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뷰캐넌

[스크랩] 제임스 뷰캐넌, "성령의 사역, 회심과 부흥" 6장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강의안)

강대식 2016. 10. 19. 13:59

6장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

 

이제 우리는 성경이 회심, 회개, 그리고 중생이라는 여러 다양한 이름으로 자주 언급하고 있는 위대한 변화에 대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이 위대한 변화는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전이(轉移, Transition)라는 특유의 은유로 표현된다.

 

회심에 전제되는 예비적 사역

 

회심이 일어나기 전, 종종 지성의 각성이 준비된다. 그것은 마치 마른 나무가 불꽃에 닿기만 하면 불이 붙도록 준비되어 있는 것과 같이 지성이 위대한 변화에 적합하게 준비되는 예비적 사역이다. 이 사역은 교훈의 이해와 양심의 각성으로 구성된다. 이 사역은 성경을 읽는 것과 교훈, 그리고 기독교 공동체와의 교제를 통하여 종종 회심 이전부터 오랫동안 점진적으로 진전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세속적 가치와 행복의 불확실성, 불만족을 깨닫게 함으로써 급진적으로 진전되기도 하며, 그 결과 사망과 심판, 그리고 영원이라는 실재를 깨닫게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예비적 사역은 매우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예비적 사역은 다소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오랫동안 진행된다. 죄의 각성이라는 부분도 자신이 아직 회심하지 않은 상태에서 더러는 강렬하게, 또 더러는 이따금씩 발생하기도 하며,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 교훈과 각성이라는 예비적 사역은 매우 다른 여러 가지 결과들을 낳는다. 그것들이 회심에 이르게 하여 구원하는 변화를 일으키지만, 그렇지 못하고 종결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분명히 성령의 사역이다. 존 오웬에 의하면 성령 하나님의 은혜는 일반적으로 준비시키고 예방하며, 실행하고 협력하며 확증하는사역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하다면 신적 진리의 지식에 대한 교훈을 받았고, 이따금씩 양심의 각성을 받았음에도 회심에 이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로, 그들은 불신앙의 영향 아래에서 하나님의 증거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양심의 경고를 외면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빛을 혐오하고 진리의 지식을 자신에게 적용하기를 거절하는 것이다.

둘째로, 그들은 육적인 안도감의 영향 아래 그릇된 평안을 사랑하고, 안락하고 행복한 꿈을 방해받는 일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의 영향 아래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비난하시는 저주받은 일에 집착하며, 그들의 양심이 정죄하는 바로 그 죄를 사랑하기를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로, 그들은 하나님을 증오하는 세상의 영의 영향 아래서 다른 여러 가지 종류의 정욕들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그것들 중에는 안목의 정욕과 육체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등이 있다.

 

이러한 것들은 그들의 마음속에 임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영향을 지우고 말살하려 한다. 또한 음탕하고 불경건한 세상 친구들의 꼬임과 명목적 교인들의 조롱과 냉소들, 그리고 평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평강하다 평강하다라고 외치는 거짓 교사들의 안락한 교리들은, 하나님의 신실한 사역자인 그들의 양심의 고소와 진리이신 성령의 증거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 그들을 유혹하고 만다.

마지막으로, ‘공중 권세 잡은 자와 불순종의 자녀 안에서 역사하는 자가 죄인들의 의지를 사로잡아 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그러한 자들은 회개하고 구원을 받으라는 복음의 초청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의지를 공중 권세 잡은 자에게 복종시키고 마는 것이다.

 

! 이것이야말로 두렵고 떨리는 광경이 아닌가! 이해가 새롭게 되고 양심이 각성되며 회심에 이르게 하는 길에 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는 그곳에 멈추어 고의적으로 곁길로 빠지며,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성령의 은혜의 교훈을 단호하게 거절하기 때문에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이처럼 마지막 날에 그가 멸망을 당하는 이유는 지식이 없어서가 아니요, 확신이 없어서도 아니다. 그것은 명백하게 그가 스스로 구원에 관한 지식과 확신을 질식시키기 때문이다.

 

위대한 변화는 어느 정도의 지식에 있어서의 이해와 어느 정도의 양심에 있어서의 각성을 전제로 한다. 예를 들어, 십자가상에서 회개한 극악무도했던 강도를 생각해 보라. 이 경우에서도 잠깐이지만 실재적이며 계속되었던 구세주를 향한 신뢰와 같이 이해와 각성을 내포하는 예비적인 사역을 보게 된다. 이 강도는 예수님을 욕했던 다른 강도와는 달리 그를 각성시키고 회개케 하기 위해 필요한 진리가 전달되었다.

 

회심한 강도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희롱하기 위해 외쳤던 소리를 들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27:42).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죄패에 쓰여 있던 글을 보았다.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27:37). 또 그는 십자가상에서 올리신 예수님의 기도 소리를 들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23:34).

 

그 회심한 강도는 바로 이러한 방편들을 통하여 자신의 회심에 필요한 진리의 말씀들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진리의 말씀들이 강도의 마음을 변화시켰고 그의 양심을 각성시켰다. 성령 하나님께서 이 진리를 적용하심으로써 이 말씀을 강도로 하여금 구세주를 믿고 다음과 같은 기도를 올릴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23:42). 바로 이러한 진리의 말씀을 통하여 이해가 새로워지고 양심이 각성되어서 하나님 앞에 철저한 회심의 결과를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2. 전인적 변화로서의 회심

 

죄인의 회심은 인간 영혼 중 부분적인 한 기관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죄인의 완전한 변화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실제적으로 새로워지는 전인격의 변화이다.

 

우선 성령께서 죄인의 이해를 조명하여 그 이해를 새롭게 하고, 양심을 각성시켜 그 양심이 변화를 받게 하고, 성령님에 의해 감정이 정화되고 새롭게 되며 아름답게 고양될 때, 감정이 변화를 받는다. 성령님에 의해 의지가 복종당할 때, 그의 의지가 변화 된다. 결국 죄인의 전 생애가 성령님에 의해 통제를 받고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살게 될 때, 그의 전 생애가 변화를 받게 된다. 이렇게 영혼의 모든 기관들이 그 본래의 고유한 용도와 목적에 부합하도록 새롭게 되고 회복된다.

 

그러므로 영혼의 조명은 암흑을 전제하고 중생은 사망을 전제하며, 영혼의 회개는 그 죄성의 각성을 전제하며, 영혼의 회심은 그 길의 오류와 실수로부터 돌아섬을 전제하고, 영혼의 갱신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새롭게 되는 것을 전제한다. 이 모든 것들은 성령에 의해 사람의 영혼 안에서 발생하는 전체적인 변화를 묘사하기 위해 서로 각각 분리되지 않고 오히려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이는 죄인의 이해와 양심, 의지와 감정과 실제적인 습관에 영향을 끼치시는 성령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이다.

 

이해는 새로운 빛을 받고 양심은 새로운 능력을 얻으며, 의지는 새로운 성향을 취득하고 감정은 새로운 목적을 향하게 되며, 삶은 새로운 법칙과 목적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전인(全人)이 새롭게 되고 새로운 흔적과 형상이 새겨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라고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그 형상은 아직 모든 면에서 불완전해서 그것을 조성하신 하나님의 모양을 닮기에는 부족하다.

 

우리의 본성에서 변화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부분은 하나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혼의 모든 기관들이 즉시 완전한 상태로 변화하는 것도 아니다. 확실한 것은 참된 회심자의 이해와 양심과 의지와 감정과 습관들이 모두 다 성령 하나님의 영향하에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성령께서는 그들을 새롭게 하시되 회심의 순간에 즉시 그들을 완전하게 바꾸시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3. 의지적 변화로서의 회심

 

회심은 죄인이 자신의 구원에 관해 실제로, 지성적으로, 진심을 다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의지(意志)를 따르는 것이다.

 

회심의 순간에 양심을 두드리는 죄의 자각과 이해를 자극하는 하나님의 진리의 지식은 죄인으로 하여금 어떠한 결정을 도출하게 만든다. 죄인은 이를 통하여 최종적인 결심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 결심은 믿음의 행위를 통해 자신의 이해에 대해 즉각적으로 동의하게 만들고, 의도적인 선택의 행위를 통해 의지의 결정을 완전히 승인하게 한다. 이로써 그는 하나님의 진리의 능력에 자신을 완전히 항복시킨다. 이것은 구원에 관한 한 철저히 하나님의 계시된 뜻에 복종하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위대한 구세주가 되심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 결심은 그리스도의 신성의 위엄과 인성의 부드러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분을 구주로 임명하셨으며, 그리스도의 공로의 유효성을 통하여 그분께 나아오기만 하면 죄인들이라도 다 구원받을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께서 복음이라는 일반적 교리 안에서 모든 죄인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분이시라는 것과 전 우주적인 부르심과 초청에 관한 그리스도의 자유케 하심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사랑을 깨닫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진리의 능력에 항복되는 것이다.

 

결국 이 복음이 보증이 되어 죄인이 그리스도께로 나아오며, 그분을 가까이하고, 전심을 다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하며 구세주의 손에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을 맡김으로써 영원한 언약에 따라 씻음을 받고 의롭다함을 받으며 거룩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바로 회심의 순간에 발생한다. 바로 이것이 회심이다. 바로 이 의지가 죄인의 구원을 안전하게 하며, 이것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게 한다. 따라서 첫째로, 지각과 관련해서 복음의 초청에 대한 단호한 결심, 최종적 결심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자신의 의지에 대한 확고한 결심이 서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결심에 이르러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예수께서 유일하고 충분하신 그리스도이심을 아무런 의심 없이 믿어야 한다. 우리는 또한 복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계시된 그리스도와 교제해야 하며, ‘우리 모두의 구원자이시며 소망이신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이따금씩 죄의 가책을 느끼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가인, 헤롯 왕, 유다). 또한 신적 진리의 지식을 가끔 사변적으로 습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치 않다(아그립바 왕, 마술사 시몬). 회심은 더 많은 것을 내포한다. 그것은 계시된 그리스도의 성품을 향하여 실제적으로 신중하게, 그리고 전심을 다하여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며, 우리 영혼을 그리스도의 팔에 맡기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회심은 죄인이 진심으로 구세주께 가까이 가게 만드는 근본적인 마음의 변화이다.

 

우리의 구원 문제에 관한 한, 그리스도를 가까이하고 하나님의 계시된 뜻에 순종하려는 이 근본적인 행동은-처음에는 매우 단순하고도 쉬운 과정처럼 보일지라도-회심의 본질적인 모든 것, 또는 그것으로부터 흘러 나오거나 그것에 동반되는 것으로 성경이 선언하는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는 포괄적인 행동이다.

 

죄인은 그리스도의 영적 성품을 올바로 알아야만 한다. 환언하면 죄인은 복음에 계시된 그리스도를 정확히 이해한 후에, 그분을 믿고 전심을 다하여 자신의 구주로 영접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죄인은 비록 많은 부분에서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이 불완전하다 할지라도 바로 그 시간부터 진정한 회심자가 되는 것이다. 그는 이미 이 위대한 변화에 필요한 본질적인 모든 것을 경험한 자이며, 따라서 그에게는 회심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다른 모든 결과들이 뒤따르게 될 것이다.

 

1)믿음에서 오는 복종이라는 열매

이 단호한 행동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포함한다. 첫째로, 그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 분이 죄인 된 자신의 구세주로,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다.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시는 분이심을 믿는다.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기 위하여(선지자),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하여(제사장), 세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통치하시기 위하여(), 기름부음을 받으신 분이심을 믿는다. 이제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심을, 그리고 모든 자들을 능히 구원하시실 수 있는 모든 권세와 능력을 가지신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이다.

 

둘째로,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고백을 포함한다. 자신이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 정죄를 당하고 그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노출된 자이며, 임박한 영원한 파멸의 위험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자신에게는 스스로를 구원할 아무런 능력이나 수단이 없기 때문에 오직 구세주만을 의지하고 그분께만 빚진 자가 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셋째로, 자신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복종하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백성의 구속자이신 그리스도의 모든 직무를 존중하고 존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이제 그리스도의 교훈 앞에 기꺼이 자신의 지성을 복종시키고 그분의 입술에서 나오는 진리의 말씀을 수여받으며, 틀림이 없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그 권위를 인정한다.

 

그는 철저하고도 단순하게 자신이 의롭게 되는 길을 취하는데, 자신이 가진 의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를 통하여 의롭게 된다는 것을 확신한다. 오직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피의 공로로 용서받고, 그리스도의 공로적 순종의 효용성을 통하여 용납되는 방법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는 이제 그리스도의 영으로 새롭고 거룩하게 되는 마음과 그리스도의 계명의 지도를 받는 그의 삶을 위하여 기꺼이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권위를 위해 살아간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는 이제 그리스도와 구원을 전인적으로 수용하고 영접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 하나님의 영원하신 언약을 따라 구원을 받고 거룩해지기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영원하신 통치를 받기 위해서 지금부터 영원까지 자신의 영혼과 몸과 정신을 그리스도의 손에 무조건적이고 전적으로 의탁하는 것이다.

 

2)변화된 삶이 맺는 개혁의 열매

여기서 우리는 참되고 철저한 회심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회개와 믿음으로 구성된다. 회개와 믿음이라는 성령의 이 두 가지 선물은 회심이라는 위대한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종종 함께 역사하기도 하며, 때로는 독립적으로 역사하기도 한다.

 

회개는 죄인이 어디로부터 돌아섰는지를 설명한다. 반면 믿음은 죄인이 어디를 향하여 돌아섰는지를 설명한다. 회심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을 떠나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고 곧은 길로 돌아서게 만드는 전환점이다. 회심한 죄인은 이제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여 피난처 되신 그리스도께로 떠난다. 그는 더 이상 죄의 습관을 계속하지 않으며, 그리스도를 그의 주인으로 알고 따른다. 그는 이제 멸망을 피해서 자신의 구세주가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찾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회개는 믿음을 내포하고 믿음은 회개를 함축한다. 믿음이 없이는 참된 회개가 있을 수 없고 회개가 없이는 참된 믿음도 없는 것이다. 회심의 시간에 한 영혼 속에서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진리의 말씀이 역사하면 회개와 믿음이 동시에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 근본적인 마음의 변화를 통하여 외면적인 삶의 변화가 발생하며, 새롭게 변화된 지성을 통하여 삶의 개혁이 발생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참된 믿음의 열매는 종종 중생의 결과와 동일하게 간주된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요일5:1).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이는....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12-13). 모든 참된 신자가 회심한 자인 것처럼 구원하는 믿음의 결과는 중생의 사역과 동일하다.

 

이때 믿음은 복음에 요구된 것과 같이 참된 성경적 믿음이어야 한다. 이는 야고보가 말하는 것처럼 죽은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증언에 뿌리 박은 참되고 살아 있는 믿음이다. 그리고 이 신앙은 맹목적인 무지와는 반대되며, 하나님의 진리의 교훈에 대한 지성적 확신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증거와 진리에 대한 영적 이해에 기초하는 이 믿음은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부르심에 복종시킬 수 있을만큼 강력하고 능동적이며 활동적인 원리이다. 또한 이 믿음은 존경과 경외함, 감사함과 즐거움, 사랑과 기쁨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영혼을 새롭게 하고 깨끗하게 하며, 우리의 실제적인 모든 습관들을 완전히 새롭게 바꿔 주는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이 죄인의 영혼에 심기기만 하면 전적으로 새로운 사람이 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깨닫게 된 하나님의 진리는 자신이 가졌던 애해와 양심과 의지와 욕망과 감정을 전적으로 새롭게 하는 것이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따라서 복음이 제시하는 의미로 보면 모든 신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이다. , 중생받지 못한 자는 누구든지 신자가 아니며, 중생받은 자라면 누구든지 신자가 아닐 수 없다는 말이다. 만일 중생받지 않은 자라면 불신자이다. 중생받은 불신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참된 복음적 믿음의 결과는 거듭남과 동일한 것이다. 때때로 진심으로 회심하지 않은 자가 진리의 말씀을 읽고 말하며 그 일부분을 받아들이며 붙잡기도 하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의 본질적인 부분을 참되게 이해하지도 않으며 믿지도 않는다. 그는 복음서에 묘사된 돌밭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처럼 말씀을 듣고 즐거워하며 기뻐하지만 더 이상 크게 자라거나 열매를 맺지 못한다. 이렇게 성경은 회심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종종 이러한 순간적인 감동들을 경험할 수 있다고 선언한다.

 

4. 불신자의 각성과 신자의 구원적 회심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이 종종 경험하는 교훈과 각성의 예비적 사역과, 구원하는 회심으로까지 인도되는 사역을 구별해 주는 한 가지 특징적인 차이는 후자의 경우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뜻에 대한 죄인의 모든 의지적 저항이 극복되면서 복음의 초청에 기꺼이 응하게 된다는 점에 있다.

 

모든 죄인의 마음은 하나님의 진리에 대적하고 저항한다. 이러한 것은 말씀을 거부하는 불신앙의 마음으로부터 발생한다. 죄인의 마음에는 교만이 자리하고 있어서 말씀에 반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싫어하는 것이다. 이렇게 죄인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정결함을 싫어하는 반면, 죄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서 하나님께 저항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반적인 각성을 경험하고 신적 진리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을 획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회심의 길목에서 여전히 머뭇거리거나 아예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중대한 결심의 순간에 그들이 복음의 초청을 진심으로 정성을 다하여 받아들이기 위한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죄인이 죄의 용서를 원한다면, 반드시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나아감과 동시에 새로운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천국 백성이 되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진정으로 자신의 마음에 성령님을 모시고 신앙의 능력으로 생활하며, 겸손의 길을 걷고 자기를 부인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헌신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복음에는 죄인이 구원을 갈망해야 할 많은 것들을 담고 있을뿐만 아니라, 자신이 반드시 버리고 떠나야 할 많은 것들도 담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참된 회심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해 주는 중대한 특징적 차이라면, 참된 회심자에게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따르며 완전한 구원을 받아들이려는 참된 의지적 순종이 따라올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모든 것은 전적으로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편에 선다는 것은 성령 하나님의 사역의 결과이다. 의지가 변한다면 모든 것이 변하게 될 것이다. 만일 의지가 복음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복음은 모든 축복의 약속들과 복락들을 죄인의 것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5. 회심의 동일성과 단호성

 

이 중대한 변화는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발생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발생한다. 예를 들어, 신적인 진리에 사로잡히자마자 곧바로 회심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계속되는 교훈의 예비적 사역을 통해 영향을 받아 회심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조용히 자라나는 화초처럼 온순히 말씀을 받아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죄를 보자마자 구원의 치료책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흥분하는 사람이 있다. 이렇게 회심은 다양하게 발생한다. 그러나 본질에 있어서 모든 회심은 동일하다. 회심의 본질은 참된 믿음에 있으며, 그 믿음은 의지를 복종시키고, 언약에 따라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한다.

 

그리고 회심은 중간 지대가 없다. 중생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둘 중 하나만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정도만이 회심하고 또 어느 정도는 회심하지 않을 수 없다. 회심하든지 않든지 둘 중 하나다.

 

6. 회심의 동인이신 성령

 

이 결정적인 변화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싹트며, 성령 하나님에 의해 적용되고 효과를 발생한다. 하나님의 영은 이 변화를 발생시키는 동인(動因)이시다. 성령께서 눈을 열어 주시고 마음에 빛을 비추어 주시고, 그리고 의지를 움직이시고 그분의 뜻을 행할 수 있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7. 중생이라는 이름의 마음의 변화

 

중생은 단순한 도덕적인 교정이나 삶의 외면적인 개선 이상의 엄청난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마음의 변화이다.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우선 좋은 나무가 되어야 한다.’ 거듭남은 새로운 생명에 있어서 본질적이요 필수적인 것이다. 참된 거룩은 오직 새로워진 마음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이 결정적인 변화는 현세에서의 우리의 상태와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내세에서의 우리의 영원한 운명이라는 영적 복지를 좌우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다. 회심했는가, 회심하지 않았는가? 이것이 가장 중대한 질문인 것이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유정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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