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존스, '교리강좌 2', 21장 로마서 6~8장이 말하는 성화
21장 로마서 6~8장이 말하는 성화
1. 로마서 6장의 개요
우리 주님은 제자들을 위해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17:17)라고 기도하셨다. 말씀 전체,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이 우리의 성화를 돕는다.
1) 로마서 6~8장의 의의
성화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의 표준문구라고 부를만한 부분이다. 이 장들은 명확한 방식으로 성화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바울은 첫 다섯 장에서 칭의라는 위대한 교리를 다루고 나서 로마 교회의 몇몇 성도들이 그 교리로부터 잘못 추론해 낼 수도 있을 법한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2) 개략적 내용 분석
로마서 6~8장은 칭의와 성화를 구분하려는 시도에 대한 논박이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인이 계속해서 죄에 거하는 것이 절대로 불가능함을 보여 주려한다. 이것이 불가능한 이유를 그는 기독교적 구원의 본질과 특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6:1-2). 그것이 주제이다.
전체적인 논지는 6장에서 진술하고 요약했다. 바울은 7장과 8장에서 이 논지를 더욱 상세하게 다룬다. 단지 심화된 내용일 뿐이다. 이것은 중대한 문제이다. 그리스도인이 6장과 7장에 머물러 있으면서 8장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극도로 위험한 오류이다. 사도 바울은 8장 5-9절에서 제 말을 뒷받침할 수 있는 진술을 한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8장에서 바울은 2차적 복을 받거나 추가적인 체험을 한 일부 특별한 그리스도인들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 하나하나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당신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당신은 절대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에 속한 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은 육이 아니라 영에 속한 사람들이다. 회심하기 전에 그들은 육신에 있었다. 하지만 회심하는 순간 그들은 더 이상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다. 바울이 그리스도인을 향해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어떤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상태일 리 없다. 여러분은 더 이상 그리스도인을 영적인 그리스도인과 그렇지 않은 그리스도인으로 나누어서는 안 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정의상, 필연적으로 영적이다. 거듭난 순간 우리는 신령하다. 우리는 성령을 받았다. 그리스도께 연합되었다. 하나님의 본성이 우리 안에 있으며 우리는 신성한 성품에 참여한 자이다.
2. 로마서 6~8장의 내용 분석
1) 죄의 타락의 결과
아담의 죄의 결과로 사람들이 죄와 사탄의 지배와 주관 아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죄된 본성을 갖고 있다. 타락 때 우리는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하나님과 조화를 이룬 우리의 영으로 육신을 주관하는 대신, 우리의 삶 전체가 육신과 그것을 주관하는 죄 된 원리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엡2:3)에 지배받게 되었다. 그들은 죄와 사탄의 지배를 받는 육욕의 피조물이 되었다.
2)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완전한 구원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구원이 있다. 바울은 로마서 5장의 후반부에서 이 사실을 장엄하게 진술한다.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20절). 이 구원은 부분적인 구원이 아니라 전적이고 완전한 구원이다.
3)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결과
가장 중대한 구절은 로마서 6:14이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죄가 너희를 주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라고 말한다. 그런 일은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이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죄가 여러분을 주관하지 못할 것이며, 바울은 이 일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지 보여 준다. 근본원리는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5장 후반을 보면, 거기서 말하는 논지는 우리가 아담 안에 있었던 것처럼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담이 한 일의 모든 결과를 거두었고,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의 모든 결과를 거두었다. 그 두 가지가 대응을 이룬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께 결합되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나눌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 이것은 6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함께 장사되었으며,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했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다.
엡 2:6도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바로 그 순간에 일어난 일이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1:30).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분과 연합했다. 우리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전부를 소유한다. 우리는 이 점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율법과 죄로부터 해방되어 생명 가운데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간다
그리스도가 죽으셨고 죄에 대하여 영단번에 율법의 마침이 되었다. 그래서 율법은 더 이상 나에게 정죄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율법에 대하여 죽었을 뿐 아니라 죄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로 죽었다고 말한다.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롬6:2). 부정과거시제로 표현할만큼 명확한 사실이다. 그 죽음은 영단번에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이다. 이미 죽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6절). 우리의 옛 자아는 십자가에서 죽었다. 그 일은 이미 일어났다.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7절) 그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18절).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죄로부터 이미 해방되었다는 말이다-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22절).
그리고 나서 바울은 호소의 형태로 말한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11절) 13절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 새로운 생명 안에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결혼했으며 선하고 성화된 열매를 맺어야 한다. 이것이 바울의 근본 진술이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결과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았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으며 그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지위이다. 혹자는 말한다. “그럼 우리가 완전히 무죄하고 온전하다는 말인가요?” 그리스도께서 자아 전체에 대해 그렇게 하셨나요? 나는 이제 모든 모양과 형태의 죄를 전혀 짓지 않게 되었나요?“
4) 여전히 죄의 지배 아래 있는 육체
바울의 대답은 이것이다. “그렇지 않다. 내가 방금 말한 모든 내용은 우리의 영혼에 해당하는 말이다. 우리 영혼은 이미 죄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영적인 존재로서의 나는 죄에 대 죽었다. 나는 영단번에 죄와 관계 없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내 육체는 그렇지 않다.” 아담의 타락의 결과는 내 영혼과 육체, 전 인격에 영향을 끼친다. 그리스도인이 구원 받는 순간 그리스도는 나의 영혼을 완전히 구속하셨다. 그것이 “새로운 자아”이다. 하지만 내 육체는 여전히 죄에게 속박되어 있다. 나는 죄에 대하여 죽었다. 죄와의 관계는 끝났다. 하지만 내 육체는 여전히 죄의 지배 아래 있다. 증거를 제시하겠다.
6장에 나타난 증거
6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여 함이니”. 옛 자아는 십자가에 못박혀 끝장났다. 죄의 몸이 멸하여지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이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12절을 보라. 11절에서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이어서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을(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라고 한다. 13절도, “또한 너희 지체- 즉 나의 본능과 나의 수족, 나의 재능들과 내 모든 것-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그래선 안 된다.
바울은 반대로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한다. 이어서 19절에 최종 진술이 나온다. 거기에서 바울은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고 말한다. 이것이 나의 영혼은 해방되고 구속되었지만 육신은 아직 그렇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6장의 증거이다.
7장에 나타난 증거
16절에서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절에서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내가 아니다. 나는 구속받았다. 그것은 내 안에 거하는 죄이다. 18절은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그는 내 안에 선한 것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20절에서 다시 한 번 말한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같은 말이다.
하지만 이어서 23절을 보라. “내 지체 속에서- 내 속에서가 아니라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 이 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는 다시 그 죄가 나를 지배하도록 허용할 것이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죄는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지체 속에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24절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이것은 논리적 결론이다. 바울은 사실상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상태다. 나는 구원 받았고 속량받았다. 그렇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육신 안에 있으며 육신은 여전히 죄의 지배 아래 있어서 나를 끌어내리려 한다. 누가 나를 이 몸에서 해방시킬 것인가?” “내가 어떻게 완전히 해방될 수 있는가?”
이것이 그의 질문이다. 25절에서도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것이 7장에 나오는 증거이다.
8장에 나타난 증거
10절에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이 말은 육신이 아니라 육체적 틀, 즉 소마를 의미한다-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그는 방금 이렇게 말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이것이 그리스도인인 여러분의 상태이다. 이런 여러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영적으로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차이를 알겠는가? 13절에서도 바울은 다시 한 번 말한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바울은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죽여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죄가 거하는 장소인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은 살 것이다.
8장의 마지막에는 이 모든 것을 요약하는 위대한 구절인 23절이 나온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이것이 무엇인가? 여기 답이 있다-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그리스도인인 나의 영은 이미 구속을 받았지만 내 몸은 그렇지 않다. 나는 내 몸도 영혼과 마찬가지로 구속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스도는 이미 내 영혼을 구원하셨고 몸은 아직 구속받지 않았다. 나는 양자 될 것, 곧 내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5)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질 궁극적 승리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에게는 위대한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7장 7-25절의 의미를 살펴 보자. 바울은 7장 첫 부분에서 우리가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는 첫 번째 남편이 죽은, 그래서 다른 사람과 결혼할 자유를 갖게 된 여자와 같다. 우리는 더 이상 율법에 매여 있지 않다. 그리스도가 자신의 몸으로 율법의 마침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와 결혼했으며, 율법과의 관계는 끝났다. “그렇다면 율법은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말인가?”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 자체는 괜찮다. 하지만 율법이 여러분을 의롭게 하거니 거룩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실수이다. 율법을 수행하려는 자신의 노력을 통해 죄로부터 건짐 받으려 한다면 여러분은 정말로 멸망할 것이다.
이어서 바울은 특유의 극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그는 사실상 이렇게 말한다. “너희들 때문에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율법의 가치를 알게 되었으며 그것을 지키고 싶다. 하지만 내 몸이 나를 끌어내리고, 내 몸에 남아 있는 죄가 율법을 지키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것이 전부라면 나는 실패자이고 곤고한 사람이다. 하지만 나의 상태는 그와 같지 않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그리고는 자신의 질문에 즉각 대답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6장에서 그가 요약한 내용이 이 질문에 이미 대답했다. 나는 그리스도와 연합했기 때문에 그 곤고함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인해, 죄는 나를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일은 허용되지 않을 것이며, 실제로 허용되지 않는다.
이 질문에 대해 바울은 6장 14절에서 처음으로 대답한 것이다. 그가 이 말을 즐겨 반복하고 있음을 주목하라. 7장 25절에서도 다시 한 번 말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이어서 8장 10-11절에서도 대단히 특별한 방식으로 말하고 있다.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여전히)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은 몸도 살리시리라”. 그것은 재림 때에 있을 성도의 부활만이 아니라 이 죽을 몸 안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말하는 것이다. 그 과정은 이미 진행 중이다. 이 얼마나 멋진 구절인가?
15~17절에서도 반복한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여러분은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피곤한 순례 여행을 하고 있다고, 모든 것이 여러분을 반대하고 끊임없이 패배하고 있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 “너희는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마지막 결과는 확실하다.
23절에서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이 일이 오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패감과 좌절감에 빠져서는 안 된다. 우리의 투쟁은 헛되거나, 절망적이거나, 무기력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이 위대한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신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며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계신다. 그리고 이 역사의 결과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혼을 이미 해방시키셨으며 우리의 몸까지도 해방시켜 나가고 계신다. 마지막에 우리 몸은 완전하게 해방될 것이다.
이 과정은 성령의 역사에 의해 진행된다
빌 2:12~13이 그 답을 준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성령은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는 그의 인도를 받는다. 성령은 우리 의지에 역사하신다. 거룩함을 추구하는 마음을 창조하신다. 성령은 죄의 모든 더러움과 추함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우리가 정결함과 하나님의 생명을 열망하게 하신다. 그뿐만이 아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소원하는 것을 행할 힘과 능력을 주신다. 8:14에,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이 말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된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우리는 우리 몸을 하나님께 의의 무기로 드려야 한다
성령은 우리를 특히 진리를 통해 인도하신다. 성령은 진리의 창시자이시며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셔서 그 진리를 이해하게 하신다. 성령이 그렇게 하실 때, 우리는 거룩해지고 있다. 우리 영혼은 이미 속량 받았지만 몸에는 아직 문제가 남아 있다. 우리는 그 몸마저도 마지막에는 해방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우리가 이 일이 일어날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보여 준다.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6:11).
그는 우리에게 궁극적 승리에 대한 확신을 준다. 나는 더 이상 패배감을 느끼지 않는다. 나는 내가 승리자의 편에 섰다는 것과 계속해서 전진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호소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6:12). 나는 이것이 지극히 정당한 호소라고 느끼며 그대로 실천할 것이다. 바울은 말한다. 이 모든 것을 알게 되었으니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나는 “옳은 말입니다.”라고 말한다.
우리의 몸도 영화롭게 되는 영광스런 날이 오고 있다
이어서 바울은 나의 속량받지 못한 몸이 이전처럼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위대한 호소를 한다. 나는 내가 장차 영광 받을 하나님의 자녀임을 인식하고 나의 몸이 나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내가 이생에 있는 동안에는 완성되지 않고 계속해서, 끊임없이 진행될 과정이 있다. 죄는 몸에 남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그 과정이 완성될 날이 오고 있다. 주님은 나의 낮은 몸을 변화시켜 그분의 영광의 몸과 같이 되게 하실 것이다(빌 3:20).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구속의 과정을 시작하셔서 나를 영적인 존재로 구속하시고 죄에 대하여 죽도록 만드신 날이 있듯이, 나의 몸도 마찬가지로 죄에 대하여 죽고, 흠도 없고 점도 없이 완전하고 책망할 것 없는 모습으로 하나님을 대면하여 서게 될 그런 날이 있다.
약속된 영광의 날을 바라보며 죄와 싸워 나가는 것이 성화다
요한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지금이라고 했다-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요일3:2). 그 때에 우리가 주님과 같이 될 것이라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주님과 같이 되고 그분의 성품에 참여하고 그분의 형상을 반영한다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 역시도 주님의 몸과 같이 영화롭게 된다는 뜻이다.
이 일은 확실히 이루어질 것이다. 나는 여전히 이생과 이 세상에 있으며 여전히 내 몸에 있는 죄와 싸워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3:3)고 말한다. 이것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이다.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고전9:27)이라고 말한다. 이 일 역시 스스로 해야 한다. 이 사람은 수동적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고만 있지 않다. 나는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인다(골3:5). 이 모든 진리,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인해 나는 그렇게 행하라는 권면을 받고, 그 일을 행하기 원한다. 이것이 성화이다.
3. 성화에 대한 고찰의 결론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든지, 이생에서 죄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수 있다고 하는 모든 이야기를 반드시 거부해야 한다. 성경의 이름으로 그런 말들을 거부한다. 우리는 반작용의 원리 역시 거부한다. 이 원리로는 나에 대해 충분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원리는 내가 영적으로 이미 해방되었으며, 문제는 오직 육신에 있다는 것,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내가 직면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말해 주지 않는다. 이 원리는 로마서 7장에 머무르는 그리스도인과 8장에 도달한 그리스도인 사이에 잘못된 구분을 만든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로마서 8장의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화를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계획의 일부로 본다. 그리스도는 구속이시며 신자는 그리스도께 연합한다. 거듭남과 중생과 연합의 순간 이 강력한 과정이 시작하여 최종적으로는 완전한 구속과 구원에 이르게 된다. 이 과정은 심지어 우리의 몸, 즉 지금까지, 그리고 우리가 죽고 다시 살아날 때까지 계속해서 죄의 지배 아래에 있을 우리의 몸까지도 포함한다. 그러나 이 영광스러운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죄를 지배하고 점점 정복하게 될 것이며 그의 성화에 진보와 성장이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