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아카데미

토마스 왓슨, '회개', 11장, 12장 회개를 위한 몇 가지 수단 ⅠⅡ (김영희)

강대식 2019. 6. 23. 20:19

11 장 회개를 위한 몇 가지 수단

 

- 첫 번째 수단은 깊은 생각이다.

내가 내 행위를 생각하고 주의 증거들을 향하여 내 발길을 돌이켰사오며”(119:59)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하고 울었다. 깊이 성찰하기만 하면 죄악의 길에서 돌이킬 수단이 될 만한 확실한 것들이 있다.

 

1. 죄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자.

죄는 하나님을 떠난다. 죄인은 하나님과 결별하고 그리스도와 자비에게 작별을 고한다. 죄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설 때마다 하나님에게서 한 걸음씩 멀어진다. 영혼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질수록 비참함에 가까워진다.

 

죄는 하나님을 거역한다. 죄는 히브리어로 죄를 범하다반역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죄는 하나님의 반대자이다. 죄는 하나님의 본성을 공격한다. 죄가 이러한 속성을 포기 한다면 하나님도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닐 것이다. 교만한 흙 한 줌이 들고일어나 자신의 창조주에게 반항을 하다니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죄는 하나님을 모욕한다. 죄는 그분의 법을 위반한다. 이것은 진정 극악무도한 반역이다. 왕에 대한 모욕으로 말하자면, 그 왕이 내린 칙령을 짓밟는 행위보다 더한 것이 있겠는가? 죄는 하나님의 마땅한 권리를 도둑질해 간다. 영혼은 하나님의 것이다. 그분께서 창조하셨고, 값을 치루고 사셨으므로 그분 것이다. 그런데 죄가 하나님의 정당한 소유인 이 영혼을 훔쳐 마귀에게 준다.

 

죄는 심대한 무지이다. 모든 죄는 무지에 기초한다고 중세 신학자들은 말한다. “참으로 그들은 악에 악을 더하려고 돌아다닐 뿐 내가 그들의 하나님인줄은 알지 못한다. 나 주의 말이다”(9:3) 무지와 욕망은 하나가 된다. 무지는 욕망의 자궁이다. 사람들이 정결하고 정의로우신 하나님을 안다면, 이처럼 계속해서 죄악의 길을 갈 생각은 감히 하지 못할 것이다. 사탄은 먼저 무지로 사람의 눈을 가려 못 보게 한 뒤에 유혹의 발톱으로 낚아채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죄는 무모하고 위험하다. 사람의 모든 범죄 행위는 명백한 영혼의 도박이다. 그는 지금 밑바닥 없는 구덩이 주위를 걷고 있다. 아담은 금단의 열매를 한 번 맛보고서 낙원을 잃었다. 여러분이 짓는 죄 하나로 저주받은 자들 가운데로 떨어질 수 있다.

 

죄는 더러움이 가득하다. 야고보서1:21은 이 죄를 더러움이라고 부른다. 죄는 역겨운 것이며, 역겨운 것들이다. 죄는 마음과 양심에 침투해 분뇨를 뿌린 들판과 같다. 이처럼 오염시키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오염된 인간을 차마 쳐다보실 수 없는 것이다.(11:8)

 

죄에는 끔찍한 배은망덕이 있다. 죄인들이여,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의 음식으로 여러분을 먹이셨다. 여러분에게 그토록 무수한 자비를 둘러 주셨건만 여전히 여러분은 죄악 가운데 있는가? 다윗이 나발을 두고 한 말처럼, 하나님도 공연히 죄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베푸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나는 네게 지혜와 건강과 부를 주었건만 너는 오히려 내게서 받은 그 모든 것을 이용하여 나를 배신했다하나님께서 죄를 지으라고 여러분에게 생명을 주셨는가? 마귀를 섬기라고 여러분에게 급료를 지불하셨는가?

 

죄는 저급한 것이다. 죄는 사람의 명예를 떨어뜨린다. 죄는 우리의 명성을 더럽히고 우리의 피를 오염시킨다. 죄보다 더 사람의 영광을 한순간에 치욕으로 바꾸는 것은 없다. 세상에서 제아무리 명성이 높고 대단한 사람일지라도 악하다면 결국 하나님의 눈에는 문둥병자일 뿐이다. 죄를 자랑함은 죄수가 자신의 목에 걸린 올가미를 자랑함과 같다.

 

죄는 손실이다. 모든 죄에는 무한한 손실이 있다. 하나님을 잃는다. 평화를 잃고, 영혼을 잃는다. 이 영혼의 손실은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겠는가? 영혼이 가면 재물도 간다. 누구든지 죄에 종사하는 자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

 

죄는 짐이다. “내 죄의 벌이 나를 짓누르니 이 무거운 짐을 내가 더는 견딜 수 없습니다”(38:4) 죄인은 차꼬를 차고 쉿덩이 추를 달고 간다. 죄는 발생했다 하면 무조건 짐이다. 양심의 부담이 얼마나 심했으면 유다가 목을 매어 그 양심을 침묵시켰겠는가?

 

죄는 빚이다. 죄는 만 달란트의 빚에 비유된다.(18:24) 우리가 진 모든 빚 가운데 최악은 단연 죄의 빚이다. 죄의 빚을 지고는 도망도 못 간다. 내가---주님의 얼굴을 피해서 어디로 도망치겠습니까”(139:7) 사람이 죽으면 다른 빚에서는 해방되지만 죄의 빚에서는 결코 해방될 수 없다. 이 죄의 빚을 탕감해 주는 것은 채무자의 죽음이 아니라 채권자의 죽음이다.

 

죄에는 속임수가 있다. 악인이 받는 삯은 결국 헛것이다.(11:18) 죄는 속임수에 불과하다. 죄는 우선 비위를 맞춘 다음에 죽인다. 처음에는 여우였다가 나중에는 사자가 된다. 계시록의 그 메뚜기들은 죄의 완벽한 형상이요 상징이다. 그 메뚜기들의 모양은---머리에는 금 면류관 같은 것을 쓰고---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이빨은 사자의 이빨과 같고---전갈과 같은 꼬리와 침이 달려 있는데(9:7-10) 죄는 죄인에게 즐거운 것을 먹이고 그의 영혼을 저당 잡는다.

 

죄는 영적인 질병이다. 어떤 사람은 교만의 질병을 앓고, 어떤 사람은 정욕의 질병을 앓으며 어떤 사람은 원한의 질병을 앓는다. 죄인은 환자와 같다. 환자는 입맛이 정상이 아니므로 꿀보다 단 하나님의 말씀이 쓰기만 하다. “단 것을 쓰다고 하는 자들에게 재앙이 닥친다”(5:20)

 

죄는 속박이다. 죄는 사람을 마귀의 견습생으로 보내 버린다. 모든 사람은 죄의 끈에 묶여 있는 노예 상태이다. 죄는 오만하고 압제적이다. 죄는 법이라고 불리는데 그것은 사람을 구속하는 죄의 능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죄인은 죄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정욕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는 것이다. “내가 보니 종은 말을 타고 상전은 종처럼 걸어다는 일이 있더라”(10:7)

 

죄는 전염성이 강한 고질병이다. 한 사람의 죄는 다른 사람이 죄를 짓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지금 지옥에서 사람들이 여러분의 그 악한 선례만 없었더라면 자신들은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절규하고 있을 것이다.

 

죄는 성가신 것이다. 죄는 언제나 문제를 일으킨다. 죄가 잉태되면 결국 고통스럽게 그 죄를 낳게 된다. 사람이 온갖 지혜를 짜내어 죄를 고안하는데, 결국 그 죄가 양심을 괴롭히고 집의 벽과 대들보를 무너뜨린다.

 

죄는 어리석은 일이다. 원수를 기쁘게 하는 것보다 정신없는 일이 있는가? 죄는 마귀를 즐겁게 한다. 세상을 얻으려고 자신의 영혼을 걸고 무모한 모험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마귀가 얼마나 즐거워 하겠는가? 그것은 지푸라기를 얻으려고 다이아몬드를 거는 행위와 같다. 악한 자들은 심판의 날에 그 어리석음을 추궁당할 것이다.

 

죄는 잔인하다. 죄를 지음으로써 매번 자신의 영혼을 칼로 찌르고 있다. 영혼이 살려 달라고 소리칠 것이다. 죄는 영혼의 피를 마신다.

 

죄는 영적인 죽음이다. 허물과 죄로 죽은 것이다. 죄가 살면 영혼이 죽는다. 죽은 자는 감각이 없다. 죽은 자를 꾸짖은들 무슨 소용인가? 죽은 자를 때린들 무슨 소용인가? 죽은 자는 미각이 없다. 그리스도의 단맛, 약속의 단맛을 알지 못한다. 죄인에게 그리스도와 약속은 죽은 자의 입 속에 넣는 음료일 뿐이다. 죽은 자는 부패한다. 냄새가 난다.

 

회개 없는 죄는 저주에 이르고 만다. 사람들은 제 영혼에 생긴 죄악으로 죽는다. 죄의 삯은 죽음이다. 죄는 기름과 같고 하나님의 분노는 불과 같다. 우리들 가운데 누가 꺼지지 않는 불덩이를 견디어 내겠는가?

 

2. 하나님의 자비를 깊이 생각하자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진노하시며 심판을 내리셨지만, 여러분에게만은 자비를 베풀며 달래셨다. 우리가 넘어질 때마다 하나님의 자비가 우리를 붙들어 세웠다. 자비는 언제나 우리와 위험 사이로 난 차단막이었다. 성난 파도에 휩쓸릴 때도 우리의 머리가 물속으로 잠기지 않도록 자비의 팔이 언제나 밑에서 받쳐 주었다. 받은 은혜가 이와 같을진대 마땅히 회개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얼마나 절대적인 자비를 받았는지 모른다! 먼저 공급하시는 자비이다. 우리가 원수였음에도 우리를 먹이셨다. 우리에게 기름병을 주셨고, 자비의 꿀을 떨어뜨려 주셨다. 다음으로 구원하시는 자비이다. 그분께서는 죽음의 그림자를 새벽빛으로 바꾸시고 우리의 입에 구원의 노래를 넣어 주셨다. 주께서는 당신의 자비로 우리의 마음을 깨뜨리려고 애쓰셨다. 우리의 눈물을 쏟아 내게 하는 어떤 것이 있다면 틀림없이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일 것이다. 이처럼 튼튼한 하나님의 자비의 밧줄을 붙잡고도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지 않는 사람은 실로 지독한 죄인이다.

 

3.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고난의 섭리를 깊이 생각하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십자가의 학교에 보내셨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동안 줄곧 우리의 회개를 기다리셨다.

들어라 주님께서 성읍을 부르신다---너희는 매를 순히 받고 그것을 정한 나에게 순종하라”(6:9) 하나님께서는 고통이라는 적절한 약을 사용하여 우리의 세속적 안일을 치료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가시나무로 그의 길을 막고”(2:6)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고통의 가시울타리를 쳐서 길을 막는다. 교만한 자에게는 치욕이 가시요 음란한 자에게는 질병이 가시이다. 죄로 향하는 것을 막을 뿐 아니라 계속 찔러서 회개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회개를 이끌어 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수단이다.

 

주께서는 심판을 점진적으로 진행하신다. 처음에는 작은 십자가를 보내시고 그것이 듣지 않을 때는 더 큰 십자가를 보내신다. 처음에는 오한으로 시작하셨다가 그 후로는 펄펄 끓는 신열을 내리신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단계적으로 사람들을 회개의 자리로 데려가신다.

지금 당장 회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실상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고 그분께 은근히 대드는 셈이다. 이처럼 극단적인 악은 용서받기 어려울 것이다. 이교도 선원들도 폭풍우를 만나자 회개했다. 우리가 지금 회개하고 우리의 죄를 배 밖으로 던지지 않는다면 이교도들보다 더 악한 것이다.

 

4. 끝까지 회개치 않을 경우, 우리가 책임져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겠는지 헤아려 보자

얼마나 많은 기도와 권고와 훈계가 우리의 부채로 기록될 것인지 생각해 보자. 우리가 들었던 모든 설교들이 각각 고소장이 되어 나타날 것이다. 양심의 하급법원에서 스스로를 심판한 사람들은 하늘의 대법정에서 사면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회개하지 않는다면 마지막 날에 모든 죄가 낱낱이 계수될 것이며, 우리는 어떠한 변호자도 없이 직접 나서서 이 모든 죄를 해명하고 책임져야 할 것이다.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이여, 장차 심판관의 얼굴을 어떻게 볼 수 있으며, 무슨 말로 변명하겠는가?


12 장 회개를 위한 몇 가지 수단

 

- 회개에 도움이 되는 두 번째 수단은 회개한 자와 회개하지 아니한 자와의 상태의 비교이다.

말씀의 등불을 켜 들고 회개하지 아니한 자의 가장 비참한 상태와 회개한 자의 가장 편안한 상태를 살펴보자. 제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기 전 탕자의 상태는 얼마나 슬픈 것이었는가! 모든 것을 탕진하고 남은 것이라고는 돼지 밥 한 줌뿐이었다. 그는 돼지와 동류였던 것이다. 하지만 제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돌아온 그를 위해서라면 아까운 것이 없었다. 예복과 반지가 대령되었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차린 잔칫상이 마련되었다. 회개하지 않고 있으면 결국 그리스도와 작별하고 자비를 떠나보내게 되지만, 회개하면 즉시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 그리스도가 그의 것이 되고 모든 일이 평화롭다.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 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12:19)

 

하나님께 돌아섬으로 우리는 아담 안에서 잃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하게 된다. 회개하는 영혼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내 성령의 보화와 은혜로 너를 부요하게 하겠다. 내 사랑을 네게 쏟아 붓겠다. 네게 왕국을 주겠다. 아들아,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다.” 회개하기 전에는 먹구름과 폭풍우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으나, 회개한 이후 위에서는 햇빛이 쏟아지고, 내면은 조용히 가라앉았다. 모든 것이 밝고 맑으며 바람은 항상 잔잔하다.

 

- 회개의 도움이 되는 세 번째 수단은 죄를 떠나겠다는 굳은 결심이다.

결연한 맹세이다. 주님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려고 나는 맹세하고 또 다짐한다”(129:106) 단호한 결심에 오르지 아니하면 결코 이 뱀을 손에서 털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결심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 세워져야 한다. 이 결심은 겸손해야 한다.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 나아갈 때 군장은 물론 자신의 그 오만한 자신감도 모두 내려놓고 나아갔다. 나는---만군의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너에게로 나왔다”(삼상17:45)

우리 또한 그리스도의 능력에 의지하여 우리의 골리앗인 정욕을 향해 싸우러 나아가야 한다.

 

- 회개의 도움이 되는 네 번째 수단은 간곡한 청원이다.

회개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자. 주께서 베드로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자 베드로는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 통곡했다. 베드로에게 보내신 그 사랑의 눈길을 우리에게도 보내 달라고 그리스도께 간청하자. 하나님의 성령의 도우심을 그리스도께 간청하자. 성령께서 우리 마음의 바위를 치셔야 물이 쏟아져 나온다.

회개를 간청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첫째, 회개는 그분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둘째, 그분께서 우리에게 회개의 마음을 주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 몸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겠다”(36:26)

그들이 온전한 마음으로 나에게 돌아와서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24:7) - 주님, 온전한 마음으로 당신께 돌아설 수 있는 은혜를 제게 주소서 -

 

- 회개의 도움이 되는 다섯 번째 수단은 하나님을 더 명확히 발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정결하심을 본 욥은 겸손한 회개자로서 스스로를 혐오했으며, 자신을 책망했다.(42:5-6) 하나님의 거룩하심이라는 투명한 거울을 들여다봄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흠을 볼 수 있고, 그러한 흠을 슬퍼할 수 있는 것이다.

 

- 마지막으로 우리는 믿음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 믿음이 회개와는 무슨 관련이 있는가? 믿음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낳는다. 그러므로 죄와 결별해야 비로소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일이 가능하다. 믿음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 앞으로 데려가고, 그 피로 인해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믿음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시켜주고, 그 사랑이 우리를 울게 한다.

 

회개에 도움이 되는 수단들을 살펴보았다. 이제 시작하는 일만 남았다. 그러므로 멋스러운 검객이 아니라 전쟁터의 군인과 같은 마음으로 이 일에 임하자.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사람은 기쁨으로 단을 가지고 돌아온다”(1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