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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존 오웬, "그리스도의 영광", 3장 그리스도의 인격의 구성 요소와 그의 영광

강대식 2018. 10. 6. 14:05

3장 그리스도의 인격의 구성 요소와 그의 영광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영광은 그리스도의 인격의 신비로운 구성 요소에서 발견된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의 인격 안에서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사람이시다. 단일한 인격 안에 구별되는 두 본성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그리스도의 인격을 구성하는 신성 안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영광이야말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 속에 두어야 할 가장 유익하고도 고상하며 은혜로운 대상임을 확실히 알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비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가? 사도는 다른 모든 것들을 배설물과 분토로 여겼다(3:8-10 참고). 시편 기자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것에 비교하여 다음과 같이 판단하고 있다.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4:6). ,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야말로 내가 소원하고 추구해야 할, 그리고 유일하게 나를 만족시키는 선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디에 자기 마음을 쏟고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생각을 통해서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13:14)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자기 욕심과 육신의 정욕을 채워 줄 것들을 궁리한다. 그리고 세상에 속한 것들, 즉 아내와 자녀들, 재물과 사회적인 명성과 권세, 친구들과 영예를 생각해 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 가운데서 그런 것들이 얼마나 좋은 것으로 여겨지는가!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시각을 얻은 사람은, 그 모든 것들 가운데 있으면서도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73:25)라고 말한다.

 

내 누이, 내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4:9). 그렇다면 믿는 영혼은 모든 충만이 거하고 아버지께서 친히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더 주께서 내 마음을 빼앗아 갔나이다라고 말해야 할까! “! 나의 영원히 사랑하는 분이시여, 나에게 끼친 주님의 영광스러운 아름다움은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나를 압도하나이다. 그 영광스러운 아름다움 때문에 내 마음은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온전히 떠났나이다!”

 

만일 이런 고백이 우리에게서 자주 나오지 않는다면, 이것을 우리 마음과 정서의 대상으로 우러러보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기 위해서 부지런히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육적인 사람이다. 또한 우리 눈이 왕의 아름다움을 볼 것이다라는 약속에 참여하지 않은 자이다.

 

2. 성경을 부지런히 공부하고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한 계시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라

그리스도의 영광을 살펴보는 것은 공상이나 상상이 아니다. 그 일은 사람들이 공교히 꾸며 만든 형상과 관련된 것도 아니고,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 공상의 작용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에 입각한 믿음의 행사이다.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벧전1:11-13). 성경을 읽을 때 이 원리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직무와 그 계시에 대한 교리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 가르친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모든 교훈들을 받치고 있는 기초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의 인격과 영광을 계시함으로써 이 세상에 있는 신자들의 믿음과 묵상을 일으킨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그리스도의 영광과 인격에 대한 계시들을 완전하게 이해하거나 깨달을 수 없다. 그래서 믿음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그 계시들에 대한 거룩한 묵상인 것이다.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방식은 세 가지이다.

첫째,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인격과 성육신을 직설적으로 묘사한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3:15). 그 외 시2:7-9, 45:2-6, 68:17-18, 6:1-4, 9:6, 3:8, 1:1-3, 2:6-8, 1:1-3, 2:14-16, 1:17-18.

 

둘째,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과 약속과 분명한 가르침을 통해서 그 영광을 묵상하게 한다.

 

셋째, 구약시대에 주어진 여러 가지 거룩한 예배 제도를 통해서 그 영광을 나타낸다.

 

구약성경에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나타나신 여러 사례들이 있다. 이것은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려 하심이었다. 이사야가 본 환상도 그러하다(6:1-2).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취하실 인성을 충만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신적 임재의 영광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몸의 성전으로서, 모든 영광스러운 은혜를 상징하는 끌리는 옷을 입고 있었다. 그것을 받쳐 주는 상징적인 표증이 어찌나 영광스러운지 스랍들이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어서 얼굴을 가릴 정도였다. 그렇다면 복음을 통해서 명백하게 드러난 지금은 그 영광이 얼마나 탁월하겠는가!

 

신약성경에는 하늘로부터 직접 그에게 주어진 증거들이 있다. 이것 역시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 사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벧후1:17).

 

이 외에도 같은 의도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늘에서 직접 말씀하신 경우도 여러 번 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에게 영광과 존귀를 주셨다. 모든 신자들이 바라보고 찬탄할 영광 말이다. 그러므로 육신의 귀로 이 증언을 들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성경을 통해 증거를 받은 모든 사람들은, 그런 의도로 분명히 계시되고 주어진 그리스도의 영광을 찾아 묵상하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연구하면서 그 영광을 찾고 그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러하였다(벧전1:11-12 참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구원에 대하여 지혜로운 자들이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이 일에 대하여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아야 한다. 그 장사는 모든 종류의 진주를 구하였다. 그러다가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했을 때 그 진주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았다(13:45-46 참고). 우리가 진주를 발굴해 내는 밭과 광산이 바로 성경이다.

 

우리의 영혼을 유익하게 하는 능력을 가진 거룩한 진리들이 모두 우리를 부요하게 하는 진주이다. 우리가 그 값진 진주, 즉 그리스도의 영광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 영광이 바로 신자의 영혼이 기쁨으로 사로잡혀야 하는 대상이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아는 복된 관점들을 가지게 될 때에 우리는 진리의 말씀 속에서 영혼의 양식을 발견할 것이다. 바로 그때 주님께서 얼마나 은혜로운 분이신지를 맛보게 될 것이고, 바로 그때 성경이 생명수가 솟는 샘처럼 우리를 시원하게 만드는 것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3. 성경이나 복음 설교 속에 들어 있는 진리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아는 빛을 얻었다면 자주 그것을 묵상하라

 

이런 자세가 없는 것이 근본적인 실수가 되어 그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은혜의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자기의 특권을 귀중한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르게 묵상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이 신령하고 거룩해져야 하며, 이 땅의 것에 대한 애착과 욕심에서 벗어나 땅의 것들을 생각하는 것보다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의무를 외면하는 까닭은 이 땅에 대한 애착을 죽이는 고통과 책임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즐거이 묵상하지 않거나 성경에 계시된 대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기 위해 수고하지 않는 사람은 영원토록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고자 소원하는 은혜로운 마음이 사실은 전혀 없는 사람이다. 이처럼 세상적이고도 헛된 것들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상상하려 하며 시간을 쓰면서도, 이 영광스러운 대상에 대해서는 아무런 마음의 성향도 없이 그것에 대하여 묵상하는 것을 전혀 즐거워하지 않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그런 사람들이 고백하는 믿음과 사랑은 과연 무엇인가? 결국 그들이 자신을 얼마나 속이게 되겠는가?

 

4. 때를 따라 더욱 자주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날마다 그 횟수를 늘리라

우리가 참된 신자로서 믿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면, 그 말씀이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그리스도의 중보의 모든 유익을 우리에게 나타낸다. 그러므로 만일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다면,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가까이 계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어느 때에라도 우리 안에 계신 말씀과 대화할 시간을 가진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언제나 우리와 교제하시려고 우리를 받아 주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빛을 가지게 되면, 그 빛 가운데서 언제라도 금방 그리스도에 대하여 생각하고 계속해서 자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가 부지런히 그리스도를 찾는데도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없거나 그분의 얼굴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혹은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멀리 물러나 계신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묵상이 메마르고 열매를 맺지 못하며, 우리의 영혼에 영적인 신선함을 전혀 가져다주지 못한다. 만일 우리가 그처럼 생명 없는 상태에 만족해 버리거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혀 체험할 수 없을 만큼 그리스도에 대해 전혀 감동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거나,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한 바른 시각을 전혀 가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경건의 모든 능력 밖에서 배회하게 될 것이다.

 

이런 경우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가서에서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이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들은 이런 일들에 대해서 어떤 체험들을 가지고 있는지를 신자들의 마음속에 매우 분명하게 말해 준다.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았노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노라. 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안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노라. 성안을 순찰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하고,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머니 집으로, 나를 잉태한 이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3:1-4).

 

그러나 그런 것을 전혀 체험하지 못했던 사람들, 하나님과 신선한 교통을 나눠 본적이 없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얼굴을 돌리신 것을 빨리 지각할 수 없다. 이런 경우에 우리가 취해야 할 마땅한 도리는 기도와 묵상과 애통과 성경 읽기와 말씀 듣기, 그리고 하나님께 개인적으로든 공적으로든 간에 예배드릴 때에 주어지는 모든 규례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사모하는 심정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부지런히 순종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예전처럼 자신에게로 돌아와 계신 것을 발견하기까지 그 일을 해야 한다.

 

그리스도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는 것이 믿음생활의 주된 내용이다. 왜냐하면 그런 상태를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신다’(2:20)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자주 생각하고 그리스도와 자주 교통하지 않고서는 그런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신자들 속에 거하신다(3:17 참고). 생명이 있는 곳에는 활동과 운동이 있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신자들 속에 있는 이 생명의 작용은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즐거워하는 정도에 따라 정비례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려 한다면,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또는 다른 일들을 감당하느라고 그럴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때에도 자주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광에 대한 생각으로 충만해 있어야 한다. 하루를 살면서 그리스도를 생각하지 않고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마땅히 우리는 큰 책망을 받아야 한다.

 

5. 그리스도와 그의 영광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와 찬미와 존귀를 그리스도께 돌려야 마땅하다는 의식이 함께 나타나는지를 확인하라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생각하고 사랑하는 그분과 그의 영광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영적으로 새로워진 사람이라면, 우리 영혼의 모든 기능들이 은혜로 말미암아 능력을 입고 이 영광스러운 대상을 향하여 제 기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에 있는 동안에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본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우리에게 온전하게 제시된 적이 없는 그 영광의 일부분에 의지하여 믿음과 사랑을 행사해야 한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 주님께서 장엄한 모습으로 임하시는 한 가지 목적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기위함이다(살후1:10 참고). 믿는 사람들조차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때에 그 마음이 놀라움으로 압도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 영광에 대해 우리는 마땅히 그리스도를 귀히 여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귀히 여김은 자연스럽게 찬미와 감사로 이어질 것이다(5:9-14).

 

이 강론의 목적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는 관점을 얻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묵상을 통해서 그것을 얻는다. 우리가 얻은 그 관점을 그저 지적으로 동의한 진리에 대한 관념으로 지나쳐 버려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는 그 자신 안에서 이렇게 영광스러우시구나라고 생각하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 관점이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도록 애써야 한다. 왜냐하면 바로 거기에 우리의 주된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때 그 관점이 효력을 발생하여, 우리의 영혼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해 가는 때에 영향력을 나타낼 것이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유정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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