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5/22 설교, "벧엘로 올라가자"
본문: 창 35:1-7
야곱은 형 에서를 다시 만나서 형 있는 세겜으로 갈 것처럼 약속해 놓고
그냥 숙곳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그 제단 이름을 엘 엘로헤 이스라엘이라고 명명했다.
번역하면,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었다.
제단까지 쌓았으니 모든 것이 잘 되고 형통할 줄 알았다.
그런데, 사건과 위기가 몰려 왔다.
외동딸 디나가 혼자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다가
하몰의 아들 그 땅의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였다.
집으로 돌려보내지도 않고 자기 아내로 달라고 요구하였다.
아무리 큰 혼수와 예물을 청할지라도 주겠다고 했다.
아예 서로 통혼까지 하는 관계로 나아가자고도 했다.
야곱의 아들들이 속여 대답했다.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우리 누이를 줄 수 없다.
너희 중 남자가 다 할례를 받고 우리 같이 되면 통혼하겠다.
그들이 할례를 행하고 제삼일에 아파할 때에 디나의 오라버니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가지고 기습하여 모든 남자를 죽이고 디나를 데려오고, 가축과 재물을 노략질하였다.
야곱, “이 땅의 주민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의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집이 멸망하리라”(창34:30)
이 위기 가운데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신 것이다.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창35:1)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 있다고 하였는데,
억울하고 분한 심정으로 피의 보복을 하였지만, 그것은 위기를 불러오고 말았다.
분기 탱천하여, 분한 마음이 하늘을 찌를 듯이 격렬하게 솟구쳐 올라 갚아주지만
그것은 해결이 아니고 더 큰 위기를 부르는 것이 인생이기도 하다.
사고는 사람이 치고, 해결은 하나님이 하신다.
하나님은 악을 행하시지도 않고 원인이 되지도 않으신다.
다만, 필요와 섭리에 의해 허용하실 뿐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좋은 일 뿐 아니라 안 좋은 일들도, 그 때는 슬프고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필요하시기에 겪게 하시고 교훈을 얻게 하시고 유익하게 하신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12:11)
고난이 우리에게 유익하여 하나님의 법을 배우게 된다.
하나님을 믿고 의뢰하는 마음이 견고해진다.
고난과 징계로 연단을 받은 후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의의 열매, 평강의 열매를 맺게 된다.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자.
엘엘로헤이스라엘의 제단과 제사로 만족했던 야곱과 자녀들이 치른 대가는 컸지만
하나님은 이를 계기로 벧엘로 올라가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엘벧엘의 제단을 쌓게 하셨다.
그러나 벧엘로 올라가기 전에 우리가 할 일이 있음을 오늘 본문은 말씀해 주고 있다.
엘엘로헤이스라엘의 제단과 엘벧엘의 제단은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포로로 끌려가고 결국 멸망한 원인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엘엘로헤이스라엘의 제사로 그들은 할 일을 다 한 줄로 알았던 것이다.
입술로는 하나님과 가까웠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과 멀었다.
사람이 만든 전통과 계명으로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였던 것이다.
이런 잘못은 어느 시대나 사람들이 저지르는 종교적 악습이기도 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의 3백년 사사시대를 암흑시대라고 한다.
하나님께 제사는 드리면서도 그들의 마음은 애굽과 가나안의 풍습과 우상에게로 달려갔기 때문이다.
엘엘로헤이스라엘의 제사는 넘치게 드렸지만, 헛되이 경배하다 망한 것이다.
중세 천년을 암흑시대라 하는 것도 제사를 안 드려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그 웅장한 건물에서 화려한 의식으로 드린 미사가 엘엘로헤이스라엘의 예배였기 때문이었다.
마당만 밟고 가는 제사였고 제단이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5백년이 지나는 사이,
기독교는 또다시 엘엘로헤이스라엘의 예배로 돌아가고 말았다.
영적으로는 사사시대요 중세 암흑기로 되돌아가고 있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엘벧엘의 제단과 예배로 돌아가야 한다.
이제 우리는 15년 동안의 멱우리 제단을 정리하고 새로운 제단으로 올라가고자 한다.
우리가 처음 왔던 2001년 10월의 이곳은 사람이 1년 가까이 살지 않던 빈 집이었고,
마당의 풀은 지붕 높이까지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온갖 쓰레기가 공간마다 채워져 있었다.
집사님들이 벽을 털어내고 전선을 다시 깔고 성전 모양을 만들었다.
15년간 머물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1년 정도 임시 머물다 갈 줄로 알았다.
이곳에서 하나님은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의 신학을 만나고 연구하게 하여 주셨다.
이들의 신학을 만나고서야 우리의 신학과 전통이 얼마나 원래 순수한 것과 멀어진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서는 오직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릴려고 했고,
엘벧엘의 제단이 되도록 많은 노력을 경주하였다. 이것이 싫다고 사람들은 떠나갔다.
이제 오늘 예배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새로 마련해 주신 화서동 제단으로 가고자 한다.
그곳 화서동 제단은 더욱더 엘벧엘의 제단이 되기를 소원하고 기도한다.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는 그 자세와 정신을 오늘 우리는 배우고 본받고자 한다.
1. 벧엘로 올라갈려면, 이방 신상들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야곱이 이에 --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창35:1,2)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이 이방 신상들이다.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대신 자리잡은 우상들이다.
입술로는 주를 부르면서도 마음은 우상을 부른다.
엘엘로헤이스라엘 하면서도 마음은 바알과 아세라, 돈과 재물, 일과 성공에로 향하는 것이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다.
자식과 가정도 하나님보다 우선일 수 없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우상이요 이방신상들이다.
우상들일랑은, 이방신상들일랑은, 상수리 나무 밑에 다 묻어버려야 한다.
바울처럼 내게 유익하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우리도 바울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만을 알기로 작정해야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게 하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자.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할 때 모든 것을 더해 주신다.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제대로 자리를 잡고 균형을 이루게 된다.
어떤 형편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는 것만이 은혜와 평강을 이루게 한다.
사는 동안 사건과 사고들을 통해 깨닫게 해주실 때,
우리 중심에 어느새 자리잡고 있던 이방신상들, 우상들을 상수리 나무 밑에 묻어버려야 한다.
하나님만이 나의 반석, 산성, 소망임을 진심으로 고백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아야 한다.
어떤 신상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십계명의 첫 세 계명인 것을 명심해야 한다.
2. 자신을 정결케 해야 한다.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창35:2)
정결은 거룩이요 성결이다.
자신의 속을 깨끗이 해야 겉도 깨끗해질 수 있다.
겉사람은 낡아질지라도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질 수 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
세상의 온갖 더러움에서 자신을 깨끗이 해야 한다.
육과 영의 온갖 더러움에서 자신을 깨끗이 해야 한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거룩한 자를 축복하시고 영광을 주신다.
거룩할려면 우리 마음이 탐욕으로 향하지 않고 주의 말씀에로 향해야 한다.
탐욕과 달음질이 결코 축복과 영광을 이룰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자가 되고 출세하게 하기 위해 택하고 부르지 않으셨다.
거룩하고 흠이 없고 티나 주름이 없는 자로 세우기 위해
하나님의 의와 거룩을 나타내고 향기를 풍기도록 부르셨다.
말씀과 기도가 우리를 거룩하게 해 준다.
고난과 인내가 우리를 거룩하게 해 준다.
연단한 후에 정금같이 나오게 하신다.
거룩과는, 성결과 정결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 많이 있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신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교회를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장사하는 집’으로 만든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2:20-22)
이것이 진정한 교회이고, 우리 자신의 성전인 것이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어야 한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가 무엇인가? 성경 말씀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머릿돌, 모퉁잇돌이 되어 주시는 곳이다.
온전케 하여 봉사의 일을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야 한다.
3. 의복을 바꾸어 입어야 한다.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창35:2)
자신을 정결하게 하였으면 이제 의복을 바꾸어 입어야 한다.
옛 사람의 언어와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의 언어와 행위로 바꾸어 입어야 한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
심령이 새롭게 되지 않으면, 유혹의 욕심을 따라 사는 옛 습관을 따르게 된다.
그런 옛 사람을 헌 옷 벗듯이 미련 없이 벗어 버리라고 한다.
심령이 새롭게 되려면 하나님을 따라야 하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새 사람이고 이 새 사람을 새 옷 입듯이, 입고 살아야 한다.
그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성령으로 말씀으로 거듭나서 우리는 성화의 길을 가야 한다.
성화만이 이 땅에서의 생명과 평안을 보장하고 영원한 곳에서의 상급과 영생이 보장된다.
십자가를 지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그 자취를 따라가자.
하나님은 벧엘에서 엘벧엘의 예배를 드린 야곱을 축복하셨다. (9-15)
화서동 제단이 엘벧엘의 제단이 되고, 우리도 또한 동일한 축복을 주시기를 기도한다.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주셨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생육하며 번성하는 축복을 주신다.
수도 많아지고 번성하게 하신다. 교회도, 가정도, 직장도, 사업장도.
한 무리의 백성들이 이곳에서 나오고,
백성들의 총회가 나오고,
그 중에서 왕들이 나오는 축복을 주신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 약속하셨던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
그 기업의 땅을 후손들에게도 물려주시는 복을 주신다.
탐욕과 달음질의 더러움은 일시적인 성취 뒤에 멸망을 가져 온다.
그러나 정결과 새 사람 새 옷은 연단 후에 정금과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한다.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이 세상을 통치하신다.
화서동 벧엘로 올라가면서
이방신상들을 상수리 나무에 묻어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의복을 바꾸어 입은 우리 모두를 축복해 주옵소서.
우리의 예배가 엘벧엘의 예배가 될 수 있도록 도우시고
오직 영과 진리로만 예배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