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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존 오웬, "그리스도의 영광", 1부 1장,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한 본문 해설

강대식 2018. 9. 13. 07:52

1부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한 강론과 묵상

-요한복음 1724절 말씀을 본문으로

 

1장 본문 해설

 

1. 예수님의 기도와 신자들의 특권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17:24).

 

율법 아래에서 대제사장은 엄숙한 대속죄일에 지성소로 들어갈 때, 금 향단에서 두 손 가득히 향을 취하여 가지고 들어갔다(16:12-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위대한 대제사장으로서 손으로 짓지 아니한 성소’(9:24 참고)로 들어가시면서,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된 영광스러운 기도를 통해서 그 신비로운 모형에 상응하는 일을 하셨다.

 

지금은 앞서 언급한 요한복음 1724절에 대해서만 살펴보고자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구절에서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자들을 위하여 바라시는 요점을 밝히고 있다. 곧 주님께서는 그들이 자신의 영광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것이다.

 

이 기도를 통해 주님은 자신의 영광과 그 영광이 나타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신다. 주님께서 성소에 들어가시면서 아버지께 간구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17:4-5).

 

그러나 여기서 주님은 자신의 영광보다는 자신의 제자들이 그 영광을 봄으로써 얻게 되는 유익과 만족과 복락을 더 염두에 두고 계신다. 그것들이 중보자로서 주님에게 주어진 모든 영광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영광이 제자들에게 나타나기를 소원하고 계신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영원토록 만족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기도하시는 것이다. 다른 어떤 것도 그런 만족을 줄 수 없다. 신자들의 마음은 마치 나침반의 바늘과 같아서 방향을 지시하는 지점에 다다르기까지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엄숙한 중보기도 속에서 그들을 위하여 그들이 그리스도도 자신의 영광을 보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신다. 그들을 위해 드리는 자신의 모든 다른 간구에 필요한 것을 보충하고 계신다.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는 저희가 내 영광을 보고, 또 묵상하기를 원하나이다라는 말씀이다. 이 대목에서 주요한 관심거리는, 이 영광스러운 특권이 하늘의 상태에서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신자들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이다. 신자들은 이 세상에서도 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의무들과 특권들을 분명히 가지고 있는 것이다.

 

2.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두 가지 방식

 

이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것이 신자들이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장차 올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특권이요 진보라는 것에 대해 입증해 보겠다.

 

신자들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그리스도의 영광을 봄으로써 그 영광에 합당하게 변화해 간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3:18).

 

그다음에 저 세상에서 영원토록 그리스도와 같아질 것이다. 왜냐하면 신자들이 그분의 참모습 그대로를 볼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요일3:2). 바로 여기에 현재 우리의 위안과 장래의 복락이 달려 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방식과 그 정도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보는 것으로, 그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11:1)이다. 또 하나는, ‘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주목하는 것이다. , 영혼 속에서 직접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이다.

 

믿음으로 보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의 대상은 모두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영광이다. 우리는 여기서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게 그분을 본다. , 믿음으로 본다. 그러나 이후에는 얼굴과 얼굴로 대하듯이 그분을 볼 것이다. 직접 대면할 것이라는 말이다. 지금 우리는 그분을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 때에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아는 것처럼 우리가 그분을 알게 될 것이다(고전13:12).

 

사실 우리의 복되신 구주께서 하신 기도에는 주로 두 번째 방식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주님도 우리가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그의 영광을 보는 것을 배제하고서 이런 소원을 아뢰신 것은 아니다. 다만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그 일이 완성되기를 바라면서 기도하신 것이다.

 

3.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아야 하는 이유

 

1) 믿음으로 어느 정도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지 못한 사람은 이후 영혼 세계에서 직접 그리스도의 영광을 볼 수 없다

은혜는 영광을 위해 필요한 준비요, 믿음은 보기 위해 필요한 준비이다. 우리 영혼이 은혜와 믿음으로 미리 단련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영광을 직접 볼 수 없다.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계실 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그들이 본 그리스도의 영광은 어떤 것이며, 어떻게 그들은 그 영광을 보게 되었는가?

 

첫째, 그리스도의 영광은 왕이나 능력 있는 자들이 가진 영광이나 찬란함과 같은 외적인 조건의 영광이 아니었다. 그는 결코 자신을 뽐내지 않고 그저 종의 모양을 입으셨다.

둘째, 제자들이 본 그 영광은 그리스도께서 입으셨던 육신의 모양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풍채나 찬란한 모양을 갖추지 않으셨다(52:14, 53:2-3).

셋째, 그의 신성의 본질적인 영원한 영광을 가리키는 것도 절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의 본질적인 영광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넷째, 그리스도의 영광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분의 영광이다. 그들은 은혜와 진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인격과 직무의 영광을 보았던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또는 어떤 방도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았는가? 다름 아닌 믿음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그 특권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만 허락되었기 때문이다(1:12).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면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1:29)라고 말할 때 본 것이 그의 영광이었다.

 

2) 영광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를 보는 것은 현재 우리가 가진 조건으로는 너무 높고도 기이하며 신비한 일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지 못하고서는, 하늘에서 직접 그리스도의영광을 보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참되고도 영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이 세상에서 장래의 일에 대하여 관념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 세상에서 장래의 일을 체험한 데서 나온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세상에서 장래의 일에 대한 것을 체험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마음에 영원히 남아 있을 만한 것을 만들 수도 없고, 우리의 정서에 계속적인 감화를 끼칠 수도 없다.

 

어떤 식으로든 하늘에 있는 것을 이 세상에서 체험해 보지 않고서는 그것을 고대할 수가 없다. 우리가 이 땅에 있을 때에는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봄으로써 그것을 하늘에서 직접 보게 될 때 얼마나 복될지를 가늠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마음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찬미하고 감탄하게 되며, 그 영광을 누리고자 간절히 소원하게 된다.

3) 우리가 지금 신자들을 세우는 목적은 주로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게 하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의 삶과 능력이 바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는 데 가장 탁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주로 그런 믿음의 행사에서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우러난다. 만일 우리가 힘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가져 우리 영혼에 진정한 만족과 평안을 얻고 싶다면, 부지런히 그리스도의 영광을 묵상하는 일에 온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다른 방식으로는 그런 믿음의 역사를 기대할 수 없다. 생각과 정서 속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부지런히 묵상하는 삶을 살 때, 그분의 영광에 비하면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해야만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을 십자가에 못 박고, 급기야 그런 것들이 내 속에서 죽고 형편없는 것들이 되어 어떤 방식으로든 애착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정도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4.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유익

 

1) 그리스도의 영광을 봄으로써 하늘나라에 걸맞는 인격으로 변모해 간다

음악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음악 속에서 즐거움을 전혀 느낄 수 없다. 또 눈으로 볼 수 없는 사람들은 아무리 아름다운 색깔이 있더라도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은혜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되지 않은 사람에게 하늘 자체는 정말 무익하기 이를 데 없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에게 전달되는 그 영광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과 방편을 정해 주셨다. 그것이 바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이다.

 

2) 그리스도의 영광을 진실로 봄으로써 덕을 입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봄으로써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하게 하는 능력 안에서 덕을 입게 될 것이다(고후3:18).

 

3)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한 부단한 묵상은 그렇게 묵상하는 사람의 영혼에 안식과 만족과 행복을 준다

우리 마음은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 채워지기 쉽다. 두려움과 염려와 위험과 곤고함, 그리고 여러 가지 정욕과 욕심이 사람들의 마음에 복잡한 인상들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그 마음이 무질서하고 어둡고 혼란스러워져 갈피를 잡지 못하기가 쉬운 것이다.

 

그러나 영혼이 이 영광스러운 대상에 대한 생각과 묵상에 고정되어 있다면, 그 영혼은 거룩하고도 진지한 영적 상태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8:6)이기 때문이다. 흔히 그러한 일에 소홀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하늘에 속한 신령한 삶에 대하여 문외한이 되는 것이다. 또한 그러하기에 복음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영적인 새 힘과 만족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4)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의 영원한 복락의 샘 근원이요 원인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면서 그의 영광을 보고 거기에 참여하는 것이 우리의 영원한 복락이다. 우리가 직접 하나님을 뵙는 영광을 누리는 것을 일반적으로 기쁨에 넘치는 비전이라고 칭한다. 바로 그것이 복된 상태에서 우리 영혼이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근원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그의 영광을 찬탄하지만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런 것들에 대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우리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참된 신자들은 그 영광스러운 상태를 미리 맛볼 수 있다. 때로는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창조 이전에 가지고 계셨던 그 영광에 대한 시각을 얻게 되기도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비춰진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의 영혼을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감동시킨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또 신자들 속에 계신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께서신자들로 하여금 영광의 첫 열매를 맛보게 하신다. 때로는 그들의 영혼을 생명수 샘물로 적시고, 때로는 자신의 우편에 있는 즐거움의 강물을 마시게 하신다.

 

육적인 사람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다. 그들은 눈이 멀어 멀리 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 혹시 아주 드물게 이런 것을 누리게 된다 하더라도 대부분 그것이 오래 지속되지는 못한다. 몇 시간 뒤에 금방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런 은혜를 더 많이 맛보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게으름과 무지 때문이다. 그래서 영광의 빛이 우리 영혼 속에 더 많이 비취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한 자각은 우리를 자극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을 묵상하는 일에 정진하도록 만든다.

 

전체적으로 우리는 아가서에서 예루살렘의 딸들이 신부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답과 동일하게 대답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질문 여자들 가운데에 어여뿐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같이 우리에게 부탁하는가?”(5:9).

응답 내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많은 사람 가운데에 뛰어나구나”(5:10).

 

그리스도의 영광은 그리스도의 인격의 영광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가리켜 나의 영광즉 내 인격에 속한 영광이라고 말씀하신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유정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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