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존 오웬, "영의 생각, 육신의 생각", 6장 영의 생각의 대상(2), 7장 하늘의 영광의 사모함
6장 ‘영의 생각’의 대상(2)
우리는 앞에서 영적인 생각들의 바른 대상들 즉 하늘에 속한 것들, 그리스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장래 일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그 일을 실제로 해 나가는 것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위에 있는 것들과 장래 누릴 영광에 대한 바른 개념과 바른 이해’로 채워져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고후4:18). 믿음이 없이는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음으로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아무 유익도 얻을 수 없습니다. 믿음은 자기에게 제시되는 일들 속에서 그 실상을 나타냅니다.
사도는 우리에게 ‘위의 것’을 찾고 생각하라고 촉구하면서 우리가 하늘에 대한 바른 개념을 가질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부연하고 있습니다.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3:1-2). 사도는 우리가 하늘에 속한 것들을 분명히 이해하길 바랐을 것이며, 그 중에서 우리로 하여금 가장 알게 하고 싶었던 것은 영광 중에 높아지신 그리스도였을 것입니다.
장차 우리가 행복한 상태에 이를 것에 대해 어느 정도의 관심이나 이해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은 바로 모든 악한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상태라는 데에 동조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벗어나야 할 악한 것이란 무엇입니까? 이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달리합니다만, 진정으로 영적인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는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들보다 더 악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입니다. 하늘은 우리가 죄에서 완전하게 벗어날 수 있는 상태입니다.
여러분은 하늘에 대한 바른 개념을 견고하게 가져야만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와 관련된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가 영원하고 완전하게 자유로운 상태가 하늘의 영광스러운 복락’이라고 이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늘은 그리스도를 통해 죄용서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는 곳입니다. 따라서 죄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을 최고의 소원으로 삼는 사람 즉, 죄로 인한 낙심 속에서 자신을 비하하며 죄가 더 이상 자기 속에서 작용하지 않기를 바라는 소망을 간절히 가지는 사람은 장차 누릴 영원한 하늘의 복된 상태를 바라보고 기대하는 일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개념을 가지고 하늘을 자주 생각하고 묵상한다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영적인 사고력은 성장할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생각하며 고민하고 씨름한다 해도 죄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질 하늘의 상태를 사모하지 않고 이 세상에서 언젠간 나아질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위안으로 삼는 이를 어찌 영적인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진지한 신자들은 이와는 아주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그들은 복음의 약속을 통해 얻게 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리스도의 피, 자기들 속에 거하시는 성령의 거룩하심과 정결하심을 생각할 때마다 자신에게 남은 죄가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을 느낍니다.
그것이 그들의 마음을 부수고 마음에 고통을 주어 종일 신음하도록 만듭니다. 아주 작은 것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이 여전히 자기들 속에 남아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장차 누릴 영원히 복된 상태를 사모하고 그것이 주는 위로와 힘으로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죄를 죽이되 그 뿌리와 가지까지 철저히 제거되길 소원합니다. 이들이 바로 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영광과 복락의 장래 상태에 대하여 생각하는데 있어서도 믿음이나 이성으로 충분히 이해될 만한 ‘합리적 개념’들을 전혀 생각해 내지 못합니다. 위대하고 영광스런 어떤 것들에 대해 그저 막연한 상상을 할 뿐, 구체적으로 그것이 어떠한 것인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을 생각하면서도 아무런 기쁨이나 유익도 얻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에게는 육신적인 방식으로 만들어낸 상상이 하늘의 실상과 전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을 부단하게 생각하며 소원하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 관하여 생각하려는 진지하고 선한 열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마음은 흔들림 없는 확고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생각은 있지만 그 생각들을 힘 있게 견인해 줄 무언가가 없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 중 영원한 영광의 무한한 부요를 뚜렷하게 보고 이를 발견해 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광의 본질과 친숙해지고 알려고 애를 쓰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의무입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그 영광을 간절히 찾아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학식 있는 많은 비그리스도인들 중에 자신이 가진 수준 높은 이성을 통해 신(神)의 선함과 완전함과 무한함에 대한 것을 생각해 낼 수 있다고, 또 영혼에 진정한 만족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높은 이성을 통해 스스로 하늘의 개념을 이해하거나 깨닫는 일은 누구나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성경은 하늘과 그 영광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그리스도인들 모두에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이 하늘에 대하여 제시하는 개념은 믿음을 가진 신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을 통해 그 은혜의 영광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라”(고후5:7).
우리가 지금은 그저 희미하게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믿음으로 다다를 수 있는 최대의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믿음으로 희미하게 바라보던 것은 장차 하늘에서 완전히 밝히 드러나 보일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13:12).
믿음으로 하늘에 속한 것들의 생명과 능력의 달콤함을 조금이라도 체험한 사람이라면 그것을 누리는 영광이 어떠한지를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에 대하여 많이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과 은혜에 대한 온전한 전망과 이해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모든 탁월하심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삼아야 할 믿음의 대상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직접적인 영광의 대상이십니다. 우리가 다른 어떤 것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게 하는 도구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들은 다만 육신적인 상상을 가질 뿐, 이러한 것들을 받아들이게 하는 합당한 빛의 원리와 마음과 영혼의 성향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신적인 탁월하심에 대하여 이성이 생각해 낼 수 있는 한계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영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성이 이해하는 수준 이상으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하늘은 복음의 특별한 빛의 인도하심으로 알게 하신 하늘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그런 상상의 하늘이 아닌 것입니다. 믿음은 복음이 우리를 하늘의 영광으로 인도하는 것을 영혼으로 사모하게 합니다. 그 영광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와 선하심이 완전하게 드러나는 그런 영광일 것입니다. 그것이 곧 우리 영혼의 온전한 안식과 만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영광 가운데서 드러날 것이며, 그 영광의 모든 효력은 우리에게 전달될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늘을 바라봅니다. 지금은 비록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하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우리의 영혼은 날이 갈수록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갈 것입니다.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는 우리의 심령이 그분을 본받으려는 마음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하늘의 실상과 선함에 대한 의식과 체험은 우리에게 큰 영적 위안과 기쁨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는 그 위안과 기쁨은 하늘 영광으로 인해 처음 익은 열매와도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 있는 성도의 기업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광으로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의 성품을 우리에게 전달하시는 역사가 없다면, 그것을 알거나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 없이는 성경에 계시하고 믿음이 인도하는 하늘에 대하여 누구라도 외인들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제 이렇게 묻고 싶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누리게 될 영광은 정확히 무엇인가?”
여러분은 먼저 하늘 영광의 본질 속에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던 믿음과 은혜가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믿음과 은혜는 성도가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가게 될 때에 그들과 함께 할 것이며, 작고 연약한 믿음과 은혜는 하늘에서 완전해질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 영광이 가진 탁월함 중 가장 주도적인 요점인 것입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살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했던 믿음의 방식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희미하게 보았던 모든 것의 실체를 똑똑히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누리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완전함이 그 영광 가운데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랑’도 그러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진 사랑의 본질 역시 완전해질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이 사실만큼이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힘을 북돋아주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소망’ 또한 완전해질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늘의 영광 가운데서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그 영광의 복락엔 우리 ‘성품의 완전함’도 포함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성품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형상을 전달 받게 될 것이며, 우리의 영혼 전체는 완전한 사랑과 즐거움으로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모할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완전하신 그의 성품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할 하늘에 대한 바른 개념입니다. 믿음으로 이러한 개념을 이해하느냐에 대한 문제는 참된 신자들을 분별하는 확실한 방편이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보지 못하는 자들이 가지는 개념은 진정한 하늘의 개념이 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늘에 속한 것들의 말로 할 수 없는 탁월함과 우월함을 체험해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하늘의 영광과 복락에 대해 알 수 있겠습니까?
이제 말씀에 비추어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골3:1).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라”(고후3:18).
여러분의 심령이 복된 마음의 상태로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있습니까? 이제 위의 것들에 참예하여 분깃을 가지게 되었습니까? 그 분깃에 비추어 다른 모든 것들이 다 ‘분토’와 같이 여겨지십니까? 여러분이 위의 것들에 가지기 시작한 생각이 진정한 것인지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영혼이 진정 은혜의 인도하심을 받아 완전함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성향을 가지게 되었는지 판단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만약 스스로를 시험해보려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그것에 대한 관심이 없거나 그것으로부터 즐거움을 가지길 원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며 교통하는 일 없이는 땅에 속한 일들에서 벗어나 생명과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영적인 생각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정착할 때까지 부단하게 애를 쓰십시오. 매 시간 여러분의 마음이 영적인 생각들로 가득 차도록 하십시오.
7장 하늘의 영광을 사모함
‘우리의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의 모든 영광의 중심이십니다. 그러니 그 분을 많이 생각하십시오. 그 그리스도의 영광이야말로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마땅한 대상입니다. 우리가 만일 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우리 생각을 그 영광의 중심이신 그리스도께 집중시켜야 합니다. 이에 대한 이해를 위해 다음의 몇 가지 요점을 숙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 가져야 할 믿음이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서 ‘행하시고 고난당하신’ 것을 생각하며 끊임없이 그를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분을 믿는 것 못지않게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그분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하신 일과 그분으로 인해 우리가 받은 놀라운 은혜 때문에 그 분을 사랑해야 할 강한 동기를 가지지만, 사실 우리가 그를 온전히 의지하고 사랑하는 근본적 이유는 하늘에서 높아지신 ‘주님의 영광 그 자체’에 있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께서 누리고 계신 영광을 즐거워하지 않고, 그 영광을 우리 마음의 위로로 삼지 못한다면 우리 속에 그분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거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그분과 함께 거하는 오직 유일한 길은 우리의 영적인 정서가 믿음을 통한 사랑으로 그분을 온전히 바라보는 일 뿐입니다. 하루 중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일이 거의 없으면서도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말하는 것은 참으로 무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지하게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늘 그리스도를 생각할 것입니다.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에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것은 말씀의 법칙을 따라 행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마땅한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생각지 않고 미신에 의해 오도되고 있습니다. 성경의 빛과 법칙에서 벗어난 일들은 그것이 어떠한 일이라 할지라도 위험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믿는 일을 부지런히 하길 원하시지만 성경의 말씀을 통해 그에 대한 방식과 마음의 자세에 대하여 분명한 제한을 두고 계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성령을 따라 행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일은 우리가 그 은혜로운 부르심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을 나타내는 오직 유일한 증거입니다. 그분을 생각하지도 않고 어찌 부르심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와 함께 거하시려고 우리의 마음 문을 애타게 두드리시는 그 소리를 말입니다. 우리와 더불어 먹고 함께 거하시려고 우리 마음 문을 두드리시는 그 소리를 그분을 생각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주님과의 은혜로운 교제야말로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아4:12)
저는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큰 어두움과 곤고함에 빠지는 일들을 너무나 많이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의 삶 가운데 신자들과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진정한 교제가 주는 기쁨과 능력을 체험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교리를 알고 이해하는데 그쳤을 뿐, 그것의 능력은 실제로 체험해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부단하게 생각하고 묵상하는 일을 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영혼도 그 능력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묵상하는 일을 게을리 함으로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복된 임재하심의 기회를 상실해왔는지 모릅니다(아5:1-3). 우리는 너무 바쁘고 부주의하고 게으릅니다. 복된 주님의 찾아오심 자체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찾아오심을 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우리 마음에 기쁨이 넘칠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과 사람이 영원히 연합되게 하신 놀라운 구원의 역사, 지금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어 교회를 위해 기도하시는 사랑과 능력의 중보하심, 장차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거룩한 영광, 이것이 우리가 매일 묵상해야 할 것들입니다. 스스로 오류를 범하지 마십시오. 영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영적인 일에 대하여 그저 머리로 가지는 관념이나 지식이 아닙니다. 영적인 의무를 외적으로 행하는 것이 영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하늘에 속한 것, 그 중에서도 지금 하나님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우리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장차 큰 고난이 언제 우리에게 찾아올지 모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 사는 자들에게 고난이 임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필연적으로 고난을 받아야 한다면, 우리는 그 고난을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 구원에 유익이 되는 방편으로 삼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받는 고난이야말로 우리에게 말로 할 수 없는 은혜와 은사와 특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빌1:29).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마음속에 가득 채우십시오. 그것이 고난 가운데 있는 여러분을 바로 세워줄 것입니다.
현세에서 당하는 고통과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저울에 달아보십시오. 우리가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본다면, 영광에 이르기까지 당하는 모든 고난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누리는 우리의 명예와 평판과 재산과 자유와 생명에 대해 자유로운 마음과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영원한 영광이 무엇인지 알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그 찬란한 영광으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상실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대신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 놀라운 은혜의 약속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고난 중에서도 기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은 없는 것입니다. 장차 우리에게 주어질 상급과 영광을 부단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더 우월하게 고난을 감당하게 할 방편은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영광에 대하여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에게 닥칠 고난을 그 찬란한 영광에 비추어 바라보십시오. 이 땅에서의 고난과 영원한 영광, 그 둘을 철저하게 비교해 보십시오. 고난이 '잠시 뿐'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