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창원, "청교도 신학과 신앙", 7장 청교도의 성경 해석, 8장 청교도의 예배관 (유정식)
7장 청교도의 성경 해석
이번 장에서는 패커의 논문과 윌리엄 퍼킨스의 「설교의 기술」을 중심으로 청교도의 성경 해석의 원리와 방법 및 적용 문제를 다루려고 한다.
1. 하나님의 발언록으로서의 성경
청교도들에게 성경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발언록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글로 전개된 것이요, 인간을 교육하시고자 하나님의 마음이 글로 펼쳐진 것이며, 하나님의 생각들이 선포된 것이다. 따라서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은 성경을 단순히 오래전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야기로 읽지 말고, 모든 시대의 독자들에게 여전히 말씀하시는 말씀으로 읽어야 한다. 토마스 왓슨은 “당신이 읽는 모든 절에서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고 계심을 생각하라”라고 말했다.
2. 청교도의 성경 해석 원리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어떻게 가르치고 전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성경해석과 적용이라는 측면에서 다루어진다. 청교도들은 성경 본문을 조직적으로 분석하고 적용함으로써 강단 사역에서 진리를 선포하고 가르치고자 추구했다. 설교자는 본문의 메시지를 전하는 대변자가 되어 전하고자 하는 본문을 섬겨야 한다.
설교자는 먼저 본문의 내용을 평이하게 설명하고, 문맥의 연결점을 찾으며, 본문의 구조와 구성이 어떠한지를 파악해야 한다. 이 모든 작업은 성경의 저자가 의도한 바와 전체 범위가 무엇인지를 청중들이 잘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다음에는 본문으로부터 본문이 나타내거나 암시, 또는 전제하거나 예증하는 한두 개의 교리적 명제들을 이끌어 내야 한다고 퍼킨스는 주장했다. 그러나 일단 진술된 교리들은 본문을 더 상세히 분석하고 다른 본문에서 말하는 바를 대비시킴으로써 입증되어야 한다. 다음은 적용 단계인데 이후에 언급하겠다.
청교도들의 성경 해석 원리는 모두 다섯 가지이다. 물론 성경 해석 원리에 관하여, 청교도들은 “성경에서 성경으로 해석한다”라는 대전제 하에 본문의 의미를 문자적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보았다.
1) 문자적, 문법적 해석
중세 시대에는 다양한 영적(Allegorical) 의미를 선호하다 보니 성경을 해석하면서 성경의 문자적 의미를 경시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풍유적인 해석을 배격하고, 성경의 문자적 의미, 즉 문법적이고도 자연스러우며 저자의 의도를 밝히는 해석만을 성경이 지니고 있는 유일한 해석으로 믿었다. 존 오웬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경에는 실질적으로 성경을 구성하고 있는 단어들 속에 담긴 의미 외에 다른 의미는 없다.....어떤 사람의 생각을 해석하려면, 먼저 그가 말하고 기록한 바를 올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그가 말한 언어와 관용어구, 표현의 통상적인 사용과 취지들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않는 한, 우리는 그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직시할 수 없다......많은 강해자들, 특히 한 번역본만을 의지하여 설교하는 설교자들이 원어에 무지하여 얼마나 많은 혼란과 오해와 잘못된 해석을 내놓는지 모른다.”
2) 일관되고도 조화로운 해석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일관된 신적 마음의 표현이라면, 성경이 말하는 모든 것이 진리이어야 하며, 부분과 부분 사이에 어떠한 모순도 있을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원칙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성경의 모호한 내용을 명확한 본문에 따라 해석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또 하나는, 지엽적이고 모호한 표현들을 확실한 것들과 조화시켜 해석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즉, 기독교 교리나 요리문답의 가르침들 등에 비추어 볼 때 어딘가 이상한 것은 절대로 올바른 강해라고 볼 수 없다.
3) 교리적이고도 하나님 중심 해석
성경은 교리적인 책이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 중심적인 가르침이다.
4) 기독론적이고도 복음적 해석
그리스도는 성경의 중심이다. 기록된 모든 성경은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는 우리의 눈을 그리스도에게 굳게 고정해야 한다. 모든 성경은 아기 예수를 싸고 있는 강보와 같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예표와 그림자들의 진리요 본체이며, 은혜 언약의 실체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성경의 약속들이 만나는 중심지요 만남의 광장이다.
5) 경험적이고도 실천적 해석
성경은 인간이 믿어야 할 것이 무엇이며 영적 강건함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해 준다. 청교도들은 이러한 실천적 가르침들이 강해설교에 그대로 반영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3. 청교도 설교의 적용 원리
청교도들의 성경 해석 문제는 충실하고도 실제적인 적용으로 빛을 발했다. 그들은 교리의 ‘활용’을 논하는 것을 성경 강해의 한 부분으로 보았다. 성경 해석은 ‘말씀을 여는 것이요, 성경의 문장을 펼쳐 보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경이 청중에게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고도 연관이 있는 말씀이 되도록 만드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관계성이 드러날 때까지 진행되어야 한다.
청교도들이 사용한 적용의 활용법은 다섯 가지였다.
① 지식 전달의 활용법
이 방법은 진리의 전달을 통하여 심성을 교훈하는 일에 적용되며, 올바르게 판단하도록 도와준다. 이를 통해 성도는 하나님의 계시된 뜻을 향한 자신의 사상과 견해를 확정하도록 도움을 받는다.
② 권고 또는 간언의 활용법
이 방법은 청중에게 교리적 조명을 통하여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③ 탄원과 호소의 활용법
이 방법은 설교자가 전하는 진리의 말씀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지 않는 눈멀고도 어리석은 청중들에게 탄식하고 호소함으로써 감명을 주며, 자신들을 위하여 진리를 굳게 붙들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④ 위로의 활용법
이것은 의심과 불확실성으로 대두되어 온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이 진리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⑤ 자기 점검의 활용법
이 방법은 설명되는 교리에 비추어 자신의 영적 상태를 평가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강해 적용법이 있다. 그러나 청교도들의 설교 적용은 한결같이 교리와 적용이라는 논지에서 이루어졌다. 존 오웬은 “교리의 활용이 없는 설교는 고상하지 못한 설교이다”라고 했다. 이들의 적용은 매우 실제적이었다.
윌리엄 퍼킨스는 “설교자는 개인 경건 시간에 성경 연구에 몰두하라”라고 권고한다. 이 일을 위하여 디모데전서 4장 13절, 베드로전서 1장 10절 및 다니엘 9장 2절 말씀을 인용하여 개인 성경 연구의 네 가지 자세에 대해서 말했다.
첫째, 본문에 기술된 교훈을 마음에 새기며 암기하라. 이것은 명제에 대한 정의와 분석 및 적용을 생각하는 작업이다.
둘째, 성경 읽기에 주력하되 문법적, 수사학적, 논리적으로 분석하면서 읽으라. 먼저 로마서와 요한복음을 읽고 나서 성경의 나머지 부분을 읽으면 성경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또 구약의 교리적인 책, 특히 시편과 예언서(그 중에서도 이사야)와 역사서(주로 창세기)를 읽으라. 사도들과 전도자들은 이사야와 시편을 많이 읽었다.
셋째, 정통 신학 서적을 읽으라. 최근의 신학 동향뿐만 아니라 고전도 읽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말라. 모든 연구 활동 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간구해야 한다(시119:18 참고).
8장 청교도의 예배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예배 모범 지침서에 준하여
1. 개혁파 장로교 예배 신학 원리
1) 예배의 통일성의 원칙
교회는 주님의 교회로 하나이다. 따라서 하나 된 교회로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형식도 반드시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오늘날 예배 갱신 운동에 앞장서는 자들을 보면 성경적인 원리와 근거를 내세우기보다는 사람들의 현실적 요구 사항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적어도 개혁교회는 예배의 통일성을 속히 회복해야 한다.
2) 성경적이고도 하나님 중심적인 예배
전통적인 개혁파 교회의 예배는 철저하게 성경적이었고, 하나님 중심적이었다. 이에 비해 현대 예배 갱신 운동은 육적이며 인간 중심적 예배를 추구한다. 예배의 핵심은 예배자의 느낌과 생각이 아니라 예배를 받으시는 예배 대상자의 뜻이 더 중요하다. 영어에서 예배를 가리켜 ‘service’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더라도, 그것이 섬김을 받는 분의 의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지 섬기는 자의 의중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 또는 규칙을 따라야 한다. 개혁교회는 이것을 예배의 ‘규정적 원리’라고 한다. 인간에게는 방종하려는 죄성이 있으므로 제한된 규정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신앙고백서에서 규정하고 있는 원리는 무엇인가?
첫째, 예배 의식은 인간이 고안해 낸 작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상상이나 고안 또는 사탄의 제안에 따라 어떤 가시적인 형상들을 사용하거나 성경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방식으로 예배할 수 없다”(제21장 1항).
‘축제’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예배자가 흥겨워하고 즐기는 인본주의적 예배는 참예배가 아니다. 이것은 마치 출애굽기 32장에서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 때 ‘자기들을 위한 하나님’을 만들고 그 앞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던’(6절 참고) 행동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둘째, 올바른 예배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행하는 의전이다. 다시 말하면, 성령 안에서 진리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창조주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 예배이다.
2. 영과 진리로만 예배하라
1) 진리로 예배하라
진리로 예배하라는 말은 계시된 성경 말씀을 따라 예배하라는 말이다. 더 나아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배해야 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시기 때문이다(딤전2:5 참고).
구약에서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제사장으로서 첫 제사 의전을 집전할 때 즉결처분을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일러 주신 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온 백성들에게 나타내고자 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다른 신들과는 구별된, 지존하시고 엄위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천명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배한다고 하지만 상당수의 교회들이 실로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종교 의식을 행하고 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예배하는 것은 예배자의 종교적 위안은 될지 몰라도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 없는 것이 되어 헛된 경배가 될 수 밖에 없다(롬10:2-3 참고).
2) 영으로 예배하라
영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테리 존슨은 이를 몇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마음을 다하는 예배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영적(내적)으로 마음을 다하여 예배해야 한다. 예배가 하나님과의 만남이라고 한다면, 그분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영(마음)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이루어질 수 없다.
둘째, 영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단순한 예배를 의미한다. 신약의 예배는 의전 행사와 같은 복잡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구약의 제사법처럼 신약의 예배법이 따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예배가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단순하고도 간단한 것임을 뜻한다. 신약 시대 성도들은 복잡한 구약의 의식법 절차에 따라 하나님께 나아간 것이 아니라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히10:22 참고) ‘보다 더 단순한 회당의 예배 의식을 따라 성경을 읽고 설교하며 기도하고 시편을 노래하는 간단한 방식’을 택하여 하나님께 나아갔다.
셋째, 영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경외심으로 예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배의 정신은 경외감이다.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는 것이 예배이다(히12:28 참고). 그러하기에 예배를 가볍게 여기거나 소홀히 여길 수 없다. 경외심은 공포심이 아니다. 마음에 깊은 감격을 안고 어려워하며 매우 조심하는 자세를 말한다. 지존하신 하나님의 이름이나 명성에 누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에 떨리는 경외심이다.
3. 개혁파 교회의 성경적 예배 요소
칼빈이 제네바에서 사용했던 예배 순서는 다음과 같다.
예배 부름/죄의 고백과 용서를 위한 기도/시편찬송/성령의 조명을 위한 기도/성경 읽기(신약과 구약에서 한 장씩)/강론 및 성례/헌금/긴 기도와 주기도문 또는 사도신경 및 십계명 암송/시편찬송/축복 선언 |
이것이 스코틀랜드에서 존 녹스가 만든 ‘공동전례집’에 그대로 반영되다가, 1648년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예배 모범 지침서에 따라 다음의 순서로 고착화되었다.
예배 부름/은혜와 조명을 위한 기도/성경 읽기(신약과 구약에서 한 장씩)/시편찬송/죄 회개와 중보기도/설교/감사와 간구의 기도/긴 기도와 주기도문 암송/시편찬송/축복 선언 |
1) 성경 읽기
성경 읽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분의 백성들을 훈육하기 위하여 세움 받은 목사나 교사들이 해야 한다. 외경은 허용될 수 없고, 오직 신구약성경 66권에서 읽되 가장 잘 번역된 모국어로 읽어야 하며, 얼마나 많이 읽을 것인가는 목사의 판단에 맡겼다.
2) 공기도
공기도는 성경을 읽고 난 후, 그리고 시편찬송을 부르고 나서 설교를 담당한 목사가 ‘청중들에게 말씀이 효력을 발하여 그들이 죄악을 회개하고 주님 앞에서 탄식하는 마음을 가지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에 목마르고 갈급해하는 심령을 가지도록 간구했다. 또한 말씀 사역에 주님의 은혜가 부어지도록 기도했다.
3) 설교
설교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것은 복음 사역에 속한 것으로서, 이 일을 수행하면서 자신만이 아니라 말씀을 듣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가장 위대하고도 영광스러운 일이다.
4) 시편찬송, 찬송
공예배에서는 시편찬송 또는 찬송을 불러야 한다.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나 칼빈의 예배에서는 시편찬송을 불렀다. 칼빈은 그의 시편찬송가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아무리 자세히 살펴보아도 성령께서 만드시고 다윗이 노래한 시편보다 좋은 노래가 없으며, 이보다 더 찬송의 목적에 부합하는 노래가 없다....”
한국 장로교회는 예배할 때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배할 때 부를 올바른 찬송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가사가 성경적이며 개혁신학을 잘 반영하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곡조 역시 찬송을 받으시는 하나님의 성품에 어울리는 것인지를 고민하여 선택해야 한다.
4. 개혁파 장로교회의 예배 회복에 관한 실제적 제안
개혁파 장로교회가 물려받은 신앙 유산은 예배 그 자체만 보아도 얼마나 풍성하고 생명력이 넘치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형식화되어 생명력이 사라지고, 마치 장례식에 참석한 것과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예배 축제 개념이다. 그로 인해 거룩하고도 순결해야 할 예배가 어떤 공연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주님의 교회는 주님의 교회다운 모습으로 회복해야 한다. 그 회복의 핵심에 예배의 회복이 있다. 즉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장로교의 특성에 맞는 통일된 예배 예전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배야말로 성도들에게서 가장 강력한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예배 개혁을 위한 실천적 지침을 살펴보자.
첫째, 공예배와 사적 예배를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적어도 공교회가 정한 주일 예배는 규정적 원리에 입각하여 가장 경건하고도 은혜로우며 즐거운 예배가 되도록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둘째, 예배의 통일성이다. 적어도 예배 모범에 직시된 내용들이 일관성 있게 제시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교회마다 예배의 틀이나 내용이 다르다. 예배 인도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셋째, 성경적 강단의 회복이다. 우려스럽게도 한국 교회의 예배에서 강단이 진리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다. 예배가 웃음거리 또는 흥밋거리 추구로 이어지고 있다. 참예배가 되려면, 반드시 강단이 하나님의 진리로 충만해져야 한다. 말씀을 맡은 목사는 한 권의 책의 사람이어야 한다. 교회는 진리의 보고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주일 성수의 회복이다. 한국 교회가 더 영적인 교회로 거듭나려면, 주일 성수 운동을 다시금 활기차게 벌여야 한다.
예배의 성경적 원리 회복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말씀이 중심이 되는 제3의 종교개혁이 강단 개혁을 통해 신속하게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