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아카데미

토마스 왓슨, '회개', 10장 회개의 방해 요소를 제거함 (김영희)

강대식 2019. 6. 16. 20:16

10 장 회개의 방해 요소를 제거함

 

회개의 눈물이 흐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1.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함

너는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3:17) 이것이 바로 죄의 악독한 면이다. 죄는 우리를 병들게 할뿐 아니라 분별력마저 흐려 놓는다. 하나님께서 회개하라 명하시면,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회개해야 하느냐고 대꾸한다.(3:7) 그들은 자신들이 그릇 행했음을 알지 못한다. 분별력을 해치는 뇌졸증보다 심각한 질병은 없다.

 

2. 회개가 쉬운 것으로 여김

기도는 한숨 한 번 쉬고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하면 끝이다. 이처럼 회개가 쉽다는 생각이 커다란 장애 요인이다. 회개가 쉽다는 생각은 죄에 대범한 태도를 만들어 낸다. 사람은 될 수 있는 한 죄를 지으며 갈 데까지 가다가 아무 때라도 회개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필연적으로 악행에 대담해질 수밖에 없다.

 

첫째, 악인은 산더미 같은 죄를 짊어지고 있는데, 과연 그 무게를 딛고 일어서기가 쉽겠는가? 사람이 단숨에 죄를 벗어나 하늘로 뛰어오를 수 있는가?

 

둘째, 죄인에게는 회개에 저항하는 능력이 내재되어 있는데, 이 능력이 모두 동원될 경우 회개가 쉽겠는가? 죄인은 그리스도와 천국을 잃을지언정 자신의 정욕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죽음은 남편과 아내를 갈라놓을 수 있어도 악한 자와 죄는 갈라놓지 못한다. 사람의 마음을 막은 바윗돌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어느 천사도 굴려 치울 수 없다.

 

3.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리라는 생각

많은 이들이 바로 이 달콤한 꽃에서 독을 빤다. 선택된 자들에게는 그리스도가 양식이지만 악한 자들에게는 걸리는 돌이다.(벧전2:8)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분께서 그렇게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이루셨으니 나는 이제 할 일이 없고 가만히 앉아서 쉬기만 하면 된다”. 그들은 생명나무에서 죽음을 빨고 스스로 만들어 낸 구주로 인해 멸망한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자비를 믿고 계속 죄를 짓지만, 왕의 관용을 이용해서 신하들이 반역해야 하겠는가?

 

하나님의 자비는 마땅히 경외하라고 있는 것이지 죄를 지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130:4) 스스로 벌 받을 일을 하고서 자비를 기대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넘치는 자비를 믿고 죄를 짓는 자들에게 결코 자비를 보이지 아니하실 것이다.

 

4. 무기력하고 나태한 기질

회개가 대단히 지루하고 많은 노력을 바쳐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사람들은 찌꺼기처럼 가라앉아서 움직일 줄을 모른다. 그들은 울면서 천국에 가느니 졸면서 지옥에 가고 싶어 한다. 게으른 자가 애써 가슴을 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노력과 근면 없이는 세상을 얻을 수 없는데, 이 세상보다 더 좋은 세상을 과연 노력 없이 얻을 수 있겠는가? 게으름은 영혼의 암이다.

 

게으른 사람은 깊은 잠에 빠지고”(19:15). 사탄도 마법으로 사람들을 나태의 잠에 빠뜨린 다음 멸망시킨다. 악어가 입을 벌리고 잠을 자는 동안 인도 들쥐가 그 악어 뱃속에 들어가 내장을 파먹는다고 한다. 사람도 세상 모르고 잠에 빠져 있다가 파 먹힌다.

 

5. 죄의 달콤한 즐거움

불의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자들이 있다. 죄는 독을 탄 설탕물이다. 죄는 위험하지만 즐겁기도 하다는 것이 죄인들의 생각이다. 결국 죄인들의 마음에는 죄의 위험보다는 즐거움이 더 크게 작용한다. 참된 회개에는 반드시 죄에 대한 슬픔이 있어야 하는데,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어떻게 슬퍼할 수 있겠는가?

삼손은 들릴라의 미모에 마음을 빼앗겼고, 그 여자의 무릎은 그의 무덤이 되고 말았다. 죄의 즐거움은 비단을 꼬아 만든 올가미이다. 올가미가 아무리 화려하다 한들 우리가 그것을 목에 두르고 있다면 결국은 비참해지지 않겠는가?

 

6. 회개가 우리의 기쁨을 앗아가리라는 생각

착각이다. 회개는 우리의 기쁨을 십자가에 처형하는 것이 아니라 명확히 구분해 주고, 역겨운 죄의 찌꺼기에서 우리의 기쁨을 분리해 낸다. 세상의 소란스러운 웃음은 거짓 웃음과 다를 바 없어, 그 뒤에는 언제나 슬픔이 바짝 붙어 다닌다. 하지만 신실한 회개는 삼손의 사자와 같이 그 안에 꿀이 고여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의 나라일 뿐 아니라 기쁨의 나라이기도 하다. 회개하는 이들보다 참된 즐거움을 누리는 이들은 없다.

 

기쁨의 기름은 주로 상한 마음 위로 쏟아진다. 하나님께서는 눈물을 포도즙으로 바꾸셔서 상한 마음에 기쁨과 활력을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마음 안에 거하시니 그 마음에 기쁨이 있지 않겠는가? 회개는 그리스도인의 노래를 거두어 가는 것이 아니라 더 높고 감미로운 노래로 만들어 준다.

 

7. 낙심

죄인은 내 죄는 너무 커서 회개해도 소용없다라고 말한다. 불신의 눈으로 보면 죄는 온통 핏빛이고 하나님은 엄정한 법복을 입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죄에는 자비가 필요한데 절망이 자비를 거절한다. 절망은 그리스도의 피의 음료를 길바닥에 쏟아 버린다. 유다가 저주를 받은 것은 배신과 살인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자비를 불신했으므로 스스로 파멸했다.

 

그분의 속 마음은 회개하는 죄인들에 대한 사람으로 가득하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비를 영광으로 여기신다.(33:18-19) 그분은 친절하시고 연민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울기만 하면 하나님의 마음이 누그러지신다. 우리의 눈물이 떨어지는 순간, 하나님의 마음에서는 후회가 불같이 일어난다.(11:8) 므낫세는 길거리를 피로 물들였지만, 자신의 머리를 눈물의 샘으로 삼아 울자 하나님께서 자비를 보이셨다.

 

8. 벌 받지 않으리라는 생각

사람들은 죄와 더불어 희희낙락하면서 하나님께서 여태까지 자신을 가만두었으니 처벌하실 마음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께서는 진실로 죄인들을 오래 참아 주시고 인내하심으로 회개를 권유하시지만, 죄인들은 얼마나 사악한지! 주께서 재판을 미루시니 저들도 회개를 미루고 있다. 하지만 인내의 기한이 곧 끝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채권자가 채무자의 빚을 유예해 준다 해서 그 빚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그는 자기 음행을 회개하려 하지 않았다(2:21) 하나님께서 활시위를 오래 당길수록 그 화살로 인한 상처 또한 깊을 것이다. 인내를 거스르는 죄는 그 죄인의 지옥을 한층 더 뜨겁게 할 것이다.

 

9. 비난에 대한 두려움

회개하는 순간 나는 사람들에게 경멸을 당할 것이다. 여러분을 비난하는 그들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라.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무지하고 영적으로 혼미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비난을 여러분 머리에 쓰는 왕관으로 여기라. 루터는 말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 못 박힌 자와 같다”. 고난은 성도의 제복이다. 비난은 십자가에서 떨어져 나온 부스러기, 곧 지극히 부분적인 고난일 뿐이니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

 

10. 세상에 대한 과도한 사랑

사람들은 세상에 시간과 마음을 너무 빼앗겨 회개할 수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자루에 금덩이를 쓸어 담고 싶을 뿐 하나님의 병에 눈물을 쏟아 넣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들은 흙으로 된 밭은 열심히 쟁기질하면서 마음은 묵정밭이 되도록 갈아엎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성경에 있다.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14:16,18-19) 사람들은 농사짓고 장사하는 일에 시간을 너무 빼앗겨 영혼을 돌볼 여유가 없다. 황금 덩어리를 좇으니 은구슬 같은 눈물이 나오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