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스크랩] 10/8 주일설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 빌 2:13-14

강대식 2017. 10. 9. 19:17

2017-10-08 주일설교

본문: 2:13-14

제목: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

 

1.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행하신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2:13a)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또 성경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하신다.(12)

우리가 이뤄가야 할 구원이 있기 때문이다.

 

원래 우리에게는 구원 받을만한 자격도 없다.

또한 구원을 이루어갈 능력도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구원의 모든 것을 끝까지 책임지시고 이루어 가신다.

 

그렇지만 우리를 통해서 우리에 의해서 이루어 가신다.

하나님은 전능하시지만 미련하고 우둔한 우리를 통해서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1:6)

 

하나님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결코 버리거나 떠나지 않으신다.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13:5)

 

고난이 힘들다고, 환경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나를 버린 것으로, 떠나신 것으로 생각지 말아야 한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회심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그 관계는 영원한 관계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영원히 우리 아버지시고,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우리의 머리이시고 우리는 영원히 그 몸을 이루는 지체이다.

성령은 영원히 우리 속에 우리와 함께 계심으로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의 성전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셔서 우리를 자녀 삼으셨다.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를 속량하시고 영생과 상속권을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로 하여금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구원의 모든 것을 이루어가시는 일에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여야 한다.

세상 사람들처럼 오늘 잘 되고 못 되고에 온통 매달려 천국과 지옥을 수시로 오가지 않아야 한다.

염려하고 근심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근심케 하는 일이다.

 

우리의 목적지는 가나안 기업이요 영원한 천국이다.

광야 길을 지나가야 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눈물의 골짜기를 통과해야 한다.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주님의 형상을 닮아가야 하고 성화를 이루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의 목적지는 이 땅에서의 성공과 영광과 축복이다.

이 땅에서 한번 살고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원 삶을 모르고 이 땅에서 승부가 끝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도 성경도 모르면 사탄이 주는 생각을 따라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다.

영원 삶에 비해 우리의 일생은 나그네요 그림자요 순례자일 뿐이다.

세상 풍조와 교훈에 끌려 요동하지 말고, 믿음으로 말씀으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

 

이 땅에서 성공이 아니라 성화를 이루어야 가나안과 영화에 이른다.

하나님은 어떻게든 우리가 성화에 이르게 하려고 모든 수고를 다하신다.

사도들은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 위해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하였다.

 

우리 인생 목적이 성공이 아니라 성화로 바뀌어야 한다.

성공이 목적일 때 그 인생은 멸망으로 끝이 난다.

성화가 목적일 때 그 인생은 가나안 기업과 영화로 끝이 난다.

 

이 성화를 위해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행하신다.

성화를 이룰려면 무엇보다 우리 속에 주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말씀하신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2:5)

 

우리 속에는 세상을 탐하는 내 마음도 있고, 사탄이 주는 벼라별 마음도 있다.

우리는 마음에 있는 것을 행하기 때문에 마음을 지키고 마음을 통제해야 한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4:23)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모든 것을 잃고 만다.

영혼까지도 멸망에 이르고 영벌에 처해지고 만다.

생명의 시작과 끝이 마음을 지키는 데 있다.

 

이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채우는 것이 최상이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행하사 이 마음으로 사시도록 하신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2:6-8)

 

그리스도께서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셨다. 신성을 지닌 하나님이셨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셨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 곧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

낮아지심이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더 낮아지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셨다.

 

세상은 자기를 높이고 자기 힘을 강화시키느라 열심이다.

낮아져야 진정으로 높아질 수 있음을 그들은 모른다.

낮아짐으로 변화를 받은 자만이 높은 자리를 감당할 수 있음을 모른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이셨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고,

모든 무릎들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 길을 걸었다.

하나님이 낮추셨고 그들은 순종하여 낮아졌고 하나님은 이들을 지극히 높이시고 사용하셨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오직 바벨탑만 높이 쌓을려고 하는 사람들은

어디서 무엇을 배운 사람들인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행하시는 역사를 따라 이 예수의 마음부터 품지 않는다면,

그들은 시작부터가, 출발부터가, 잘못된 것이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다.

성령을 근심케 하는 무리들이다.

 

하나님은 긴 광야 인생 길을 걷게 하시면서,

낮추기도 하시고 주리게도 하시면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훈련을 하신다.

 

그 위험하고 광대한 광야, 불뱀과 전갈이 있는 사망 골짜기를 통과하게 하신다.

일용할 양식, 곧 만나와 생수를 공급하시면서,

옷이 헤지지 않게 하시고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시면서 이 길을 걷게 하신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살아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고 말씀으로 살게 하시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함으로 모든 것을 더해 받는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맛보아 알고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게 하기 위해서다.

 

2.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2:13b)

 

우리는 마음에 있는 생각을 따라 행한다.

우리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은 대체로 세 가지이다.

내 생각, 사탄이 주는 생각,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이다.

 

대개 내 생각과 사탄이 주는 생각은 하나로 오버랩된다.

하나님이 소원으로 주시는 생각이 따로 있다.

세미한 음성이요 소원이기에 경건치 못한 우리는 분별하지 못할 때가 많다.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소원을 분별하려면 우리가 변화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2)

 

이 세상 이 세대를 본받으며 살 때에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과 주신 소원을 분별할 수 없다.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곧 사탄을 따르면 분별할 수 없다.

마음과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면, 마음에 주신 하나님의 소원과 뜻을 분별할 수 없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

성령으로 말씀으로 은혜로 우리의 속 마음이 변화를 받아야 한다.

말씀과 기도가 없으면 우리의 마음은 새로워지고 거룩해 질 수가 없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주신 소원을 분별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할 수 있다.

분별이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 기쁘신 뜻과 소원을 행할 수 있다.

 

우리의 마음 속은 성령의 소원과 육체의 소원과의 갈등과 싸움터이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을 수 있다.

육체의 소원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원, 곧 하나님의 소원은 육체를 거스른다.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살 것인지, 성령의 생각을 따라 살 것인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고 하셨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을 가져 오고,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을 가져 온다.

 

육신의 생각은 익숙하고 자동이고 유혹으로 다가와서 우리를 끌지만 결국은 사망의 열매를 맺는다.

영의 생각, 성령이 주시는 하나님의 소원은 선택하고 결단해야 하지만

결국은 생명과 평안의 열매를 안긴다.

육신에게 져서 육신의 생각대로 살면 반드시 죽는 결과를 가져 온다.

 

그러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게 된다는 것이 성경의 원리이다.

빠른 것 같지만 늦고 사망이 열리는 길이 있고,

늦는 것 같지만 바르고 확실하고 생명이 열리는 길이 있다. 평안의 길이 있다.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로 선물로 주신 믿음으로 구원 받은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 잠에서 깨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육신의 생각을 물리치고 성령의 생각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것이 사는 길이고 형통의 길이고 평안과 행복의 길이다.

 

육신의 생각은 옛 사람의 사고방식이요 가치관이다.

헌 옷 벗듯 옛 사람과 그 습관들을 벗어버려야 한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걸어야 할 진리의 길이다.

 

 

3.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2: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오셨는데도

반대하고 방해하고 원망과 시비를 일으켜서 결국에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유대인들이요 제도권 종교를 장악한 높은 사람들이었다.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보내셨을 때도 반대하고 죽인 사람들은

정치와 종교의 제도권을 장악한 높은 자들의 무리였다.

 

제도권을 장악하고 높다고 크다고 많다고 하나님의 뜻과 진리에 순종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길이 넓어 그리로 가는 자들이 많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들이 적다고 하셨다.

 

우리의 영적인 싸움은 내적으로는 마음 속에서의 갈등과 거스름의 싸움이 있다.

그리고 외적으로는 하나님의 뜻과 소원을 반대하면서 원망과 시비를 거는 자들과의 싸움이 있다.

자기 집안 식구가 원수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주셔서 행하는 일들을,

자기의 육신의 생각으로 시비를 걸거나 원망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더더군다나 반대하고 방해하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5:15)고 하신다.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5:26)고 하신다.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고(4:31) 하신다.

 

우리 안에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원망과 시비를 그치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 선하신 뜻, 온전하신 뜻을 분별해야 한다.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따라 우리도 힘을 다하여 수고해야 한다.

견실하고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우리가 되자.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