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서는, 자기가 죽은 자기 십자가를 매일지지 않고서는,
철옹성같은 상대방은 결코 변화되거나 물러가지 않는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은 원수도 화목하게 하신다고 하셨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0-11)
항상 예수의 죽음 곧 십자가를 짊어져야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난다고 하신다.
항상 우리가 예수를 위해 죽음에 넘겨져야 예수의 생명이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난다고 하신다.
내가 죽어야 예수의 생명, 곧 그분의 성품과 삶이 나타난다는 말씀이지요?
우리 스스로 이렇게 하지 않고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거룩을 이루어 가고자 하신다.
주를 닮는 거룩한 성품과 삶을 위해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말씀을 통해, 우리를 연단하신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잠17:3)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
부르심에는 지극히 큰 기업과 영광에 대한 소망이 있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1:18-19)
마음 눈을 밝혀야,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열어주셔야, 우리는 그의 부르심의 소망을 알 수 있다.
성도 안에서 우리가 받는 기업의 풍성함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우리의 시선과 관심이 오직 이 땅의 것에 집중해 있기 때문에 이를 모르고 있다.
부르심의 소망과 그 영광을 모른채, 이 땅에 내가 쌓는 바벨탑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성경은 역사적인 사건들을 통해 말씀해 주고 있다.
대홍수의 멸망,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사사시대의 멸망, 이스라엘의 포로생활과 멸망,
그리고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는 하나님을 모르고 인간이 쌓는 바벨탑의 저주와 진노를 보여주고 있다.
바울은 우리가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여 성도의 기업을 얻기에 합당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골1:10-12)
바울은 하나님께 이렇게 해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기도하는 자는 행할 것이고, 행하는 자는 이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말씀을 통해 알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기도로 구해야 한다.
우리는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받도록 기도하고 남들도 그렇게 되도록 기도해 주어야 한다
2. 부르심에 합당한 자의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시게 기도한다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살후1:11)
부르심에 합당한 자들의 모든 선과 믿음의 역사도,
하나님의 기뻐하심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있다.
우리의 어떤 선도, 믿음의 역사도,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없이는 어느 하나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는 선한 것이 없기 때문이요, 믿음도 선물로 주시기 전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의를 앞세우는 자들은 자기들이 교만한 바리새인임을 공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선해 봤자 위선이요 하나님을 대적할 뿐이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7-8)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마음 가운데 오셔야 우리는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게 된다.
성령이 오셔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우리에게 전달되고 그에 따라 우리는 선을 행할 수 있다.
그 모든 선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바울은 부르심의 소망과 그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크심을 알게 하도록 기도했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1:19)
우리가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는 것도,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는 것도,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우리를 능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고난 가운데서도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능력이시다.
우리가 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선한 뜻과 은혜를 주셔서 이루게 하시는 것들이다.
부름에 합당한 자들의 모든 선한 일은 믿음의 역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 믿음의 역사를 시작하고 지속시키며 완전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시다.
부르심의 소망이 이루어지게 하고, 그 영광을 누리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과 그의 능력이시다.
잠시 받는 연단의 가벼운 고난들이 결국에는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하신다.
이 영광이 우리의 소망이기에 우리는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고난과 연단을 견디는 것이다.
이 세상에 바벨탑 쌓기에 급급한 사람들은 도무지 생각도, 이해할 수도 없는 진리이다.
3. 부르심에 합당한 자들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그들도 영광을 받도록 기도한다.
부르심의 소망과 그 영광은 언제 이루어지느냐?
오직 주의 재림 때 이루어진다는 것이 성경이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사실이다.
참된 성도들이, 오직 주님께 그리고 그분의 재림에 소망을 두고,
모든 환난을 어떻게 견디었는지를, 보고 배우고 본받아야 한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세상은 끝이요 하나님의 왕국은 실현되고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된다.
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도 낙원에서 역시 이 소망의 실현을 기다리고 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은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의 운명이 극명하게 갈리는 날이다.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그 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살후1:7-10)
주님은 영광과 권세의 주님으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던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실 것이다.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지옥에서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을 것이다.
성경은 심판과 지옥을 상급과 천국을 누누이 말씀하고 있지만,
현대 교인들은 이 땅의 축복에 눈이 어두워, 미혹의 영과 세상의 신에 사로잡혀, 잊고 있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만 아시지만, 기어코는 닥칠 무섭고도 놀라운 일이다.
주님 나타나시는 그날에 주님은 부르심에 합당한 자들에게서는 영광을 받으시고
그들은 그 날의 모든 일들로 인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살후1:12)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우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다.
그리고 우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기 위함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았던 이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을 것이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7-18)
이 부르심의 소망, 영광의 소망의 풍성함이 있기에,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도 즐거워할 수 있다.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이루고, 연단은 소망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없으면 우리에게는 영광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은 이 영광을 위한 준비인 것을 알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주의 말씀대로 우리의 선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 한다.
그때 우리도 그분 안에서 그리고 그분과 함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가 행하고 바라는 모든 일들의 목표와 궁극적 목적이 그리스도의 영광이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도록 해야 한다.
우리 자신의 행복과 다른 사람들의 행복은 이 궁극적 목적에 종속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은 창조주요,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는 구속주이시다.
창조주와 구속주가 주신 은혜로 영광을 받으실 때 비로소 우리도 영광을 받게 된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오직 자기의 영광과 축복을 구하는 자들에게는 저주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하고 그 이름을 모독하는 자들에게는 진노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롬1:18)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받도록 하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우리의 모든 선과 믿음의 역사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시게 하자.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가 은혜를 주신 목적은,
주 예수의 이름이 우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그로 인하여 우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기 위한 것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