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아카데미

[스크랩] 존 오웬, "영의 생각, 육신의 생각", 10장 ‘영의 생각’의 실천방안

강대식 2018. 7. 4. 16:47

10영의 생각의 실천방안

 

사람들은 이따금씩 하늘에 속한 것이나 영적인 것들을 묵상하는 일만큼 낭패를 보는 적이 없다고 말하곤 합니다. 이들은 하늘에 속한 영적인 것을 생각하고 묵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의무라는 것을 알고, 또 그곳에 말 할 수 없는 탁월한 유익함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런 실천으로 나가고 나서 머지않아 그들은 자신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끝까지 열매 맺지 못하는 자신의 연약을 탄식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것들을 생각하려고 시도할 때면, 언제나 세상에 대한 생각들이 끼어듭니다. 영적인 묵상은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하고 무산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우 영적인 묵상은 결국 육체에 속한 허망한 것으로 끝이 납니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영적인 생각을 하는 일 자체를 두려워하고 쉽게 포기하기에 이릅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하여 몇 가지 사항을 지적해 드리려 합니다.

 

먼저, ‘이 주제를 신중하게 숙고하는 중에 우리 자신의 본래 마음이 허망하다는 의식이 생겨서 영혼을 겸비하게 하고 낮추는데크게 기여를 할 것입니다. 영적이고 하늘에 속한 일들을 생각하고 묵상하는 일을 지속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영적이고 하늘에 속한 것들에 대한 큰 관심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니면 우리 영혼의 기능들과 능력들이 본래 그런 영적인 것들을 생각하고 기뻐하기에 부적합한 상태의 것이 아니겠습니까? 본래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을 자연스럽고 즐겁게 여기는 성향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그런 성향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상태라면 하나님과 그 하신 일들을 생각하는 것은 분명 매우 쉽고 자연스러운 일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왜 그렇지 못한 것입니까? 솔로몬이 이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7:29).

 

하나님을 사모하도록 복되게 지음 받은 우리 마음에 들어온 죄로 인해 우리의 성향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대감으로 충만한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헛되고 어리석은 것을 추구하는 마음의 성향이 쉬지 않고 죄의 열매를 만들었습니다. 사도는 이렇게 묘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4:17-19).

 

하지만 우리 마음은 은혜로 말미암아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은혜가 작용한다면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은혜는 우리 마음속에서 허영의 원리가 더 이상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 본성 속에 있는 허영의 원리는 우리로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게 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주장하였습니다.

 

은혜 안에서 어느 정도라도 진보한 사람이라면 마음의 허망함이 영혼에 끼치는 위험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마음의 허망함이란 영혼에 있어서 가장 큰 부담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영혼의 허망함으로부터 완전하게 자유함을 얻고 온전히 새로워지기를 그토록 바라면서 이렇게 탄식하는 것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

 

그렇습니다. 그들은 자기 속에 여전히 마음의 헛됨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그 사실은 그들에게 큰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남아있는 허망의 원리가 영적인 것들을 묵상하려는 자신들의 의도를 매번 얼마나 무참히 파괴해 버리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은 그저 탄식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라 간의 전쟁을 보십시오. 전쟁에 참여한 자들은 누구나 자신들의 적을 살피고 경계하고 그들을 대적하여 물리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원수에 대해서 우리는 어떠합니까? 전쟁터에서 눈에 보이는 적과 싸울 때처럼 살피고 경계하고 그것들을 대적하고 물리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까? 만약 원수를 경계하고 물리치려는 일을 등한히 여긴다면 승리는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자기 안에 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유념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우리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마음의 무거운 짐에서마저도 우리는 얼마든지 유익한 열매를 따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하지 못하는 원인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십니까?

 

세상에 있는 한 우리의 마음은 그 허망함과 요동함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러한 일을 위해 싸워 승리하여 우리의 영적인 지경을 넓혀간다면, 우리의 영혼은 지금보다 더욱 진보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즐거움으로 영적인 생각들을 지속하고, 부지런히 깨어서 마음의 허망함을 부추기는 생각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늘 단속한다면, 우리는 하늘에 속한 생각을 더욱 복되게 할 수 있는 정도에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물론 절대적인 완전함에 이르지는 못할 것이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그 영광에 가까이 나아갈 수는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십시오. “나무를 좋게 하라. 그리하면 열매도 좋으리라”. 거룩하게 하는 은혜의 능력이 마음을 주장해야만 그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들이 영적인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심령 전체를 거룩하게 하는 일 없이는 우리가 영적인 생각들을 즐거워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하늘에 속한 영적인 생각들을 지속하지 못하는 우리의 연약에 대한 문제와 함께 우리가 생각해야할 또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는 하늘에 속한 것들을 바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 바른 방식으로 영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과 우리가 혼자 버려진다면 영적으로 나태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총명을 가진 자들이 발견한 진리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자신을 판단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마음과 정서가 하나님과 영적인 것들을 생각하도록 여러분을 이끌고 있습니까? 마치 생수의 샘에서 물이 솟아나는 것같이 여러분 심령 깊은 곳에서 그러한 생각들이 솟아나고 있습니까? 그러한 생각들을 즐거워하고 기회만 있으면 그러한 것들과 교제하고 싶어집니까?

 

건강한 사람과 병든 사람이 가진 생명의 원리가 다르듯이 사람마다 가지는 은혜의 분량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어떤 은혜의 원리를 얼마만큼 가지고 있든지 간에 우리는 크게 열심을 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받은 새 성품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선한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근면과 근신함으로 거룩한 모든 일에 영적인 노력을 기울여 반드시 우리 안에 있는 은혜를 계속 성장시켜야 합니다. 비옥한 땅이라도 부지런히 갈지 않고서는 유익한 곡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영적인 마음을 가졌다하는 것은 기회만 있으면 부지런히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영적이고 하늘에 속한 것들에 대한 거룩한 생각들을 할 수 있는 만반의 신실한 준비를 갖춘 상태를 말합니다. 영적인 마음의 상태는 자동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이 부지런하게 일하지도 않으면서 부자가 되리라고 기대하거나, 몸이 연약한 사람이 음식을 먹지 않고, 또 운동을 하지 않으면서 건강해지는 것을 바라는 것이 합당치 않습니다. 그와 같이 간절하게 애쓰지 않더라도 저절로 영적인 마음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것 역시 합당하지 않은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거룩한 마음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를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가장 먼저 허망한 생각과 상상이 영혼의 내면에 침범하지 못하도록 경계하십시오. 특별히 그러한 허망한 생각들과 상상들이 들어와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에 좋은 때를 조심해야 합니다. 만일 그런 생각들이 들어오게 길을 내어 주고 그것을 즐기는 데까지 나가도록 자신을 방임하여 그 생각들이 한동안 칩거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영적으로 생각하는 상태에 결코 이를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구주께서 그토록 강조하시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깨어 있으라”(13:37).

 

우리가 늘 깨어 있지 않는다면 우리의 영혼은 영적 원수의 손에 팔릴 것입니다. 그 허망한 생각들은 육체를 위해 길을 마련해 주고 육체의 소원을 정욕으로 이루고자 꿈틀댈 것입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4:23).

 

우리는 마음에 거룩한 제어를 해야 합니다. 우리 속에 거하는 육신적인 정서는 우리가 시작한 영적인 의무들이 본궤도를 이탈하게 만들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유익이 없다면 거기서 벗어나려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생각의 방향을 바꾸거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드는 모든 동기들을 동원해 그 거룩한 의무를 일관성 있게 바라보도록 마음을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늘에 속한 것에 관한 지식을 갖추는 일이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그 하늘에 관한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생각들과 묵상의 올바른 대상에 우리의 정서가 계속 집중할 수 있도록 주장할 것입니다. 우리의 묵상의 바른 주제와 대상에 대한 지적(知的)인 이해의 부족이 지속적인 묵상의 동기를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사도가 골로새 성도들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기를 위하여기도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사탄과의 투쟁에 있어서 지치지 말아야 합니다. 사탄은 여러 가지의 간계와 불화살을 동원해 이러한 의무들로부터 우리를 격리시키고자 끊임없이 애를 쓸 것입니다. 거룩한 삶을 살고자 진실한 자세를 취했던 사람들의 결심이 얼마나 자주 그 강력한 힘으로 인해 허망한 상상으로 끝나버리고 마는지요. 사탄의 간교함은 우리 마음에 허망하고 어리석고 부패한 상상들을 주입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우리가 영적인 묵상을 할 때 우리 마음에 그러한 허망하고 부패한 생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면, 그 생각은 사탄의 간계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어떠한 경우라도 정욕이나 부패한 원리가 우리 속에서 득세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그러한 부패의 원리에 자리를 내어준다면, 여러분이 가진 영적인 의무들에 대한 열심과 담대함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에 있는 세상을 사모하는 정서와 소원을 죽이고 세상을 향하여 가지는 열심을 절제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렇게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세상의 유익과 달콤함은 버리지 않은 채 손쉽게 영적인 생각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분명히 대답하겠습니다. 영적으로 생각하는 일을 엄격하게 실행하려 한다면 세상에서의 모든 인생의 달콤함과 이익들은 온전히 포기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가장 주요한 부분을 이러한 일들에 드리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떤 기대를 가진다 할지라도 생명과 평안은 누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혹 다른 사람들이 안다면 부끄러울 정도의 악한 일들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9:27).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 중 이 불변의 법칙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허락된 삶을 다가올 심판을 준비하기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이 기회를 무시하는 자들은 반드시 그에 합당한 영원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합당하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얻은 것들을 누리거나 즐기지 못하게 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세상에서 누리는 모든 것들을 분명하게 버려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전적으로 모든 일에 우리 자신을 포기해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19:21). 부디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무시하면서 거절하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저는 세상에서 감당해야 할 직업적인 소명과, 세상에 주어진 합법적인 기회들을 무책임하게 내팽겨치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그 모든 기회들을 잘 활용하여 영적인 것들을 더 생각하고 더 사모하는 데로 나아가라 말하고 싶습니다. 자기의 가족과 직업과 재물과 소유 모두를 버리고 순례의 길에 나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극단은 헛된 미신의 요구에 영합하는 일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그리스도인 역시 합법적인 직업의 소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직업의 소명을 감당하는 것은 당연히 권장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소명 안에 세상적 사고방식을 가지도록 지나치게 작용할 수 있는 소지가 있는지 경계해야 합니다. 직업적인 소명이 정욕과 방종의 방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거룩한 의무를 감당해야 할 시간과 힘을 다 소진해 버리고 마음이 악으로 향하게 하는 방편이 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감당하는 직업적인 소명 중에 영적 사고방식을 배제시켜야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일을 완전하게 배제시켜야 할 직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목회 사역의 소명에 대하여 생각해 보십시오. 그 소명의 일과 의무는 그 일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마음과 생각을 늘 영적이고 하늘에 속한 것들에 집중하게 합니다. 그들은 그러한 것들을 쉬지 않고 연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억에 담아 다른 이들에게 말해 주어야 합니다. 누가 보더라도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영적으로 생각해야 할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들을 묵상하면서 그 생각들을 다른 이들에게 표현해야 한다는 의도에 집중하면서 정작 자기는 그 생각의 힘과 효력을 맛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가르치는 진리를 목회자 자신이 체험하는 일을 힘쓰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의 사역을 통해서 아주 적은 유익 밖에는 얻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어떤 직업적 소명이든지 정직하게 열심을 내는 것이 합당한 일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이 그 일을 열심 있게 하면서 영적으로 생각하는 일에 힘쓰지 않으면 결코 평안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시간의 어느 부분을 특별하게 영적으로 생각하는 일에 드려야 합니다. 기도나 말씀을 읽는 것과 같은 거룩한 의무들을 위하여 매일 시간을 따로 떼어 놓으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매우 유익하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몇 가지 방안을 말씀 드리면서 이 장()의 강론을 마치려 합니다.

휴식이나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해 잠시 내는 시간과는 구별되는 따로 떼어진 알맞은 시간을 정하십시오. 여러분이 거룩한 의무들을 위한 시간을 드리는 만큼 유익이 될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길 마음을 갖지 마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하여 그 시간을 드린다면 여러분은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여러분의 마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경외 어린 마음을 준비하지 않은 채 하늘에 속한 것들을 생각하는 데로 곧장 나아간다면 어느 순간 당황할 수 있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며 말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말을 적게 할 것이라”(5:1-2).

 

거룩한 두려움과 경외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은혜는 하나님과 관계하는 모든 직접적인 일들에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상태로 깊이 감동받은마음의 상태를 가지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여러분이 묵상할 하늘의 본질을 거룩하게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에 있던 악한 생각의 뿌리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것들에 대한 새로운 지각과 미각을 가지려고 소원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의무를 단순한 필요성에 대한 마음의 책임감이나 의무감으로 마지못해 한다면 그 일은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영혼이 하나님의 은혜로우심을 맛보고 그 달콤함과 향기가 무엇인지 알기만 한다면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영적인 의무에 돌입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 소망어린 진보의 방식입니다.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감당하는 일에 열심을 내도록 우리 자신을 항상 북돋을 것입니다.

 

모든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도 당황하고 갈피를 잃어 영혼에 신선함을 안정적으로 지속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 애타게 부르짖으십시오. 자신의 연약함과 마음의 요동함을 탄식하고 애통하십시오. 여러분의 부르짖음은 반드시 영적인 회계의 차원에서 손해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바른 묵상을 통해 하나님과 영적인 신령한 것들을 이해하는 것우리의 간절한 간구는 함께 어우러집니다.

 

끝으로, 용기를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묵상하는 일을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묵상을 통해 만나게 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 때문에 지치지 마십시오.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시는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은 작은 것이라도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묵상을 지속하지 못한데 대한 자괴감과 자신에 대한 비열함과 무가치함에 대해 애통해 한다면, 여러분은 결코 헛되지 않은 열매를 얻은 셈입니다. 이것은 거룩한 묵상으로 나아가는 특별한 연단입니다. 힘을 내십시오. 묵상을 그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더 큰 묵상의 능력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유정식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