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아카데미

로이드 존스, '교리강좌 3', 1장 (5) 교회의 연합

강대식 2019. 11. 8. 21:39

5) 교회의 연합

 

교회의 연합은 영적 연합이며 생명의 연합이다

 

성경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연합은 영적인 연합이라는 사실에 즉각 동의해야 한다. 17장이 잘못 인용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사람들은 문맥을 무시하고 한 구절만 떼어 낸다. 21절을 인용해 그들도 하나가 되어라고 말하고는 그걸로 끝이다. 그들은 교회의 분열은 가장 큰 죄라고 주장한다. 분열이 유감스러운 일이며 분파주의가 분명 죄라는 사실에는 물론 동의한다. 하지만 이것을 우리가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과는 그가 어떤 형태의 그리스도인인지에 상관 없이 무조건 모든 면에서 완전하게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그것은 요 17장의 가르침을 부인하는 것이다.

 

17장은 이 연합의 특성이 어떠한지 아주 명백하게 밝혀주고 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21-22). 그것은 모두 영적인 연합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8), 그러므로 연합에 대한 우리 주님의 말씀은 특정한 교리를 믿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된다.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도 예수님은 사람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저는 그런 사람들과는 하나 되지 않을 것이다.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속하지 않는다. 그들이 이것을 믿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연합의 근거가 없는 것이다. 그 연합은 영적인 연합이다.

 

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 고전 12

 

몸의 유추가 옳은 것이 되려면, 본질적이고, 유기적이고, 영적인 연합이 있어야 한다. 각 지체들이 서로에게 속해 있지 않고 같은 생명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면, 그들에게 같은 피가 흐르고 있지 않다면 그들은 조화롭게 일할 수 없다.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2:18). 그러므로 첫째로 강조해야 할 것은 성령이다. 연합은 영적인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기관들의 합병이나 서류상의 합의가 아니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 연합한 것도 아니다. 성경에는 그런 개념이 나오지 않는다. 이 연합은 신비하고, 영적인 연합이다. 지극히 중대한 생명의 공동체이다.

 

교회 연합은 교리적 연합이다

 

두 번째 원리, 그것은 연합은 반드시 교리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합은 교리적이어야 한다.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17:17-18). 말씀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것, 성육신,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8:58). 동정녀 탄생, 주님의 기적들, 초자연적인 것들, 자신의 죽음의 목적-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는 것- 그리고 성령의 위격에 대해 자신이 하신 말씀 등을 말한다. 이 말씀들을 믿지 않는 사람들하고 연합할 수는 없다. 그들은 이 풍성한 교리들을 부인한다. 그들은 대리적 속죄나 성령의 위격을 믿지 않고, 기적은 불가능하며 전설일 뿐이라고 한다. “저희가 다 하나가 되어라는 구절만 뽑아낼 뿐이다. 그런 사람들과 연합하는 것은 요 17장을 부인하는 것이다.

 

연합이 교리에 근거해야 한다는 진리는 행 2:42에도 나와 있다

 

오순절 직후에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doctrine)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다성경은 축자적으로 영감된 책이다. 한 단어 한 단어가 중요하며, 한 구절 내에서 단어의 위치는 엄청난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교제가 있기 전에 교리적 공통성이 있어야 한다. 교제는 같은 믿음, 같은 진리, 같은 이해에 기초한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는 것의 의미가 같지 않고서는 진정한 교제를 나눌 수 없다. 믿음의 공통성이 있어야 한다. 2:42에서는 사도들의 가르침이 먼저 나온 후에 교제가 나온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교제가 먼저이다. 사람들은 , 모두 같이 모입시다. 모이고 나면 믿음의 문제에 대해 결정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교리의 하나 됨이 없이는 교제를 나눌 수 없다.

 

요한이서에는 더욱 강력한 진술이 나온다. 누구든지 이 교훈(doctrine)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10-11). 요한일서에서도 그는 우리에게서 나간적그리스도들과 그 추종자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들을 우리와 함께 있었지만 나갔다. 그들은 분명 우리에게 속하지 않았다(요일2:19). 그것이 교리에 대한 문제임을 기억하라. 교리는 참된 교제를 위해 본질적이고 중대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교회 연합의 문제를 논의할 때, 언제나 연합의 영적 교리적 특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특별하게 믿는 것이 없는 사람들과 연합하는 것은 전혀 어려울 것이 없다. 하지만 그것은 연합이 아니다. 연합이란 적극적인 것이다. 연합은 무엇을 말하는지, 무엇을 믿는지는 신경 쓰지 않고 모여드는 것이 아니다. 연합은 생명이며, 능력이며, 열정이다. 연합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인해 결합하는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교회의 연합은 그런 연합이다.

 

교회의 긴 역사를 되돌아보면, 하나님이 영적으로 그리고 교리적으로 마음을 같이한 소수의 사람을 가장 귀하게 여기시고 크게 사용하신 사건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들을 붙잡아 사용하셔서 큰 일을 행하셨다. 하지만 서유럽 전체에 단 하나의 교회만 존재했을 때, 그 교회가 사람들을 어디로 인도했는가? 암흑 시대이다. 제가 보기에는 이 역사의 위대한 교훈이 현재 완전히 잊혀지고 무시되고 있는 듯하다. 저는 성경에서 발견한 진리에 대한 열심 때문에, 그리고 참된 연합이 아닌 연합에 관심을 가진 나머지 성경이 왜곡되고 곡해되는 것이 비극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이다.

6) 교회와 국가의 관계

 

로마 카톨릭의 개념은 교회가 국가이며 국가의 모든 일을 주관한다는 것이었다. 반대의 극단은 소위 에라스투스주의적관점이다. 에라스투스는 교회가 국가의 한 부분이라는 개념을 창안한 사람이었다. 에라스투스주의는 교회가 국가의 한 조직이며 국가에 의해 통치되고 지배된다는 믿음이다. 영국국교회는 에라스투스주의를 신봉하며 대부분의 루터파 교회들도 같은 견해를 채택한다.

 

성경을 주의 깊게 읽어 보면 두 영역 주의라고 묘사할 수 있는 제 삼의 견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소유하셨다. 하나님은 교회의 주인이실 뿐 아니라 우주의 주인이시다. 국가는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다. 바울은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한 바라”(13:1). 권세 잡은 자들과 모든 다스리는 자는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임명하신 것이다. 하지만 교회라고 하는 다른 영역이 존재한다. 이 두 영역은 나란히 존재한다. 전자가 후자를 주관하지 않는다. 그 둘은 서로 분리되어 있으며 둘 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 이것이 신약 성경이 묘사하는 교회의 모습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신약에는 국가가 관장하는 교회를 암시하는 내용이 전혀 없다. 초대 신자들은 정부와 독립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주 되심과 임재 안에서 모였다. 모임의 바깥에는 그들이 속한 큰 국가가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그 국가의 시민이었지만, 어떤 의미로는 국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영역에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그것이 지난 수 세기 동안 국가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개혁주의적 견해였다.

 

성경은 민족교회를 지지하지 않는다

 

그와 정 반대이다.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3:11). 교회는 뭔가 다르다. 그것은 거듭나고 영적 생명을 가진 사람들,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의 지체인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지역적으로 함께 모이는 것- 그것을 교회라고 부를 수도 있고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도 있다-이다. 사회적 인종적 구분이나 국적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으며, 교회에서는 그런 것들을 절대 언급하면 안 된다. 그런 자격 조건들을 덧붙이는 것은 분명 성경적이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하나이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디서나 똑같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그런 교회였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한 논증이 아니다. 그때는 그러했지만 지금은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신 바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은”(21:43) 시대이다. 베드로가 벧전 2장에서 입증하듯이 남은 것은 교회이다. 베드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말씀을 교회에 적용시킨다. 교회는 이제 초국가적이다. 모든 민족 안에 교회의 백성이 있다. 교회는 이 땅의 다양한 나라에 살면서, 동시에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인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