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10/14 주일설교, `흑암의 권세에서`, 골 1:13-14
2018-10-14 주일설교
본문: 골 1:13-14
제목: 흑암의 권세에서
1. 구원은 흑암의 권세에서 아들의 나라로 옮겨지는 것이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1:13)
구원은 우리의 삶의 영역이 옮겨지는 것이다.
흑암의 권세에서 건저내어,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지는 것이다.
흑암의 권세는 사탄이 자기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이다.
아들의 나라는 아들이 통치하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구원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아들의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역사 가운데 오심으로 시작되었다.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힙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12:28)
구원은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행26:18)
구원은 죄와 허물로 죽은 영혼이 살아서 영적인 눈을 뜨고 영적인 것을 보는 것이다.
우리 주님은 어두운 세상에 참빛으로 오셨다.
빛이 어둠에 비취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였다.
눈은 떴으나 보지 못하는 어둠의 눈을 뜨게 하여 빛을 보게 하는 것이 구원이다.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춰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한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4:6)
이 세상의 신 곧 사탄은 이 빛이 마음에 비치지 못하게 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한다.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고후4:4)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와 죄 사함을 받는 것이 구원이다.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1:14)
오직 그 아들 안에서만, 그분이 우리의 죄값을 십자가에서 치뤘기에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받는다.
죄 사함을 받지 못하면 우리가 직접 죄값을 치러야 한다.
죄에 대해 심판을 받고 영원한 형벌에 처해진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도 사탄의 권세에 끌려다니며 흑암의 나라를 살게 된다.
죽어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공의의 심판을 받고 사탄과 함께 영벌에 처해진다.
지옥과 불못은 구더기도 죽지 않고 영원히 유황불이 타오르는 곳이고,
사탄이 왕 노릇하며 영원한 고통 속에서 죽지도 못하고
혀를 서늘케 해줄 물한방울을 그리워하며 후회와 회한에 젖는 곳이라 했다.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사랑 타령만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죄에 대한 공의와 정의, 죄에 대한 심판으로서의 진노와 분노를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을 다 구원해 주시는 그런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은 독생자 성자 하나님을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오게 하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형벌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것이다.
이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한 것이다.
구원하는 믿음도 하나님은 선물로 은혜로 주셔서 믿고 구원 받게 하신다.
구원을 위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인간의 선행과 수양과 교육으로 구원받을 수 없고, 사람의 뜻이나 혈통으로도 받을 수 없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2:8-9)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1:12-13)
구원은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갈 수 있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고 심판을 면할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 때문에 그 공로로 우리는 구원을 받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의 심판과 형벌을 대신 받고 죽으셨기에
우리는 그 복음을 믿음으로 죄 용서와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성경에서 말씀하는 이 사실이 복음으로 믿어진다.
이 사실이 믿어질 때 자기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꼬꾸라진다.
어둠을 벗고 빛으로 나아가게 된다.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으면,
아들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고 놀랍게 변화될 수 없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게 될 때 하나님 나라가 그 안에 이루어진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
예수님 사역의 제 1성이다.
인간 편에서 볼 때 구원은 회개로부터 시작이 된다.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녔어도, 제대로 영적으로 회개한 적이 없으면 아직 교인일 뿐이다.
유사 그리스도인일 뿐이고 여전히 마귀의 자녀일 뿐이다.
구원 받지 못한 영혼들은 무엇보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회개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해야 한다.
처음으로 극적으로 전환되는 회개를 우리는 회심이라 한다.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 우리 심령 가운데 일어나는 것이다.
청교도들은 확실한 회심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교인 자격도, 성찬 참가 자격도, 주지 않았다.
성령으로 한 번 거듭나고 죄 사함 받고 의롭다 함을 받아 구원을 받으면,
다시는 흑암의 권세로 돌아가지 않는다.
구원은 한 번 받으면 또 죄를 지을지라도 결코 구원을 잃는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선물로 받은 구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연약할 때, 죄인 되었을 때, 원수 되었을 때에, 은혜로 구원해 주셨기 때문이다.
아들의 나라로 한 번 옮겨진 사람은 다시 흑암의 권세로 돌아가는 법은 결코 없다.
2. 구원은 성화를 이루어 가야 한다.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행26:18)
믿음으로 구원 받는 성도들은 ‘거룩하게 된 무리’이다.
은혜로 믿음으로 선물로 구원을 받지만, 구원 받은 사람은 이제 옛날로 돌아갈 수 없다.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울 수 없다.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한 것이다.
구원 받은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아야 한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5:8)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었지만,
이제는 우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다.
전에는 죄인이었지만, 이제는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으니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구원 받았으니 이제는 무슨 죄를 지어도 좋은 것이 아니다.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누구에게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6:15)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에서 만나와 생수를 공급하시며 가나안을 살 수 있는 훈련과 연단을 하셨다.
주리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면서 애굽의 묵은 떼, 옛 사람과 그 행위들을 벗기고
가나안의 새 사람 입는 훈련을 하셨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훈련을 하셨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여 살면 모든 것을 더해 받는 훈련을 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냥 애굽으로 살기를 원했고, 그 많은 다수가 광야에서 멸망 당하고 말았다.
2세대들은 가나안에 은혜로 들어갔지만 들어가서 떡으로만 살기를 고집하다 역시 멸망 당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히2:3)
우리가 들은 것에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제 아들의 형상을 닮아가야 한다.(성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삶을, 말씀을 통해, 성령을 힙입어, 본받고 닮아가야 한다.
구원의 창시자인 인간 예수도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온전하게 하셨다(히2:10)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다.(히5:8-9)
이제 구원 받은 우리는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이 하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가야 한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야 한다.
성취, 성공이 먼저가 아니고 거룩함을 이루는 것, 아들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이 먼저이다.
광야 긴 세월 동안 하나님이 우리 자녀들을 고난으로 연단하고 훈련하시는 것은
말씀으로 살며, 새 생명 새 사람으로 살며, 그분의 형상을 닮게 하기 위한 것이다.
교회들이 많아도, 믿는 사람들이 많아도, 세상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세상을 닮고 세상과 소유 경쟁을 하며 떡으로만 살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낮추기도 하시고 주리게도 하실 때 달려갈 곳은 떡이 아니고 말씀이다.
하나님이 그 다수를 기뻐하시시 않음으로 그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신 것을 기억해야 한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해야 한다.
세상 좋아하는 떡을 향해 아무리 달려가고 욕심을 품어도 그 끝은 멸망이다.
그 영광은 부끄러운 것이다. ‘우리 장로 대통령을 뽑자’고 온 교회가 아우성이더니
그 대통령이 지금 어디 가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큰 교회를 이루더니 그 떡과 바벨탑을 아들 목사에게 세습할려고 하다가 망신을 당하고 있다.
그 끝은 멸망일텐데 아직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오히려 반대하는 사람들을 마귀라고 한다.
눈 앞에 쌓아둔 떡만 보이지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보이질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먼저 고난을 통해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신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거룩을 온전히 이룬 자를 축복하시고 영광으로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를 기뻐하시지 세상 마음에 합한 자를 기뻐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어떤 형편을 주시더라도 자족하기를 배우고
풍부에도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고난 중에 배워가야 한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둘 것을 믿어야 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은 하나님이 심은 가지이지 바벨탑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되면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속히 이루게 하신다.
3. 구원은 영화로운 기업을 얻게 한다.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행26:18)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1:18)
우리가 잠시 받은 고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하신다.
장차 우리가 받을 영광은 우리가 현재 받는 고난과 비교할 수가 없다고 하셨다.
우리는 이 땅에서 천국을 살다가 예비된 천국에 가서 영원한 영광을 영생 동안 누리게 된다.
마침내 복을 주시고, 마침내 영광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고난으로 훈련하신 것이다.
고난은 영광을 위한 것이지, 고난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친히 말씀으로 약속하시고 친히 이루시는 구원의 영광이다.
믿음으로 구원하시고,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시다가, 영광의 구원으로 끝을 맺으신다.
이 땅에서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주의 형상을 이루어가다가,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우리는 주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원한 영화를 누리게 된다.
썩어지고 시들고 마는 세상의 영광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
악인들이 자랑하는 세상 영광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하고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하고 만다.
악인들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여호와를 의뢰하고 여호와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으라.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오직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기업으로 받은 믿음의 선진들을 본받아야 한다.
우리를 괴롭게 하신 만큼 우리가 화를 당한 만큼 우리를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마음 눈을 밝히 뜨고 우리를 부르신 소망이 무엇인지, 거룩한 무리 가운데서
우리가 받을 기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시글락의 고난이 끝나면서 헤브론 영광이 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늙은 것과는 상관 없이, 하나님은 결실하게 하시고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게 하신다.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고,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게 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