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1/1 신년설교, 십자가사랑, 하나님사랑, 성경사랑
2017-01-01 신년 설교
본문: 시편 1:2-3
제목: 십자가사랑, 하나님사랑, 성경사랑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 모두 새해가 되어 복 많이 받기를 원한다.
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복은 원한다고 빈다고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하신 조건을 충족할 때 온다.
조건을 충족하면 축복이요, 충족하지 못하면 저주이고 재앙이다.
오늘 본문 1:3은 복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나무는 그 잎사귀가 마르면 죽는 거겠지요. 되는 일이 없고 시들어가는 거지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것처럼
복 있는 사람은 그가 하는 일이 다 형통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그렇게 되느냐?
성경(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성경(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다.
성경을 즐거워하면서 묵상해야 할 핵심은 세 가지라 할 수 있다.
십자가요 하나님이요 말씀(법도)이 그것이다.
2017년 새해가 복 받는 새해가 되게 할려면,
십자가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시기 바란다.
이 셋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새해는 결코 복 많이 받는 새해가 못되는 것인 줄 알고,
이 세 가지 사랑에 힘쓰는 한 해, 그래서 복 많이 받는 새해가 되기를 축원한다.
1 십자가를 사랑해야 한다.
우리 주님이 지신 십자가가 없었으면, 우리에게는 구원도 없고, 복도 없다.
구원을 받지 못하면, ‘본질상 진노의 자녀’(엡2:3)이기 때문이다.
공중 권세 잡은 자, 사탄을 따르고 세상 풍조를 따라 마음과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게 된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다.
그러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다.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것은
인간의 지혜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인간의 모든 죄가 처리 되었고, 하나님의 공의가 충족되었다.
십자가는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결정체였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죄의 무서움을 알아야 하고, 주님과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알아야 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순간 우리는 주님과 함께 연합이 이루어지고,
그로 인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함께 부활하고 함께 보좌 우편에 앉게 된다.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우리는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가 된다.
우리의 옛 사람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제는 새 생명으로 새로운 존재로 살아야 한다.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옛 사람, 자아)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매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
우리 지체를 더 이상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우리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우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롬6:13)
그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함께 일으킴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우리 옛 사람은 이기적이고 충동적이고 감정적이다.
자기 중심으로 살려고 하고 성질대로 살려고 하고 자기 고집과 소견에 옳은 대로 살려고 한다.
이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을 믿고 그 죽은 십자가를 매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
나의 옛 사람, 내 자아가 죽은 자기 십자가를 매일 짊어짐으로써 우리는 변화되고 성숙해지고,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성품과 삶을 닮아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옛 사람의 성깔과 행동이 튀어 나올 때마다,
우리는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다시 돌아가는 것으로,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운 것으로 여겨야 한다.(벧후2:22)
우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고,
오직 흠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십자가 피로 된 것이다.(벧전1:18-19)
우리의 옛 사람의 본성이 나올 때마다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사랑하며 처리해야 한다.
옛 사람을, 십자가로 처리해야 할 뿐 아니라,
세상에 대해서도, 십자가로 처리해야 한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우리 주님이 나를 위해 지신 십자가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옛 사람과 세상에 대해 그전처럼 살 수는 없다.
주님 주신 새 생명으로, 새로운 존재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다.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왜 구원의 확신이 없는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주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십자가 아래 있던 사람들처럼 십자가 아래 자주 나아간다.
십자가에 못 박힌 주님의 십자가를 자주 묵상하고 감사하고 영광을 돌린다.
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십자가와 보혈의 찬송을 자주 부르며 때로는 눈물짓는다.
사랑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고 감동으로 되는 것이니까요.
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십자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십자가 없이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성자 하나님을 인간의 몸을 입고 대속제물로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이다.
그 크신 사랑을 인하여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십자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십자가 사랑은 하나님 사랑과 직결되어 있다.
2.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망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우상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우상을 물질로 만들었지만 요즘은 우상을 마음으로 만들고 있다.
마음의 우상이 사실은 더 무서운 것이다.
야곱이 숙곳에서 자기 좋을 대로 편할 때로 쌓은 제단, 엘엘로헤이스라엘은 재앙을 불러왔고,
우상을 버리고 몸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갈아입고 쌓은 제단, 엘벧엘은 축복과 평안을 불러왔다.
우상은 하나님이 있어야 할 자리에 다른 물질이나 사람이 들어앉은 것을 말한다.
마음에 하나님 아닌 우상이 들어앉아 있는 것은 십계명의 첫 1,2,3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도 우상이 될 수 있다. 일이나 사업이 우상이 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 부모 형제 자녀 배우자 애인 등도 우상이 될 수 있다.
성경을 연대기적으로 볼 때 마지막 말은,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요일5:21)라고 한다.
하나님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우상인 줄 알고 내 마음에 우상이 자리잡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우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음을 다해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웃을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할 수 있다.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본능적인 사람의 사랑은 하나님 사랑으로 채워져야 비로소
이웃이 나와 같은 사람으로 보이고 그래서 자신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하면,
모든 율법을 다 지킨 것이라고 하셨다.
모든 율법의 강령이라고 하신 것은 그 뜻이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할 때 나 자신도 옛 사람과 자아에서 해방될 수 있다.
죄에서 자유할 수 있고, 세상에서 자유할 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셨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4-5)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성경을 두 계명으로 요약할 때 첫째 계명이라 하셨다.
내가 지금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사랑하는 우상들을 과감하게 버리고,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그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시기 바란다.
새해에 축복 받고 형통하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다.
시간을 정하여 기도하고, 성령 안에서 무시로 기도한다.
항상 하나님과 대화하며 교제하며 하나님 앞에서 동행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계명을 지키는 자이다.
나를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셨다.(출20:6)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하셨다.(요14:15)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5:3)
3. 성경(말씀)을 사랑해야 한다.
십자가 사랑도, 하나님 사랑도,
성경을 사랑하지 않으면, 도무지 알 수도, 사랑할 수도 없다.
십자가 사랑, 하나님 사랑, 성경 사랑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또 십자가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는 생애를 살 수 있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다 하나 같이 성경을 사랑한 사람들이었다.
성경은 구원의 책이요 사랑의 책이다.
기독교를 ‘한 책’의 종교라고 하는 것은 성경이 그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이 저자들을 통해 친히 쓰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을 해준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 성품을 온전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도 갖추게 해준다.
그리스도인들이 성품이 온전하지도 못하고, 선을 행할 줄도 모르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요즘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원수처럼 멀리하고 있다.
성경을 가까이 둘수록, 자주 읽고 연구할수록, 사랑하게 되고 귀하게 여기게 된다.
주일 예배에 빠지게 되면 성경과도 하나님과도 멀어지게 되는 것을 본다.
십계명의 4계명은 안식일을 지키라 이다.
하나님 사랑을 위한 1,2,3 계명을 말씀하고, 그 표현과 귀결이 안식일 준수이다.
안식일에 모든 것을 쉬게 한 것은 오로지 하나님만을 예배하고 하나님 말씀을 듣게 하기 위함이다.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의 최고 특권이요, 축복의 통로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자란다.
마음으로부터 말씀을 지켜 살게 하기 위해 긴 광야생활과 고난도 허락하신다고 하신다.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땅을 차지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8:1-3)
다윗이 솔로몬에게 남긴 유언도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면 형통한다는 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왕상2:3)
하나님은 직접 여호수아에게 평탄하고 형통하는 길은 성경대로 사는 것이라고 한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1:8)
축복을 받고 인생 길이 평탄하고 하는 일마다 형통하는 길은 말씀 사랑에 달려 있다.
여러분, 성경을 사랑하고 즐거워하고 읽고 연구하며 묵상하여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시기 바란다.
시간은 내가 목적을 가지고 내지 않으면 낼 수 없다.
이스라엘이 망한 것은 하나님께 열심은 있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르지 않아서 였다고 한다.
성경은 일만 스승이 아니라 아버지 스승을 만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십자가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경을 사랑하는 한 해가 되시기 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래서 복이 넘치는 새해,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형통하는 새해가 되시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