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뷰캐넌

[스크랩] 제임스 뷰캐넌, 성령의 사역, 회심과 부흥, 1장 위대한 영적 변화의 필요성

강대식 2016. 9. 9. 22:20

저자 소개

 

제임스 뷰캐넌(James Buchanan. 1804-1870)

 

1803년 스코틀랜드에서 출생한 뷰캐넌은 에딘버러에서 토마스 찰머스(Thomas Chalmers)의 지도 아래 신학을 공부하였으며, 23세에 안수를 받고 로슬린(Loslin)에서 첫 사역을 시작했다. 그는 목회 사역뿐 아니라 에딘버러의 뉴 칼리지에서 변증학 교수와 조직신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했다. 그의 저서들 가운데 이 책과 「칭의 교리의 진수」는 성령론과 칭의론에 관한 한 최대의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이 책에 대하여 추천의 글(박순용 목사)

 

이 책「성령의 사역, 회심과 부흥」은 성령에 관한 책 중에서 안심하고 추천할 만한 최고의 책으로 꼽힌다.

이 책의 장점은 성경에 충실하다는 것과 종교개혁적인 신학에 그 뿌리를 둔다는 것, 그리고 교리와 적용에 있어서 그 양 날개의 균형을 적절히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신학과 목회적 측면에서 다룬 성령론의 압권.

 

그리고 이 책은 로이드 존스가 극찬한 책으로 그의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청교도 신앙」, 생명의 말씀사). “부흥에 대한 언급을 생략해 버리는 책은 알미니안들이 쓴 책뿐만 아니라 칼빈주의자들이 쓴 책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쉐퍼 박사, 찰스 하지 등은 부흥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이어서 그는 “부흥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얻고자 한다면 성령과 그 사역에 관해 1860년 이전에 쓰여진 책으로 돌아가야 한다. 예를 들어 제임스 뷰캐넌이 쓴 「성령의 사역, 회심과 부흥」과 같은 책이다”라고 덧붙였다. 교회의 부흥과 관련하여 성령사역을 주목한 독보적인 책이다.

 

제 1 부 죄인들의 회심에 있어서의 성령의 사역

 

1장 위대한 영적 변화의 필요성

 

1. 영적 변화

 

영적 변화

 

예수님께서 가장 지고한 엄숙함으로 다음과 같이 선포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우리는 죄인이 하나님의 나라를 보기 전에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이 변화의 본질에 관하여, 무엇보다도 먼저 이 변화가 ‘영적인 변화’라는 사실을 지적해야만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변화의 대상과 주체, 이 변화가 성취되는 수단 등이 모두 완전히 영적이라는 것이다.

 

이 변화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영혼 내부에서 발생되는 영적 변화’이다. 즉 영혼이 이 변화의 대상인 셈이다. 이것은 단순한 외면적인 변화가 아니라 내적이며 영적인 혁명을 뜻한다. 지성을 비춰 주고 양심을 각성시키며, 그 의지를 복종케 하고 그 감정을 정련하고 정화하며,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새롭게 지으심’을 받게 하는 지성과 마음의 온전한 변화를 뜻한다. 따라서 이제 그는 이러한 변화를 통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곧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이제 완전히 새로운 것이 된 것이다.

 

또한 성령님이 이 변화의 주체, 즉 주인이시다. 영혼은 오직 ‘영으로 거듭날 때’만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왜냐하면 육으로 난 것은 여전히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기 때문이다. 어두워진 우리의 지성에 빛을 비추어 밝혀주시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보게 하시는 일이 바로 성령님께 속한 일이다.

성령께서는 죄를 생각나게 하심으로써 잠자고 있는 우리의 양심을 깨우시며, 그 능력의 날에 우리를 친백성으로 삼으심으로 우리의 패역한 뜻을 복종시키신다. 성령께서는 우리 속에 강퍅하고 패역한 마음을 제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며 거룩하게 하신다. 또한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과 선하심, 그리고 그 능력으로 우리 가운데 믿음으로 역사하신다.

 

이러한 영적 변화는 영적인 수단으로 말미암아 발생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도구가 된다. “우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으며”(벧전1:23). 이 변화는 종종 교훈과 확신 후에 뒤따르며, 점진적인 거룩의 과정을 양산한다. 우리 주님께서 이러한 변화, 즉 영적 회심을 ‘거듭난다’라고 표현하신다.

 

성경에는 이러한 영적인 변화에 대한 많은 비유들의 여러 독특한 특징이 제시되어 있다. 이 모든 비유들은 우리에게 이 영적 변화의 위대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 준다. 이는 영혼의 ‘갱신’이라 불리며, 전혀 새롭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영혼의 새롭게 됨’, 즉 영혼이 다른 모양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영혼의 ‘이행(移行)’, 즉 영혼이 한 위치 또는 한 장소로부터 다른 위치와 다른 장소로 옮겨 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영혼의 ‘회복’, 즉 새 삶을 입는 것을 뜻한다. 이는 영혼의 ‘부활’, 즉 죽음으로부터 일어서는 것이다. 영혼의 ‘새 창조’, 즉 그것을 만드신 분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창조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영혼의 ‘씻음’, 즉 오염으로부터 영혼의 정화와 영혼의 ‘치유’, 즉 질병으로부터 구원, 영혼의 ‘자유’인 죄의 권세로부터의 해방, 영혼의 ‘각성’, 즉 죄의 잠으로부터 깨어남을 뜻한다.

 

또한 이러한 변화는 소경 된 자가 시력을 회복하여 다시 보게 되는 것, 귀머거리가 청력을 회복하여 다시 듣게 되는 것, 문둥병자의 몸이 깨끗하게 회복되는 것, 죽은 몸이 생명을 회복하여 다시 사는 것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영적 변화와 하나님의 나라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종종 가견적 교회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는 영적(Spiritual)이며 불가견적(Invisible)인 하나님의 나라를 지시하고 있다. 여기서 주님이 하신 말씀의 핵심은,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은 결단코 이 지상에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영적 교회의 구성원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 날에 승리하는 천상교회(天上敎會)에 입장할 수 있는 자격을 취득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 진술에는 불신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중생받지 못한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가능성은 절대로 없다는 것이 여기서 명확하게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원리를 말씀하신다.

 

2. 영적 변화가 필요한 이유-본성적인 부패와 타락

 

중생의 필요성과 이 중생이 없이는 구원이 전혀 불가능하다는 구원의 불가능성을 확증함에 있어서, 우리 주님께서는 인간이 본성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존재라는 것을 밝히 드러내신다. 주님이 선포하시는 인간의 이러한 모습은 성경이 한결같이 선포하는 것이며, 우리의 경험과 관찰이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라는 말씀 속에는 회심하지 않은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 밖에 있으며, 그들이 거듭나기 전까지는 절대로 그 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확실히 암시되어 있다. 이러한 암시는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3:6)라는 말씀에 더욱 분명하게 진술되어 있다.

 

주님께서 ‘육’이라는 표현을 하실 때, 그것은 ‘인간의 육체’ 혹은 ‘인간의 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의미하는 것이다. 때때로 이 용어가 바울이 ‘육체에 거하는 것’이라는 표현에서 사용한 것처럼 인간의 신체적인 뼈대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성령과 대조하여 ‘부패하고 타락하여 아직 갱신되지 못한 우리의 전인적인 본성’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러하기에 사도 바울은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8-9)라고 기록했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육’은 썩어져 가는 욕망을 따라 부패한 ‘옛사람’에 해당하며, ‘자연인’은 성령님의 일하심을 받지 못한 자로서, 하나님의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음받은 ‘새사람’과 구별되는 존재를 말한다. 그러므로 ‘타락한 육체’와 ‘세속적인 마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육체적인 마음’을 뜻하며, 우리 주님께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라고 말씀하실 때, 그것은 육으로 난 모든 인류, 즉 부패하고 타락한 부모로부터 ‘보통 생육법’에 의해 출생하는 모든 인류들은 육이며, 죽은 존재이며, 부패하고 타락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인간이 출생하는 매우 자연적이고 본성적인 상태이며, 이러한 상태는 인간이 거듭나기 전까지 지속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다윗과 같은 고백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51:5).

 

또한 우리 주님께서 하신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는 말씀은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인류가 있음을 암시하신 것이다. 그 하나는 본성적인 부류요, 다른 하나는 영적인 부류이다. 전자는 비중생인이요, 후자는 중생인을 가리킨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분류가 근원적인 출생의 차이나 차별로부터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 내부에서 작용하는 어떤 특별한 변화에 기인하는 것이다. 곧 중생케 하시는 은혜를 직접적으로 수행하시는 하나님의 영의 역사하심에 기인한다.

 

‘모든 인류’는 본성적으로 다 하나이며, 동일하게 부패한 성품을 지니고 출생한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롬3:23 참고). 바로 이것이 우리 주님의 말씀에 내포되어 있는 원리들이다.

 

그러나 이 본성적 부패와 무능력의 교리가 성경에 일관되게 나타나 있고 매우 자주 명백한 용어들도 설명되며, 우리 자신들의 마음의 경험과 세상의 우주적 역사가 그것을 풍성하게 입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교리는 중생받지 못한 자들을 매우 불쾌하게 하고 불안에 떨게 만드는 교리이다. 왜냐하면 중생받지 못한 자들이 이 교리를 완전히 부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라는 고백이 무엇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도무지 알지 못하며, 자신에게 거듭남이 필요하다는 진심 어린 확신 역시 느끼지 못한다. 물론 자신에게 무언가 결함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자신을 회복시키는 일에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히 타락한 사람은 아니며, 소위 ‘중생(거듭남)’에 암시된 위대한 변화가 필요한 상태에 있는 존재라고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양심이 어느 정도 각성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외면적인 개선이나 도덕적인 개선 그 이상으로 여기지는 않게 되는 것이다. 단지 자신의 의무에 대해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윤리적이며 도덕적인 행위에 좀 더 신중해질 뿐이다. 이것은 컵과 큰 접시의 바깥 부분만을 깨끗이 닦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곧 자신의 새로운 영적 출생이라고 불리는 내적인 변화는 전혀 생각지도 않은 채, 컵과 접시의 바깥 부분만을 청소해 놓고 하나님의 용서와 영접해 주심을 구하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만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 있는 모든 죄인들은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이스라엘의 선생에게 외면적 행위의 화려함이 아닌 거듭남을 요구하셨던 우리 주님의 말씀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 거듭남은 모든 인간에게 전 우주적이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회심하지 않는 자는 모두 정죄를 당하며 저주를 선고받게 될 것이다. 만일 당신이 이 방법 외의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으므로 이 위대한 변화를 받을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엄위로우신 말씀, 즉 우리 예수님은 당신과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당신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라는 말씀 이외에 다른 어떤 특별한 예외 조항도 준비하지 않으셨다. 이 엄숙한 선포는 오직 유일한 구세주이시자 오류가 없으신 심판자로부터 말미암았기 때문에 이 문제에 관한 한 하나님의 최고의 권위이다. 하늘 아래, 땅 위에 어떠한 능력과 권세도 이 사실에 도전하거나 항거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지의 가장 독특하고도 최종적인 권위로서 궁극적이며 돌이킬 수 없는 결정으로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최종적 권위로서 다양한 표현들이 있다. 눅13:3, 요8:24, 마18:3.

 

3. 중생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우리는 성경을 통해 종종 인간은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는 말씀을 읽게 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하나님과 인간이 동시에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말씀도 읽을 수 있다. 하나님으로서도 하실 수 없는 일들이 몇 가지 있다. 이러한 불가능성은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적인 성품들과 모순 되거나 하나님의 불변하시는 의지와 반대되는 것들과 관계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히6:18).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딤후2:13). 이렇게 언급된 불가능성은 그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의 성품과 모순되는 것들이다. 만일 이러한 일들이 발생한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되실 수 없으며,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기 이전에 하나님 되심을 멈추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불가능성은 중생받지 못한 자들의 구원에도 역시 동일하게 발견된다.

 

영적변화가 가져오는 영적 왕국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주실 왕국은 그 안에 있으므로 안전을 느끼는 왕국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왕국 안에서 전능하신 이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그 안에 있으므로 느끼는 행복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왕국 안에서 전능하신 이의 무한하신 사랑을 공급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왕국은 그 왕국의 시민 된 자들의 복종과 섬김을 요구한다. 그러하기에 인간은 불순종의 무기를 그 문간에 내려놓고 자신의 본래적인 충성과 의무의 자리에 복귀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이 세상에서의 거룩한 왕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4. 구속계획의 목적인 영적 변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인간이 영적 성품으로 변화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은 구속계획 안에서 선언된 하나님의 목적에 잘 계시되어 있다.

 

율법과 관련된 이러한 구속계획은 다음과 같은 주님의 말씀에 잘 표현되어 있다. “내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마5:17). 사도 바울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3:31).

 

우리 자신과 관계된 이 구속계획의 목적은 성부, 성자, 성령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목적이다. 성경에 성부 하나님의 목적은 다음과 같이 선언되어 있다.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살후2:13-14).

 

성자 하나님의 목적 역시 다음과 같이 묘사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5:25-27).

 

하나님의 백성들을 갱신하시고 거룩케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목적은 다음과 같은 당신의 사역과 직임 속에 잘 묘사되어 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16:8).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6:13).

 

하나님은 이러한 성경구절들이 나타내는 구속계획을 통해 가장 중요한 한 가지의 원리를 선언하신다. 곧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에 입성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영적 성품이라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구원이란 대단히 영적인 것이다. 그것은 죄의 용서, 양심의 평강, 하나님 사랑의 확신과 보증, 지옥으로부터의 해방, 천국으로의 입성 등과 같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놀라운 복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복은 우리가 영적으로 새롭게 되지 않는다면 누릴 수 없다.

 

영적 변화는 신자의 행복

 

인간이 인간으로 머무는 한, 인간의 행복에 있어서 거룩한 성품은 본질적이며 필수적인 것이다. 이를 좀 더 확실히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성격과 연계해서 몇 가지 원리들을 살펴보자. 그렇게 할 때 천국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반드시 거룩해져야만 한다는 위대한 진리를 즉시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우리의 성품이 반드시 우리 양심과 부합되어야만 한다는 원리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행복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우리 마음의 내부에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 한 가지 법이 있다. 이 법은 모든 인간이 느끼고 인정하는 법이다. 그것은 바로 양심의 법인 것이다.

 

양심은 우리 영혼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대리자이다. 또한 양심은 선과 악을 분별할 뿐만 아니라 선은 인정하고 악은 정죄하는 비밀스런 사역자이다. 양심이 보이지 않으시는 율법 수여자와 관계할 때, 양심은 때로 우리의 악행을 고발하는 고소자로, 때로는 평결을 내리는 심판관으로, 때로는 죄의 선고와 심판을 수행하는 집행인으로 선다. 비록 양심이 활동을 멈추고 침묵하는 것 같아 보일지라도 양심은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결코 도망치지 못하도록 여전히 강력한 힘으로 각성시키며, 언제나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이다.

 

양심은 우리가 가는 곳에 함께 간다. 우리는 언제나 양심을 지니고 다닌다. 양심은 불멸하는 우리 본성의 일부분으로서 죽음도 극복하고 우리와 함께 심판의 보좌 앞에 나아갈 것이며, 우리와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그러므로 죄와 양심은 서로를 반대하며 적대한다.

 

죄와 양심이 한 곳에서 만나면 그것들은 반드시 무시무시한 갈등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죄는 양심을 거스르며, 그것을 질식시키려 한다. 반면에 양심은 죄를 거스르고, 그것을 하나님의 공의 앞에 고소한다. 이 무시무시한 갈등은 우리의 행복을 산산조각 내 버린다. 그러므로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악인의 양심은 미친 듯이 날뛰는 바다와도 같기에 행복이 온전히 확보되기 위해서는 악이나 악인의 양심이 반드시 파멸되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양심을 제거할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가 제거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죄이다. 우리의 도덕적 본질에 있어서 죄는 곧 질병이다. 반면에 양심은 우리의 도덕적 본질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본질적으로 거듭나게 하시지 않고서 행복하게 해 주시기 위하여 우리 존재의 구조를 변경하실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결코 안 된다. 죄는 파괴될 수 있지만 양심은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죄는 반드시 파괴되어야만 한다.

 

둘째로,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경험과 기질과 습관 사이,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과 교제하는 사회와 종사하고 있는 봉사와 직임이 서로 부합되어야만 한다는 원리이다. 전장에서의 겁쟁이, 만민이 기도하는 교회에서의 방탕아, 거룩한 사람들 사이에 있는 술 취한 사람은 모두 직감적으로 자신이 잘못 서 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결코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

 

하나님의 왕국을 생각해 보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구성된 하나님의 나라를 말이다. 중생받지 못한 자가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의 장소인 바로 이 천국에 들어갔다고 가정해 보라. 도무지 중생받지 못한 자가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어 높은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시중든다고 생각해 보라!

만일 그가 완전히 변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의 왕국에 입성했다면, 당신은 과연 그가 그곳에서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의 전인격이 완전히 변화되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왕국의 모든 방식과 본질이 전적으로 변경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후자는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왕국은 반드시 거룩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하다면 결론은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우리가 반드시 거룩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양심은 이 위대한 진리를 설교하므로 바로 이러한 설교자의 사역을 수행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것들을 교훈하고 있다. 그 어떤 사람이라도 자신의 양심을 수단으로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통해 이 하나님 나라의 영적인 본질과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과 그분의 통치의 신성하심과 구속사의 실재적 계획과 섭리를 분명하고 확실하게 이해한다면, 자신이 완전히 변화되지 않고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본능적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즉각적으로 깨닫게 될 것이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유정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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