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4/16 부활절설교, 부활이요 생명이니, 요11:25-26
설교일: 2017-04-16 부활절
제목: 부활이요 생명이니
본문: 요 11:25-26
주님은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셨다.
십자가의 죽음이 있었으니 부활이 있었다.
주님이 부활하셔서 부활이 되셨으니 우리를 부활하게 하실 수 있다.
주님이 부활하시고 생명이 되셨으니 우리로 새 생명으로 살고 영생을 살게 하실 수 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 믿는 자들에게 너무 많은 특권과 축복을 주시는 역사적 사건이다.
부활의 역사적 사건이 없었다면, 의미도 없는 것이고, 구원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자유롭게 신학하는 사람들은 역사적 부활은 부인하고 의미만 가질려고 한다.
절기로 지키는 부활절을 통하여 부활의 사건과 의미를 확실히 마음에 새기고
주님 부르시는 날까지 그 특권과 축복을 누리시기 바란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모든 축복과 영광을 주신다.
1.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기독교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면서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이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완성하셨기 때문이다.
부활은 그 구원의 완성을 선포하고 인치고 확증하신 역사였다.
십자가가 없었다면 부활도 없다.
그 전에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이 없었다면 십자가도 없다.
부활은 이 모든 것의 확증이요 선포요 인침인 것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성자 하나님이 동정녀 탄생으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
자기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예수란 이름으로 오신 것이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라”(마1:21)
이 예수가 그리스도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대속하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구원하셨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1:7)
이 구원의 역사는 창 3:15부터 시작하는 모든 예언(복음)의 실행이요 성취였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
그분은 십자가에서 이 구원 사역의 완성을 친히 말씀하시고 죽으셨다.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19:30)
주님의 부활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구원 역사를 인치고 확증하고 선포하신 역사였다.
사도 베드로의 첫 설교이자 증언이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음이라 ---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2:22-24,32)
예수님의 부활을 본 후 사도들은 담대한 부활의 증인들이 되었다.
가롯 유다를 대신할 제자 맛디아를 뽑을 때도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라 하였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기념할 때마다 그분의 오심과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구원 사역을
먼저 생각하고 감사하며 영광을 돌려야만 한다.
이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고 단지 부활의 의미만을 논하는 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2. 주님은 부활하셨다.
“나는 부활이니”(요11:25)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
주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은 그 다음 열매들이 될 것이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고전15:22-23).
한 사람의 죽음이 우리 모두가 죽어야 할 원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부활이 우리가 다시 살아나는 원인이 되었다.
아담과 그리스도는 두 머리다. 두 뿌리요 두 첫 열매다.
아담과 그리스도 모두 대표자이기 때문이다.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었다는 것은 레위기 23:10-11을 봐야 한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안식일 이튿 날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다.
처음 추수한 곡물의 첫 이삭, 곧 첫 열매의 한 단을 제사장에게 가져와
그 단을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흔드는 날에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그리스도는 이 날 첫 열매로서 가장 먼저 살아나셨다.
전체적인 부활의 날인 심판의 날에 온전한 추수는 이루어질 것이다.
그 날은 구원 받은 자들에게는 기쁨의 날이요 영광의 날이 될 것이다.
그러나 구원 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고통의 날이요 저주의 날이 될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시편 여러 곳에 예언 되어 있다.
베드로가 이를 인용하여 설교하는 말씀이이다.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하였으므로, 그는 선지자라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2:23-32)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확실히 예언하신 분은 예수님 자신이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마16:21)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막10:32-34)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마26:32)
예수님은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을, 말씀을 통해 믿으시기 바란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12)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였으면 사도들이 전파하는 것도 헛 것이요
부활을 증언한 사도들은 거짓 증인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우리 믿음도 헛되고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다.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신 것을 확실히 인증해 주는 것이 예수님의 부활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을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서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가 될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라고 온갖 고난과 핍박을 받았는데,
부활이 없다면, 영원 세상이 없다면, 그 모든 것이 무익하고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들이 어디서 보상을 받으며 위로를 받으며 소망을 이루게 되겠는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할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 지냈지만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셨다.
우리도 부활할 때 그와 같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이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15:42-44)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는다고 하였다(15:49)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15:51-53)
3. 부활은 새 생명, 영생을 살기 위함이다.
“내가 생명이니”(요11:25)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생명이 되셨고 그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다.
이 생명을 성령을 통해 받음으로 새 생명을 사는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새로운 창조와 부활을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새 생명으로 살다가 죽어서는 이 생명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사는 것이다.
죽음과 부활과 생명은 연결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피조물로 살기 위해, 새 것으로 살기 위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생명으로 연합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롬6:4-5)
우리가 구원 받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되기 때문에
그분의 십자가 죽으심도 함께요, 그분의 부활도 함께 참여하는 바가 된다.
그의 죽으심도 그의 부활하심도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는 것이다.
주님과 죽음도 함께 부활도 함께 연합한 것은,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고, 새 생명으로 살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 땅에서와 영원한 세상에서의 우리의 부활된 삶을 위한 것이다.
새 생명 가운데서, 새 생명으로 살려면 주님과 함께 죄에 대해서는 죽어야 한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롬6:11)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분이 나의 죄를 위해 죽은 것 같이,
나도 그분과 연합하여 죄에 대해 죽은 자로 여기는 것이다.
그분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나도 그분과 연합하여 새 생명으로 새 존재로 사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죄가 내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책임이 내게 주어졌다.
이제는 내가 내 몸의 사사로운 욕심에 순종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는 내가 내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아야 한다.
죽은 자 가운데서 막 살아난 자 같이 내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이제 내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은혜가 왕 노릇하며 함께 하면서,
주님의 형상을 닮아가게 하고, 영생을 이루어 가게 할 것이다.
그렇지만 죄는 우리 몸과 마음 가운데서 죽는 날까지 살아 있다.
성령을 힘 입고 은혜를 받아 이 죄와 육체와 마귀와 세상과 싸우는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바울처럼 우리도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3-14)
예수님의 부활은 이 땅에서와 영원 세상을 위해,
우리가 새로운 존재로, 새 생명으로 살고, 부름의 상을 향해 달려가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과 상 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한다.
우리 주님이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고 삼 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이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시고 인치셨다.
그리고 생명이 되셔서 우리에게 그 생명을 주시고 새로운 존재로 새 생명으로 살게 하셨다.
새 생명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온전히 닮아가기까지는 고난과 연단이 우리를 만들어 간다.
고난과 연단에 낙심하지 말고 그 목적과 결말을 알고 믿음과 인내로 즐거워해야 한다.
우리가 잠시 받는 고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