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아카데미

[스크랩] 존 오웬, "그리스도의 영광", 8장 구약에 예표된 그리스도의 영광, 9장 교회와의 연합 가운데 나타난 그리스도의 영광

강대식 2018. 10. 31. 14:40

8장 구약에 예표된 그리스도의 영광

 

우리는 성경에서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24:27)라는 그리스도에 관한 기록을 본다. 그러므로 모세와 선지자들, 그리고 모든 성경이 그리스도와 그 영광을 증언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번에는 구약성경을 통해서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영광이 제시되는 방식과 방편들에 대하여 간단하게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율법에 기록된 예배와 그 예배의 모든 방편들을 정한 규례 속에 그 영광이 예표된다

 

성막과 성전은 무엇인가? 성소와 그곳에 있는 도구들은 무엇인가? 그곳에 있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말씀과 법궤, 그리고 그룹들과 속죄소 등은 무엇인가? 대제사장과 그 예복들과 행동 방식을 규정하는 여러 규례들은 무엇인가? 매년 지성소에 들어가 희생 제물의 피를 뿌린 것은 무엇인가? 구약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 가지고 있었던 모든 체계는 무엇인가? 그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 직무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것들은 그림자이다. 그리고 그 그림자를 통해서 예표된 실체는 그리스도시다.

 

구약의 백성들은 바로 그런 방편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구약시대의 교회 생활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어렴풋하게 드러내는 것이었다.

 

2. 그리스도가 사랑과 은혜 가운데서 자기 교회와 교통할 것을 신비적으로 그린 것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영광이 표현된다

 

성경의 많은 부분에 이 점이 시사되어 있으며, 특히 구약에는 이것을 선언할 목적으로 계획된 책이 있다. 그 책은 바로 솔로몬의 아가서이다. 솔로몬은 그리스도의 모형이었고, 아가서를 기록하게 하신 분은 성령이었다. 아가서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교회와 더불어 사랑과 은혜 가운데서 거룩한 교통을 나누실 것을 은혜롭게 기록하고 있다. 아울러 그리스도의 교회가 그 사랑에 따라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을 그리고 있다.

 

3.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시대의 지도자 몇 사람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심으로써 장차의 일을 나타내고 알리셨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자신의 성육신을 넌지시 예시하기 위함이다. 물론 그 당시에 그리스도는 오직 하나님으로 계셨지만, 자신이 어떤 분이 되실 것인지를 전하기 위해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이다(아브라함, 야곱, 모세...). 또한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묘사할 때, 하나님께서 사람과 똑같이 슬퍼하고 후회하고 진노하고 기뻐하시는 등 사람의 정서를 항상 가지고 계신 분으로 기록하고 있다. 장차 이루어질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4. 예언적인 환상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난다

 

사도는 이사야가 본 환상이 바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본 것이라고 확언한다.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12:41).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신격을 지니고 영광의 보좌 위에 높이 계신 것을 뜻한다.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실 때에도 그리스도께서는 동일하게 영광스럽게 나타나셨다(19장 참고). 시편 기자가 그 영광에 대해서 묘사한 것(68:17-18)을 사도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에 적용한다(4:8).

 

4.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심으로써 우리가 탐구하는 그 모든 영광의 주인공이 되셨으며,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교리가 계시되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가장 분명하게 계시된 곳은 복음서이다. 그런데 이미 구약 속에 그 일이 많이 계시되어 있다. 어느 누구도 그 모든 것을 알지 못했다고 핑계 댈 수 없다. 물론 그리스도께서 장차 육신을 입으실 것과 통치하실 것을 드러내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했지만(9:6-7), 그 선포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많은 어둠이 남아 있었음을 인정한다.

 

그런데 그 모든 예언이 복음서에서 설명되고 선포되어 그 신비한 의미가 눈에 보이게끔 우리에게 확연히 드러났다. 그 예언의 모든 표현이 정확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지금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율법에 의해서 정죄 받을 눈멂이다.

 

6. 그리스도에 관한 약속들과 예언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영광이 표증되었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리스도께서 오심, 그리스도의 직무나 나라, 그 모든 것 가운데 나타난 그리스도의 영광,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와 사랑이 모두 구약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생명선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그것들을 설명하실 때 모세와 그 모든 선지자들의 글을 인용하셨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5:39).

 

그런데도 성경에서 그것들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분간해 내지 못하는 것은, 우리 마음에 수건이 덮여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선포되고 표증된 그리스도의 영광을 발견하고 살펴보려는 의도가 없다면, 아무리 구약의 말씀을 묵상하거나 읽거나 연구한다고 할지라도 아무 유익이 없다.

 

7. 구약에서는 은유적인 표현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와 순종의 향기를 장미로 표현하기도 하고, 또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아름다움과 호감을 백합화에 비유하여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스도의 가치를 값진 진주로 나타내기도 한다. 또 그리스도의 풍성하신 열매를 포도나무에 비유하기도 한다.

 

9장 교회와의 연합 가운데 나타난 그리스도의 영광

 

1. 교회의 구원을 위해 담당하신 그리스도의 직무의 정당성

 

먼저, 모든 택한 백성들, 곧 하나님의 교회 전체는 아담 안에서 율법을 어긴 일로 인해 저주 아래 떨어졌다. 어느 누구도 이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죄가 심판받지 않은 채 그냥 간과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와 거룩과 진리에 합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구원하기 위한 뜻을 정하셨다면, 반드시 그들이 당할 그 형벌을 다른 데로 옮겨야만 했다.

 

가장 처음에 주어진 약속 안에서 그 점이 시사되었고, 그 후에 구약의 모든 제도들을 통해서 그것이 설명되고 확증되었다. 율법의 제사 제도들이 가지고 있는 궁극적인 목적과 용도는, 형벌 받을 자에게서 그 형벌을 벗겨 대신 희생될 이에게로 옮기는 것을 예표하는 것이었다.

 

1)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죄 때문에 심판을 받는 것은 신적 공의의 성질에 위배되지도 않고 사람의 본성의 빛의 원리를 훼손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어느 누구라도 다른 사람의 죄 때문에 형벌을 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절대적으로 합법적이지 못한 일이다. 그러나 성경은 확실하게 말한다. 우리의 조상들은 범죄하고 없어졌으며 우리는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5:7).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벨론의 포로로 잡히게 하신 것은 그들의 선조들의 죄에 대한 징벌이었다. 그처럼 가나안은 그 아버지의 죄 때문에 저주를 받았다(9:25 참고). 또한 다윗의 죄 때문에 칠만 명의 백성이 죽임을 당했다(삼하24:15-16 참고).

 

2) 이런 공의가 문란하게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다른 사람의 죄 때문에 형벌을 받는다는 말은 아니다. 그렇게 시행하려면 특별한 이유와 원인이 있어야 한다. 죄를 짓는 자와 그 죄 때문에 심판받는 자 사이에 특별한 관계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한다.

 

먼저, 형벌이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지려면 특별한 관계가 요구된다. 앞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부모와 자녀 관계이거나, 다윗의 경우처럼 왕이나 신하의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죄를 짓는 자나 고통을 당하는 자가 한몸을 이루어야 한다. 한몸 안에서는 한 지체가 죄를 범하면 당연히 다른 지체들도 고통을 당할 수가 있다.

또는 그런 경우에 서로 이해관계를 가져야 한다. 다른 사람 때문에 형벌을 받는 자들은 그들과 이해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그렇게 형벌을 받는 것이 죄지은 자들에게 심판이 되는 것이다.

 

3)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는 세상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는 그 어떤 경우보다 더욱 긴밀하고도 친근하며 훨씬 더 높은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고난을 받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정당하고 공평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행하고 당하신 일이 우리에게 전가되는 것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공평한 일이었다. 그리스도와 교회와 다음과 같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첫 번째 관계는 육친적인 관계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를 한 혈통에서 나게 하셨다(17:26 참고). 그러므로 모든 인류 사이에는 동족 관계, 또는 동맹 관계가 성립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누구나 형제이며 이웃이다. 그러하기에 모든 사람에게 자애로워야 한다.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에도 이런 관계가 존재한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2:14). 그래서 성경은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2:11)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관계가 다른 모든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와 같은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는 두 가지 면에서 독특하고도 탁월하다.

 

첫째,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관계는 한 본성의 필연성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자원하는 의지의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의지적 행동으로 혈육에 참여하셨다. , 우리와 이런 관계를 맺기로 자원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인성 안에서 교회와 맺은 관계는, 인성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끼리 공통적으로 가지게 되는 관계와 크게 구별된다.

 

둘째, 그리스도께서 그런 관계에 들어오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취하심으로써 교회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을 하고 당해야 할 일을 당하기 위해서이다.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2:15).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입고 교회와 관계를 맺으신 유일한 목적이 그것이다. 바로 그 점이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관계를 사람들 간의 어떤 관계보다 더 위대하게 만든다. 바로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그분이 영광스럽고도 보배로우신 것이다.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에는 신비로운 관계가 존재한다

몸의 머리와 지체 간에 존재하는 관계, 남편과 아내 사이에도 존재하는 관계처럼, 성경은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에도 그런 관계가 존재함을 풍성하게 선언한다. 사도는 말한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5:25).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머리요 남편이 되신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거룩함을 입고 구원받게 된다. 그런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와 고난이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고난을 당하시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행하고 당하신 일의 효력이 교회에 전가되는 것 역시 옳다.

 

이런 신비로운 연합은 그리스도의 영의 실제적인 참여가 없이는 사실상 완성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서 고난을 받으시기 이전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택자들을 그리스도께 주겠노라는 최상의 의지를 세우셨다. 그래서 그리스도께 그의 택한 백성들을 맡기시사 구속하고 거룩하게 하며 구원하도록 하신 것이다. 주님께서 친히 그 점을 선언하신다(17:6, 9).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위한 새 언약의 보증자가 되신다

연합을 이루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한 보증인이나 후원자가 되어 그 언약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부과되어야 마땅한 것을 책임지고 담당하게 된다면, 그 연대적인 연합은 매우 뛰어난 연합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그와 같이 교회를 위해 새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7:22).

 

그리스도께서 이 언약에 입각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교회를 향하여 요구되는 것들을 그들을 위해 대신 당하기로 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교회가 거룩해지고 구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 죄인들의 죄책과 형벌이 그들에게서 다른 이에게로 옮겨지는 신비에는 몇 가지 기본 원칙이 잇다. 그 교회의 죄책과 형벌을 담당하는 이는 모든 방면에서 무죄하고 순결하며 스스로 의로워야 한다. 그분은 성경의 모든 계시의 생명이요 혼이요 중심이시다. 이런 점에서 믿는 사람들에게 그분은 지극히 영광스럽고도 보배로우신 분이다. 그 어떤 마음도 이와 관련한 그리스도의 영광을 상상하거나 표현해 낼 수 없다.

 

2. 그리스도의 직무의 열매 가운데 나타난 그리스도의 영광

 

첫째, 죄를 용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공의가 높아진다는 면에서 그 영광이 빛난다. 통치와 다스림에서 드러난 공의보다 하나님의 성품에 더 합당한 개념은 없다. 그 죄를 마땅하게 징벌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온 교회, 하나님의 선택받은 모든 백성들은 죄인이다. 택하신 백성들을 모두 벌하지 않은 채 그냥 지나쳐 버려야 하는가? 그렇게 된다면 그 공의는 어디로 가는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거나 일관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리스도의 중재 사역, 곧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으로 말미암아 형벌이 교회에서 그리스도에게로 옮겨진 이 놀라운 일에는, 하나님의 공의와 죄사함이 복된 조화를 이룬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영광의 한 예증이다. 순교자 저스틴이 말한 것처럼, 우리도 오 복된 바뀜이여! , 달콤한 교환이여!”라고 경탄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원하는 심정으로 교회와 연합을 맺으셨으며, 이 연합의 결과로 하나님 앞에서 그에 상응하는 일을 감당하게 되셨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무리의 죄의 형벌을 그리스도에게 지우셨으며, 그렇게 하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를 값없이 은혜롭게 용서해 주셔도 하나님이 전혀 불의하지 않게 되신 것이다. 아울러 그 일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뿐만 아니라 공의도 높여 하나님을 영예롭게 한다(3:24-26).

 

언뜻 보기에는 하나님의 공의와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일 사이에 모순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모순되어 보이는 것이 제거되고 없어졌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과 율법의 공의가 행사되고 나타났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승리로 말미암아 은혜와 긍휼이 그 영향력을 최고로 행사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믿는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그 영혼들을 만족하게 하는 영광이다.

 

하나님의 의를 선언하고 자기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긍휼을 행사하신 일을 하나님께서 친히 영원히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것보다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영혼의 안식과 위안을 주기 위해서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둘째,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온전히 이루고 성취하시는 그 순종 속에서 영광이 드러난다. 그런 순종은 순종을 받으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거룩과 의의 차원에서 볼 때 너무나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우리는 결코 율법을 이룰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을 힘입어 그 율법이 우리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그 율법을 이루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을 주시고 그것의 영원한 상급을 덧붙이신 하나님의 영광이 참으로 드러나게 된다(8:3-4).

 

믿음으로 그 영광을 바라보는 자마다 모든 두려움을 물리칠 것이고 모든 반론에 대처해 나갈 것이며, 가난하고 시험받고 의심하는 영혼들의 모든 낙담을 극복하여 이기게 만들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영광이다. 또한 그것은 신자들이 휘장 안에 던져 넣을 수 있는 닻과 같다. 그것이 모든 시련과 폭풍과 삶과 죽음 가운데 있는 온갖 시험을 이겨 내고, 견고하고도 굳건하게 설 수 있도록 붙들어 줄 것이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유정식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