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11/12 주일설교,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 히 6:11-12
2017-11-12 주일설교
본문: 히 6:11-12
제목: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우리의 소망은 끝까지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
이미 구원받았지만,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야 할 구원’이 소망으로 있다.
이 땅에서는 가나안에 이르고, 죽어서는 천국에 이르러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이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받은 고난을 마치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그의 자녀가 되어 새 예루살렘 성에서 왕 노릇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히6:13-15)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과 번성은 곧 우리가 받을 복과 번성이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3:14)
하나님이 친히 맹세하고 약속하신 아브라함의 복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방인인 내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이 함께, 믿는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고 계신 것이다.
이 약속을 우리의 소망으로 끝까지 풍성함으로 붙잡으면 의심이나 불안을 떨쳐버릴 수 있다.
이 소망을 내 영혼의 튼튼하고 견고한 닻으로 삼아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운행되고 있는 내 인생의 항해를 잘 노저어 갈 수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면서 고난을 인내하고 연단을 받으며 소망에 이르러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길이다.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할 삶이다.
세상에 있는 것들과 사람들 때문에 흔들리거나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주님이 허락하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들을 잘 통과하면 주와 함께 왕 노릇할 것이다.
복 주고 복 주며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는 영광과 상속이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이 친히 자신을 가리켜 맹세하신 것이다.
1. 게으르지 아니하고 부지런해야 한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 게으르지 아니하고”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게으름을 떨쳐 버려야 한다.
우리의 타고난 본성에는 내버려두면 한없이 게을러지는 요소가 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했다.
우리의 생활 습관 가운데 우리도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킬 부분들이 있다.
스마트 폰이나 TV 보는 시간들을 통제하지 않으면 마냥 붙들리는 것을 경험한다.
‘때가 악하니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하신다.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해야 한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
우리 주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선한 뜻을 안다면 게을러질 수 없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한다고 한다.
믿음은 우리가 부지런히 달려야 할 경주이기도 하다.
푯대를 향하여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는 경주이다.
상을 받을려면 부지런히 달음질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또한 메달을 딸려면 다른 모든 일들은 절제해야 하구요.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라고 하는 것은 변함없이 부지런하라는 것이다.
중도에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않아야 때가 이르매 거둘 수 있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 속하여 있으니 우리는 결실을 이루게 하실 그때까지 부지런하자.
부지런히 잘 달려갈려면 몸을 가볍게 해야 한다.
모든 무거운 짐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려야 한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고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한날 괴로움도 그 날로 족한 법이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인생이다.
이 땅에 보물을 쌓는데 부지런하지 말고 하늘에 보물을 쌓는데 부지런해야 한다.
2. 믿음과 오래 참음이 있어야 한다.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은 선택 과목이 아니라 필수 과목이다.
광야 생활의 고난을 통하여 애굽 시절에 몸에 벤 습관들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믿기 전 옛 사람의 사고방식과 가치관들을 씻어내고 새 사람의 그것으로 입어야 하기 때문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8:2-3)
여러분의 나이만큼 여러분에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하신다.
광야 생활, 고난의 이유와 목적이 분명히 나와 있다.
고난의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지 세상의 명령을 지키는지 시험하는 데 있다.
고난의 목적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얼굴을 못들 정도로 낮추기도 하시고, 끼니를 떼울 쌀도 없고, 어디 갈 차비도 없게 하신다.
이유와 목적이 뭐냐?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을 배우게 할려는 것이다.
떡으로만 살려는 사람, 곧 재물과 권력과 명예만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들은,
지상에 쌓아놓은 그 많은 재물과 그 높은 바벨탑들이 좀과 동록이 해하고,
도둑이 구멍을 뚫어 다 없어지는 것을 기어코는 경험하게 될 것이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이 산다는 것을 깨닫게 된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든지 자족하는 법을 배우고, 풍부에도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고,
하나님이 능력 주셔서 쓰실 날을 기대하고, 최선을 다해 준비할 것이다.
고난은 금강석을 용광로에 넣어 순금을 뽑아내는 하나님의 작업이다.
욥의 고백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
고난은 믿음으로 오래 참고 견뎌야 순금을 산출할 수 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하신다.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순금이 된다고 한다.
믿음이 없으면 오래 참을 수 없다.
우리의 소망은 믿음이 있기에 가질 수 있는 소망이다.
그 믿음과 소망이 우리를 오래 참을 수 있게 해준다.
출애굽 1세대들이 광야에서 거의 다 멸망한 것은 믿지 않고 오래 참을 줄 몰라서였다.
그 많은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고서도 하나님이 고난만 주면,
원망하고 불평하고 대적하였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시37:1-4)
요즘 언론 매체들을 열기만 하면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하고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하고 만
사람들의 슬프고 안타까운 기사들을 보고 있다.
풀과 같이 푸른 채소 같이 푸르고 권세가 대단하고 무성했는데, 쇠잔하고 베임을 당하였다.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자.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한다고 하신다.
여호와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으며 묵묵히 기다리는 자들이 땅을 차지하고 기업을 받게 된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가장 많이 받은 책망이 무엇인가?
“믿음이 작은 자들아” 이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무엇을 믿는다 말인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 같이 소망을 실상으로 믿고 오래 참음으로 영광에 이르렀다.
그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 우리 믿음의 모델이요, 삶의 본보기이다.
아브라함의 믿음과 오래 참음이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하였다.
요셉과 다윗의 어린 시절의 믿음과 오래 참음이 30세에 총리와 왕이 되게 하였다.
모세의 가시떨기나무 시절 40년의 믿음과 오래 참음이 40년 위대한 역사의 주인공이 되게 하였다.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잠잠히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내 영혼이 낙심하고 불안해 할 때마다 쳐서 복종시켜야 한다.
인내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을 때 하나님은 능력부어 쓰심을 믿으라.
3.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아야 한다.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으로 믿고 오래 참고 부지런하면 자기 기업으로 받는 날이 온다.
이 땅에서 기업으로 받는 부분도 있고, 천국에서 기업으로 받는 부분도 있다.
구약 성경은 받는 기업을 다 현세의 축복과 영광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서 우리의 기업은 현세를 포함한 영원한 복락과 영광으로 약속된다.
다윗의 영원한 왕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권을 상징한 것이었다.
에베소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음을 선포하고 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아들로 택함으로써 상속된 모든 신령한 복이다.
하나님은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이 땅에서 우리를 연단하신다.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이다.
고난 없는 영광, 십자가 없는 형통을 주장하는 ‘형통의 신학’에 속아 넘어가지 마시기 바란다.
믿기만 하면 다 이루어진다는 ‘믿음의 신학’에 넘어가지 마시기 바란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다고 하신다.
요셉에게 약속을 기업으로 주시기 전에 통과하게 한 고난은 13년간 노예생활과 죄수생활이었다.
다윗에게 통과하게 한 고난은 10여년간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였다.
모세에게 통과하게 한 고난은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의 처가살이 목동생활이었다.
아브라함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가나안으로 갔지만,
흉년으로 인한 애굽으로의 피난, 아들을 약속하셨지만 25년의 고난 끝에 기업으로 주어졌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오래 참을 수 있었고,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를 수 있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롬15:4)
지금의 내 인생, 앞으로의 내 인생이 염려가 되고 궁금하다면,
내가 찾아 갈 곳은 다른 곳이 아니라, 오직 하나, 성경이다.
전에 기록된 것을 통하여 교훈을 받고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질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은 요셉과 다윗에게 비추어 보고,
나이 드신 분들은 아브라함과 모세를 비추어보면 내가 어디쯤 와 있고,
어떻게 해야 하고,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의 인생 행로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것은,
그들의 과정과 결말에 나의 인생을 대입해서 방정식의 답을 얻으라는 것이다.
그들을 통해 교훈이 나올 것이고, 인내를 배우게 될 것이고, 위로를 받고 소망을 갖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약속하신 기업을 소망으로 끝까지 풍성하게 붙듭시다.
약속을 기업으로 받은 믿음의 선진들을 본받읍시다.
게으르지 말고 변함없는 부지런함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달려 갑시다.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고난의 시절을 잘 통과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