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11/11 주일설교, `이같이 큰 구원`, 히 2:1-4
2018-11-11 주일설교
본문: 히 2:1-4
제목: 이같이 큰 구원
1.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히2:1)
무엇을 듣는가가 중요하다. 들으면 그것을 유념(마음에 두고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들은 것에 영향을 받고 그 세계로 흘러 들어간다.
요즘 귀에 꽂고 뭘 듣느라고 마주오는 사람(차)과 부딪치기도 하고 구덩이에 빠지기도 한다.
목숨을 건다는 의식도 없이 생명의 위험에 빠진다.
비단 육체 뿐 아니라 정신적이고 영적인 면에서 받는 손상은 말할 것도 없다.
귀를 즐겁게 해주는 말과 음악만을 듣다가 그 어둠의 세계로 흘러 떠내려가고 만다.
구약 성경은 “들으라”로 시작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 라고 한다.
“이스라엘아 들으라(쉐마 이스라엘)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6:4-9)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희의 귀에 말하는 규레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신5:1)
쉐마 이스라엘!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심을, 듣고 알아야 한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듣고 행해야 한다.
이 말씀은 우리 주님께서 크고 첫째 되는 계명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말씀이다.
말씀은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야 한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고 하신다.
들은 것을 유념하는 방법이다. 이 모든 것이 말씀을 듣기 위함이요 순종하기 위함이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우상의 가르침을 듣기 좋아하다 멸망했다.
우상의 가르침은 세상의 가르침이요 세상 지헤요 초등 교사요 초등 학문의 가르침이다.
사람의 계명을 교훈으로 삼아 가르치니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였다.
사무엘은 사울 왕에게 듣지 않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죄와 같다고 하였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15:22-23)
하나님은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하신다.
주일 날 예배만 드렸으면 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새겨 들어야 한다.
예배(제사)는 하나님께 순종의 표현이요 순종으로 이어져야 한다.
입술로만 하나님과 가깝고 마음은 멀기 때문에 말씀을 듣는 것과 순종의 삶이 괴리를 이룬다.
말씀을 듣는 것은 순종하기 위함이요, 말씀은 온데간데 없이 제사만 드리는 것은
거역이요 완고한 것이다. 그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사신 우상에 절하는 죄와 같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므로 버림을 받고 왕권의 축복을 빼앗기고 말았다.
40년 동안 왕 노릇을 하였지만 그 마지막 비참함은 왕을 하지 않음이 나았을 것이었다.
말씀을 버리면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받은 축복도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듣지 않는 것은 거역하고 완고한 것임을 알자.
나도 모르게 점치는 죄를 범하고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임을 알자.
성경이 왜, 들으라는 것을 강조하는지를 알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1-3)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그 아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셔서 친히 말씀하셨다.
그것이 신약 성경의 시작이요 성경의 완성이다.
이 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시는 광채이시고 하나님 본체를 형상으로 보여 주신 분이시다.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통치하고 계신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셨고,
지금은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다.
이 아들이 택하신 열 두 제자들이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듣고 전하는 것이 복음이다.
요한 사도는 듣고 보았음을 강조한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요일 1:1-3)
아들은 태초부터 생명의 말씀으로 계셨고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 것이다.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 되었다.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한 것이다.
이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이시다.
우리는 보고 들을 바를 너희에게 전하는 것이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리는 사귐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에서 우리에게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청종함이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여 준다.
이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만이 축복과 형통의 지름길이요 유일한 길임을 명심하자.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이미 우상과 세상이 그 마음을 점령하고 사로잡았다는 증거이다.
한 주일 동안 말씀 한 줄 읽지 않고 그 말씀을 요약해 주는 주보도 가져가지 않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무섭고 놀라운 일이 닥칠 때 너희가 어찌할 것이냐는 말씀이 귓전을 때린다.
지금 세상은 교회마져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게 하고 세상 초등학문의 지혜를 듣게 한다.
많은 회중들이 그것을 좋아하고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을 듣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아모스 선지자의 탄식은 구약 이스라엘을 향한 것이며 동시에 오늘 교회를 향한 것이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8:11)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 현재도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이 하나님이 보내시는 기갈인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불의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미혹의 역사를 보내 거짓 것을 믿게 한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일만 스승은 있어도 복음으로 생명을 낳는 아비 스승은 적다.
거짓 목사들이 멸망으로 인도하는 큰 문 넓은 길로 많은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하신 주의 말씀을 기억하라.
마지막에 아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은 영으로 하신 말씀이다.
사도들이 아들을 통하여 말씀을 듣고 전할 때 하나님은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다.
바울은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말씀을 전한다고 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혼잡하고 있지만,
자기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전한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으로 전하는 것인지 세상 지혜로 전하는 것인지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얻기 바란다.
이 지혜는 위로부터 오며 구하는 자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는다고 하셨다.
우리가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하지 않으면 우리가 흘러 떠내려 가고 만다는 것을 기억하자.
흘러 떠내려 가지 않도록 말씀을 듣는 것에 더욱 유념함이 마땅하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 성경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축복의 자녀들이 되자.
우리의 마지막은 금새 오고 말며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2. 이스라엘의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다.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히2:2)
우리는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를 건성 듣고 건성 흘려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 이스라엘의 운명이 곧 현대 교회 이스라엘의 운명임을 지각하지 못하고 있다.
평안하다 평안하다 하고 있을 때 이스라엘의 멸망이 닥치고 말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천사들이 모세에게 말씀을 전해 주었다고 믿는다.
그 말씀이 견고하게 되었다는 것은 견고하게 실행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공정한 보응을 받은 것이다.
사람의 판결과 보응은 돈의 유혹에 권력의 쥔 세력에 끌려가고 불공정하기가 일수이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이 그냥 나오는 말이 아니다. 서민들의 탄식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불공정하시지 않고 거룩하고 의로우신 성품에서 나오시는 것이다.
말씀을 들려주셨고, 순종을 요청하였고, 그럼에도 범죄하며 불순종한 것에 대해서는
참고 기다려주시기도 하시지만 언제고는 그 심판을 하심이 공정하신 것이다.
역사의 심판을 보면서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망하리라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히브리서는 예수 믿는 유대인들 중에서 고난과 핍박이 장기간 이어지니까, 이를 피하려고
다시 유대인들의 종교로 돌아가려고 하는 이들을 경고하고 위로하기 위해 쓴 책이다.
사람은 다수를 좋아하지만, 하나님은 다수를 기뻐하지 않음을 유의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의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전10:5-10)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그런즉 선 즐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지까 조심하라”(고전10:11-12)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나 구원 받는 자는 소수인 것을 성경은 누누이 말씀하고 있다.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하고 주께 물었을 때 주님은 대답하셨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13:23-24)
넓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좋아하다가,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많은 자에 속하지 않아야 한다.
종교적인 업적을 내세우며 들어가려 하여도 주님은 너희를 도무지 모른다고 하신다고 하셨다.
구약 이스라엘에 대한 공정한 심판을 듣고 보면서 그것은 우리의 본보기요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된 것임을 알고 심각한 깨우침이 있어야 한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
3.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그 보응을 피할 수 없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것이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능력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히2:3-4)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이같이 큰 구원인 것을 명심해야 한다.
구원을 위해 우리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크신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그분의 아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그리고 성령께서 각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진 큰 구원이다.
그냥 예수를 믿는다고만 하면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그 이름을 믿고 마음으로 그분을 주로 영접하고 그분을 통해 하신 말씀을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에 할례를 받아야 하고 이면적 이스라엘이 되어야 한다.
삼위 하나님이 친히 이루신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하신다.
이 구원은 처음에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것이다.
하나님도 그들과 함께 표적들과 능력과 성령의 은사들을 통해 증언한 것이다.
이 복음을 우리가 귀로 들은 것이다.
세상 일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그 목적과 뜻을 망각하고 그 세상으로 흘러 떠내려 가버리면
구약 이스라엘이 받은 공정한 보응처럼 우리도 그 보응을 피할 수 없다.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않았는지 돌아보고 회개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다시 주님을 통해 사도들을 통해 성경을 통해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으로 흑암으로 흘러 떠내려 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절로 지킨다.
우리가 들은 것을 더욱 유념함으로 흘러 떠내려가지 않은 것을 감사하며,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않음으로 그 보응을 피하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하는 절기가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