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8 주일설교,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5-39
2019-08-18 주일설교
본문: 롬 8:35-39
제목; 넉넉히 이기느니라
1.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
그리스도인에게는 고난도 없이 오직 축복만 가득한 삶이란 없다.
순풍에 돛 달고 가는 안전한 항해만 기대하는 사람은 금방 실망하고 만다.
예수 믿기만 하면 금방 복 받고 형통한다는 감언이설에 속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생애란 로마서 말씀대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하는 생애이다.
그리스도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자취를 따라가는 사람이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2:20-21)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느니라.’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심으로 우리에게 본을 보이시고,
그 고난의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신다는 것이다. .
심지어 어떤 고난까지 받게 하시는가?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함과 같으니라”(36절) (시44:22)
우리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것 같이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기도 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는 고난은 무슨 칭찬이 있겠는가?
선을 행함으로 받고 참는 고난이다.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이다.
선을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말한다.
마음이 내켜 어떤 선한 일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 선한 일에 무슨 고난이 있는가? 칭찬이 쏟아지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며 살기에, 영의 생각으로 살기에, 오는 고난이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세상의 대세와 유행을 따르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주의 선하신 뜻대로 살고자 할 때 오는 고난이다.
그렇게 선을 행함으로 오는 고난을 받고 참을 때 하나님은 아름답게 보시는 것이다.
이 선한 고난을 위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신다.
멱우리 15년, 화서 3년의 고난을 한가족교회와 저는 참고 견디고 있다.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는 초대교회에서는 일상사였다.
기근과 적신은 경제적 어려움의 모습이다.
위험이나 칼은 생명을 위협하는 고난들이다.
누군가 사람에 의해서 겪게 하시는 고난들이다.
그러나 이 모든 고난도 주님을 떠나 주님이 못 보시는 가운데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구도, 어떤 고난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는 없다.
하나님은 뜻이 있고 계획이 있으셔서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게 하신다.
아브라함 25년, 모세 40년, 요셉 13년, 다윗 10여년, 욥의 고난. 바울의 10여년.
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으며 참은, 길고 험난한 고난의 세월이었다.
선을 행함으로 받고 참는 긴 고난일 때, 우리는 모세와 같이 기도할 수 있다.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시90:15)
2.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바울 사도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확신하고 있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죽는 것도 사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영적인 능력자들이나, 세상 권세를 쥐고 흔드는
권력자들일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현재 어떤 처지에 있든, 장래 어떤 일을 닥칠지라도.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떤 능력도 아무리 높은 것이라도, 아무리 깊은 것이라도,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하나님 아닌 모든 피조물의 어떤 것이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그 하나님의 사랑은 바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랑이다.
그 사랑은 반드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어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와 관계 없는 하나님 사랑은 ‘하나님이 보우하사’ 하는
애국가 사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반드시 우리 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어야 한다.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인격적 관계가, 영적 관계가 맺어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어야 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맺어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우리의 관계는 영원한 관계이다.
그 주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피조물도 어떤 일이나 사건도 위기나 죽음도 그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10:28)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도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거나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신다.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신31:8)
우리 주님도 산상설교에서 얼마나 결코 끊어질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가?
너희가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하면서 하시는 말씀이다.
재물을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섬길 수 없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6:24-34)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으로 살려면
모든 염려 걱정과 함께 우리의 조급한 욕심을 내려 놓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읊조리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준비하며 참고 기다려야 한다.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믿고 확신해야 한다.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도 끊을 수 없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우리도 확신하고 또 확신하고 흔들리지 말자
3. 이 모든 일에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고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는데,
환난과 곤고와 박해와 기근과 적신과 위험과 칼을 받고 살았는데,
결국 마지막에는 누가 이겼느냐?
역사를 보면, 끝을 보면, 핍박하고 환난을 겪게 한 권세자들이 아니라,
권력자의 편에 서서 이익을 취하던 자들이 아니라,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고 참은 이들이 이겼음을 본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그것도 넉넉히 이겼음을 본다.
“우리는 언제 1662년의 자리로 오게 될까요?” 하고 로이드 존스 목사는 말했다.
영국에서 1662년은 청교도 목사들이 자기 운명을 결정해야 하는 날이었다.
8천명의 목사들은 아무것도 잃지 않고 앞으로의 안정과 이익을 위해 통일령에 서명하고 남았다.
그러나 2천명의 목사들은 양심과 진리의 말씀을 어길 수 없어, 서명하지 않고,
교구와 사택과 소득을 버리고, 안해와 자녀들을 데리고 길거리로 나섰다.
순응이냐 순결이냐의 선택의 앞에서 다수는 순응을 택했고, 소수는 순결을 택했다.
그 소수를 ‘비밀집회 금지령’, ‘5마일 금지령’으로 권력자들은 괴롭혔다.
존 번연은 12년을 감옥에 갇혔지만, 그 속에서 ‘천로역정’이란 보물을 낳았다.
3백여년이 지난 지금 역사는 순결을 택한 소수가 옳았음을 인정하고 있다.
8천명은 잘 먹고 잘 사역했겠지만, 그후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그 2천명의 청교도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신앙에는 생명을 걸만한
진리와 실체가 있는 것이라고 느꼈다.
그 영향으로 영국의 절대 왕정은 무너지고, 명예혁명을 가져왔고,
바른 정신 위에 부강해져서 영국을 2백년 동안 세계를 재패하게 하여 주었다.
축복과 영광을 가져오는 것은 순응이 아니고 순결이며, 성공이 아니고 성결인 것이다.
욕심을 부리고 달음박질만 한다고 모든 것을 얻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주로 받았으면 그 안에 뿌리를 박고 진리로 세움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안으로부터 바탕으로부터 굳세 세워주고 참된 머릿돌이 되게 해주는 것이다.
바울은 자기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기고 버렸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기 원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얻으면 사실은 다 얻는 것이지요.
하늘을 구할 때 땅을 차지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우선적으로 구할 때,
모든 것을 채우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 수 있다.
여호와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 수 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길 수 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는 사람들은
어떠한 형편에도 자족하기를 배우고,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1-12)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며 자족하기를 배우고 일체의 비결을 배우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는 좋은 결말을 주셔서 넉넉히 이기게 하신다.
다윗은 시글락 시절을 청산하고 헤브론에 오르고
원수들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그 머리에 부르시고 잔이 넘치게 하셨다.
모세는 그의 기도대로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 화를 당한 연수대로 기뻐하게 해주셨다.
요셉은 낯선 나라에서의 노예살이, 억울한 죄수살이를 마치고 대애굽제국의 총리로 세워주셨다.
아브라함은 낮선 땅 가나안에서의 고난의 세월을 인내한 후 이삭을 얻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욥은 극심한 고난으로 다 잃었지만 하나님은 갑절의 축복으로 영광스럽게 해주셨다.
우리가 잠시 받은 고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하신다.
우리가 받은 고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받게 하신다.
우리가 고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게 함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 받는 자가 되자.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게 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깊이 생각하고 믿고 의지하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매일 지고 주님을 따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