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1/21 주일설교,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마 21:12-13
2018-01-21 주일설교
본문: 마 21:12-13
제목: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예수님이 성전에 가셔서 성전을 정화하는 작업을 하신 것을
네 복음서가 다 기록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성전 안에서 거리낌 없이 제사드릴 제물을 팔고 돈을 바꾸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타락하여 성전에 대한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돈을 벌기 위해 성전을 장사하는 집으로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
윗물이 맑지를 못하니 아랫물까지 혼탁해지고 말았다.
중세 카톨릭은 타락하여 돈을 만들려고 면죄부를 팔고 연옥까지 만들었다.
연보함에 동전이 떨어지는 순간 연옥의 영혼이 튀어올라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였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이에 대한 정죄의 글을 게시판에 올림으로 시작되었다.
개신교 5백년에 우리 현대교회의 모습은 어떻다고 생각하는가?
주님의 성전 정화 작업이 필요 없을 만큼 아름다운 성전을 유지하고 있는가?
돈을 탐하는 도둑들과 강도들이 들끓는 집이 되지는 않았는가?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말씀을 청종해야 한다.
구약 이스라엘을 책망하는 말씀을 오늘 교회와 교인들을 책망하는 말씀으로 들어야 한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 멸망당한 일을 그대로 겪지 않을려면 말이다.
구약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 대한 경고를 오늘 목사와 신학자들에 대한 경고로 들어야 한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하신 말씀으로 들어야 한다.
이 땅에, 교회와 교인들에게, 무섭고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렘5:303-1)
여기서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오늘날 목사와 신학자들이지요.
목사들이 거짓을 설교하고 목사들이 권력을 쥐고 다스리고
교인들은 그것을 좋게 여기며 희희락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무섭고 놀라운 일이라고 하시는데,
무서워하지도 놀라지도 않고 있다.
마지막에는 무엇이 닥치겠는가? 그때는 어찌할 것인가?
1.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마21:12)
성전 안에 왜 장사꾼들이 들끓게 되었는가?
제사장들부터 돈을 탐하고 권력을 탐하여 타락했기 때문이다.
염불에는 맘이 없고 잿밥에만 맘이 있고, 제사보다 젯밥에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맡은 일에는 정성을 안 쏟고 잇속에만 매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교가 타락하면 일어나는 일은 어느 종교나 대동소이하다.
사람의 타락한 본성이 원칙과 진리를 쫓지 않고 재물과 이익을 쫓는다.
배운 자나 덜 배운 자나 뱃속 채우는 데는 우열이 없고 차이가 없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크고 첫째 되고 둘째 되는 계명이고 모든 선지자와 율법의 강령이다.
돈을 사랑하고 재물을 사랑하라고 하지 않는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은 해로운 욕심에 떨어진다.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한다.(딤전6:9-10)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하신다.
돈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찌른다.
이런 사람들이 쇠고랑 차고 감옥에 들어가고 패가망신으로 끝을 맞이한다.
재물과 하나님은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다.
하나를 중히 여기면서 하나는 경히 여기기 때문이다.
하나는 사랑하고 하나는 미워하기 때문이다.
장사하는 집을 만드는 자들이 도둑들이다.
도둑이 오는 것은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이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 삯군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요10:10,12)
주님이 오신 것인지 도둑이 온 것인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세상의 영에게 사로잡히면 도둑을 주님으로 보고 진짜 주님은 알아보질 못한다.
주님을 만나야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한 축복으로 채우게 된다.
우리 각자가 또한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내 속에 들어와 있는 도둑부터 내쫓아야 한다.
돈을 탐하고 정욕을 탐하고 세상을 탐하는 마음부터 사로잡아서 주님께 복종시켜야 한다.
내 마음을 주님이 다스리고 주의 말씀이 다스리고 주의 은혜가 다스리게 해야 한다.
2. 내 집으로 강도의 소굴을 만들지 말라.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마21:13)
어떤 도둑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도둑은 도둑질만 하지, 강도나 강간은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이다.
도둑이 발전해서 칼이나 무기를 들고 도둑질하는 것이 강도이다.
형법에서도 도둑보다 강도에게 무거운 형벌을 내린다.
도둑이 도둑의 원칙을 지킨다는 말은 헛소리이고 도둑질을 못고치면 강도가 되게 마련이다.
도둑이 엎그레이드 되면 강도가 된다.
우리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은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자들이었다.
장로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이었다.
바리새인들이고 사두개인들이었다.
제도권 종교를 장악하고 있는 우두머리들이었다.
성전을 장사하는 집으로,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자들이 이런 자들이다.
지금도 사회적 지탄이 되고 있는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 무리에 속한 자들이다.
지금도 제도권 종교를 장악하고 있는 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교회를 장사하는 집,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있다.
이것을 좋게 여기는 교인들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무섭고 놀라운 일이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다.
목사들이 거짓을 설교하며, 목사들이 권력을 쥐고 흔드는 데,
교인들은 그것을 좋게 여기며 평안하다 평안하다 하고 있다.
그들의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하신다.
“거짓 선지자들(목사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15-20)
이 거짓 목사들이 멸망으로 인도하는 자들이다. 도둑들이고 강도들이다.
큰 문, 넓은 길로, 많은 사람들을 인도하여 멸망에 이르게 하는 자들이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다고 하셨다.
문이 크고 길이 넓어, 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그리로 몰려가서 멸망을 당할 것인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찾는 이도 적은 협착한 생명의 길로 갈 것인가?
복과 저주를 우리 앞에 두셨으니 선택을 잘해야 한다.
그들의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고 주님 말씀하신다.
그런데도 열매는 보지 않고, 크고 웅장한 건물, 많은 숫자, 화려한 의식들, 큰 교단만을 보고,
몰려들 가고 있다. 노략질하는 이리들의 밥이 되어 포로가 되어 멸망의 길로 가고 있다.
3.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게 하라.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마21:13)
교회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집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어야 한다.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한다.
기도는 말씀이 있어야 하고 성령의 생각으로 해야 한다.
내 욕심을 기도제목으로 늘어놓는 것이 기도가 아니다.
그 또한 주님의 마음을 도둑질하고 주님께 강도짓을 하는 것이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셨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가르치고 강제하는 자들이었지만
그 마음 속에는 탐욕과 방탕이, 위선과 죄악이 가득차 있었다.
겉으로는 옳게 보이는 자들이었지만, 평토장한 무덤과 같았다.
기도는 영의 생각으로 해야 받으신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을 가져오고, 영의 생각만이 생명과 평안을 가져온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하신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신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니라”(골3:5)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불경건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고 있다.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의 끝은 멸망일 뿐이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을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3:18-19)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여러 사람들이 누구냐? 교인들이다.
욕망의 뱃속에 있는 것이 그들의 신이고, 그 영광은 부끄러운 것이고,
오직 땅의 일만을 생각하고 구하는 자들이 바로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이다.
오직 땅의 것만을 생각하고 구하는 자들은 땅의 감옥에 갇히고 만다.
하늘의 것을 구해야 땅의 것들도 채워지고 더해진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며 살 때 모든 것이 더해지는 것을 경험한다.
땅의 계산법으로, 땅의 지혜로, 백날 살아봐야 더욱 어려워지고 파멸에 이를 뿐이다.
하늘의 계산법으로, 하늘의 지혜로, 살아야 하늘도 열리고 땅도 열매를 맺게 된다.
하늘은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구하느냐에 따라 응답을 한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8)
육체와 성령은 서로 거스르고 반대 된다.
성령으로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게 된다.
자기 육체를 위하여, 육신의 생각으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아무리 애쓰고 심어봐야,
결국은 그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만을 거두게 된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성경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성령으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하늘로부터 영생을 거두게 된다.
영생은 지금 이 땅에서부터 영원까지 거두는 모든 축복과 영광을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그분의 의를 위해서, 기도하고 구해야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
하나님의 일은 구하지 않고 자기의 일만을 구하니 원수들과 적들이 기승을 부린다.
하늘에 보물을 쌓아야 도둑이 구멍을 뚫지 않고 좀과 동록이 헤하질 못한다.
느혜미야 10장에 보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에서 돌아와서,
이제는 성전에 토지 소산의 맏물과 각종 과목의 첫 열매를 드리고
산물의 십일조를 드리며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 두지 아니하리라” 맹세하였다.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 두지 않는 것이 이 땅에서의 축복의 첫 걸음인 것을 깨닫기 바란다.
다들 내 집부터 빨랐기에, 쌓아논 재물을 불어버리고, 전대에 구멍이 뚫리고, 포로생활을 한다.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섬기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다.(롬15:27)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는 대상은 십일조와 예물로 내 집에 앙식이 있게 하는 자들이다.
풍성하고 영광스렵게 복을 부어주는 자들도 주의 일에 재물로 도운 자들이다.
심지도 않고 거둘려고 하는 것은 장사하는 집 강도의 소굴에서나 행해지는 일상이다.
교회가, 내 성전이, 장사하는 집, 강도의 소굴로 되지 않게 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특권이다.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고,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집이 되게 하자.
교회가 영의 생각으로 구하며 기도하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