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아카데미

양낙흥, '조나단 에드워즈의 생애와 사상', 2.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사랑

강대식 2019. 11. 8. 21:32

2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사랑

 

은혜로운 정서들의 객관적 근거는 신적 일들의 초월적으로 탁월하고 사랑스러운 성격이다.” , 하나님의 일들이 어떤 사람 자신, 혹은 그의 이익에 대해 가지는 관계가 아니라, 그 자체 속에 있는 탁월하고 사랑스러운 본성으로 인해 야기된 감정들이 참된 기독교적 정서들의 객관적 근거라는 것이다. 사랑의 정서는 모든 정서들의 원천이다. 특별히 기독교적 사랑은 모든 은혜로운 정서들의 원천이다. 에드워즈는 종교적 정서들의 출처를 두 가지로 대별한다.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이요 다른 하나는 인간의 이기심이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사역들,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들 등의 신적 탁월성과 영광이야말로 참된 성도가 그것들을 사랑하는 일차적 이유이다.

 

만일 그가 신적인 것들로부터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떤 이익이나 그가 그것들에서 받았다고, 혹은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혜택이 그것들을 사랑하는 일차적 이유라면 그가 그것들을 사랑하는 최초의 근거는 자기 사랑"이며 그러한 근거에서 출발하는 종교적 정서는 거짓이라는 것이 에드워즈의 견해였다.

 

 

아직 회심의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들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자기 이익의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기적이요 계산적이며 실용주의적인 것이어서 위선적이다. 위선자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거기서 어떤 이익을 발견하기 때문이지 성경의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열려서가 아니다. 하나님의 일들에서 도덕적 탁월성의 사랑스러움을 발견해서가 아니다.

 

에드워즈는 자연인들이 죄를 미워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죄의 도덕적 악이나 가증함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연적 원리 때문이다. , 사람들이 뱀을 미워하는 것이 그것의 독과 유해성 때문이며, 맹수를 싫어하는 것이 사납고 위험하기 때문인 것과 같다는 것이다. 아직 참된 회심의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들도 각성되어 죄를 깨달을 수는 있다. 그들도 죄책, 죄와 처벌의 관계, 죄와 고난의 연관성을 볼 수 있다. 이것도 성령의 역사다. 그러나 특별한 역사는 아니다. 그것은 단지 성령이 인간의 자연적 능력을 도와준 것일 뿐이다. 그들은 신적 사물에 속한 도덕적 아름다움에 대한 지식은 갖고 있지 못하다. 이렇게 볼 때, 기복적인 동기에서 예수를 믿게 되었다거나 기복적인 동기를 강조함으로 많은 회심자들을 생산했다는 한국의 기독교를 에드워즈가 평가한다면 엄청난 부분이 거짓 회심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것이다.

 

잘못된 순서

 

에드워즈는 마음의 미각이 바뀌어 하나님의 성품 속에 있는 아름다움과, 영광, 지고선을 그 자체로서 이해하기 때문에 마음이 하나님께 끌리고 하나님과 연합되는 것이 참된 회심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다음에그리고 그것의 열매로 하나님 안에서 자기 이익이나 행복을 추구하게 된다. 에드워즈에 의하면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전도 시에 흔히 사용하는 접근법은 잘못된 것이다. ,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인식 후에 하나님이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에드워즈는 여기서 이기적 동기에서 출발되는 기독교에 쐐기를 박고 있다. 영혼의 구원이든 지상적 축복이든 이기적 욕심이 신앙의 최초의 출발점이 되는 것은 거짓 신앙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기적 동기에서 비롯된 종교적 감정도 다 거짓이다. 그는 종교의 최우선 순위에 인간의 만족보다 하나님의 영광의 아름다움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대부분 현대의 전도 방식은 심히 문제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놀라운 계획을 자기고 계십니다하는 식으로 인간의 이기심과 만족에 호소함으로써 최초의 종교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으로부터 신앙을 가지도록 결단하게 하는 종류의 전도는 참된 회심을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참된 종교적 정서는 먼저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본 후, 그가 나를 사랑하심을 보는 것이다. “그들은 먼저 하나님이 사랑스러우며 그리스도가 탁월하고 영광스럽다는 것을 본다. 그리하여 그들의 마음이 먼저 이러한 관점에 사로잡힌다. 그들의 사랑은 수시로 여기서 시작되는 경향이 있다. --- 그런 다음에 결과적으로 그들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위대한 은혜를 본다

 

여기서 우리는 에드워즈 신학의 핵심들 중 하나에 접근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감사는 그 이전에 놓여진 기초, 하나님의 성품으로 인한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다.” 성도의 사랑이 그러하듯이 성도의 기쁨 즉 영적 즐거움도 마찬가지다. 에드워즈에 의하면 하나님의 일들의 거룩한 아름다움이야말로 영적 기쁨의 원천이다. 영적 기쁨의 최초의 근거는 신성한 일들속에 있는 어떤 자기 이익에 대한 고려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들의 신적이고 거룩한 아름다움에 대한 조망 내지 묵상중에 그들이 누리는 달콤한 재미. 여기서 에드워즈는 영적 체험과 관련된 중요한 위험성을 지적한다. 흔히, 어떤 은혜 체험을 하고 나면 그것을 자랑하고 그로 인해 교만해지는 경우들이 많다. 그러나 에드워즈는 잘못된 종교적 정서를 소유한 자들, 즉 위선자들은 그리스도, 그의 아름다움 및 충만함을 자기들의 체험으로 대체한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는 대신 자신들의 놀라운 체험을 기뻐하며”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기들 체험의 아름다움이다. “발견된 그리스도보다 그들의 발견들에서 더 큰 위로를 얻는 것, 이것이 바로 체험을 먹고 사는 것(living upon experiences))”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