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뷰캐넌

[스크랩] 제임스 뷰캐넌, 성령의 사역, 회심과 부흥, 3장 죄인의 회심에 나타난 성령의 사역(강의안)

강대식 2016. 9. 28. 14:46

3장 죄인의 회심에 나타난 성령의 사역

 

앞의 장에서 우리 주님의 포괄적인 말씀을 통해 세상과 교회에 대한 성령 사역의 일반적 계획과 목적을 설명하였다. 성령은 불신 세상에 증명이나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불신자를 확신시키고 책망하거나, 그들을 회심시키고 정죄하기에 충분하다. 반면에 믿는 자와 교회에 대하여서는 명백하고 풍성한 신적 진리를 수여하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빛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지식의 빛’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하신다.

 

모든 신자들은 한때 불신자들이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특별한 계층에 속해 있으며, ‘행인과 나그네가 아니요, 성도와 믿음의 가정들과 같은 친 백성’에 속해 있다. 그들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영혼 내부에 발생한 위대한 변화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그들이 눈을 떠서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로부터 하나님의 품으로 옮겨질 때’ 발생한다. 그렇게 함에 있어서 죄인의 회심 과정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에 대한 일반적 견해를 제시할 수 있게 된다.

 

성경에 나타난 구속계획의 원인은 성부 하나님의 사랑이시다. 그 사랑의 궁극적인 관심은 ‘자기 백성의 구원’ 또는 ‘그들로 하여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의 조건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위대한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이 변화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안에서 계획되고 제공된 것이며, 아직 계시되어야 할 영광을 위한 그들의 준비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필요한 요소이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살후2:13).

 

이는 두 가지 조항으로 묘사되어 있다. 하나는 이 변화를 발생시키는 주체요, 다른 하나는 그 주체가 이러한 변화의 발생을 성취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에 관한 것이다. ‘성령의 거룩케 하심’이 그 주체요, ‘진리의 믿음’이 그 수단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속 안에 있는 우리 각 개인의 구원이 성령의 은혜와 그 능력의 적용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획득하는 것’은 오로지 ‘성령의 거룩케 하심’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은 사람이 그 구원에 참예자가 되지 않는 한, 그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다. 그런데 사람으로 하여금 구원의 참예자가 되도록 역사하시는 분이 성령이다. 우리 구주께서 성취하신 구속을 각 개인에게 적용하시는 사역이 바로 성령께 속한 사역이다.

 

1. 구원-삼위 하나님의 사역, 그리고 그리스도와 성령의 관계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역사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각각의 독특한 사역에 주목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즉, 성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성자 예수님께서 좌우하시는 것으로 선언된 구원사역에 대한 실제적인 결과를 좌지우지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살펴보는 것은 대단히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딛3:5-6). 결국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서 제공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성취하신 모든 유익들에 참예자가 되는 것은 오직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가능하다. 이와 같이 구속자의 편에서 획득하신 구속의 성취와 그의 백성의 편에서 누리는 구원의 기쁨 사이를 연결시키는 것이 바로 성령의 사역이다. 이 위대한 신앙의 조항을 올바로 이해하고 인정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얼마나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존재인지를 느끼지도 못할 것이다. 또한 삶의 모든 순간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도 깨닫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살후2:13).

 

성화(聖化-Sanctification)는 때때로 광의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며, 때때로 상당히 제한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 성화는 신앙 도상에 있는 신자의 점진적인 진보, 즉 신자들의 영적 성장을 의미한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에 성화는 새로 태어남,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신자의 삶까지 포함한다. 그것은 회심으로 시작해서 영화(榮華)로 끝나는 신자의 삶의 전과정을 포함하는 것이다. 즉, 이러한 광의적인 의미에서의 성화는 신자들에게 새로운 세계관과 새로운 삶의 원리들, 새로운 동기들과 소망들, 새로운 습관들을 부여하는 마음과 지성의 철저한 변화를 의미한다. 죄인이 거듭나는 것은 ‘성령의 거룩케 하심’으로 말미암는다. 또한 죄인들이 죄에 대하여 더욱 죽고, 의에 대하여서는 더욱 살게 만드는 것도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을 통해서이다.

 

그러나 이 위대한 변화가 전적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것이지만, 성령께서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 인간의 마음이 반응할 수 있도록 역사하신다. 바로 진리를 통해서 반응하게 하신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17:17). 아버지의 말씀 또는 그 속에 담겨 있는 진리는 성령께서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속의 유익을 적용하시는 위대한 수단이 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이러한 목적으로 위해 채택된 하나님의 계시 수단이다. 그것 자체는 효능이 없지만 하나님을 통해서 그 말씀은 강력한 능력이 된다.

 

말씀은 성령의 검과 같다. 또한 말씀은 바위를 산산조각 내는 강력한 쇠망치와도 같다. 말씀은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그 말씀을 받아들이게 하는 빛과 같다. 또한 말씀은 하나님께서 먹이시는 양식이며, 고치시는 치료약이자 위로하시는 사랑이다. 따라서 성령과 말씀은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의 신앙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모두 위대한 변화의 본질적인 요소들이다. 전자는 능력 있는 대행자이시며, 후자는 그에 잘 어울리는 도구와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성령과 말씀이 성경에서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주목해 보라. 중생에 대해서 성경은 성령이 위대한 변화에 있어서 최초의 변화를 조성하시는 분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성경은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라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 바로 이 위대한 변화를 발생시키는 수단이 됨을 증거하고 있다.

 

성경은 루디아에 대해서 언급할 때도, “주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라고 기록하고, 이어서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행16:14)라고 말함으로써, 성령이 위대한 변화의 주체요, 말씀이 위대한 변화의 수단과 방편이 됨을 표현하고 있다. 시편 기자의 기도,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시119:18). 여기서도 성령의 거룩케 하심과 진리의 신앙은 대체하거나 배척하지 못하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제까지 죄인의 회심에 관한 성령 사역의 일반적인 측면을 고찰했다. 그러면 이제 세상 또는 불신자들의 세계에 속해 있는 영혼과 성령의 도움으로 다른 세계, 즉 교회의 살아 있는 구성원으로 옮겨 가는 영혼을 고찰하도록 하자. 이러한 전이(轉移, Transition)는 사람이 회심하는 순간에 발생한다.

 

2. 회심을 위한 성령 사역의 세 단계

 

이러한 과정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단계가 필요하다. 이 단계들은 소요리문답에 잘 나타나 있다. “효력 있는 부르심은 하나님의 영이 하시는 일로서 우리의 죄와 비참을 깨닫게 하시고, 또 우리의 마음을 밝혀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며,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하시고, 능히 우리를 권하여 복음 가운데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하신 것입니다”(소요리문답 제31답).

 

1)죄와 비참을 깨닫게 하심

죄인의 회심을 위한 성령의 첫 번째 단계의 사역은 ‘우리의 죄와 비참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특별히 믿지 않는 자의 범죄와 그 위험, 즉 그리스도 없이 사는 삶과 그 결과로 나타나게 될 위험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16:8). 성령께서는 죄의 각성을 통해서 회심케 하신다. 여기서 각성이란 포괄적이고 광의적 의미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단순히 죄에 대한 후회를 의미하지 않는다.

 

성령께서 죄인들을 각성시키는 주된 내용은 자신의 죄에 대한 각성이다.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가 없는 상태로 남아 있는 자신의 죄와 비참함 그리고 그 위험에 대한 각성이다. 죄의 각성은 죄에 대한 자각과 후회의 감정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복음에 관한 일반적 지식의 확신(필요성)까지를 전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본질과 경험의 순서에 있어서 죄의 자각이 성령 사역의 첫 번째 부분, 또는 그 전 과정에 있어서 첫 번째 단계가 되는 것이다. 즉, 이것은 성령께서 죄인을 구세주께로 인도하시는 첫 번째 과정이다.

 

또한 성령께서는 죄인에게 많은 죄들이 생각나게 하시는데, 특히 그들이 오랫동안 간과하고 잊어버렸던 죄들을 생각나게 하신다. 그러면 죄악의 숫자와 크기, 그 심각함을 보고 깜짝 놀라서 시편 기자와 동일한 탄식을 내뿜을 수밖에 없다.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내가 감당할 수 없나이다”(시38:4). 한 가지의 죄악은 그 어떠한 것이라도 각성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성령께서는 죄인의 양심에 그 죄를 계시해 주심으로써 죄를 각성케 하신다.

 

그러나 죄인은 죄를 자각하는 것만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죄의 자각이 설득과 설복(說伏)이 되지 않는 한, 죄인의 회심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 되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없다면 우리는 비참한 자일 뿐이다.

 

자신이 심각한 질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누가 의사에게 가려고 하겠는가? 그 누구도 자신이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도와 달라고, 구해 달라고 소리치지도 않을 것이다. 자신이 처한 위험을 알기 전까지 결코 구원에 대한 희망을 찾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죄인이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영혼의 의사가 되심을 깨닫기 전까지는 절대로 참 의사이신 그분께 가서 치료를 받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죄인의 영적 상태에 대하여 밝히 보여 주는 것은 죄인의 교만을 굴복시키는 수단이 된다. 결국 죄인은 그 두려움으로 놀라며 불안해할 것이다. 이때 죄인은 일반적인 고백을 통해 피난처를 찾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피상적인 고백은 교만을 굴복시키지도, 두려움을 잠재우지도 못하는 얄팍한 고백에 불과하다.

 

어떠한 죄인이라도 자신의 죄와 비참과 위험을 자각하게 되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양심의 작용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영이 직접 역사하셔야만 가능한 것이다. 성령께서 그 눈을 열어 주시지 않는 한, 천국의 광선이 어두운 방을 비추지 않는 한, 결코 자신의 참모습을 보지 못한다.

 

성령께서는 죄인에게 하나님의 위대하시고 영원하신 완전한 성품을 계시하심으로써 이러한 사역을 수행하신다. 죄인은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자마자 즉시 그 위대하신 하나님의 성품과 자신의 더러운 성품을 비교하며, 욥처럼 외친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42:5-6).

 

또한 성령은 부분적으로 하나님의 법과 영성과 범위를 설명하시고 그것을 양심에 적용시키심으로 이러한 사역을 수행하신다. 죄인의 양심이 하나님의 법을 느끼자마자 그는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롬7:9)라고 외치게 된다. 또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51:3)라고 소리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령께서는 죄인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죄를 속하시고, 보좌에 오르사 구주와 왕이 되신 그리스도에게 직접 인도하심으로써 이러한 사역을 수행하신다. 따라서 죄인은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자신의 죄책이 심각하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소망 없고 비참함을 발견하고, 보좌 위에 앉으신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내가 무엇을 하여야 하리이까?”라고 외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양심에 진리의 말씀을 엄밀히 적용하여 죄인으로 하여금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시다. 그 결과 발생하는 죄의 자각은 구원에 대한 심각한 갈망과 진지한 기도를 위한 강렬한 동기를 제공해 준다. 성령께서는 죄인으로 하여금 구세주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자신의 죄와 비참을 자각케 하시고, 양심에 진리를 엄밀하게 적용하신다. 죄의 자각은 구원을 위한 변화에서의 일반적인 전조이자 희망적인 현상이다.

 

2)구세주에 대한 지식을 비추어 주심

죄인이 자신에게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 ‘자신의 죄와 비참을 자각’하는 순간, 성령의 다음 사역은 ‘죄인의 마음속에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부분의 구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비추시는 것’이다.

 

그러면 이 교리는 죄인에게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죄인은 자신의 영원과 생명이 이 교리에 의해 좌우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은혜로운 구속계획의 수많은 영광스러운 요소들이 자신의 눈에 엄청나게 중요한 것으로 보이고 초월적인 가치를 지닌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이 교리를 더욱 묵상하고 연구할수록, 이 교리의 모든 내용과 요소들이 더욱더 자신에게 해당되는 것이며, 자신의 영원한 복락에 더없이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인격, 성품, 직무와 사역이 죄인의 가장 깊은 관심사로 자리하게 될 것이다. 죄인이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 직무와 사역을 묵상하고 그 영광에 대한 새롭고 광대한 지식을 발견할수록, 그 죄인의 가슴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세주의 능력과 은혜와 그분의 완전성을 발견할 때마다 충만하게 불붙을 것이다.

 

성령의 위대한 사역은 각성된 죄인의 눈이 그리스도를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성령께서는 우리의 구속자이신 그리스도의 완전성을 보여 주시고 그분의 측량할 수 없는 부요함을 나타내시며, 그리스도의 사명이 가진 목적과 그분의 신성과 인성, 그분의 여러 가지 직무, 그분의 사역의 본질과 완전성, 그리고 그분이 베푸시는 상급의 확실성과 영광을 깨닫게 해주신다.

 

죄인이 그리스도에 대한 생생한 한 가지 지식만 그 마음에 받아들여도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말씀이 달콤해지고 그리스도의 모든 성품과 직무와 사역에 대해 지극한 관심을 보이게 된다. 이제 그에게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은 소중한 것이 된다. 죄인이 성령의 교훈을 받게 되면 그리스도는 그에게 ‘만인 중에 뛰어나며 그 전체가 사랑스러운 분’이 되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이 달콤하고 아름다운 사역을 죄의 자각 이후에 즉시 행하신다.

 

죄인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각성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수많은 죄인의 경험이 증거하듯이 죄인은 자신의 죄성에 경악하고 그것을 뉘우친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의심과 불신앙에 빠지기 쉬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즉, 죄인은 자신의 죄를 자각한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를 의심하며 불신하고, 복음에 율법적인 해석을 가미하며, 처절한 낙담과 절망에 빠지기 쉬운 존재이다.

 

결국 이러한 죄인은 복음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되고 자신은 구원받기에 너무나도 악한 존재라고 생각해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자각하는 죄인의 마음에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부여하시는 성령의 사역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어두운 의심들을 몰아내고 치명적인 오해를 교정해 주는 것은 바로 성령의 직무에 속한 일이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성경에 계시되지 않는 어떠한 새로운 지식을 부여하심으로써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는 철저하게 성경이 포함하고 있는 진리들을 설명하시고 ‘성경에 계시된 그리스도의 지식을 죄인의 마음에 비추심’으로 이 일을 하신다.

 

그러나 여전히 다음 단계가 남아 있다.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는 자신의 죄와 비참을 자각하고 그리스도에 관한 적지 않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회심하지 못할 수가 있다. 우리는 성경에서 벨릭스 총독이 마음에 두려워한 적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행24:25 참고). 사람들 중에는 ‘한 번 비침’을 얻고도 여전히 타락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기독교 국가들의 사람들이 때때로 죄를 자각하고 두려워하며, 구원의 교리에 관해 관념적인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 아니 그들은 이 교리를 기쁨으로 받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중대하고 위대한 구원의 변화를 경험하기를 거절한다. 그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고질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선천적으로 자신들의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혐오하고 싫어한다. 그러나 철저한 회심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음이 새롭게 되어야 하며, 하나님을 향한 혐오와 적대감이 파괴되어야만 한다. 실상 이전에 그들에게 임했던 자각과 교훈의 모든 과정들은 바로 이러한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3)의지와 마음을 새롭게 하심

그러나 그 자체로서 완전하고 충분한 성령의 은혜와 도움이 없다면 이는 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회심에 나타난 성령 사역의 결정적인 부분은 바로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하고, 우리가 복음에 제시된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을 받기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회심, 마음의 변화이며, 회심을 완성하시는 성령 사역의 마지막 단계이다.

 

죄인이 성령의 은혜로 기꺼이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기만 하면, 그와 구세주 사이에서 구원에 대한 장애물은 전혀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는 하나님의 보증과 초청에 대해 완전히 자유롭게 반응한다. 그뿐만 아니라 “복음 안에 값없이 무조건적으로 제시된 그리스도를 영접하라”라는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을 통해 그렇게 된다. 복음을 듣거나 읽는 자는 누구든지 자신과 구세주 사이에 아무런 장애물이 없게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7:37)라는 말씀은 구세주의 소명이자 초청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죄인의 보증으로서의 영혼의 구원은 명백하다. 이는 전체 성경에서 섬광처럼 빛나는 것이다. 이것은 마음속에서의 성령의 증거가 아니라 성경 전체에 기록된 성령의 메시지이다. 이에 대한 성경의 보증은 무한할 정도로 풍성하다. 그러나 자신의 손에 주어진 이러한 엄청난 보증과 증거에도 불구하고 죄인에게는 뒤로 물러나 침륜에 빠지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마음의 타락과 부패, 거역하는 의지, 마지못해 하는 영이다. 그러므로 죄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절망적인 상태를 자인(自認)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함으로 성령의 은혜에 자신을 맡기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령 하나님께서 하시는 사역이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유정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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