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5/20 주일설교,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벧후 1:10-11
2018-05-20 주일설교
본문: 벧후 1:10-11
제목: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그리스도인은 과거 현재 미래가 보장된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다.
과거의 택함을 보지 못하고, 미래의 영광을 붙들지 못하면, 현재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항상 기뻐하지 못하고,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에게 현재 주어진 상황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의 주권적인 권능과 공의로 세상을 통치하고 계시기에 우연은 없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우연이니 운이니 하는 것이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안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눅12:6-7)
참새 다섯 마리가 동전 두 닙에 팔리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가 되지 않는다.
성도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시고 계신다.
하나님이 모르는 채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우리가 두려워하고 염려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성도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하게 하라 하신다.
우리가 먼저 구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이다.
그러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영광 가운데 풍성하게 채우신다고 약속하고 계신다.
세상의 잣대로 또는 형편이나 상황의 좋고 나쁨으로 우리의 운명을 속단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현재는 과거로부터 왔고, 우리의 미래는 현재를 통하여 이루어져 갈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역사 안에서 이루어져 가고 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고, 만들어가고 계신다.
선한 일은 하나님의 법도대로 계명대로 사는 것이다.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하여 만들어가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 가신다.
내 육신의 정욕을 위해서, 내 야망을 위해서, 사는 자들은 고난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면서 성공과 행복과 번영을 바라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탓이다.
하나님께 선하지 않고 의롭지 못한 것은 반드시 댓가를 지불하고 망하게 되어 있다.
사필귀정이요, 숨은 것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수가 없다.
하나님은 드러나게 하시고 공의로 심판을 행하신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아버지의 징계로 채찍질하신다.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12:5-6,11)
징계의 고난이 올 때 낙심하지 말고 그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을 인정해야 한다.
징계를 받으면서 즐거울 수는 없다. 슬플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징계를 통해 연단을 받은 자들은 결국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고 축복을 이룬다.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게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약5:10-11)
하나님께 쓰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 같이 징계의 인내와 연단을 통과하였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여 연단을 이루고 선한 일에 크게 쓰임 받았다.
하나님의 나라에 쓰임 받을 때 내 나라 내 왕국도 참되게 세워질 수 있다.
1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벧후1:10)
부르심은 택하심에서 온다.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 전에 택하심 받았음을 굳게 하여야 한다.
그 특권과 축복을 확신하고 한 순간도 잊지 않아야 한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4-5)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영원한 신분이고 특권이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
택하심을 받은 자를, 예정하신 자를, 하나님은 때가 되면 부르신다.
은혜를 부어주시고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게 하신다.
죄사함과 의롭다 함을 받게 하신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니라“(요1:12)
믿는 것은 지적인 동의만이 아니라 그리스도 그분을 내 영혼 중심에 영접하는 것이다.
성령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하나님의 선물로 받은 믿음이 없이는,
결코 이루질 수 없는 초자연적 일이다.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영광을 아는 빛을 비춰주시지 않으면 이 믿음은 일어나지 않는다.
어둠에서 빛으로, 흑암의 나라에서 아들의 나라로 옮겨지는 것이 구원이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를 살리시는 것이 구원이다.
구원의 놀라운 역사가 거저 주시는 은혜로 선물로 받는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혈통이 좋다거나, 인간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
오직 하나님께 난 자들,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 전에 택함 받고 예정된 자들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고, 그냥 자녀만이 아니라 자녀의 권세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경험하지 못하고 교회만 왔다 갔다하며 구원을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택하신 자를 믿음으로 부르실 때 성령으로 거듭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된다.
회개가 터지고 회심하고 천국을 경험하게 된다.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성화의 길을 걷게 된다.
이 전환이 극적으로 이루어지는 사람도 있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놀라운 전환이 일어나는 것은 확실하다.
택하시고 부르신 목적은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성화이고 성결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삶을 닮아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성경을 주셨다.
세상 일과 가정사에 빠져서 우리는 이 부르심과 택하심의 목적을 잊어버리곤 한다.
사랑의 징계는 우리가 이 목적을 상실했을 때 주어지는 것이다.
적극적으로는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주어지는 것이다.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는 의의 길로 가는 것이지 내 욕심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니다.
좁은 문으로, 좁은 길로, 갈 수 있는 협착한 길이다.
세상은 넒은 길, 큰문으로 가지만 그 길은 멸망의 길로 끝이 나고 만다.
우리가 쌓은 바벨탑은 무너지고 말고, 우리가 이룬 성화가 축복과 영광을 가져온다.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고!’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우리가 변하지 않고 성숙하지 않으면, 고난의 가시밭길은 계속 이어질 수 밖에 없다.
2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벧후1:10)
우리가 우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면 언제든지 실족하지 않을 수 있다.
고난과 역경 앞에서 우리가 낙심하고 실족하는 것은 부르심과 택하심을 잊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입었고 부르심 받은 것을 안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
우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면, 우리의 신분과 특권을 확신하고 붙들면,
어떤 형편 어떤 환경에서도, 자족하는 법을 배울 것이고, 대처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울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 목적 가운데 오늘이 진행되고 있으니,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
바울이 감옥에서도 기뻐하고 빌립보 교인들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붙들고,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지를 신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고난과 역경도, 하나님이 섭리 안에서 허락하신 것이고,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함이다.
우리가 환경 때문에 좌절하고 실족할 때마다 우리가 굳게 할 것은
우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는 것임을 꼭 기억하자.
그러면 우리는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먹을 것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고, 돈을 사랑하거나 부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많은 염려와 근심으로 자기를 찌르는 것도, 시련과 파멸과 멸망에 빠지는 것도,
돈과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데서 기인한다.
부르심과 택하심의 목적이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녀가 되는 것일진대,
우리의 고난과 징계는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데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우리의 욕심과 잘못 산 죄를 회개하고 거룩한 길로 돌이키는 것만이 해결책이다.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언제든지 실족하지 않는 길이다.
고난과 역경을 해결하는 길임을 명심하자.
3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1:11)
우리의 미래의 영광은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는 것이다.
택하시고 부르셔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여, 영원한 나라를 기업으로 주신다.
주리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며 우리를 정결하게 한 후 마침내는 복을 주신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면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누릴 수 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4:17)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영역이다.
내 마음을, 내가 아니고 사탄이 아니고 하나님이 통치하고 다스릴 때 천국이 이루어진다.
사람과의 관계 사이에도 하나님이 다스리도록 내어 드린다면 그곳에 천국이 이루어진다.
내가 주인이 되어 내 소견에 옳은 대로 산 것을 회개하면 천국이 가까이 온다.
회개하지 않으니까 천국이 가까이 오지 않고 멀어지고 지옥이 열리는 것이다.
원수가 지긋지긋한 것이 아니라. 내 강한 소견과 감정이 지긋지긋하게 지옥을 불러온다.
천국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고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안과 기쁨이다.
어떤 환경에서도 어떤 처지에서도 누릴 수 있는 것이 천국인 것이다.
하나님이 다스리도록 내어 드린 곳 모두가 천국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더라도 부르시는 날 다 두고 가야 한다.
오늘 부르시면 오늘, 내일 부르시면 내일 다 두고 가야 한다.
영원한 나라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다가 간다면 준비 없음에 얼마나 놀랄까?
우리의 인생은 나그네 길이요 순례자의 길인 것을 성경은 깨우쳐 준다.
영원에 비하면 우리의 일생은 참으로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강건해야 80인데 수고와 슬픔 뿐이고 신속히 날아간다고 했다.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
참으로 성경적인 삶의 모델인 청교도들은 천국을 눈에 넣고 살았다고 한다.
천국으로 이 세상을 보고 이 세상의 일들을 본 것이지요.
우리의 집착과 정욕들을 제어하는 길은 영원히 살게 될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는 것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은 영원한 하늘을 우선순위에 두라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을 더해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성실을 맛보아 알 수 있고 경건의 유익을 체험할 수 있다.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라”(벧후3:11-12)
우리가 간절히 사모할 것은 이 땅의 보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날이 임하는 것이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사는 것이 그 준비이다.
육체의 남은 때를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사는 것은 패망을 불러올 뿐이다.
은혜의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부르사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셨다.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고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우리에게 주신다.
잠시 고난의 경한 것을 받은 우리에게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무거운 것을 주실 것이다.
그 영광의 날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