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아카데미

로이드 존스, '교리강좌 2', 12장 회개

강대식 2019. 7. 8. 12:37

13 장 회 개

 

1. 용어의 의미

 

1) 다시 생각해 마음을 바꾸는 것

메타노이아, 곧 회개는 다시 생각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을 바꾸는 결과를 가져온다. 에수님은 이것을 완벽하게 진술하는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21:28-32)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여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뇨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싫소이다하였다가 그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첫 단계이다. 당신은 되돌아가 이미 물리쳐 버린 일을 재검토해 본다. 다시 생각해 본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다르게 생각했다. 마음을 바꿨다. 전에는 거절했지만 이제는 포도원에 가서 일한다.

 

2) 후회

마음을 바꾸면서 당신은 이전에 가지고 있던 잘못된 관점과 그 관점으로부터 나온 잘못된 행실에 대해 후회하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 회개에는 분명 이런 후회의 요소 역시 존재한다.

 

3) 행동의 변화

회개에 대단히 중대한 필수적 요소가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행동의 변화이다.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행동은 회개의 일부였다. 우리가 이전에 하지 않겠다고 거절했던 일을 행하는 것이 회개의 과정에서 중대한 부분이다. 사람들이 복음의 효력있는 부르심을 듣고 그에 반응했을 때 생겨나는 새로운 무언가가 회개의 본질적 요소이다.

 

2. 회개의 근원

 

1) 하나님의 은혜

회개는 사람들 편에서 행동을 취하도록 이끄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스가랴 12:10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바로 이것이다. 은총과 간구 없이는 회개가 있을 수 없다.

신약성경에서는 베드로가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5:31)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가 죄사함을 주시는 것처럼 회개도 주신다. 11:18에는 고넬료의 회심에 대한 베드로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기록되어 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회개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다. .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딤후2:25). 회개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알 수 있다.

 

2) 말씀을 통한 복음 전파

회개는 우리 편에서 행동을 취하도록 하는 은혜의 선물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말씀을 가르치는 것과 전파하는 것을 통해 이 일을 하신다. 사람들을 회개하도록 부르면서 복음이 전파되고, 말씀이 선포된다. “[하나님이]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17:30). 어떻게 그 일을 하시는가? 말씀 전파를 통해서이다. 그 중요한 예가 요나서에서 요나의 설교를 통해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게 되는 장면에 나온다. 베드로가 오순절 예루살렘에서 설교하는 장면이다. 그가 설교하고 성령이 그 말씀을 적용하셨을 때, 사람들은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2:37)라고 부르짖었다. 이것은 회개의 표시이다. 그리고 그 일을 한 것은 전파된 말씀이었다. 이러한 회개의 상태는 진리가 전해짐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다. 바울은 그가 전파한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 결과 그들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게되었다(살전1:5,9).

 

3. 회개에 관여하는 영역

 

1) 회개에는 전인이 관여한다.

오늘날 이 세상의 상태뿐 아니라 교회의 상태마저 이 지경이 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가 회개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회개는 전인이 관여한다. 회개는 반드시 전인을 포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회개가 아니다.

 

2) 회개는 지성이 관여되어 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또는 교리의 본이라고 번역해도 상관 없다-을 마음으로 순종하여”(6:17). 무엇보다도 마음, 곧 지성이 관여되어 있다. 청교도들은 언제나 복음의 메시지를 적용하기에 앞서 소위 철저한 율법의 작용이 행하는 것의 가치를 믿었다. 그들은 사람들이 정말로 죄를 자각했는지에 대해 꼼꼼히 확인했다. 이러한 예비적 율법의 작용은 조지 휫필드,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의 설교의 특징이기도 했다. 사실상 19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이것은 참된 복음주의적 설교의 특징이었다.

 

율법의 작용이란 바로 이런 의미였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그것이 율법의 기능이다. 율법은 범법함으로 더하여 진 것”(3:19). 율법은 죄의 넘치는 죄성을 보여 주기 위해 주어졌다(7:13). 사람들은 이 죄라는 개념을 싫어하고 반항하며 미워한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율법 아래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들은 죄를 자각할 필요가 있다. 자신들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그 마음에 조명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회개에 대한 설교는 지성과 오성으로부터 출발한다. 지성과 마음을 배제한다면 율법 역시 배제하고 있다는 의미이며, 그것은 끔찍한 일이다. 율법을 주신 분은 하나님 자신이며 하나님은 바로 이 명확한 목적을 위해 그것을 주셨기 때문이다.

 

3) 회개는 감정이 관여한다.

이 율법의 작용은 심오한 감정으로 이끈다. 회개에는 마음과 감정이 포함된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감정이라고 하는 이 강력한 요소가 언제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감정이 없다면 참된 회개가 아니다. 일종의 고뇌, 두려움과 공포감이 있어야 한다. 바울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고후7:30)이라고 말했듯이, 회개에는 언제나 감정이 개입한다.

 

세리는 다만 가슴을 치며”(18:13) 말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말한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그들은 심령이 가난할 뿐 아니라 애통하는 자들이다.

 

이것은 우리가 왠지 간과했던 것이 아닌가? 오늘날 죄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자주 보는가? 우리의 회심자들 가운데 영혼의 고뇌에 대해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오늘날 자기 죄를 자각하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얼마나 자주 볼 수 있는가? 자신의 죄성으로 인해 탄식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알고 계신가? 우리는 과연 어떠했는가? 하지만 성경에는 이 모든 사람이 등장한다. 욥은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라고 말한다. 시편 51편에 나타난 다윗의 깊은 감정의 표현도 살펴 보라.

 

4) 회개는 의지도 포함된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실이다.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55:7)라고 한 이사야의 말처럼 우리는 버려야 한다. 단순히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자기의 죄를 인식할 뿐 아니라 거기서 떠나야 한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2:13). 뭔가를 행하십시오. 죄를 인식하고, 율법의 작용이 일어나고, 마음이 변화되고, 생각했다면 이제 행하십시오!

 

너무 활기차다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문제이다. 우리는 자신의 죄성으로 인해 탄식해 본 일도 없고, 그런 감정을 느껴 보지도 못했다. 우리는 너무나 가볍다. 그것이 교회의 문제이다. 하지만 성경은 회개를 탄식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3:8).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세리에게는 부과된 것 이외에는 거두지 말라하고 군인들에게는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고 한다. 의지가 개입하여야 한다. 요한은 뭔가 해야 한다고 말한다.

 

마태복음 21장에 나오는 두 아들의 비유에도 회개의 필수적인 부분인 돌이킴이 나타나 있다. 의지가 작동하여 우리를 잘못된 것으로부터 옳은 것을 향하여 돌아서게 한다. 바울의 사명은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오게”(26:18) 하는 것이었다. 행동은 필수적인 부분이다.

 

4. 회개의 주제

회개는 어떤 문제들을 다루는가의 문제이다. 회개의 광범위함을 보게 된다.

 

1) 하나님 자신

회개의 주제는 먼저 하나님 자신이다. 회개는 하나님에 대해 변화된 견해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잘못된 견해들을 갖고 있었는데, 이제 다른 견해를 갖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에 대해서도 완전히 다른 견해를 갖는다.

 

2)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

또 다른 주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이다. 우리는 이 관계가 얼마나 변해야 하는지 안다. 사람들이 회개할 때 이 관계에 대해 전혀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된다. 또한 삶 자체와 삶의 목적, 그리고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서도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된다. 그리고 죽음과 영원을 바라보는 관점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 다시 말해, 회개는 전인을 포함할 뿐 아니라 이생과 이 세상에서 가치 있고 관심을 가질 만한 모든 것에 대해 그 사람이 가진 견해 전체를 포함한다.

 

5. 회개의 결과

회개가 정확히 어떠한 경험으로 이끄는지 살펴 보아야 한다.

내가 회개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1) 하나님에 대한 견해와 생각의 변화

회개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견해와 생각이 변화되는 것을 수반한다. 우리가 회개할 때에만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위대하심을 진정으로 알게 된다.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회개한 것이다. 본질상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완전히 잘못되어 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8:7).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14:1). “나는 하나님을 믿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개념은 없다. 그 하나님은 자기 자신과 자기의 개념을 투사하여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자신만의 하나님일 뿐이다. 잘못된 것이며 거짓된 것이다. 그들은 완전히 변해야 한다.

 

사도행전에는 신자들이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9;31) 행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 요즘은 그리스도인의 기쁨이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모습이 전혀 없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신약 성경은 경건함과 두려움으로”(12:28) 하나님을 섬기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님을 기뻐하면서 동시에 주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수 있다. 그것은 경건한 두려움이다. 그것은 형벌이 있는”(요일4:18) 두려움이 아니다. 겁에 질린 두려움이 아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안에 이루어질수록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개념도 더욱 커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커진 개념은 우리의 겸손함 속에 반영될 것이다. 어쩐 일인지 하나님에 대한 느낌이 우리 안에서 사라진 것 같다. 우리는 너무나 경솔하고 피상적이다. “회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는 사실은 잊어버린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잃어버렸으며, 따라서 삶 전체에 대한,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에 대한 경외심도 잃어버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인자하심과 사랑에 대한 지식으로 이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한데 결합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알뿐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도 안다. 공의와 자비가 한데 만난다. 그것이 기독교의 본질이다. 오직 그리스도인들만이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붙잡을 수 있다.

 

갈보리 십자가에서 공의가 온전히 만족되고 사랑이 흘러 넘친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거룩한 사랑이며,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거룩한 기쁨이다. 모든 것은 거룩해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회개한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 갖게 되는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개념이다.

 

2) 죄의식과 자신의 무가치함에 대한 자각

또 다른 변화는 그들이 이전처럼 자기만족에 빠지기는 커녕 이제 죄의식과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대해 죄를 지었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 자신들이 더러워졌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51:5-7). 나는 씻겨져야 한다. 나는 더러워졌으며 부정하다. 바울은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7:18)라고 말했다.

이전에 이런 더러움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그 사실을 깨달을 만큼 자신에 대해 잘 알고 계신가? 당신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한 일이 있는가? 찰스 웨슬리는 비열하고 죄로 가득한 나여라고 썼다. 위대한 성도일수록 그 사실을 더 깊이 알고 있다. 그들은 더 깊이 회개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이 부패했다는 것과 타락과 원죄의 결과 자기들 안에 비열함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 모든 것에 더하여 그들은 자신의 연약함, 무력함을 안다. 자기 힘으로 산상수훈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지한 사람일 뿐이다.

 

3) 인생에 대한 관점의 변화-거룩함의 추구

또 다른 변화는 인생과 삶에 대한 관점이 변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된 행동들과 죄된 본성을 알 뿐 아니라, 죄 자체를 미워한다. 다른 한 편으로 그들은 거룩함의 아름다움, 의의 아름다움과 온전함을 느낀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율법의 아름다움과 영광스러움을 본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은 더 이상 무거운 것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미워하고 거룩해지기를 소망한다.

 

4) 구원을 열망하여 하나님의 긍휼만을 구함

이 모든 일의 결과는 무엇인가? 요약해 보겠다. 회개는 죄로 인한 슬픔과 비탄을 낳아야

한다. 회개는 자기혐오, 즉 자신의 죄된 본성에 대한 미움을 포함한다. 우리는 과연 자신을 미워하는가?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7:24)라고 말한다. 바로 이것이다. 회개는 또한 두려움을 일으킨다. 우리가 의롭고 공의로우시고 우주의 주인이시며 영원한

심판자이신 거룩하신 하나님께 죄를 범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하심에 비추어 우리가 갖게 되는 자기혐오는 구원에 대한 열망을 일으키고, 이어서 구원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하도록 만든다. 회개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 이어서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게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타오르는 열망을 갖게 된다. 그들이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부르짖는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이여 --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51:1).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것이 회개한 사람들의 태도이다. 그들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을 간구한다. 어떤 의미로는 그것이 회개의 정의이다.

 

6. 회개와 후회의 차이

 

후회를 통해 당신은 실패에 대해 슬퍼할 수도 있고,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저지른 것에 대해 자신에게 화가 날 수도 있다. 실로 한 걸음 더 나아가 결과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까지 포함할 수도 있다. 후회가 이런 의미까지 포함할 수 있음을 결코 잊지 말자. 하지만 이것은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아니다.

 

(고후 7:9-11)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회개에 이르지 않는 근심도 있을 수 있다.]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바로 이것이다]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이 말에서 열정과 느낌과 감정을 보게 된다. 그들은 마음으로 그것을 보았고, 느꼈고, 뭔가를 했다. 참된 회개는 후회와는 달리 이러한 요소들을 포함한다. 회개는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했고, 하나님을 슬프시게 했으며 그분께 상처를 입혔다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회개는 우리가 더러워졌으며 전적으로 무가치/하다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회개는 죄를 없이하고자 하는 열망과 결단을 준다. 바울이 말하는 사모함과 활동력과 열심과 벌함,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다.

 

이것을 다시 한 번 팔 복 가운데 하나로 요약할 수 있다. 이것이 참된 회개의 궁극적인 시금석이며, 후회와 회개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그것은 회개는 우리로 하여금 의에 주리고 목마르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회개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고 점점 더 그분을 닮아 가기를, 의롭고 거룩하고 정결하게 되기를 갈망하게 한다. 후회는 소극적이지만 회개는 적극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