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존스, '빌립보서 강해', 서문, 1장 주 안에서 기뻐하라 (김영희)
로이드 존스, 『빌립보서 강해』, 정상윤역, 복있는사람, 2011
서 문
마틴 로이드 존스가 1947년 11월부터 1948년 7월까지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전한 이 설교는 40년 전과 똑같이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무엇보다 이 설교를 들은 이들이나 우리나 마음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인간은 언제나 2천 년 전 빌립보에 살았던 사람들이나 20세기 세계에 사는 우리나 동일하다는 것이 존스가 전한 메시지의 핵심이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흠 없는 말씀이 제시하는 영원한 진리를 선포했으며, 그 진리를 논증하고자 했다. 1 세기 로마 감옥에서 처형을 기다리던 한 유대인 바울의 서신이 2천 년 후 참혹한 세계대전을 경험하고 낙담과 혼란에 빠져 있는 런던 사람들에게도 진리로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오늘날 내면의 기쁨과 평안을 구하는 모든 이에게 자신의 비결, 곧 자기 삶 속에 그리스도를 모심으로써 기쁨과 평안을 얻는 비결을 알려 준다.
로이드 존스는 역사상 가장 끔찍한 전쟁이 끝난 지 2년 만에 이 빌립보서 강해설교를 시작했다. 회중은 전쟁을 고스란히 경험한 사람들이었고, 그가 시무하던 웨스트민스터 채플이 폭격을 받아 부서지는 광경 또한 목격한 사람들이었다. 1947년은 세계가 이미 냉전체제에 돌입한 해였다. 그는 이 책의 “평화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설교에서 제3차 세계대전의 발발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로이드 존스는 이 책, 빌립보서 강해를 통해 다시 한 번 우리의 유일한 참 소망인 그리스도의 복음을 지목한다. 참 평화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는 것뿐이라는 것이 로이드 존스의 변함없는 복음의 메시지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기쁨과 하나님의 평안’이 무엇인지를 우리 눈앞에 펼쳐 보이며 우리 삶의 현실을 직시하고 난관을 극복해 나갈 용기와 힘을 불어넣어 준다. 큰 시련 속에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바울, 승리의 삶을 살았던 그 노사도의 모습이, 이 설교를 통해 오늘 우리 삶에서도 생생히 증거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1988년 10월
크리스토퍼 캐서우드
제 1 부 기쁨의 삶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 1:18)
1 장 주 안에서 기뻐하라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빌 1:1)
이 편지에는 바울의 다른 편지에 없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사도가 쓴 편지들 중 가장 서정적이고 편안한 편지로서 이 편지에는 기쁘고 편안한 분위기가 묻어난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서신에서 살펴보는 것은 단순히 이런 장점 때문만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들어야 할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성경의 독특한 특징은, 어느 정도 개인적인 동기에서 썼을 법한 편지가 만인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당연히 진리 자체가 변하지 않기 때문이며, 영적인 삶의 법칙 또한 절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약 서신서의 권면이 당대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유효하게 적용되는 것이며, 성경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꼭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그리스도인이 겪을 만한 경험은 전부 성경 어딘가에 나와 있고 설명되어 있다. 성령의 영역에서 새삼스러운 경험이란 없다. 영적인 법칙은 상존하며 영속한다.
빌립보는 유럽 최초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된 성이다. 그 성에는 이미 하나님께 기도하는 경건한 무리가 있었다. 바울과 실라는 그들에게 복음을 설교했다. 하나님은 자색 옷감 장사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셨다.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이 편지를 썼다는 것 또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다. 그는 로마의 죄수였다. 바울은 로마에서 사슬에 매인 죄수의 몸이 되어 자신이 10여 년 전에 세운 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었다.
이 편지의 주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기쁨’, 다시 말해 ‘주 안에서 기뻐하는 법’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그 어떤 편지보다 이 편지가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능력을 뚜렷이 보여 준다. 빌립보서는 복음에 대한 이론적 논문이라기보다는 실제적 설명서에 가깝다. 바울은 자기 이야기를 통해 복음이 개인의 삶에 어떻게 역사하는지 설명해 주고, 그뿐 아니라 복음이 공동체의 삶에 어떻게 역사하는지도 분명하게 보여 준다. 필시 거친 사람이었을 간수와 같은 사람이 교인이 되어 있는 빌립보 교회는 행복하고 조화로웠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상태와 모습을 보며 기뻐했다.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개인과 공동체의 삶에 역사한다는 중대한 표시이다.
오늘날 생각 있는 사람들이 관심을 쏟는 중대한 문제는 ‘어떻게 조화롭고 평화로운 관계를 맺을까’ 하는 것이다. 기독교회는 이렇게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 방법이 딱 한 가지 있다고 선언한다. 각 개인의 삶에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능력이야말로 개인과 집단을 공히 조화로운 상태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바로 이 서신의 주제라고 말할 수 있다.
1장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바울은 동어반복의 명수였다. 모든 상황이 열악한 죄수인 사람이 어떻게 환경을 극복했는지 밝힌 다음 그 이야기를 내내 반복하다가, 4장에서 마지막으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라는 결론을 내린다. 복음을 믿는 사람은, 복음이 유일한 진리임을 아는 사람은 그 진리를 반복하고 되풀이하지 않을 수가 없다.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3:1) 복음의 진리를 한 번 듣고 영원히 기억한다면 굳이 반복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천 번을 들어도 잊어버린다. 바울은 환경을 극복하는 것이 아주 시급하고 실제적인 문제임을 알았기에 같은 말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타인과의 갈등은 대부분 내면의 갈등에서 비롯된다. 자신과 불화하는 사람은 대체로 남들과도 불화하게 마련이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비결은 내면에서부터 하나님과 관계를 바로잡는 것이다. 그러면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된다. 살다 보면 언젠가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된다. 마치 감옥에 갇힌 그런 환경에서도 주 안에서 기뻐할 수 있는 비결, 그 모든 환경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비결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 비결을 알아야 할 훨씬 더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섬기기 위해 구원받았다는 사실 –전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구원받았다는 사실 –에 있다.
2장에서 교회가 완전한 조화를 이루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면서 이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15)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위해 이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이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의무이다.
바울의 서신은 교리와 신학의 문제를 다룬 후에 적용을 보여준다. 이 편지에서는 신학과 적용을 섞어서 말하며, 교리와 실제가 함께 서신을 관통하는 것이다. 또 다른 특징은 사실성으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꾸밈없는 사실성이다. 그렇다고 현실에만 충실하다 보면 냉소로 흐르게 될 위험이 있다. 현실적이면서도 냉소로 흐르지 않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사도가 여기에서 탁월하게 설명하고 있는 이 영광스러운 복음뿐이다.
사도는 이 주제를 어떻게 다루어 나가는가? 이 서신의 주요 주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기쁨 – 주 안에서 어떻게 기뻐할 것인가, 어떻게 환난 중에도 기뻐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행복하고 활기찬 삶을 살 것인가 – 이다.
먼저 역경 속에서 기뻐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보여 준 다음, 1장에서 죄수가 된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이 주제를 전개해 나간다.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12) 역경 속에서도 죄수가 되어서도 승리할 수 있으며, 기뻐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인의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복음이 제공하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다. 절대적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참으로 사랑하고 믿는 자는 그 환경과 형편에 상관없이 누구에게 무슨 짓을 당하든 상관없이 언제나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보장한다.
2장은 ‘육신의 연약함’ 속에서도 이렇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준다고 생각한다. ‘연약함’이란 신체적인 면만 아니라 자연인으로서 지니고 있는 기질상의 약점이나 난점들을 가리킨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도 이기심에 빠져 자신과 자신의 행복, 성공에만 매달리기 쉽다. 우리는 이 요소를 처리해야만 한다. 중요한 점은 그럼에도 여전히 모든 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으며, 주님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신약의 그리스도인들 중 상당수는 노예나 평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바울은 그들 속에 이 진리가 있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있으면 어떤 환경에서도 기뻐할 수 있고 일어설 수 있다고 했다. 그 한복판에서 더 조화롭게 산다고 했다.
3장에는 기쁨과 행복을 앗아 가기 쉬운 또 다른 장애물로, 거짓 교훈이 빌립보 교회까지 위협하고 있었다. 기독교의 실제에 대한 거짓된 교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려 줌으로써 교인들을 미리 준비시키고 있다. 거짓 교훈은 주 안에서 기뻐하지 못하게 만든다. 옳고 바른 믿음이 없으면 구원의 축복을 경험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교리와 실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이 지복과 기쁨을 유지하는 방법, 더 충만히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준다. 그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았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말한다. 신기할 정도로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말이 아닌가? 바울은 모든 악조건을 딛고 일어나 놀라운 일성을 토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그리스도가 계셨다. 그래서 부족함이 없었다.
삶의 긴장은 아주 심각한 문제이다. 이 긴장을 덜어 줄 육신의 친구는 없다. 피상적인 심리학자들은 그저 현실을 잊도록 도와줄 따름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 큰 시련 속에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있다. 이 편지는 당시 받은 사람들뿐 아니라, 2천 년이 지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그 기쁨과 승리를 전해 주고 있다.
앞으로 이 서신을 계속 살펴 가면서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질 것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도 던질 것이다. 주님의 성육신, 믿음으로 의롭다 하신다는 것, 부활의 교리, 영광스러워 진다는 것, 참된 기도가 어떤 것인지도 살펴볼 것이다. 이 편지는 오늘날 토대 자체가 흔들리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승리하며 충만한 영광 가운데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즐거워하게 해줄 만한 것이 있다고 장담한다. 바울은 1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라는 사실에 이 기쁨의 비결이 있다고 말한다. 감사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