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9/10 주일설교, 주의 일에 힘쓰는 자, 고전 15:58
2017-09-10 주일설교
본문: 고전 15:58
제목: 주의 일에 힘쓰는 자
고전 15장은 ‘부활장’이라고 하고, 존 낙스가 즐겨 읽었다고 하여 ‘존 낙스의 장’이라고도 한다.
주님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을 강력히 증거하고 부활과 영생과 그 영광을 향하여 살라고 한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15:19).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의 삶이 이 세상 삶으로 끝이 난다면,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그렇게 훈련하고 연단하지 않으실 것이다.
죽은 후에 우리의 부활과 영생의 삶이 이어지기에,
영생의 삶에, 천국의 삶에 합당하도록 우리를 고난과 연단을 통해 만들어 가신다.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로 영원한 삶을 향해 달려가게 하신다.
세상 사람들은 부활과 영생을 믿지 않기에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한다.
오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출세하고 성공하고 재산을 모으고 즐기다가 죽자 한다.
그러나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고 부활이 있고 영원한 지옥과 영벌이 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25:46)
우리는 이 말씀을 항상 기억하고 살아야 한다.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아야”(고전15:34) 한다.
1.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라”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될려면,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견실’의 원어의 뜻은 ‘앉아 있는 상태 그대로’라고 한다.
동요됨이 없이 굳고 튼튼하다는 뜻이다.
견실하면 흔들리지 않는다. 흔들리는 것은 견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뿌리가 견고하지 못하면 나무는 조그만 바람에도 흔들리고 위험해진다.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견고한 뿌리가 되어야 한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2:6-7)
믿음은 우리의 생각이나 지적 동의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이다.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였으면 나는 이제 그만 주인 자리를 내려놓고
주님 안에서 주님의 말씀을 따라 그분의 선하시고 기뻐하고 온전하신 뜻을 따라 행해야 한다.
심령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이 세상 풍조를 따르지 말아야 한다.
썩어져 가는 옛 습관과 유혹을 따라 살지 말아야 한다.
영접하기 전 우리의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주신 정한(깨끗한) 마음으로 살고, 정직한 영으로 사는 것이다.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야 한다.
교훈은 하나님과 선지자들, 주님과 사도들이 가르쳐 준 하나님의 말씀이다.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살후2:15)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이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책이다.
우리를 온전한 성품과 인격으로 만들어 주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해준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이 성경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그 성경을 묵상한다.
이 성경을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며 그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할 때,
우리의 인생 길이 평탄해지고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많은 교인들이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지 않고 그 안에서 세움을 받지 아니한다.
말씀으로 믿는 믿음에 굳게 서지 아니한다.
옛 사람을 따라 행하고 세상을 따라 살고 만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지 않고 세움을 받지 아니하면,
우리를 사로잡는 것들이 있다고 바울은 말한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골2:8)
말씀이 아닌, 철학과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들에 사로잡히고 만다.
사도들이 가르친 전통을 지키지 않으면 사람들의 전통을 따르게 되어 있다.
그것은 세상의 초등학문들이 잘난 척하며 만든 사람의 전통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학문이 성경을 능가하는 고등학문인 줄 알고 성경을 무시하지만,
성경은 그것들은 사람들이 만든 전통이요 초등학문에 지나지 않는다고 가르쳐 주신다.
이것들을 통틀어 철학이라 하고, 그것이 헛된 속임수인 것을 알고 주의하라고 하신다.
나는 철학을 하며 25년을 살았기에 이 말씀이 너무 뼈저리게 느껴진다.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을 헛되이 섬기게 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마15:8-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친 것이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한 것이요,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한 것이다.
매주 교회 가서 예배 드렸는데 헛되이 예배한 것이요 하나님은 받지 않은 예배이다.
바로 이런 가르침들이 우리의 믿음을 견실하게 하지 못하고 흔들리게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뿌리를 박고 세움을 받으며,
사도들의 가르침의 전통에 굳게 서면, 우리의 믿음은 견실해지고 흔들림이 없게 된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시125:1)
2.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주의 일이 있고 자기의 일이 있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자기 일에는 죽을 힘을 다 쓰지만,
주의 일에는 관심이 없고 힘쓰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3:18-19)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사람들이 밖에 사람들이 아니고 빌립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한 둘이 아니고 여러 사람들이라고 했다.
바울이 여러 번 말했고,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고 있다.
그들의 하나님은 자기 욕망의 배요, 그 영광은 부끄러운 영광이다.
땅의 일만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다 자기 일에, 땅의 일에,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지만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사람도 있다.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빌2:21-22)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않는다고 탄식한다.
디모데는 연단을 받으면서도 주의 일을 구하고 힘썼다.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다.
주의 일은 목사와 사모만 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디모데처럼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함께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고, 복음을 위해서이다.
자기 일도 좋지만,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다.
땅의 일에만 힘쓰면 멸망으로 끝나지만 주의 일에는 모든 것을 더해주는 축복이 있다.
세상 일에도 공짜가 없다고 하지만 주의 일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복으로 주어진다.
세상 계산법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 하늘의 계산법으로는 이루어진다.
땅 위에 자기를 위해 쌓은 보물들은 좀과 동록이 해하고 도둑이 도둑질해 가고 만다.
하늘에 쌓는 보물은 주의 일에 힘쓸 때 쌓이는 보물이다.
이 보물들은 좀과 동록이 해하지도 못하고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한다.
아들을 아끼지 않고 주신 하나님이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아까워하겠는가?
주의 일의 기본은 주일 성수와 온전한 십일조 생활이다.
주를 경외함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기본적인 일이다.
주를 경외하기에 할 수 있는 예배와 물질의 기본적인 헌신이다.
믿음의 연륜이 어느 정도 쌓였으면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의무이고 특권이다.
특히 십일조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인색한 마음으로나 억지로 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8:7)
그에 대한 축복이 이어지고 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8:8)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해주신다.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게 해주신다.
그래서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해주신다.
은혜가 떨어지면 예배와 멀어지고 예물에 인색하게 된다.
참된 교회는 오직 십일조와 예물에 의해 운영된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도망가지 않게 한다.
교회 안에서 인색하면 하나님은 다른 곳에서 조달해 주시고 그들을 축복해 주신다.
예배와 예물은 헛되이 경배하는 교회에 드려봐야 아무 유익이 없다.
오직 영과 진리로, 혼합하지 않은 순전한 말씀으로 예배하고 가르치는 곳에 드려야 유익이 있다.
하나님의 참된 양식을 주는 곳에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서 창고에 양식이 있게 해야 한다.
오래 예수를 믿었는데도, 물질이 피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 원인이 있고 이유가 있다.
까닭없는 저주가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 같이 이루어지지 아니한다.(잠26:2)
주일 성수와 온전한 십일조가 주의 일에 기본인 것을 알고 철칙처럼 지켜 행하기 바란다.
기본이 흔들리니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 이 사실을 꼭 믿기 바란다.
주의 일은 그 위에 헌신과 봉사로 세워진다.
교회에 직분자를 세운 것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다.
눈을 감으면 보이지 않지만 눈을 뜨고 보면 교회에는 봉사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다.
큰 살림에 필요한 것이 작은 살림에도 똑같이 필요하게 마련이다.
참된 교회는 봉사를 강요하지 않기 때문에 찾아서 하는 지혜와 믿음이 필요하다.
3.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알라”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수고는 주 안에서 결코 헛되지 아니한다.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않는다”고 하셨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한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살아 계신 것을 믿어야 하고,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히11:6)
하나님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게 하시는 분이다.
이 말씀을 악용하면서 재물을 강탈하고 협박하는 거짓 목사들을 조심해야 한다.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행세하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들이라고,
그 거짓 목사들을 삼가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그들이 바로 큰 문으로 넓은 길로 많은 사람들을 멸망으로 인도한다고 하셨다.
교회가 다 교회가 아니고, 목사가 다 목사가 아니고, 설교가 다 설교가 아니다.
영을 다 믿지 말아야 한다. 미혹의 영이 있고 진리의 영이 있다.
성경의 바른 교훈이 있고, 철학과 속임수로 사로잡는 사람의 교훈이 있다.
바울은 사람의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으로 설교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직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순전한 말씀을 전한다고 했다.
하나님이 분별의 영을 주셔서, 바른 교훈, 바른 영을 분별하게 해주시길 바란다.
저주 받을 자들이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들을 전하고 있다.
그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요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라 하였다.
고린도 교인들이 이들을 잘 용납하고 있다고 바울이 탄식하였다.(고후11:4)
이런 자들이 초대 교회 때부터 교회와 성도들을 견실하지 못하게 하고 흔들리게 했다.
주의 일에 더욱 힘쓰지 못하게 하고 땅의 일에 더욱 힘쓰고 멸망에 이르게 했다.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을 믿지 못하게 하였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뿌리를 박고 세움을 받아 견실하고 흔들리지 말자.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자.
우리의 수고가 주 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음을 알고 믿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