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1/27 주일설교, `어둠에서 빛으로`, 행 26:18
2019-01-27 주일설교
본문: 행 26:18
제목: 어둠에서 빛으로
예수 믿는 자들을 극렬하게 핍박하던 바울을, 주님은 돌이켜서,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삼으셨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3,15)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의 고발로 감옥에 갇혀 있는 중 변명할 기회를 얻어서
아그립바 왕과 총독 앞에서 하는 자기 변호의 말씀 중 일부이다.
주님이 자기의 사명을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구원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밝히 알게 해주고 있다.
1. 구원은 그 눈을 뜨게 하는 것이다.
“그 눈을 뜨게 하여”(행26:18)
주님은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하셨다.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눅11:34-36)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고, 눈이 나쁘면 몸도 어둡다는 것이다.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고 하신다.
온 몸이 밝아지는 것은 눈을 성하게 하여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게 하는 것이다.
그 눈은 영혼의 눈이요 마음의 눈이다.
우리의 영혼은 구원 받기 전에는 죄와 허물로 죽어 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즉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
이것이 구원이다.
그 죽은 영혼은 눈이 어두워서 어떻게 행하는지를 자세히 말씀한다.
“그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2-3)
죄와 허물로 영혼이 죽어 있고 눈이 어두우면, 이 세상 풍조를 따라 살게 되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게 된다.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 하였다.
그 가운데서 곧 죄와 허물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고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만을 하면서 그 본질이 진노의 자녀인 것이다.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대로 행한다는 것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다는 것이다.
그 소견에 옳은 대로 사는 것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암흑의 땅, 멸망의 땅으로 만든다.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멸망케 했고, 현대 교회와 교인들을 멸망으로 인도하고 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
우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
이것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시 만드시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우리를 다시 지으신다.
이것이 구원이고 눈을 뜨는 것이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눈을 떠야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들을 볼 수 있고 알 수 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2:14)
주님은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맹인이라고 하셨다.
두 눈을 말짱하게 뜨고 백성들을 가르치고 지도자로 군림하는 자들을 그렇게 부르신 것이다.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마23:16)
“맹인들이여”(17)
“맹인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24)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고,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다.
그들은 뱀들이었고 독사의 새끼들이었다. 사탄 곧 뱀의 후손들이었다.
그들은 결국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다고 하셨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33)
지금도 뱀들과 독사의 새끼들이 현대 교회와 교인들을 지배하고 있다.
음부의 권세가 이스라엘과 성전을 무너뜨렸듯이 지금도 교회와 교인들을 무너뜨리고 있다.
눈을 뜨고 성령을 힘입어 영적으로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종교지도자들은 본다고 하니 죄가 그대로 있는 것이다.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요9:39-41)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는 것이 심판이다.
육에 속해 있어서 보지 못하는 자들은 눈을 뜨게 해서 곧 성령으로 거듭나게 해서 보게 하고,
소위 본다고 안다고 하는 자들은 편견과 지적 교만으로 인해 맹인이 되게 하는 것이 심판이다.
자기들은 눈을 뜨고 다 보고 다 안다고 하면서 봐야할 것은 못보니 맹인들인 것이다.
우리도 맹인인가? 하고 묻는다. 이 맹인들은 자기들이 맹인인 줄을 모른다.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본다고 하니 죄가 그대로 있다.
본다고 하면서 못 보니, 안다고 하면서 모르니, 그것이 문제이고 죄이다.
세상 지혜로 가득 차있으니 하늘 지혜를 받을 수 없고 그것이 배설물이고 쓰레기인 줄을 모른다.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다고 하셨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마13:15-16)
마음이 완악하다는 것은 마음(heart)에 기름이 잔뜩 끼어서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미 예언을 하였고 주님은 그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신다.
마음에 기름이 끼어서 눈으로 보지도 귀로 듣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주님께 고침 받는 것을 두려워한다.
선지자들도 의인들도 못 보고 못 들은 것을 너희는 보고 들으니 복이 있다고 하신다.
주님의 말씀을 친히 읽고 보고 듣는 것을 복으로 여기시기 바란다.
2. 구원은 어둠에서 빛으로 영역을 옮기는 것이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그 눈을 뜨게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역을 옮기시는 것이 구원이다.
어둠의 영역에서 빛의 영역으로,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옮기는 것이다.
한번 옮겨진 영역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골1:13)
눈을 뜨게 한 후로,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옮겨진 후에는
죄를 지었다고 충성을 다 못했다고 도로 빽하여 어둠의 나라로 돌아가는 일은 없다.
확실히 죄와 허물에서 죽은 영혼이 살아나서 그 눈을 뜨게 한 것이 분명하다면 말이다.
그 눈이 확실히 떴느냐 확실이 어둠에서 빛으로 영역이 옮긴 사실이 있었느냐가 중요하다.
참으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 있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눈을 떴다고, 영역이 어둠에서 빛으로 옮겼다고, 한순간에 사람이 완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순간적으로 완전히 받지만,
성화는 어린 아이로 출생하여 어른으로 점차 성장하여 가는 것이다.
전에는 우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었지만,
이제는 우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러 가야 한다.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 되었으니 빛의 자녀들처럼 행해가야 한다.
전에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며 살아가야 한다.
음란과 정욕과 방탕으로 산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고,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아가야 한다.
예수 믿은지가 오래 되었으면 계속 초보에만 머무르지 말고 벌써 선생이 되어야 한다.
젖이나 먹는 어린 아이에서 단단한 음식도 먹을 수 있는 장성한 자가 되어야 한다.
고난을 통해 연단을 받고 지성과 감성을 사용해서 선악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온갖 지혜로 가르침을 받고 권면을 받아서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워져가고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나도 힘을 다해 수고해야 한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해야 한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진리의 복음이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여 온전한 성품 온전한 능력을 갖추게 해준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그 눈을 뜨게 하고 온 몸을 밝게 하였지만,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 주셨지만,
공중 권세 잡은 자, 어둠의 영, 사탄의 권세는 우리를 계속 괴롭히고 유혹을 한다.
그것이 믿음의 연단이요 성숙을 위한 사망의 골짜기이다.
계속해서 주의 말씀으로 내 발에 등을 삼고 내 길에 빛을 비추어야 가나안에 도달할 수 있다.
항상 성령을 구하여 능력을 힘입고 성경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해야 한다.
그 믿음과 행함만이 복이 있게 하고 어디로 가든 무엇을 하든 형통하게 해주신다.
3. 구원은 죄 사함과 기업을 얻게 하신다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행26:18)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해 대신 피흘리고 심판을 받으셨기에
우리는 믿음의 선물을 은혜로 받아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받아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의 평강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고난 가운데서 연단하시는 것은 기업을 주시기 위함이다.
주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얻는 기업이다.
우리를 택하고 부르신 목적은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것이다.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전3:1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
우리 주 예수 다시 오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어야 한다.
온전히 거룩해지고 온 영과 혼과 몸이 흠 없게 보전 되어야 한다.
거룩함이 우리 구원의 목적이요 복은 그 결과 임하는 것이다.
그래서 복과 형통이 우리의 목적이 될 수 없다. 기복 신앙, 신비주의, 은사주의에 미혹된다.
그것을 이루는 조건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거룩함 없이는 복이 없다.
우리의 현재 진행형과 목적은 오직 주 앞에 거룩함에 있어야 하고
거룩함을 이룰 때 하나님은 복을 주시고 형통케 하시는 것이다.
눈을 뜨게 하여서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이켜 구원하신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무엇으로 그분을 기쁘게 섬겨야 하는지를, 명심해야 한다.
복과 형통은 의(거룩함)와 함께요, 의(거룩함)의 결과이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시24:3-6)
여호와를 찾는 족속,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가 여호와의 산에 오른다.
손(행실)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않고 거짓 맹세하지 않는 자가
여호와의 거룩한 곳에 설 수 있고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을 수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1:17-19)
우리는 항상 부족하고 연약하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 지혜와 계시의 영을 구해야 한다.
성령께서 지헤와 계시를 주셔야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의 눈을 계속 밝혀 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알 수 있다.
또한 영을 부어주셔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지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안에서 위에서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고 계심을 믿어야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옮기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