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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로이드 존스, 산상 설교,(상권), 17장 그리스도와 구약 성경 (김영희강의안)

강대식 2017. 11. 6. 07:52

17 장 그리스도와 구약성경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5:17-18)

 

지금까지 그리스도인의 성격과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상기하게 되었고, 우리의 삶으로 이 본질적인 성격을 나타내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늘나라 시민이다. 그러므로 하늘나라 시민의 특징을 나타내야 한다. 그것은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며,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 일이 어떻게 행해져야 하는가? 한마디로 의를 살아야 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 산상설교의 나머지 주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할 의의 삶을 사는 것에 대한 실례이다. 714절까지 이 주제가 다양하게 해석되고 전개 된다.

 

- 우리가 나타내야 할 이 의와 의의 성격은 어떤 것인가? -

17-20절은 이 주제에 대한 서론으로서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특색이 되어야 할 의의 문제와 의로운 삶을 도입하고 있다. 주님은 주제를 설명하고 해석하기 전에 도입부분을 제시한다. 일반적인 원칙이다. 실제에서 잘못되는 사람들은 언제나 원칙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다. 우리는 전문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전문가는 세부사항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원칙을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오늘의 삶의 장애와 와해는 대부분 어떤 기본원칙들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에 있다. 모든 사람이 경건한 생활을 한다면 회담이라든지 다양한 기관들이 만들어질 필요가 없을 것이다.

 

- 주님께서는 이 의의 문제를 다뤄나가심에 절대적인 명제 둘을 설정하시면서 진행하신다.

첫째로 17-18, 주님이 가르치는 것은 구약성경의 모든 가르침과 절대 일치하는 것이다.

둘째로 19-20,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충돌하며 철저하게 모순된다는 것이다.

이 두 원칙을 파악하지 못하면 4복음서에 기록된 주님의 기록들을 이해할 수 없다. 여기에는 주님이 감내해야했던 모든 괴로움과 주님이 늘 받으신 오해에 대한 해석이 있다.

우리 주님은 긍정적인 진술들만으로는 만족하시지 못하시고 부정적 진술도 하셨다. 주님께서는 교리를 진술하는 일로 만족하지 않으시고 다른 교리들을 비판하시기도 했다. 유감스럽게도 현대에는 부정적인 가르침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긍정적인 가르침을 가지자고 말하며 여러분은 여러분과 다른 견해를 비판하면 안 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가르침을 명백히 비판했다. 우리도 같은 일을 해야 할 것은 당연하다. 오늘날은 교회연합 문제를 논하며 지금은 교리상의 문제점들을 논할 때가 아니요, 모두 함께 뭉쳐야 한다는 논리가 대두되었다. 카톨릭과 희랍정교회가 기독교인으로 불리운다는 사실이, 우리가 그들의 부패성과 오류를 들추어내지 말아야 할 이유는 안 되는 것이다.

 

- 주님은 어째서 이렇게 하셨는가? 주님은 어째서 이 도입부분을 산상설교의 세밀한 부분에까지 적용하시는가?

주님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하나의 큰 문제거리가 되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분은 통상적인 경로를 따라 선생의 지위에 오르시지 않았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가르침을 일부러 비판했다. 그들은 지도자요 종교 문제의 교사들로 인정받던 그 나라의 출중한 인물들이었다. 거기에 더하여 모든 시간을 율법을 해석하는 일에 쓰지도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교리를 설교했는데 탕자와 같은 비유들을 소개하였다. 더 고약한 것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어우러져 함께 앉아 먹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모든 규칙과 규약을 준수하는 것 같지 않았을 뿐더러 그것들을 일부러 깨뜨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그는 그들의 공인된 교훈을 비판했으며 실제행동에서도 비판했다는 것이다. ‘이 나사렛 예수는 성경을 믿지 않는가? 그는 성경을 없애려 왔는가? 그의 가르침은 율법과 선지자들을 탄핵하는가?’ 이 질문은 그가 가르친 교훈 때문에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던 질문들로서 주님은 이것을 알고 계셨다. 주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백성들의 비평으로 당황하지 않도록 이 두 기본 명제를 설정하여 전체 배경을 이해해 주기를 바라며 그들의 마음과 전망에 대한 대비를 미리 해주셨다.

 

이 질문은 시대에 뒤진 케케묵은 질문이 아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문제가 되고 있다. 율법에 대한 주님의 관계 때문에 구원의 길에 넘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므로 이 문제가 사활을 거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두 가지 난제가 제기 된다.

첫 번째로 주님이 하신 모든 것은 율법의 교훈을 계속하는 것이었다고 믿는 학파로, 4복음서와 신약의 서신들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복음서들은 고대 율법에 대한 해석 이외 아무것도 아니며, 나사렛 예수는 율법 선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위 기독교의 진짜 창시자는 사도 바울이다. 칭의론이나 성화론과 같은 교리들은 바울의 신학과 함께 사도 바울의 작품이다. 예수의 단순한 복음이 이 사람에 의해 변화된 것인데 기독교는 예수의 종교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첫 번째와 정 반대로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전히 폐하셨으며 그 대신 은혜를 도입하셨다는 것이다. 그들은 성경을 인용하여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다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율법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율법을 입 밖에 내어도 안 된다고 말한다.

 

- 우리 주님은 17-18절의 진술에서 이 두 난제를 동시에 대답하셨다.

율법과 선지자들은 구약전체이다.

율법이란 도덕법, 민법, 의식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덕법은 10계명과 기타 중요한 도덕 원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재판법도 있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국가에 주신 법률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법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행동을 규제하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을 지시한 것이다. 성전과 기타 장소에서 예배와 번제물과 모든 의식에 관한 의식법이 있었다. 우리 주님이 말씀하신 율법이란 말씀이 이상의 모든 것을 포함하므로 율법은 직접 삶과 행위와 품행에 대하여 교훈하는 모든 것을 가리켜 언급하신 것이다. 동시에 율법은 구약에서 여러 가지 모형과 제물 기타 세밀한 모든 것으로 가르치신 것을 포함한다. 이것들은 모두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단번에 온전히 성취하신 것의 모형이요, 예언이었다. 그러므로 율법은 율법 전체로 취급되어야 한다.

 

선지자 구약성경의 선지서를 의미하는 것으로 선지자들도 율법을 가르쳤으며 율법을 적용하고 해석했다. 그들은 백성에게로 가서 그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으며 그들은 주로 백성들로 하여금 율법을 올바로 이해하는 길로 이끌었다. 여기에 더하여 그들은 메시야의 도래를 예언하였다. 그들은 숨은 것을 드러내어 말하는 사람들이었으며 예언자들이었다.

 

완전케 완전케한다종결시킨다는 뜻이 아니며, 이미 시작된 것에 무언가를 추가시킴을 의미하지 않는다. 완전케한다는 말의 참 뜻은 그것을 완전히 순종한다는 의미이다. 문자 그대로 율법과 선지자들이 말하고 진술한 모든 것을 수행한다는 뜻이다.

 

- 우리 주님이 실제로 가르치고 계시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의 법은 절대적이며 완전무결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은 완전무결하며 영원하다. 하나님의 법의 요구는 영원하며 천지가 없어지기까지폐기되거나 감소될 수 없다.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신다. 일획은 히브리어에서 가장 작은 글자이며 일점은 히브리어 글자에서 가장 작은 점이다. 세미한 항목이 완전무결하게 전부 성취되기까지 천지는 없어지지 아니할 것이다. 이것은 선언이요, 이미 선언된 것 중 가장 중대하고 중요한 선언 중 하나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지속되며 효력을 발생할 것이다. 주님은 이것을 왜냐하면이란 말로 강조하시고 이 중요성에 더하여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부언하셨다. 주께서 소유하고 계신 모든 권위로 이 진술에 인을 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설정하신 율법, 곧 율법과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이 완전무결한 성취가 실현되기까지 하나님의 율법은 지속되며 효력을 발생할 것이다.

 

둘째, 주님은 율법과 선지자의 가르침을 파괴하거나 미세한 정도나마 수정하러 오시지 않았다. 모든 율법과 선지자는 주를 가리키며 가장 작은 항목에 이르기까지 그 안에서 성취되리라는 것이다. 주님은 율법과 선지자의 성취이신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 두 절에서 구약성경 전체를 확인하고 계시는 것이다. 주님은 권위의 도장을, 이를테면 재가를 구약성경 전체에 찍으셨다. 주님은 구약성경의 모든 부분을 인용하셨다.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어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었고 그것은 성경이었다.

사람들은 초대 교회가 어째서 구약성경을 신약성경과 결합시키기로 결정했는가를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은 복음서를 읽는 것을 좋아하나 구약성경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초대 교회는 이 책은 저 책에 빛을 던지어 해명한다고 보았으며, 각 책은 다른 책의 빛에 비추어서만 이해할 수 있으며, 두 성경은 항상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에 잠재해 있고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에 개방되어 있는것이다.(성 어거스틴)

 

무엇보다도 여기에 하나님의 아들의 선언이 있다. 우리가 주를 참으로 따르며 주를 믿는다면 우리도 이와 같이 구약성경의 전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최고의 권위로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는가를 매우 조심해야 한다.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10:35)

구약성경은 천지가 존속하는 한 미세한 항목에 이르기까지 성취되고 존속되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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