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10/29 주일설교,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딤후 1:13-14
2017-10-29 주일설교
본문: 딤후 1:13-14
제목: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1. 사도에게 들은 바른 말을 본받아 지켜야 한다.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들은 바 바른 말"은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이다.
사도에게 ‘듣지 않은’ ‘바르지 않는 말’을 전하는 자들이 항상 있어 왔다.
바울 당시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한다고 하였다.
그는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다고 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다고 1절에서 말씀하고 있다.
전에는 그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다.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여서,
나를 능하게 하시고 나를 충성되이 여겨서, 직분을 맡기셨다고 했다.
내게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셨다.
우리의 부르심도 하나님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신 것이다.
이 사실을 믿고 확신한다면, 이 땅에 살면서 두려울 것도 없고, 염려할 것도 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고,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라고 하신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그분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그분 안에 있다면,
우리 안에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 와 있음을 믿고 살아야 한다.
능력과 사랑과 절제로, 말씀을 따라 말씀대로 살 수 있고, 그렇게 살기로 작정해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기가 복음을 위해 감옥에 갇힌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한다.
주님은 오셔서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셨다.
바울은 자기가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자기가 믿는 자를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우리도 고난 받을 때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고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께 의탁한 것을 마지막 날까지 주님이 능히 지키실 것을 확신해야 한다.
환난이나 곤고도, 박해나 기근도 적신도, 위험이나 칼도, 사망이나 생명도,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확신해야 한다.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은 바울이 자기 뜻대로 지어낸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계시를 받아 전한 것이다.
그 말씀대로 사는 본을 보이며 전하였다.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라고 한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는 것처럼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셨다.
우리의 믿음은 사도와 선지자의 터 위에 서야 한다.
그것이 곧 신구약 성경이고, 그 말씀을 순전함으로 듣고 해석하고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전하고 듣고 살아야 한다.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믿음의 선진들의, 믿음을 본받아 지키고 살아야 한다.
세상 지혜와 철학들이, 시대사상과 가치관들이 섞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성령의 새롭게 하심과 위로부터 오는 지혜로 분별력을 키워야 한다.
교회라는 탈을 쓰고 목사라는 탈을 쓰고 성도라는 탈을 쓰고 혼잡한 말씀들이 난무하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순전한 말씀들은 찾기가 드물게 되었다.
우리가 진리보다 거짓 것을 더 좋아하니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보내 심판하시는 것이다.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고,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과 기근을 하나님이 심판으로 이 땅에 보내신 것이다.
우리 안에 양떼들이 차고 넘치지만 미혹의 영과 귀신의 가르침으로 배를 불리고 있다.
"누가 충성되고 지혜 있는 자가 되어, 신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눅12:42).
구약 이스라엘도, 신약 교회도, 항상 거짓 양식을 먹고, 암흑시대를 만들어 왔다.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인, 주의 순전한 말씀이 없으니, 어둠을 양산하고 사망을 낳지요.
사도에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있는지, 아닌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길은 멸망으로 치닫는 길이 되고 만다.
하나님의 은총과 긍휼하심은 항상 공의와 정의와 함께 하심을 알아야 한다.
공의와 정의 즉 거룩하심이 없는 은총과 긍휼은 사탄의 미혹일 뿐이다.
하나님의 사랑만 알고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를 모르는 현대 교회는
이 땅에서 무섭고 놀라운 일들을 벌리고 있다.
하나님의 마지막은 소멸하는 불이심을 마지막 날에 가서야 알게 될 것이다.
양의 옷을 입고 노략질하는 이리들의 정체가 드러날 때는 이미 늦는다.
지금 여기서 열매를 보고 분별하여 단호하게 끊고 생명 길로 가야 한다.
‘사도에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도록’ 하자.
말씀을 읽고 듣고 사랑하고 공부하고 연구하자.
경건 서적을 틈틈이 읽으며 성경의 맛을 알고 그 저자들의 믿음과 삶을 본받자.
거기에만 오직 생명 길과 축복과 영광이 있음을 확신하자.
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지켜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사도에게 들은 바, 성경에 기록된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려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지켜야 한다.
바른 말은 알면서도, 주장은 하면서도, 다른 짓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 왔다.
입으로 말한 것과 손으로 행하는 것이 다른 것이다.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면서도 속에는 탐욕과 방탕이 그대로 있는 바리새인들이다.
자신의 마음 상태는 정직하게 보지 않으면서 바른 말로 남들만 정죄한다.
주님은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뺄려고 하기 전에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라고 하신다.
자신들이 교리적으로 바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혼에 흐르고 있는 은밀한 죄, 곧 자신의 의를 의지하고 있는 죄를 식별하지 못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바른 말을 지켜 행해야 한다.
내 안에 있는 믿음은 자기 확신일 뿐이고, 자기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지 않는다.
예수 안에 있는 믿음만이 사랑으로 역사한다.
사람들이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불평할 때
그 불평은 하나님의 섭리에 도전하여 비난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호소하면서도 자신들을 더 많이 의지하고 있다.
그들은 고난 받을 때 화를 내고 축복을 받을 때 경멸한다.
한 가지 순종하고서는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더욱 담대하게 허영과 죄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유대인들은 박하와 회향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다.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 것과 같다.
내가 이웃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내 믿음에 고장이 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이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라면, 그분의 온유하고 겸손함을 닮아가야 한다.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로 살기를 힘써야 한다.
우리의 의로움으로는 남을 정죄할 뿐 결코 남을 변화시키거나 감동을 줄 수 없다.
우리의 의로운 판단들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 반발과 적대감만을 낳게 된다.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 살 때만이 감동을 주고 변화를 이끌 수 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했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다고 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만이 이 사랑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예수 안에 있는 믿음만이 바른 믿음이고, 그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한다.
자기 의로움만을 믿고 주장하는 믿음은 사랑에 인색하고 정죄하기만 바쁜다.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고 하신다.
세상 유행가들은 온통 사랑 타령으로 물들어 있지만,
정작 사랑에는 인색하고 자기식의 사랑만 구가하다 다툼과 반목으로 끝나고 만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변화되어야 참 사랑을 할 수 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사도에게 들은 바 바른 말씀을 본받으며 지키도록 하자.
그것만이 우리 안에 관계 속에 천국을 이룰 수 있음을 믿자.
3. 우리 안에 있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것을 지켜야 한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그리스도인의 특권은 하나님의 성령이 항상 그의 안에 계신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녔어도 성령이 없으면 그는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천국을 볼 수 있고 갈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리스도도 그 안에 거할 수 있다.
성령이 계신지는 그의 입이 아니라 그가 맺는 열매를 통해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은 잘 먹고 잘 산다고 임하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열매를 맺을 때, 천국을 살고 천국에 가게 된다.
사랑과 화평과 오래 참음,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을 때,
그는 천국을 살고 있는 것이고, 천국에 가서 영생을 누릴 수 있다.
사도에게 들은 바 바른 말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지킬 수 있는 것도,
우리 안에 계셔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도움이 없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이 함께 가듯이,
성령과 말씀도 항상 함께 하고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성령으로 치우치면 신비주의에 빠지고, 말씀에만 치우치면 지성주의에 빠지게 된다.
성경으로 말씀을 구하고, 기도로 성령을 구해야 한다.
손에 있고, 안에 계시지만, 하나님은 구하고 의지하라고 하신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고 힘입고 그 역사를 따라 나도 힘을 다해 수고하라고 하신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을 때 사도의 바른 말을 아름다운 것으로 지킬 수 있다.
우리는 성령을 무시하고 근심시키며 우리 육신의 능력과 의로움으로 살려고 하기가 쉽다.
우리는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구할 때, 바른 말씀을 본받아 지킬 수 있고,
안에 계신 성령을 구할 때,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좋은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사도가 전하고 기록한 하나님의 바른 말씀이 있어야 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지킬 때,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