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스크랩] 9/25 주일설교, 다른 복음을 전하면, 갈 1:8-9

강대식 2016. 9. 25. 16:32

2016-09-25 주일설교

본문: 1:8-9

제목: 다른 복음을 전하면

 

복음은 기쁜 소식이다. Good News.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의 기쁜 소식이다.

율법을 지킴으로 행함으로 구원받지 못하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기쁜 소식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선물로 주신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는 기쁜 소식이다.

이 복음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육체를 입고 오셔야 했다.

하나님이시고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다.

 

죄 없으신 그분이 우리의 모든 죄의 형벌을 대신 받고, 율법의 심판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켜야 했다.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기에 자신의 피를 흘림으로 우리 죄를 용서받게 하셨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1:7)

 

그분은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40일 동안 부활하신 몸으로 지내시다가 승천하셨고 보좌 우편에 앉으셨고,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고 통치하시다가 세상 마지막 날 그분은 다시 오실 것이다.

 

이것이 사도들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이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 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고전15:1-3)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들이요, 복음의 증인들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복음을 그들은 전하였다.

성도들은 그들이 전한 복음을 받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 섰다.

그 복음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

 

그런데 사도들이 복음을 전한 초대교회 시절에도 이미 거짓 선지자들과 미혹의 영들이 활개를 쳤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고 미혹하고 멸망의 구렁텅이로 인도하였다.

사도들이 성령이 충만하여 사역하던 초대교회 시절에 그러하였다면 오늘날은 어떠하겠는가?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얼마나 강력한 말씀이고 경고인가?

사도들이 전한 복음 외에,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이 성경에 분명 기록되어 있는데도,

오늘날 많은 목사와 신학자들이 그 복음을 그대로 전하지 않고,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다.

제대로 된 복음을 받은 적도 없는 교인들은, “너희가 받은 것 외에라는 말에 해당되지도 않는다.

 

예수 믿고 복 받고 천국 간다고 열심히 교회 다녔는데,

살아서도 복은 커녕 저주를 받고, 죽어서도 천국이 아니라 지옥에 간다면, 그보다 통탄할 일이 있겠는가?

제일 억울한 일이 교회 실컷 다니고 지옥 가는 것이라고 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분명히 말씀하셨는데도 많은 교인들이 엉뚱한 길로 가고 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7:13-16)

 

주님의 이 말씀은 산상수훈의 결론적인 말씀이다.

주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시는데, 목사와 교인들은 한사코 넓은 문으로 들어갈려고 한다.

크고 화려하고 수가 많고 유명한 교회의 구성원이 될려고 한다. 그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진짜 복음을 전해줘도 들을 때 뿐이고, 크고 화려한 교회(교단)에서 절대 빠져나오지 않는다.

배를 타더라도 큰 배를 타고 있어야 구원 받지 나룻배에 탔다가는 위험하지 암만 그렇고 말고 하는 모양이다.

구원은 숫자에 의해서 다수결로 가는 것도 아닌데, 세상의 숫자 놀음, 세력 싸움에 익숙에서 그런 거 같다.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은 화려한 성전과 제도권에 속하였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겨우 열 둘이었고, 그 중에 하나는 예수를 판 자였다.

구원은 어디에 있었는가? 큰 배였는가? 나룻배였는가?

 

예수님은 바리새인(종교지도자)의 누룩과 사두개인(정치지도자)의 누룩을 삼가라고 하셨다.

누룩은 생각이고 사상이다. 설교이고 책이다.

적은 누룩으로 천국을 부풀게 할 수도 있고, 적은 누룩으로 지옥을 부풀게 할 수도 있다.

 

재앙은 생각의 결과이다. 축복과 영광도 생각의 결과이다.

스승과 책을 잘 만나야 생각을 바꾸고 사는 길로 갈 수 있다.

잘못 만나면 악한 생각들로 가득해지고 망하는 길로 가게 된다.

 

스승 없는 사람은 없다.

알게 모르게 듣고 배워서 스승들이 머리에 들어 앉아 있다.

제 생각 같지만 다 주워 들은 것들이다.

 

길은 두 가지라고 하신다.

하나는 멸망으로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생명으로 가는 길이다.

어떤 선생을 만나느냐에 따라 멸망으로 인도되기도 하고 생명으로 인도되기도 한다.

 

그리스도 안에는 일만 스승이 있다고 하였다.

항상 그랬다. 구약 시대에도 그랬고, 예수님 당시에도 그랬고, 중세에도 현대에도 그렇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으로써 생명을 낳는 아버지 스승은 적다고 하였다.(고전4:15)

 

거짓 선지자들, 곧 거짓 목사들과 신학 교수들이 넓은 길 큰 문으로 해서 멸망으로 인도하는 주범들이다.

많이 배우고 성품과 능력을 잘 포장하였으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가 들어 있다.

옷을 보지 말고, 곧 외모와 외양을 보지 말고 열매 곧 성품과 행함의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하신다.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하나님이 이미 버린 용모와 키를 보다가는 이리에게 노략질을 당하고 만다.

성품과 행함의 열매를 보면 알 수 있건마는, 사람들은 보지 않고 용모와 키에 넘어가고 만다.

외적으로 갖춘 학력, 경력, 신분 이런 것들이 다 용모와 키이다.

 

엄청난 죄악을 범했다고 매체들이 보도하는데도 여전히 좋다고 그 목사와 교회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도 떠날 줄을 모른다.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후6:17)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요이10-11)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시는데도 한사코 넓은 문으로 들어갈려고 한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작고 길이 협착하다고 하시는데도

한사코 멸망으로 인도하는 큰 문, 넓은 길로만 갈려고 한다.

 

천년 동안 종교 권력과 정치 권력으로 중세를 다스렸던 카톨릭 교황과 사제들과 신도들은

넒은 길 큰 문으로 가다가 멸망으로 인도되고 말았다.

종교개혁이 일어난지 5백년, 다시 교회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 큰문으로만 달려가고 있다.

 

교회인지, 세상인지, 설교와 가르침들을 보면 분별할 수가 없다.

순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은 전해지지 않고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고 복받는 비결만

세상 스승들과 경쟁하며 가르치고 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해도,

그런 성경 구절은 안중에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이란 의식도 없고,

자기들이 신학교에서 배운 다른 복음을 전하느라 열심을 다하고, 교인들은 박수를 치고 좋아하고 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무섭고 놀라운 일이 이 땅에서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목사와 성경 선생들은 거짓을 설교하고 권력으로 다스리고 주의 백성들은 그것을 좋게 여기고 있다.

너희가 마지막에는 어찌 하려느냐? 하는 주의 경고는 귓전만 스치고 사라져갈 뿐이다.

 

멸망으로 인도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자기와는 상관없이 여기다가 현실이 되는 날,

그들의 놀람과 경악과 후회와 한탄이 어떤 것일지 성경은 분명 말씀해 주고 있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6:15-17)

 

저주 받을 다른 복음은 예수를 부인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그분이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고 십자가의 대속을 부인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요일4:1-3)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가?

거짓 목사와 신학 교수들이 교회를 포함한 세상에 많이 있다는 말씀이지요.

거짓 목사와 성경 선생들은 영이 잘못돼 있는 것이다.(적그리스도의 영)

 

목사라고 성경 선생이라고 학위를 받았다고 유명하다고 다 믿으면 안 된다고 하신다.

그 영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아니면 사탄에 속하였는지 분별하라고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느냐 아니 하느냐가 그 시금석이다.

 

육체로 오시기 전에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음을 시인하는 것이다.

그분이 완전한 사람을 입고 오신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그분이 육체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화목제물, 대속제물, 희생제물이 되신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그분이 육체로 오셔서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다시 오시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육체로 오셨다는 말씀 가운데는 이 내용이 필수적으로 포함되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훌륭한 도덕 선생이나 지혜자 쯤으로 정치적 해방자나 사랑의 스승으로,

믿기만 하면 구원하고 복 주고 형통케 하시는 복 주머니나 문제 해결사로 만드는 것은

다 그분이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것이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 신약 성경에 기록된 복음을 순전하게 믿느냐가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분별하고 알 수 있는 시금석이다.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거짓의 영인 사탄의 영에게 속하였는지 분별하는 시금석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요일4:6)

 

저주 받을 다른 복음은 이 땅에서 잘 되고 복 받고 형통하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 복음은 엄청 세상을 사랑한다.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 복음은 세상에 있는 것을 너무나 사랑한다.

 

하나님과 재물은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는데, 그 복음은 재물을 겸하여 섬기고 재물을 더 섬긴다.

보물을 세상에 쌓아 두지 말라고 하는데, 그 복음은 세상에 엄청 쌓아두고 또 쌓는데 여념이 없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고 하는데, 세상 염려와 걱정을 구하느라 세월을 다 보내고 있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지 말라고 하시는데, 땅의 것을 구하느라 하늘을 쳐다 보지 않는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하시는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깊이 생각하고 있다.

 

사도들이 전한 순전한 복음 곧 성경에 기록된 복음이 아니라,

저주 받을 복음을 전한 자, 그것을 받은 자들은 이 땅에서도 멸망으로 끝이 나고

영원한 세상에서도 그 멸망을 품고 영벌을 받으며 고통과 슬픔 속에서 살 것이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3:18-20)

 

저주를 받지 않으려면, 사도들이 전한 복음에다 세상 지혜들을 혼잡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2:17)

 

순복음이라고 해서 순복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 축복으로 말씀을 온통 범벅을 만들어 놓고서 순복음이라고 한다.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전하는 순전한 말씀이 순전한 복음이다.

바울 당시에도 벌써 교회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혼잡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울은 순전한 복음을 전하기 위헤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만을 의지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4-5)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을 섞어 넣어

말씀을 혼잡하고 말씀을 왜곡한 설교와 가르침들은 저주 받을 다른 복음인 것이다.

 

기독교방송이라고 티비설교라고 좋아하고 듣다가는 미혹의 영들과 거짓 선지자들의 밥이 되고 만다.

유명 목사라고 유명 신학교수라고 큰 교회 목사라고 무조건 믿다가는 멸망으로 인도되고 만다.

 

모든 분별의 시금석은 사도와 선지자들이 전한 복음, 곧 순전한 말씀이어야 한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무조건 믿지 말고 그러한가 하여 성경을 매일 상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해야 한다.

그럴려면 혼잡한 세상 지혜의 말씀이 아니라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는 말씀만을 구해야 한다.

 

순전한 복음만이 모든 믿은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

순전한 복음에만 성령이 나타나시고 능력으로 역사하신다.

성경의 역사와 함께 기독교 역사에서 참된 부흥은 이것을 입증하고 있다.

 

이 복음을 혼잡하는 사람들의 모든 불경건과 불의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좋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

성경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며 그 안에 기록된 대로 지켜 행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교회와 성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 위에,

순전한 복음 곧 진리의 터 위에, 그 진리를 기둥으로 세워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돈과 재물이 터와 기둥이 되는 장사하는 집이 되고,

권력과 힘이 터와 기둥이 되는 강도의 소굴이 되고 만다.

 

사도와 선지자들처럼,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처럼, 성경을 사랑하고 손에서 놓지 않으며,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고, 내 성품과 삶에서, 그 열매를 맺고, 그 향기를 내도록, 최선을 다하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고, 순전한 복음을 능력으로 사는 사람이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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