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신앙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윌리엄 퍼킨스

강대식 2019. 4. 13. 13:25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윌리엄 퍼킨스

 

하나님의 이름은 그분의 나라가 임하고 그분의 뜻이 이루어질 때, 영광스러워진다.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가 맨 앞에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모든 것보다 우선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님의 영광은 모든 피조물의 목적이며 하나님의 경륜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 간구에서 값진 교훈이 솟아난다. 즉 사람들은 자신이 맡은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행동의 최고 목적이 그의 영광이 되도록 제정하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은 무엇보다 그것을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분을 불명예스럽게 하는 자리에 자신들을 두거나, 그들이 마땅히 해야 할 때에 태만함으로 그분을 거룩하게 하지 않는 사람들의 강퍅함을 벌하신다.

 

헤롯은 그의 연설 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에 천사가 즉시 그를 쳤다(12:23).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여호와를 거룩하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더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 다음이 우리 영혼의 구원이다. 간구의 순서에서 명백히 제시된 것이다.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배운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의 어떤 부분이라도 덜 받으셨다면 우리는 우리의 몸과 영혼, 모든 것을 송두리째 그분께 드려서 하나님이 그의 모든 영광을 소유하시도록 해야 한다.

 

이 기도의 의미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들은 매우 적다. 지식이 없이는 믿음이 있을 수 없다.따라서 지식이 없이는 기도가 될 수 없다. 이 문구들의 의미를 정확히 배워야 한다.

 

이름은 하나님 자신, 속성들, 사역들, 말씀, 명예와 찬송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린다. 이것은 마치 사람들의 이름이 그들을 알리고, 어떤 사람의 모든 찬송과 영광이 그의 이름에 있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모든 영광은 이러한 것들에 있다.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거룩하게 하는 것이란 어떤 것을 일반적인 용도에서 특별한 목적을 위해 떼어 두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마치 성전이 거룩해지는 것과 같다. , 그것은 일반 건축물과 다름이 없으나 거룩한 용도로 따로 떼어 둔 것이다. 제사장들은 거룩하게 구별된다. 즉 하나님의 섬기는 일에 따로 떼어진 사람들인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거룩해진다. 그들은 죄인들이었으나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따로 떼어진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망각과 경멸과 신성모독과 오염과 참람함과 남용에서 따로 성별되고, 거룩하고 경건하고 명예롭게 사용될 때, 그분의 이름은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10:3,38:23).

 

하나님의 이름을 바르게 사용함으로써 그것이 거룩하고, 순수하며, 영예로운 것임을 세상에 선포하고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간구의 목적은 우리는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열정적인 소원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렇게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오 주님. 우리의 눈을 열어 당신을 바로 알게 하소서. 당신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과 지혜와 공의와 긍휼을 인정하게 하소서. 우리로 이 모든 것이 당신의 칭호들과 말씀, 피조물, 심판 속에 명백히 나타남을 알게 하소서. 당신을 영화롭게 하고 당신의 영광을 위해 그 이름을 경건하게 사용하게 하소서.’

 

애통해야 할 우리의 비참함

1. 우리 마음의 정신적 영적 교만이다.

주님이 그들의 눈을 열어주시지 않는다면 자신 안에 있는 죄를 보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작은 하나님처럼 생각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 이 숨겨진 교만은 다른 죄가 다 죽을 때, 원기발랄하기 시작하며 자기의 정체를 드러낸다. 마음이 높아진 모든 상황에서 계속 자기 자리를 지킨다. 바리새인의 기도 안에 있는 그 생각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기까지는 우리 안에도 있다. 사람은 세상에서 찬송과 영광을 얻기를 바라기 때문에, 하나님이 영광이 훼손된다 할지라도 그것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숨겨진 부패를 분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2. 우리 마음의 걍퍅함을 애통해야 한다.

우리 마음의 완고함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을 방해하며, 그의 창조물 속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지각하는 것을 방해한다. 우리의 구속, 그것은 얼마나 기묘한 일인가? 그러나 그것을 숙고하거나 주의하는 사람은 얼마나 적은가? 우리는 재치와 부, 명예가 더 많은 사람을 보면 곧장 경탄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물을 보고서는 우리는 그 안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창조주의 그 사랑과 능력, 지혜와 공의를 인정하기 위해 더 높은 곳으로 가지 않기 때문이다.

 

3. 우리의 크나큰 배은망덕이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다른 모든 창조물들을 인간의 섬기게 하기 위해 만드셨다. 그런데 인간은 모든 피조물 중에서 가장 감사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돼지와 같다. 돼지는 작 밥그릇으로 달려가 도토리를 먹어치운다. 그러나 그 도토리가 떨어진 나무는 쳐다보지 않는다. 다윗은 하나님께 그들의 입술을 열어 주사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여 주시도록 간구했다(51:15).

 

4. 우리 삶 속에 있는 불경건과 헤아릴 수 없는 비참함들, 세상 속에서 짓는 죄들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조롱하는 원인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우리의 선한 일로써 명예롭게 하듯이, 우리는 우리의 악행으로 불명예를 끼치기 때문이다.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그들로 너희의 선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5:16).

 

갈망해야 할 하나님의 은혜

1.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과 사역과 피조물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대로 알기를 구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와 피조물들을 통해서 그분을 볼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게 하소서”(1:10).

 

2.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열정이 우리 마음속에서 불타오르는 것을 갈망해야 한다. 또한 우리가 그분의 이름을 모독하거나 남용하지 않는 것을 소원해야 한다. 루터는 이것을 상타크라풀라즉 거룩한 과식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우리 마음에 과부하를 준다 해도 해를 주지 않는다.

 

3.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경건하고 정직한 삶을 살려는 갈망이다. 바울이 말하는 것처럼 주께 합당히 행하려고 노력하여 우리의 하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도록 우리의 삶을 정돈해야 한다.

 

윌리엄 퍼킨스, ‘주기도 해설’, PP 10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