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스크랩] 10/15 주일설교,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 살전 1:3-4

강대식 2017. 10. 16. 09:15

2017-10-15 주일설교

본문: 살전 1:3-4

제목: 믿음의역사 사랑의수고 소망의인내

 

기독교의 특징이자 핵심 요소는 믿음, 소망, 사랑이라 할 수 있다.

고전 13, 사랑장은 이렇게 결론 짓는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13)

 

그리스도인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산다고도 할 수 있다.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신앙생활은 흔들리게 된다.

믿음은 역사해야 하고 사랑은 수고가 따르고 소망은 인내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출발은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살전1:4)

 

하나님의 사랑과 택하심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믿음, 소망, 사랑이 항상 있어야 하고,

이 셋이 서로 균형을 이루고,

행함으로 그것이 나타나고 증거가 되어야 할 것이다.

 

1. 믿음은 역사가 있어야 한다.

 

믿음의 역사와”(살전1:3)

 

역사는 일하는 것이고 행하는 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하였다.

믿음은 생각이나 관념이나 지적 동의가 아니고, 주님을 내 마음 중심에 영접하는 것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12-13)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은 그분을 영접하는 자들이다.

그분을 마음 중심에 주님으로 나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믿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낳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람의 뜻으로 사람의 혈통이나 육정으로 낳는 자녀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성령으로 거듭나서 낳는 자녀들이다.

교회만 다닌다고, 영접 기도 따라 했다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 전에 선택되고 예정된 자들만

하나님이 낳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권세가 있다. 왕권과 그 상속권의 권세이다.

 

하나님이 낳은 자녀들은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을 복을 이미 받았고,

그 손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고 영화에 이르도록 훈련과 연단을 받으며 인도함을 받는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게 하시고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믿음을 가졌으니 그 믿음이 확실하다면,

그 믿음은 역사하는 것(work), 일하는 것, 행함이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믿는다고 하면서도 행함이 전혀 없어서 멸망 당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믿을 수 없다.

재물이라 할 때 하나님 아닌 세상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겸한다는 것은 마음이 둘로 갈라지는 것이고,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더 믿는다는 말일 뿐이다.

 

행함이 없는 역사함이 없는 믿음의 단적인 예가 그러하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처럼 믿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다.

입술로만 믿을 뿐 그 마음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것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이다.

 

마음이 사랑하고 탐하는 것, 탐심은 그래서 우상숭배라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제사는 잘 드리면서도 우상들을 더 믿고 섬겼다.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

 

선지자를 보내셔서 돌이킬려고 했지만 높은 권력자나 낮은 백성이나 선지자를 죽였다.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냈지만 그 아들까지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믿음의 역사가 아니라, 잘못된 믿음의 역사가 그러하였다.

 

바른 믿음의 역사는 사랑으로 나타난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5:6)

 

정말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를 나타낸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 같이 사랑하는 역사로 나타난다.

완전하지는 못할지라도 하나님을 중심으로 믿으면, 하나님과 이웃을 향해 사랑으로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

 

믿음의 역사는,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확신의 믿음으로 나타난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니라”(8:38-39)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35)

욥은 하루 아침에 십남매를 잃고 가진 재산을 다 잃었지만,

입술로 범죄하지 않는 믿음의 역사를 보여 주었다.

그의 아내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하면서 불신의 역사를 보여 주었다.

 

불신의 역사는 원망과 불평으로 나타나고 믿음의 역사는 견고한 믿음과 확신의 고백으로 나타난다.

열 두 두령들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서 돌아왔을 때,

열 한명의 두령들은 견고한 성과 거인들의 체구를 보고 스스로를 메뚜기로 여겼다.

그 말을 들은 온 회중이 소리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통곡하고서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였다.

한 두령 갈렙만이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하였다.

불신의 역사와 믿음의 역사가 극명하게 갈라지는 것을 본다.

 

우리 주님이 오셔서 제자들을 책망하는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믿음의 작은 자들아였다.

믿음이 작으니 믿음의 역사를 나타낼 수가 없는 것이다.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니라”(17:20)

 

왜 믿음이 작고 커지지 않나요?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나는데,

말씀을 듣지 않고 말씀을 가까이하지 않으니 믿음이 작고 자라지 못하는 것이다.

 

믿음의 역사를 위해, 믿음의 선진들, 아브라함, 요셉, 모세, 다윗, 욥의 믿음을 보고 본 받아야 한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믿음을 보고, 기독교 역사에서 기록된 신앙의 위인들을 보고 본 받아야 한다.

믿음으로 사는 의인들의 믿음 생활과 헌신을 보고 믿음의 역사를 본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함으로 모든 것을 더해 받는 체험을 하는 것이 믿음의 역사이다.

풍부에도 처할 줄 알고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는 것이 믿음의 역사이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을 믿는 것이 믿음의 역사이다.

 

2. 사랑은 수고가 있어야 한다.

 

사랑의 수고

말로만이 아니고 실제로 누구를 사랑할려면, 수고와 희생과 헌신이 따라야 함을 말한다.

주를 사랑하면 주의 일에 힘쓰는 수고와 헌신이 있어야 한다.

배우자를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면 땀흘리며 수고와 희생을 아끼지 않는 법이다.

 

믿음도 사랑으로 역사하지 않으면 그 믿음은 실체가 없는 것과 같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수고를 힘써 하게 된다.

누구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는 그를 믿는 믿음과 비례한다.

 

배우자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몸 수고가 따르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공허한 것이다.

엄마들이 아기들을 사랑하니까 몸을 아끼지 않고 진자리 마른자리 온통 헌신하는 것을 본다.

그러나 사랑도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진리와 함께 하는 사랑이어야 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4-7)

 

우리의 사랑의 수고가 어떠한지 이 진리의 말씀에 비추어 점검해 보자.

상대방에 대하여 오래 참아주는지 온유한지, 자주 성내지는 않는지,

자기 유익만을 구하고 자기 중심의 사랑은 아닌지, 돌아보자.

 

사랑은 또한 자랑하지도 교만하지도 않아야 하고 무례히 행하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고 견디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사랑에 부족한 것 과한 것 점검하고 진정한 사랑의 수고에 힘쓰도록 하자.

 

사랑 안에 믿음과 소망이 다 들어가 있는 것을 본다.

믿음과 소망 없이 진정한 사랑이 불가능하고,

사랑 없이는 믿음과 소망 또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3. 소망은 인내가 있어야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살전1:3)

 

낙심하거나 불안해 하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하신다.

그가 나타나 도우실 날이 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이시고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시기도 한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62:5)

재물과 권력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한다(딤전6:17).

 

우리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시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5:13)

 

소망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충만하게 하심을 기억하자.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심을 믿고 구하자.

하나님은 우리가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소망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미래의 약속이다.

소망은 숙명적으로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

현재의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으로 바라보고 오늘 즐거워할 수 있게 한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소망을 이해할 수가 없다.

더더군다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종말의 소망을 이해할 수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이해할 수가 없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붙들고 잘 인내하고 있는 것을 본다.

바울은 그들이 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 받는 자가 되었다고.

또한 그들이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고 칭찬하고 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은 세상이 끝나는 날이고 심판의 날이고 영원 세상이 열리는 날이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다 이루어졌고,

우리에게 소망으로 주신 남은 약속들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다 이루어진다.

 

소망이 있으면 소망을 붙잡았으면 기다릴 줄 알고 인내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 기업으로 받는 유일한 방법이 그것이다.

믿지 않는 자들은 이해할 수도 없고 미련하게 보이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소망이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고난과 환난 가운데서도 소망을 믿음으로 붙들고 있기에

고난 중에도 그 영광의 소망을 바라보고 즐거워할 수가 있는 것이다.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상속자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상속자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을려면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한다.

그렇지만 그 고난은 우리가 받을 영광과 비교할 수가 없다.

 

우리가 잠시 받는 고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하신다.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으로 굳게 붙들고 이루어질 때까지 고난을 오래 참으며 기다리자.

기쁨과 평강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을 넘치게 하시는 소망의 하나님을 믿고 인내하자.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는 야고보 사도의 말씀을 기억하자.

그것이 또한 우리를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는 것임을 생각하자.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풍성하게 살자.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임을 모든 사람이 인정하게 될 것이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