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신실한 자도 소망에 따라 살지 않고 절망스럽게 생활함으로써 하나님을 시험한다/ 윌리암 에임스
에임스의 ‘신학의 정수’ 주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에임스의 소위 ‘영적인 죽음’에 대한 서술과 죄의 의미에 대한 용어해설 부분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에 복종시키기를 거절했고 하나님의 의지를 우리의 욕망에 복종시키려고 노력한다”라고 반복해서 말한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부인한 자들에게는 정의와 사랑에 대한 어떤 감정도 결여되어 있으며,
그러한 상태에서는 심지어 본래적인 양심조차도 인도와 보존의 기능을 행사할 수 없다.
영적인 죽음은 또한 경건한 자들이 해하는 수많은 유혹의 행위들에서 볼 수 있듯이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에게도 발생한다. 의인도 하나님의 행동에 시간과 공간을 설정함으로써
하나님의 완전성, 능력 혹은 지식을 시험한다.
신실한 자도 소망에 따라 살지 않고 절망스럽게 생활함으로써 하나님을 시험한다.
소망을 지닌 자도 소망의 목표에 필요한 수단들을 활용하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을 시험한다. 그는 건강의 회복을 추구하면서도 약과 음식을 거절한다. 혹은 내적인 견고함을 원하면서도 성례의 의미를 성찰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지 않는다.
에임스는 인간의 교만이 영적인 죽음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불가피한 교만으로 인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의지를 청종하지 않고 혹은 하나님의 의지를 우리의 계획과 우리의 욕망에 종속시키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선지자 나단이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삼하12:9)라고 책망했던 선왕(善王)인 것처럼 보였던 다윗과도 같은 존재이다.
아담은 무엇보다도 공인이며 인간 본성의 척도요 대표였다. 그는 인간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형상과 인간의 죄악의 실재성을 상징으로 제시된다. 아담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하위의 능력들과 미혹들의 유혹에 굴복했다. 창세기의 진술은 사단의 형태로 유혹을 인격화시켜 묘사한다. 창세기의 강력하고 생생한 언어에서 사단이란 교만을 행사하여 죄에 빠지고 하나님을 멀리하려는 인간의 지속적인 가능성을 표현한다. 아담은 모든 인간이다. 우리는 은혜의 방편을 붙잡으면서도 먼저 자신의 자아 안에서 아담의 양면성을 인식하는 자신의 상태에 대한 성찰이 각자의 결단보다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사악한 죄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의지가 변화되어야 한다. 마음의 계몽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에임스는 인간의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의해 알 수 있다는 ‘하나님의 도성’의 주장을 따르고 있다. 인간은 지상적 시민으로 자아에 대한 불경한 사랑으로 살아갈 수도 있고, 천국의 시민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몰아적인 사랑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지배적이고 주도적인 사랑의 종류가 무엇이냐 하는 것은 인간이 무엇을 의지하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오직 하나님만이 인간의 의지를 효과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의지는 자신을 회심시킬 수 있는 내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종교적인 삶의 일차적인 책임은 회심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회복사역의 가능성에 의지를 개방시키는 것이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 윌리암 에임스, 「신학의 정수」, pp 3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