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아카데미

'청교도신학의 관(패러다임)', 1 청교도신학의 관으로 바뀌어야 한다, 2 코비의 성공7습관은 성경의 원리를 차용한 것

강대식 2019. 5. 8. 05:23

청교도신학의 관(), PARADIGM SHIFT

 

()이 서야 한다.

 

관이 바뀌어야 한다. 조직신학도 관이 선 사람의 책을 읽어야 한다.

관이 없으면, 역사의 나열, 지식의 나열, 요약의 나열에 그친다.

역사학자들에게 사관이 없으면, 역사적 사실들의 나열에 그치고 만다.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관, 사관(史觀)이 없으면 역사의 해석을 바로 할 수 없다.

 

철학자들이 한평생 철학을 하고 나서 마지막에 쓰는 것이 철학개론이다.

철학 역사를 공부하다가 형성되는 것이 철학관이다.

철학은 한 마디로 이거다 하는 관이 서지 않으면 철학개론을 쓸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철학개론들은 관도 없는 철학사의 요약일 뿐인 것을 본다.

 

관이 설려면, 패러다임 전환이 와야 한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4:21-24)

 

패러다임은 타고난 기질, 양육패턴, 사회적 경험에 의해서 형성된다고 한다.

몸에 벤 어린시절이요, 가정문화의 DNA이다.

유익하던 옛 사람의 패러다임을 다 해로 여기고 배설물처럼 버려야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될 수 있다.

 

목사와 성도는, 그리스도인은, 말씀의 관으로, 청교도의 관으로, 생각의 전환이 와야 한다.

주리게도 낮추기도 하시는 것은 말씀의 관으로 전환키 위함이다(8:1-3).

 

사고방식, 가치관이 말씀의 신학, 청교도 신학으로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World system에서 Word system으로!

 

청교도 신학을 공부하는 목적은 우리의 믿음과 삶과 사역의 최고 권위인 성경을

보고 해석하고 적용하는 관()을 형성하는 데 있다.

옛 패러다임을 버리고 말씀의 새 패러다임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청교도 신학은 정신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같은 뜻이다.

청교도를 공부하면서 지식의 축적으로 끝나지 않고, 오직 심령이 새롭게 되어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살후2:15)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2:7)

예수를 주로 받았으면 --- 그 안에 뿌리를 박고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2:6-8)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13:9)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2:8)

 

기독교는 먹고 살만 하면 세상 시스템으로 돌아갔다.

유대화, 카톨릭화 되곤 하였다.

유대교의 장로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종교 지도자들이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여 가나안 땅을 암흑의 땅으로 만들었다.

카톨릭의 교황과 사제들이 기독교가 지배한 중세 천년을 암흑시대로 만들었다.

 

종교개혁은 성경으로 돌아가서 교회를 개혁한 것이다.

그후 5백년은 또다시 유대화 되었고, 카톨릭화 되었음을 보아야 한다.

바리새화 되든가 사두개화 되곤 한다.

 

보수신학은 바리새화(율법화) 되고, 현대신학은 사두개화(세속화) 된다.

그 결과는 동일하게 교회를 장사하는 집, 강도의 소굴로 만든다.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5:30-31)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7:13-16)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4:15)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4:19-20)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할 기갈이라”(8:11)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2:17)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니”(고후10:4-5)

      

성령으로(3:3), 말씀으로(벧전1:23)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성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우리를 부르셨다(8:29).

바울은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했다(4:19).

 

그리스도의 형상은 그리스도의 성품과 삶을 말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된 우리는 옛 사람의 사고방식과 가치관(world system)

버리고 새 사람의 사고방식과 가치관(word system)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나왔지만 애굽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그대로 가지고 나왔다.

그것을 말씀의 체계로 바꾸는 곳이 바로 광야(교회) 생활이다.

주리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는 광야 생활의 연단 속에서 하나님이 만들고자 하시는 것은

말씀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이다. 신명기 8장은 사람이 떡만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다.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말씀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시험하고 연단하는 곳이 광야 생활이다.

 

옛 사람 곧 세상의 사고방식은 우리 속에 패러다임으로 형성되어 있다.

제 눈에 제 안경이라는 말이 패러다임을 이해하게 해 준다.

우리는 각자의 안경인 패러다임을 가지고, 나 자신과 모든 것을 판단한다.

 

사고방식이 바뀔려면 이 패러다임이 변화 되어야 한다.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 와야 한다.

 

세상의 것만을 구하던 사람이 하늘의 것을 구하는 사람으로,

자기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던 사람이 하늘에 쌓는 사람으로,

세상을 향해 가던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해 가는 사람으로,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던 사람이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살던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 과정은 세상 떠나는 날까지 지속되어야 하는 과정이다. 그것이 성화의 과정이다.

     

 

우리의 패러다임을 구성하는 요소는 세 가지이다.

1) 기질

2) 양육 패턴

3) 경험

 

기질은 타고 나며, 크게 다혈질, 담즙질, 우울질, 점액질로 나눈다.

사람마다 복합적이어서 12가지 유형으로 다시 나누고 그 특성이 다 다르다.

자기의 타고난 기질을 알아 볼려면 40문항의 기질 테스트를 하면 대강 알 수 있다.

좋은 항목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특성과 가장 가까운 특성을 택해야만 한다.

 

오늘 나누어 드리는 기질 테스트를 가지고 가셔서 체크하여 다음 시간에 가져 오시면

12가지 유형의 기질 유형과 특성을 통해 자신의 기질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기질은 타고 나니까 바뀌지는 않지만 단점은 줄이고 장점을 늘림으로 변화될 수 있다.

상담학에서는 이 변화를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것으로 말하지만,

인간이 지어먹은 마음은 3일도 채 가지 않는다고 한다.

 

진리이신 주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그 은혜가 우리를 지배하도록 해야 한다.

바울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해서 모든 지혜로 가르치고, 자기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는 이의 역사를 따라 나도 힘을 다해 수고한다고 하였다(1:28-29).

우리도 이와 같이 해야 한다.

 

상담학은 하나님 없이 인간이 스스로 자기를 구원하겠다고 하는 학문이다.

인간을 이해하는 데는 어느 정도 도움을 주지만, 해결책은 그렇게 믿을 것이 못 된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다.

변화된 것 같지만 어느새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

인간의 성품이고 가치관이고 습관이다.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힘입어, 성령으로, 말씀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리고 여전히 성령과 말씀을 의지하여 가르침을 받고 나도 힘을 다해 수고를 해야 한다.

 

 

   <성공 7습관>은 성경의 원리를 차용한 것

 

원 제목은 ‘the 7 habits of highly effective people’ 이다.

스티븐 코비의 <성공7습관>은 원칙 중심의 성품과 삶을 말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부가 팔리면서 엄청난 신뢰도와 호응도를 획득했다.

코비는 나중에 기업을 운영하면서 말과 행동이 다름으로 몰락했다.

그렇지만 그 책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고 있다.

내가 볼 때, 그의 책은 성경의 원리를, 기독교적인 용어와 성경을 전혀 인용하지 않으면서,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성품을 강조함으로,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성공 7 습관>새로운 차원의 사고방식이라고 하면서,

이것은 개인적 효과성과 대인간의 효과성을 달성하기 위하여,

원칙 중심으로, 성품에 근본을 두고,

그리고 "내면에서부터 변화하여 외부로 향하는" 접근법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새로운 차원의 사고방식이 아니고 놀라운 방식으로 성경에서 차용해 온 것이다.

성경은 말씀 중심으로, 성품의 변화와 성숙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원리이다.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성품의)연단을, 연단은 소망(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어가는 원리이다.

 

기독교는 성경을 손에 쥐고도 성경의 원리를 적용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는 데

한 경영학 교수, 그것도 몰몬교에 속한 코비는 성공하고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사람과 진리가 따로 노는 데서 불신을 주는 것 아닐까?

 

주님의 산상수훈 결론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고, 내 말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하셨다(7:24,26).

 

왜 청교도들이 다시 교회 개혁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가?

그들의 기독교 근본진리에 대한 신앙과 삶의 하나됨에 주목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사도와 선지자들 이후에 성경의 근본진리에 절대 복종하며

변화와 성숙으로 가장 잘 살아낸 사람들이 바로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사는 길은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를, 성품과 삶에 구현한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을 본받아 살아가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