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존스

[스크랩] 로이드 존스, 로마서강해 2권, 1장, 5-8장의 분석 (2017수정 김영희강의안)

강대식 2017. 3. 14. 17:49

로이드 존스, 로마서 강해, 2

 

15~8장의 분석

 

5:1-2.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 5장은 새로운 대목의 도입이며 로마서 나머지 부분을 이해하는 열쇠이다. 동시에 이 5장은 최상의 평안과 용기를 주는 교훈을 내포하고 있다. 4장에서 이신칭의의 교리에 대한 위대한 진술을 끝마치고 바울은 새 대목을 그러므로라는 말을 사용하므로서 특징 있는 문체로 시작한다. 저는 때때로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모든 비밀은 그러므로라는 말을 사용하는 법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많은 면에서 논리적이고 추론적인 것이다. 수세기를 통하여 가장 밝게 빛나는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이 그러므로란 말을 사용할 줄 알았던 사람들이었다. 사도는 우리에게 말해왔던 것을 토대로 끌어낼 수 있는 어떤 확실한 추론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는 것이다.

 

- 5-8장의 일반적인 분해는 5:1-11 이신칭의 결과. 5:12-8: 성화. 9:-11: 유대인의 문제. 12:-14: 실천적 교훈과 권면. 그렇게 분해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5~8장의 요지는 이신칭의의 결과로 우리에게 임한 구원의 절대적 성격 즉 구원의 완전성과 구원의 최후보장성을 우리에게 보여주길 원하고 있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입고 서있다는 것을 안다면 여러분의 구원은 전적으로 보증된다는 것이다.


5:1~11 구원의 최종성과 절대적 확실성을 다루고 있다.

5:12-21 우리의 최종적인 구원과 그것을 보증하는 가장 위대한 증거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6: 이 교훈에 반대되는 주장인 우리의 구원이 이 은혜에만 있다면 우리는 마음대로 죄를 지을 수 있다고 충돌질하고 있는 격이다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것에 대한 반론을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라는 물음으로 거론해 나간다.

그리스도와의 연합 원리를 진정으로 이해하면 모든 정성을 다해 스스로 완전해지려고 할 것이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3:3).


7: 이 교훈에 반대되는 주장으로 율법의 참된 기능과 목적에 관련하여 제기되는 반론을 거론한다. 칭의나 성화의 국면에서 볼 때 율법은 결코 우리를 구원하는 방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8: 5장 말미에서 멈춘 위대한 주제로 다시 돌아간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8장의 대 요지는 구원의 절대적 확실성과 최종성을 더욱 더 분명한 어조로 말해주는 데 있다.

 

- 1절과 2절에서 이신칭의가 한꺼번에 세 가지 일을 해냈다고 말해 준다.

그것은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화평을 가져다 준다. 즉 그것은 우리를 은혜에 들어감(축복의 자리)을 얻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장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자랑할 수 있게 한다(소망).

 

-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1) 칭의의 첫째 결과를 다룬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1-4장에서 얼마나 여러 번 말했는가? 그렇게까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는 계속해서 그의 죽음과 부활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다. 바울은 우리가 얼마나 잊어버리기를 잘 하는 존재인가를 익히 안다. 이 영광스러운 축복을 언급할 때마다 그를 빼놓고 하나님을 안다거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신을 기만하고 바보로 만드는 것이다. 사도는 우리가 그것을 잊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 두라.


그저 예수라 하지 않고 반드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 한 것에 유의하자.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반복하기를 좋아하는가?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로서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를 시험하는 가장 훌륭한 시금석 중의 하나이다. 그분 없이는 아무 것도 없다. 그분 안에 모든 것이 있다. 알파와 오메가 되시며 처음과 나중 되시고 모든 것 안에 모든 것 되시는 분이시다. 그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드리자.

 

그분으로 말미암아 얻은 것이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과의 평화이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얻은 여러 축복들을 계속해서 말해 준다. 그러나 바울은 다른 축복들은 하나님과의 화평다음으로 미루어 놓는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평화를 이루는 이 축복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다른 여러 축복들을 처음 자리에 놓고는 사람들을 초청한다. - “당신은 친구를 원하십니까?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당신은 행복과 평안을 원하십니까?”- 그들은 사람으로부터 출발해서 사람들의 여러 가지 필요, 고민, 문제, 욕구를 먼저 말하고는 그러한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오직 한 분인 예수께 나오라고 한다.

 

우리가 최초로 강조해야 할 것은 하나님과의 평화이다. 맨 먼저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가 그와 화해하기 전에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어떤 축복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모습 그대로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다. 하나님의 축복을 원할 때 맨 먼저 부딪치는 문제는 어떻게 내가 하나님 존전에 이를 수 있으며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먼저 하나님과 화평해야 한다. 하나님은 죄인의 말을 듣지 않으신다(9:31).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화평부터 시작해야 한다. 어떤 축복을 생각하기 전에 우리가 늘 생각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신분과 위치이다. 어떻게 이 점을 망각할 수 있는지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여러분의 인생은 안개에 불과하다. 나의 축복을 생각하기 전에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첫째 문제는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그 외의 모든 것들은 다음의 문제이며, 그에 의존해 있는 것이다.


복음의 첫째 되는 임무는 우리에게 축복을 주는 것이 아니다. 복음의 1차적인 기능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일이다. 회개나 회심이 문제가 아니며 오직 그 모습 그대로 나아오라고 가르치는 모든 교훈은 비성경적이고 비논리적이다.

 

화평을 누리자가 아니고 화평을 누린다이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과의 화평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권면이 아니고 다만 우리가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을 깨달으라고 명하고 있는 것뿐이다.

 

하나님과의 평화의 의미는 무엇인가?)

첫째, 그저 단순한 화평이 아니고 하나님과 더불은 화평이다. 세상은 화평에서 떠나 있고 사람들은 불행한 가운데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평화이다. 그 평화를 얻는 것은 오직 이신칭의를 방편으로 해서만 되는 것이다. 신학이나 교리나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저 단순한 평화기 아니라 하나님과의 평화이다.

 

둘째, 하나님의 평화(Peace of God)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평화’(Peace with God)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찰스 핫지나 로버트 할데인은 여기서 하나님의 평화를 말하고 있다. 4:6-7에서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화는 사도가 여기서 다루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속한 것이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화는 사람이 문제들과 고통과 시련으로 에워싸임을 당했을 때 필요한 것이다. 우리에게 고통이나 시련 환란이 닥쳤을 때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버틸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평화를 가지기 전에는 하나님의 평화를 가질 수 없다. 여기서 다루는 주제는 생활의 시련에 어떻게 견디어내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과 심판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어떻게 서느냐 라고 하는 것이다. 시련 환난 고통에 대한 화평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화평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이신칭의를 방편으로 하여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화평을 누린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신칭의에 의해서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존재하는 장애물이 제거되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완전히 새로운 관계가 수립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5장에서 8장까지 계속되는 이 커다란 대목의 출발점에 있다. 그 주제는 우리 구원과 영화의 절대적 확실성이다. 내게 그 확실성을 알 수 있게 하는 첫 번째 것으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화평을 가졌다는 것이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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