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4/17 설교, `자족하는 마음`
본문: 딤전 6:3-10
1. 진리가 있어야 자족할 수 있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딤전6:3-5)
교회 안에는 ‘다른 교훈’이 있고 ‘바른 말’이 있어 왔다.
‘바른 말’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가리킨다.
‘다른 교훈’은 바른 말을 떠나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교훈으로 삼는 것이다.
오직 성경을 최고의 권위, 유일한 권위로 하여 바른 말, 바른 교리를 전하고 가르치고 순종하여야 한다.
그것이 믿음의 길이고 사는 길이고 축복과 영광을 가져오는 길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교리)가 없으면 다른 것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말씀이 내 안에 없으면, 진리가 내 중심에 없으면, 내 마음은 탐욕을 향하게 되고,
그 탐욕을 합리화하고 불을 붙이는 세상의 전통과 다른 교훈을 좋아하고 따르게 된다.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시119:36)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119:11)
성경을 멀리하고 세상을 더 가까이할 때부터 사탄은 우리 마음을 차지하고 점령군이 되고 만다.
그래서 주님은 이 강한 자를 먼저 하나님의 손을 힙입어 굴복시켜야 좇아낼 수 있다고 하셨다.
우리가 세상을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아니하면 세상이 우리를 십자가에 못 박게 된다.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약4:4)
주님의 말씀에, 경건의 교훈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신다.
세상과 탐욕에, 세상의 초등학문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저주와 진노를 내리실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참으심으로 인하여 축복과 진노가 금방 시행이 안되니까 악인들이 신성모독을 일삼는다.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전8:11)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3:9-10)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로 기둥을 삼고 터를 다져야 할 교회와 성도들이,
항상 다른 교훈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을 받아들여 부패하고 타락하였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고후11:4)
“그러나 우리가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8-9)
다른 교훈에 빠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알고 우리의 분별력을 키워야 한다.
분별력을 키우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주일 예배를 귀하게 여기고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골3: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면서 변론과 언쟁만을 좋아하게 된다.
투기와 분쟁을 일삼고 비방하며 악한 생각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런 사람은 결국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리게 된다.
진리를 잃어버리면 마음이 부패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마음이 부패한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이 진리가 그 안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경건조차도 자기 이익을 얻는 방도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조차도 오직 자기(피붙이들, 패거리들)의 유익을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할 줄 모르고 온통 자기 유익만을 구하는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진리가 아니고 이익이 우선이 될 때 분쟁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왜 한 조직이 파가 갈라져서 싸우는가? 이익을 서로 취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진리는 사람들을 뜻으로 하나가 되게 하지만, 이익은 사람들을 갈라지게 하고 찢어지게 하는 것이다.
교회가, 성도들이, 진리를 잃어버리면, 진리를 소홀히 하게 되면,
그때부터 그곳은 이익 공동체가 되어 이익을 서로 취하려고 다투는 분쟁 공동체가 되고 만다.
갈라지고 찢어지는 것은 다 이익을 먼저 취하려는 아귀다툼에 지나지 않는 것을 본다.
그러나 다른 교훈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을 전하고 받아들이는 집단에서 따로 나와서
바른 진리에 서고자 하는 것은 분파가 아니고 진리에 순종하고자 하는 십자가의 분리인 것이다.
이익을 위한 분파와 진리를 위한 십자가의 분리를 우리는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2.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된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6:6-8)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아는 것, 그것이 자족하는 마음이다.
주님의 기도대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그것으로 족하게 여기는 것, 그것이 자족하는 마음이다.
거기서 지나치는 것들은 다 탐욕에 속하는 것들이다.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된다고 하신다.
경건은 진리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로 사는 것을 말한다.
오직 자기 이익과 축복을 위해서 기복신앙으로 믿는 것은 경건이 아니고 불경건이다.
하나님을 우상으로 받드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큰 이익이 있다는 것은 경건의 참 의미를 알면 이익의 참 의미도 알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의 경건에 대하여 주시는 모든 신령한 복과 영광을 말한다.
사람들이 행하는 선행과 구제는 대체로 이 땅에서 상을 이미 받았기에 더 받을 것이 없다.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6:2,5,16)
하나님은 살아 계신 것, 상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구약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대개 물질적인 복의 형태로 말씀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이었고 성령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신약에 와서 구약의 복들은 온전케 되었고, 신령하고 영원한 것이 되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은 신령하고 영원한 상이요 복과 영광이다.
물론 이 땅에서도 주의 경건한 자들에게 영원한 것의 맛배기들을 맛보게 하여 주신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 출세하기 위해서, 예수 믿는 자들은 실망을 해도 할 수 없다.
하나님이 이 땅에서 주시는 것들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쓰라고 주시는 것들이다.
그것이 하늘에다 보물을 쌓는 것이고, 그렇지 않는 것들은 땅에다 보물을 쌓는 것이다.
좀과 동록이 해하고, 사건들과 질병과 파멸로 없어지는 것들이다.
많이 거둔 자도,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않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재정법칙이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심고 거두는 수확의 법칙을 말한다.
세상의 경제 셈법으로 도무지 알 수도 없고 할 수도 없는 하늘 법칙이다.
돈 놓고 돈 먹는 식, 복 놓고 복 먹는 식의 야바위 법칙이 결코 아닌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도, 선행과 구제도, 진리의 말씀을 따라, 공의를 따라, 해야 한다.
동기가 중요하고 목적이 중요하다.
숨은 것도 감추인 것도 하나님 앞에서는 다 드러나게 되어 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다.
또한 세상 떠나갈 때,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
“그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자기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전5:15)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인데, 사람들은 너무도 많은 것을 탐하고 추구하고 있다.
그러느라 몸이 상하고 마음이 상하고 소중한 관계를 깨뜨리고, 평안을 모른채 수고하며 허덕이고 있다.
참 경건, 참 진리에 대해서는 어떤 수고도 하지 않을려고 하면서 말이다.
언제 갈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오늘 하루도 무사할지, 내일 아침에 내가 눈을 뜨고 세상에 존재하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세상을 떠날 시각은 누구에게나 오는데, 세상 사는 준비는 하면서도 세상 떠날 준비는 아예 하지 않는다.
다 놓고 가야 하는데, 누가 쓸지 모르는데, 땅에다 쌓을려고 무리수를 두고 악행을 하고 지옥을 산다.
“선인은 그 산업을 자자 손손에게 끼쳐도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잠13:22)
경건이 주는 큰 이익이 무엇인가?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6-8)
세상 떠날 시각이 가까웠을 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고 의의 면류관을 받는 것이 가장 큰 이익인 것이다.
세상에서 누린 면류관이 아무리 높았던들 그것은 썩어질 것이고 놓고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 경건에 대하여
주님이 주시는 의의 면류관은 영원한 상이요 영원한 큰 이익인 것이다.
이 땅에서 살면서 평안을 누리고 천국을 사는 비결은 자족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아는 것이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히13:5-6)
족한 줄로 알고 살면 머리털까지도 세시는 주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않으신다.
믿음으로 사는 자들은 강하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않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바울은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우리도 그러한 일체의 비결, 삶의 비결을 배우시기 원하신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1-12)
일체의 비결을 배운 자에게 하나님은 능력을 주셔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하신다는 것이다.
비천에 처할 줄도 풍부에 처할 줄도 제대로 못 배운 자들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코메디일 뿐이다.
13절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며 연단을 쌓아 순금이 된 자들을 위한 말씀이다.
3. 자족할 줄 모르니 돈을 사랑하고 부하려 한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9-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인 것을 명심해야 한다.
모든 악이, 모든 죄가, 돈을 사랑하는 데서 오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망한 것도 재물을 하나님보다 돈(재물)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
사랑은 나눌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사랑할 수 없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고 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모든 율법의 완성이다. 성령의 열매이다.
사랑은 원천에서 흘러오는 것이지 사람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 자가, 이웃을,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을 진리를 따라 사랑해야 이웃도 보이고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
돈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은 물론이요 이웃도 사랑할 수 없다.
사랑한다고요? 그것은 다 자기 사랑의 연장이요 수단일 뿐이다.
정말 사람을 사랑할려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회심해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원천에서 나오는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
사람이 떡(돈 재물)으로만 살 수 없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돈을 사랑하고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게 되어 있다.
사탄의 미혹이요, 죄와 육체와 세상의 미혹과 유혹이다.
하와는 뱀의 미혹을 받아 죄를 범하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통치권을 잃고 말았다.
사탄의 미혹을 받으면 믿음에서 떠나게 되고,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찌르게 된다.
믿음이 없어지면 많은 근심으로 자신을 찌르면서 평안과 안식을 잃게 된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게 된다.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의 지배를 받으니 유혹과 올무의 덫에 걸리고 만다.
세상을 놀라게 하는 거대한 사기 사건들은 다 그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다 덫을 거는 것이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그 욕심 때문에 시험과 올무에 걸려 파멸과 멸망에 빠지는 결과를 낳는다.
진리를 따라 살지 않고 욕심을 따라 살면 죄를 낳고 사망으로 멸망하는 이치이다.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하리라”(잠28:20)
속히 부하고자 욕심을 부리고 속이고 재주를 부리던 자들이 감옥에서 긴 세월을 보내고 있다.
속히 부자가 되고 싶어 남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 자들이 형벌을 면할 수가 없다.
결국은 자기 인생과 영혼을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고 만다.
돈을 사랑하고 부하려 하는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이 파멸과 멸망을 낳고 마는 것이다.
하나님보다, 진리보다, 돈을 사랑하고, 부할려고 하는 마음, 그 욕심부터 잡지 못하면,
시험과 올무의 덫에 걸려 파멸과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않고 다른 교훈을 따르게 되면
자족할 줄 모르게 되고 어리석고 해로운 세상 욕심들에 사로잡히고 휘둘리게 된다.
진리가 있어야 자족할 수 있음을 명심하고 진리를 알고 사는 일에 헌신하자.
말씀과 경건만이 큰 이익을 가져다 주고 좋은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고 말씀과 경건 생활에 힘쓰자.
돈을 사랑하고 부할려고 하는 자들은 결국 파멸과 멸망에 빠지고 만다는 것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