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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로이드 존스, `산상 설교`, 하권, 1장 의로운 삶을 살며 (김영희강의안)

강대식 2018. 1. 25. 13:09

1 장   의로운 삶을 살며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6:1)

 

- 산상설교의 일반적인 분석은

첫째 대목(5:3-12) - 팔복을 포함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자세에 대한 서술.

둘째 대목(5:13-16) - 이 서술된 그리스도인이 실제로 세상에 대하여 나타내는 반응과 그에 대한 세상의 반응

셋째 대목(5:17-48) -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관계. 율법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이며 이것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거짓된 해석과 대조시킴. 격려와 함께 끝을 맺고 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 이제 새로운 대목으로 마태복음 6장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존전에서 살며, 하나님께 능동적으로 복종하며,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여 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게 된다. 6장에서 계속 강조되고 있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은 모든 행실을 하나님 존전에서 행한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인생이라 일컫는 순례길을 행함에서 그들의 아버지와 관계된 자녀들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 주고 있다.

첫째 면(1-18), 그리스도인의 삶의 종교적인 면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과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둘째 면(19-34),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을 통과해서 걸어가야 하게 되어 있다. ‘포학한 운명의 투석과 화살에 영향을 받기 쉬운 사람으로서, 음식과 음료와 의복과 거처에 대해 염려하는 사란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한 관계를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종교적인 면과 세속적인 면은, 사활적으로 중요한 문제로 이 두 가지 면에서 모두 교훈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난제로 가득하며, 함정과 올가미로 가득하다. 우리에게 성경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에서 기쁨과 행복의 경험을 상실한 사람을 보게 된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특성 중 한 가지 면이나 또는 다른 면을 등한히 했기 때문이다. 여기 주님의 가르침에는 이 두 가지 문제를 미세한 점까지 상세하게 다루고 계신다.

 

- 6장은 탐사성이 매우 강한 장이며 따라서 매우 고통스런 장이라고 할 수 있다. 6장은 우리를 시험하고 우리 앞에 거울을 들이대며, 피할 길을 허용하지 않는다. 6장 이상으로 겸손과 자기비하를 촉진시키도록 짜여진 장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 하리로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자기를 아는 일에 열심이어야 한다. 자연인은 자기 검토를 회피한다. 그것은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지식 중 가장 고통스런 지식이 되기 때문이다. 거듭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이유는 자기의 진짜 모습을 바로 본 사람만이 그리스도께 달려가 자아의 흔적을 없애고 삶을 망쳐놓은 모든 것들을 깨끗이 제거할 수 있는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모색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5장에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가르침과 그리스도인의 삶을 지배하는 가르침을 비교 검토한 바 있다. 그 대목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지배하는 총서론을 말씀하셨으나, 여기서는 일반적인 교훈보다는 실제 생활에 더욱 강조점이 주어졌다.

 

- 1절은 2-18절까지의 서론이다. 첫 절에서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을 지배하는 일반원칙을 설정하시고 이 원칙의 세 가지 실례 즉 구제, 기도, 금식의 실례를 주신다. 이 세가지는 단지 실례에 지나지 않는다. 흠정역에는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구제를 행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로 되어 있다. 훌륭한 주석가들이 모두 구제보다는 로 해야 한다는 것에 일치하고 있다. 일반원칙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이다.

 

이것을 여러 개의 보조원칙의 형태로 고찰하면

첫째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미묘한 성격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항상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말씀과 상호 배타적인 두 가지를 동시에 취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는 모순이 없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행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이 그를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동시에 자기에게 주목을 끌기 위해 이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이 균형은 미묘한 것이므로 우리는 이 극단으로나 혹은 다른 극단으로 치달리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극단을 모두 피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삶은 미묘하고 민감한 삶이다. 하지만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균형을 유지할 수 있으며 좌로나 우로 치우치는 과오에서 해방을 받을 것이다.

 

둘째는, 궁극적인 선택은 항상 자아를 기쁘게 하는 것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중에서 양자택일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의 선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유일한 이유는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도 죄의 음흉한 성격이 나타나고 있다. 즉 인간은 천성적으로 하나님의 칭찬보다는 사람의 칭찬을 더 원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결국 이렇게 귀착이 된다. 우리는 자신을 기쁘게 하고 있거나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셋째는 이생에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와 하나님에 대한 관계를 자각하는 일이다 모든 실패의 원인은 이 점을 번번이 잊어버린다는 데 있다. 우리 생애의 최고의 목적은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만을 항상 그리고 매사에 기쁘시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주님의 온 생애는 하나님을 위하여 사셨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바쳐졌다. 주님은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시지 않으셨다. 주님은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고 나를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한다고 늘 말씀하셨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이 보시는 곳에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행동과 온갖 생각을 보신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내가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까 내가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거기에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 이 점을 기억한다면 우리의 위선과 아첨은 사라질 것이다. 자아냐, 하나님이냐의 이 궁극적 선택의 문제에서 하나님은 우리에 관한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숨겨질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 모두가 이것을 실천한다면 일대 혁명이 일어나고 부흥이 즉각 시작될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요, 이것이 성경을 설교하는 방법이다. 이것을 참으로 인식한 사람은 곧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로 도피해서 성령으로 충만케 해달라고 탄원하게 될 것이다.

 

넷째는 보상과 관련되어 있다.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주님은 하나님이 주시는 보상을 구하는 것이 아주 옳다는 점을 지적하고 계신다. 만일 여러분이 옳은 일을 한다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희 아버지가 갚으시리라이다. 보상은 옳으며 합법적인 갈망이며 거룩한 포부이다.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12:2)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더 좋아한 것은 상 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사람들은 멀리 있는 것들을 보았고 터가 있는 성을 바라고있었다.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우리의 갈망이 성결을 원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원하는 그러한 보상인 한에는 이것에 잘못된 것은 없다.

 

사람으로부터 보상을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로부터 보상이 없다. 이것은 절대적이며 무조건적인 진술이며 무서운 말씀이다. 만일 제가 복음을 설교할 때 사람들이 나의 설교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관심을 갖는다면 그것으로 내가 설교에서 받을 것은 다 받은 셈이 되며, 하나님으로부터는 아무 것도 받지 못할 것이다. 여러분이 전에 행한 선한 일을 모두 생각해 보라. 하나님으로부터 여러분에게 올 보상은 얼마나 되겠는가? 이것은 우리를 두렵게 한다.

 

-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2)

구제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 곧 돈과 시간과 기타 도움이 되는 모든 것으로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의미한다. 구제에 잘못된 것은 이것을 공포하는 것에 있다. 구제를 잘못하는 사람은 구제를 공포하여 사람의 주의를 끄는 사람이다. 공포하지 않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넌지시 말하는 방법은 공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희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3-4) 올바른 방법은 이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여러분이 하고 있는 것을 어떤 형태로든지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는 것이다. 또한 그것을 자신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여러분의 왼손은 여러분의 오른손이 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해야 한다. 은밀히 행한 후에 기록하거나 일기도 쓰지 말라. 행한 일들일랑 모두 잊어버려라.

 

이것을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 우리가 자신에 대해서는 생각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하나님을 사랑해야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이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원할진대 갈보리 언덕에서 죽으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분의 생애를 생각해 보라. 그 결과는 영광이다.

우리가 모든 일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장 미미한 행위까지 기억하신바 될 것이다. 주님은 장부들을 보관하고 계신다. 계산은 주님께 일임해야 한다. 주님은 너는 이것을 모두 은밀하게 했으나 나는 너를 공중 앞에서 보상하겠다. 그 때는 모든 사람의 비밀이 드러나겠고 큰 책이 펼쳐질 것이며 온 세계 앞에 최후의 선언이 있을 것이다. 너는 명예와 존귀와 영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저에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라고 말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우리 모두 눈을 들어 이 궁극적인 것을 바라보자. 우리는 항상 하나님 존전에, 하나님 앞에 있음을 기억하자.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 보자.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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