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바른 영성, 먼저 거듭남에 대한 이해와 체험과 감격을 가지라/ 이태복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거듭남을 올바르게 체험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도,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다. 즉, 참된 영성은 오직 거듭난 사람만이 형성하고 실천할 수 있다.
영성을 형성하고 실천하려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가장 먼저 거듭남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최소한 거듭남이 왜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지, 우리가 어떻게 거듭나게 되는지, 그리고 참으로 거듭났다는 증거가 우리의 마음과 삶에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알아야 한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백지 몇 장을 주면서 거듭남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써 보라고 할 때에도 망설이지 않고 줄줄 써 내려갈 수 있어야 한다. 거듭남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영성을 쌓으려는 것은, 기초를 대충 닦아 놓은 채 그 위에 고충 건물을 올리려는 것처럼 위험하다.
거듭남에 대한 충분한 이해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제로 거듭남을 올바르게 체험해야 한다. 거듭나지 않고도 영성 훈련을 배우고 실천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성 지도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거듭나지 않은 모든 사람의 영성은 사람의 눈에 아무리 곱고 아름답게 보인다 해도 하나님의 눈에는 죽은 시체가 화장을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가치 없는 영성일 뿐이다. 그것은 초라한 위선일 뿐이다.
참된 영성을 형성하고 실천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당신이 정말로 거듭난 사람인지부터 진지하게 확인하라. 성경에서 말하는 명확한 기준들로 자신의 거듭남을 점검해야 한다. 특별히 요한일서는 거듭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중요한 특성에 대해 증언한다.
첫째, 거듭난 사람은 습관적인 죄를 범하지 않는다(요일3:9,5:18).
둘째, 거듭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한 구세주가 되심을 믿는다(요일5:1).
셋째, 거듭난 사람은 마음과 삶이 성결하다(요일2:29).
넷째, 거듭난 사람은 그리스도의 모든 참된 제자들에 대하여 특별한 사랑을 발휘한다(요일3:14)
다섯째, 거듭난 사람은 세상의 의견을 자신의 법칙으로 삼지 않는다(요일5:4).
여섯째, 거듭난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긴다(요일5:18).
니고데모는 평생 영성을 실천하고 가르쳐 온 영성의 대가였지만 늙은 나이에 예수님을 만나 거듭나지 않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백 미터 육상 선수가 혼신의 힘을 다해 일등으로 경주를 마쳤는데도 부정 출발이라는 이유로 금메달을 받지 못한다면 얼마나 비참하겠는가? 그러므로 당신의 거듭남을 진지하게 점검하라. (pp 116-118)
지성은 거듭남과 모든 영성의 출입문이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영성은 거듭남의 역사의 연장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지성이 거듭남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영혼으로 들어오는 출입문이 되는 것처럼, 모든 영성 형성에 있어서도 출입문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도록 하자.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이해력과 지성으로 깨닫고 더욱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을 영성 형성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먼저 지성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나서 그 생생한 지식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바른 감정과 의지를 가지라. 지성이 감정과 의지를 다스릴 때, 우리는 올바른 영성의 인격을 형성할 수 있다.
인간 사회에서도 바른 지식을 구비하고 거기에 따르는 감정과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인격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듯, 영성에서도 감정과 의지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감성과 의지가 지성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다. 가디너 스프링은 말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죄의 본성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죄를 미워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성품과 속죄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의무와 그 본질을 모르는 사람은 그 의무를 감당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도 지성에 접근하셔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말씀을 깨닫게 하셨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말씀을 깨닫게 되자 그들의 감정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결국 그들의 의지에도 변화가 일어 났다. “곧 그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눅24:27-33).
지성을 출입문으로 삼지 않을 경우, 우리의 영성에는 여러 가지 폐단들이 생길 수밖에 없음을 늘 기억하라. 씨뿌리는 비유에서 돌밭과 좋은 땅의 차이를 기억해 보라. 돌밭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았다. 반면에 좋은 땅은 말씀을 듣고 깨달았다. 무슨 차이가 있는가? 돌밭은 감정을 통해서 영성을 형성하고, 좋은 땅은 지성을 통해서 영성을 형성한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돌밭은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자 곧 넘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깨달은 좋은 땅은 100배, 60배, 30배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마13:18-23).
그러므로 영성 형성을 위해서 우리가 가장 먼저 힘써야 할 일이 바로 지성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지성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새로워질 때에 언제나 우리의 감정과 의지에도 적절한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이런 변화야말로 정당하고도 지속적인 변화이다.
물론 지성에만 호소할 경우에 감정과 의지는 변화하지 않은 채 메마른 지식만 쌓아 갈 위험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위험은 단지 머리로만 하나님을 배우려 하고 하나님의 성령을 의지하지 않는 우리의 잘못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하나님이 메마른 지식을 주시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메마른 지식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늘 주의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더 많이 알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바로 올바른 영성을 형성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영성 이렇게 형성하라', pp 12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