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존스, '교리강좌 2', 1장 성령의 인격, 2장 성령의 신성
로이드 존스 , 교리강좌 시리즈 2
성령 하나님과 놀라운 구원
1장 성령의 인격
서론
성경은 장별로 죽 읽어나가라고 권장한다.
성경이 가르치는 위대한 교리들을 구원의 계획에 따라 살펴보는 것 역시 대단히 중요하다. 교회는 처음부터 그렇게 해왔으며, 요즘의 교회가 이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은 비극이다.
성경을 통독하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나무 때문에 숲을 보지 못하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성경의 목적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말해 주는 것이다. 기독교 교리를 연구하는 것만큼 성경의 독특하고 신적인 영감을 놀랍게 증거해 주는 것은 없다.
교리 연구를 통해서 성경이 하나의 책인 것을 알게 되고,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저자들에 의해 쓰여졌지만 하나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성경의 메시지에는 놀라운 일관성이 있어서 한 가지 주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고 있다.
인류가 타락한 순간부터 하나님은 구원계획을 실행하기 시작하셨으며,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을 단계별로 보여준다. 성령의 교리도 구약과 신약에 등장하는 교리이며, 성경의 두 번째 구절에서 성령에 대한 언급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 가르침은 이후 계속해서 나온다. 이 놀라운 통일성은 성경의 독특하고 신적인 영감성과 무오성의 증거이다.
1. 성령에 대한 교리
위대한 구원계획에서 성령은 구원의 적용자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수행하신 그 위대한 구원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고
우리 안에 실현되도록 하는 것이 성령의 사역이다. 성령은 실행자이시다.
1) 성령의 교리 역사
기독교 초기 수세기 동안은 성령의 교리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졌다. 성자의 인격에 공격이 가해졌고, 교회는 성자의 교리를 수호하고 확증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느라 그랬다.
종교개혁은 성령의 교리를 재발견한 시기이기도 하다. 워필드는 존 칼빈을 위대한 성령 신학자라고 하였다. 로마 카톨릭의 체제에서는 성령이 무시되고, 사제직, 신부, 교회, 마리아, 성인들이 성령의 자리에 놓여졌다.
종교개혁은 이 위대한 교리를 재발견했으며, 성령의 교리를 가장 철저히 연구한 사람들이
17세기에 영국에 살았던 경건한 청교도들이었다. 성령의 교리에 대한 존 오웬이 저술한 두 권의 책보다 더 훌륭하게 기술한 작품은 지금까지 없었다. 토마스 굿윈과 다른 청교도들 역시 그랬으며, 성령의 교리가 그토록 철저하게 연구된 일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결코 없었다.
2) 성령의 교리에 대한 잘못된 태도와 그 이유
오늘날 사람들은 성령의 교리를 무시하거나 아니면 잘못된 방법으로 강조 또는 과장하는 입장을 취한다. 후자가 전자의 원인이 된다. 위조와 거짓과 과장을 싫어한 나머지 성령에 대한 모든 것을 멀리해 버린다. 예언, 종말, 재림에 대한 교리를 무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3) 성령의 교리를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 이유
복되신 삼위일체의 위대한 교리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삼위일체 교리가 진실이라면 우리의 사고와 교리 속에서 성부와 성자께 드리는 것과 똑같은 열심과 경의를 성령께도 드리지 않는 것은 대단히 큰 죄이다.
오늘날, 어느 때든지 교회의 영적 생활이 저급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많은 사람이 성령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령과 성령의 사역에 대한 위대한 교리를 나타내는 찬송가들이 대단히 적은 것이 그 표시이다.
4) 성령의 이름들
성부와 관련시키는 이름들;
하나님의 영, 주의 성령, 하나님의 성령, 주 여호와의 영, 아버지의 성령.
성자와 관련시키는 이름들;
그리스도의 영, 아들의 영, 주의 영.
직접적이거나 개인적인 호칭들;
성령, 성결의 영, 거룩하신 자, 생명의 성령, 진리의 영, 보혜사.
이름이 보여주듯 성령의 사역은 거룩함이 생겨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적용하시는 모든 일에 있어서 거룩함과 질서를 만들어 내시는 성령의 특별한 사역 때문이다. 성령의 궁극적인 사역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다른 영들, 즉 악한 영들과 구분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2. 성령의 인격성
1) 성령의 인격성에 대한 오해가 생기는 이유
왜 성령을 하나의 힘이나 영향력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가?
① 성령의 사역은 무언가 신비스럽고 은밀하기 때문에 성령을 영향력으로 생각한다.
성령은 은혜와 열매들을 만드시고 우리에게 은사들과 각종 능력들을 주시기 때문이다.
② “영”이라는 단어의 의미 때문에 성령을 비인격적인 존재로 오해한다.
같은 단어가 숨결 혹은 바람, 능력 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③ 성령의 상징들로 인해 성령을 비인격적 존재로 오해한다.
비둘기 모양으로, 기름과 물과 불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④ 성령이 성부 및 성자와 함께 언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⑤ 헬라어의 “영”은 중성명사다.
그래서 영어 번역에서 himself가 아닌 itself로 번역하는 실수를 범하였기 때문이다.
2) 성령의 인격성의 증거
① 중성명사인 성령을 남성대명사 “그”로 지칭한다.
(요16:13)“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② 성령을 성부 및 성자와 같이 동일시한다.
(마28:19)“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이것은 세 위격의 하나됨, 하나 안에 계신 세 분을 말한다.
(고후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③ 성령이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언급된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행15:28).
④ 성경은 성령께 인격적 속성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지식을 가지고 계심.
(고전12:11)“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 성령은 주권적 의지를 갖고 계심.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성령은 마음을 갖고 계심.
“성령의 열매는 사랑”-성령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주심.
“성령을 근심케 말라”-성령이 슬퍼하실 수 있음.
(고전6:19)“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성령이 내 안에 인격으로 계심- 성화와 거룩함을 촉진함.
3. 성령에 대한 교리의 중요성
이 교리를 우리와 동떨어진 이론적인 문제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성령의 교리는 실제적인 교리이다.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디에 있든, 어디로 가든 성령이 당신 안에 계신다.
또한 정말로 구원의 복을 누리기 원하신다면,
그 일은 당신의 몸이 성령의 전임을 앎으로서 가능해진다.
2장 성령의 신성
1. 성령의 인격성(계속)
1) 성령에게 인칭대명사가 사용되었으며 “그가”
2) 성령이 성부 및 성자와 동일시되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3) 성령이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언급됨으로써 “성령과 우리는”
4) 성령이 인격적 속성들을 가짐으로써 “지, 정, 의”
5) 인격적인 존재만이 행할 수 있는 행동들을 행함으로써
(고전2:10)“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통달하는 것은 인격적인 존재만이 할 수 있는 행위이다.
성령이 말씀하신다.
(계2:7)“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성령이 간구하신다.
(롬8:26)“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이 증언하신다. (요15:26)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인도하신다. (요16:13)“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허락하지 않으신다.
(행16:6-7)“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6) 성령의 직무는 인격적 직무다
성령은 보혜사라고 묘사된다. 주님은 요14:16에서 “또다른 보혜사”라고 하셨다.
보혜사란 우리의 옆에 서서 도와주는 분을 말한다.
동일한 단어가 대언자(요일2:1)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성령은 우리 주님 대신 오신 분이다. 성령은 우리를 지도하고 인도하시기 위해
우리 안에 거하신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요16:7).
7) 성령은 인격적인 대우에 반응하신다
① 우리는 성령께 거짓말할 수 있다. (행5:3)“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② 성령을 모독할 수 있다.
(마12:31-32)“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③ 욕되게 할 수 있다. (히10:29)“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
④ 근심하게 할 수 있다. (엡4:30)“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2. 성령의 신성
1) 성령의 신성의 증거
① 성경이 성령의 신성을 명확하게 주장한다.
아나니아의 사건에서 “(성령을 속이고)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② 성령의 이름이 하나님과 결부되어 있다. (고전12:4-6)“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③ 하나님의 속성이 성령께 돌려진다.
영원하심- “영원하신 성령”(히9:14),
편재성-(시139:7),
전능하심-“성령이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전지하심-(고전2:10)“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요14:26),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16:13).
④ 성령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신다.
창조-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1:2).
새로운 창조-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 “살리는 것은 영이니”(요6:63).
영감을 주시는 일- (벧후1:20-21)“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모든 성경은 성령에 영감되고 무오하게 통제된 저자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진리를 주시고 사람들을 영감시키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부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롬8:11).
2) 성령과 다른 위격들과의 관계
①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세 위격이 영원히 동등이시고 공존하신다.
삼위일체 문제에 대하여 가장 지혜로운 처신은 그 분명한 진술을 인정하여
하나님은 오직 한분이시지만 그 복되신 신성 안에는 세 위격이 존재하며,
이 세 위격은 동등하시고 영원히 공존하신다고 말하는 것.
② 성자는 성부에게서 낳았으며, 성령은 성부로부터 나온다.
(요15:26)“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③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온다.
기독교회의 초창기에도 분열과 분리가 있었다.
첫 번째 중요한 분열은 11세기에 이 가르침 때문이었다.
전체 서방 교회(로마카톨릭과 개신교를 포함)는 이 가르침을 주장하였고,
동쪽 지역의 교회(그리스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아들로부터 나오는 것”을 거부한다.
성령이 성부뿐 아니라 성자에게서도 나온다고 말하는 이유는,
성령이 “그리스도의 영”, “아들의 영”으로 불린다는 사실과 함께,
성령의 신성의 증거로 제시한 모든 논증이 이를 말한다.
주님은 성령을 보내실 분이 바로 자신이라고 하신다.
주님은 성부와 함께 하시며, 또한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과 똑같이
주님 자신도 성령을 통해 일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더 나아가 성경은 성령이 계신 곳은 어디든지 성부와 성자도 함께 계신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요한복음 14장에서 우리 주님은 그가 “보혜사를 보내실” 것이며,
그 결과 성부와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세 분은 언제나 함께 일하신다.
④ 성령은 언제나 성부와 성자에게 스스로 종속되신다.
(요16:13-14)“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이것이 복종이고 사역의 분담이다.
성자는 자신이 성부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 오셨다고 말하며,
성령의 사역은 성자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서로가 상대의 영광을 반영한다.
그리하여 복되신 삼위일체라는 이 놀라운 교리의 신비를 엿보게 된다.
성령은 스스로를 가리고 숨기시는 것처럼 보인다.
성령은 언제나 성자에게 초점을 맞추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을 받았는지 시험해 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성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알고 있는지 자문해 보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성령은 언제나 우리에게 성자를 가리켜 보여 주심으로써 간접적으로 영광을 받으신다.
그러므로 성령 자신에게 과도하게, 비성경적 방법으로 집중한다면
쉽게 잘못된 길로 가 이단이 될 수 있다.
⑤ 결론.
성경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사이에 있는 위와 같은 역할의 분담,
즉 우리의 구속을 위한 종속의 관계에서 성부는 형체가 없으시고
보이지 않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시라고 가르친다.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 이 분이 바로 성부이시다.
성자는 볼 수 있게 나타난 신성의 모든 충만이시다.
“그 안에서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이분이 바로 성자이시다.
그리고 성령은 피조물에게 즉시 작용하시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시다.
우리는 성령이 그의 능력으로 아들의 형상 가운데
아버지를 나타내 보이셨다고 말할 수 있다.
성부는 보지 못하였고 볼 수 없는 분이시다.
성자는 눈에 보이는 분이 되셨으며, 성령을 통해 나에게 실제가 되셨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성부께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나아간다.
성자 하나님은 계시된 하나님이시다.
성령 하나님은 나에게 직접적으로 힘을 행사하시는 분이시다.
또는 성령을 주시는 하나님, 주님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3. 성령이 우리에게 하시는 일
성령이 무엇을 하시는지에 대해서만 생각지 말고, 그분이 누구이신지 깨닫도록 하자.
성자가 베들레헴에서 아기로 태어나셨을 때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낮아짐과 겸손의 행동이었는지요!
하지만 복되신 삼위일체의 세 번째 위격께서 여러분과 제 안에 거하기 위해 오신 것
역시 마찬가지로 겸손의 행동이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6:19).
성령은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는 그분을 근심하시게 할 수 있다.
성육신과 더불어 이 사실을 통해, 여러분과 제가 구원받고, 구속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하기 위해 일어난 낮아지심을 기억하도록 하라.
복되도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시여!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