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제임스 페커, `청교도 사상`, 3. 칭의 교리의 왜곡, 4. 휫필드의 설교 (강의안)
3. 칭의 교리의 왜곡
알미니안주의와 리차드 박스터의 신도덕률주의가 칭의 교리를 왜곡하였다. 16세기 전환점에 제이콥 허맨드준(알미니우스)에 의해 제창되어 1610년의 비정진정서에서 공식화되어 가르쳐진 알미니안주의는 본래 신교의 몇몇 기본 선언들에 대한 부정이었다.
알미니안 주의는 청교도의 대열로 조금씩 잠식해 들어왔다. 재능을 갖고 있는 유일한 알미니안 청교도는 존 구드윈이었다. 그러나 찰스 시대의 영국 국교도들, 캠브리지의 플라톤 학자들 그리고 후기 광교파들은 알미니안주의에 동조하고 강력한 반칼빈주의 논쟁에 가담했다. 그리고 왕정복고 후 영국 기독교 신앙의 주류는 이 수로로 흘렀다. 알미니안 교리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율법주의가 되었다. 이 새로운 율법주의의 중심 사상은 현재 꾸준하게 도덕적 노력을 하는 것이 내세의 구원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역사에 의지하는 믿음의 의미는 망각되었고 회심과 확신의 경험은 영혼에 위험한 ‘광신’으로 처리되었고 현재의 칭의는 더 이상 중요하거나 흥미있는 논쟁이 될 수 없었다. - 218
유럽 대륙에서의 알미니안 논쟁의 한 가지 결과는 사우머 신학교의 ‘신감리교도들’의 중재 신학을 발화시킨 것이었다. 이 가르침은 역사에 아미랄드주의라는 명칭으로 남게 되었다. 이것은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사이의 얼치기’였다. 이 주의는 알미니안 견해에다 특별 선택, 효과적 부르심, 궁극적 보존에 대한 칼빈주의의 신앙을 그대로 보유한다. 그리스도인 실행에 대한 가장 위대한 청교도 저술가인 리차드 박스터가 이 이설을 지지했다. 그가 40년 이상을 유세한 결과로 17세기로의 전환점에 아미랄드주의는 영국과 스코틀랜드에 인기와 악명을 얻게 되었다. 1990년대에 이 이설은 ‘박스터주의’ 그리고 (‘새율법’ 사상에 부여하는 탁월성 때문에) ‘신도덕률주의’로 칭해졌다.
박스터의 견해는 자연 신학에서 나왔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이 당시의 정치 사상들과 일치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학이 ‘정치적 방식’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한 가장 훌륭한 기고는 로버트 트레일의 ‘칭의에 관한 신교의 교리와 그 설교자들과 교수들을 도덕률 폐기론이라고 하는 부당한 비난에 대한 해명의 저자로부터 이 나라의 한 목회자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그는 박스터의 체계를 파괴하는 두 가지 주장을 했다. 첫째로 박스터의 체계는 로마서 5:12이하에 제시된 두 번째 아담 그리스도의 대표적 지위와 명백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백성에게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되는 근거는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 간의 이 독특한 연합 관계에 있는 것이다. 둘째로 박스터의 체계는 너무 인위적이고 영적으로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정함과 죄의식의 무거운 짐으로 양심의 가책을 받는 죄인이 편안함을 얻는 것은 자신의 믿음이 새율법에 의하면 복음적인 의라는 것을 스스로 상기함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구주의 순종과 피는 나의 모든 범죄를 보이지 않게 가린다네”. 자신의 믿음을 의라고 말하는 것은 경거망동이며 유혹인 것이다.
박스터의 이론체계는 하나님의 죄에 대한 진노를 하나님의 변치 않는 특성의 계시보다 열등한 것으로 만듦으로 자비가 하나님의 도덕적 존재의 온전한 본질이라는 사상-후 시대의 자유주의에 의해 명시된 사상의 문호를 연다.
이렇게 박스터는 억지로 성경을 연역적 형틀에 맞추는 ‘정치적 방식’의 최초의 합리주의로 사실상 죄에 대해서는 교훈주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아리안주의, 믿음과 구원에 대해서는 율법주의 그리고 하나님의 죄에 대해서는 자유주의의 씨앗들을 심었다. 키더민스터의 리차드 박스터 교회가 오늘날 유니테어리언 교회가 되었다는 것은 슬프게 일치하는 사실이다.
우리가 박스터에게서 보는 바는 단지 청교도들 가운데에서의 칭의 교리의 쇠퇴만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대한 청교도의 통찰력이 쇠태하는 초기 단계인 것이다.
4. 휫필드의 설교
이와 같이 한 세기 이상의 밝은 복음의 빛이 비추인 후에 알미니안주의는 영국 국교도의 정신에 흑암을 다시 가져왔고 박스터주의는 비국교도의 정신에 흑암을 들여왔다. 자연 신학과 종교적 교훈주의는 영국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루터가 예견했고 트레일이 우려한 그대로 성경의 칭의 교리는 당분간 보이지 않게 되었으니- 다음과 같은 공들인 설교 원고의 무시무시한 음성이 이 국가 전역을 울릴 때까지 였다.
여러분 중에 자신의 의에 의존하는 이가 있는가? 여러분 중에 자신의 행위에 의해 자신을 구원한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는가? 여러분의 의는 여러분과 함께 멸망할 것이다. 여러분의 행실에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힐 무엇이 있는가? 그대 범죄한 자들이여. 불쌍하고 방황하고 파멸한 인간들 모습으로 돌아와서 여러분 자신의 의보다 나은 의를 받아 들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영원한 의이다. 그 의는 바로 죄인들의 괴수를 위해 역사되는 것이다. 목마른 모든 자여, 그리스도께로 와서 이 생명수를 값없이 마시라. 이렇게 기도하라. “여호와 하나님이시여, 당신께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영원한 의를 세상에 보내셨나이다. 이제 복되신 성령에 의해 그 의를 나의 심령에 보내어주십시오”라고. 그러면 여러분은 죽을 때 안전하다. 여러분은 그 즉시 영원하신 하나님 앞으로 옮겨질 것이다. 행복하도다. 이 의의 옷을 입게 된 자들이여 행복하도다. “나의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대속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허락하시기를 축원한다. 하나님께 영원히 영광이 있을지어다. 아멘”
누구의 음성일까? 바로 조지 휫필드의 음성이니 곧 믿음에 의한 칭의의 성경의 복음에 대해 완전히 알고 있어 표현할 수 있었던 사람인 것이다. 그와 함께 영국 기독교의 새 장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