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신앙

열정적으로 성경을 사랑한 롤라드들, 박해와 최후와 영향/ 김명수

강대식 2019. 11. 27. 12:10

열정적으로 성경을 사랑한 롤라드들, 박해와 최후와 영향/ 김명수

 

위클리프 추종자들인 롤라드들은 핍박 가운데서도 성경 말씀을 열정적으로 사랑했다. 1401년 윌리엄 소트리라는 사람은 롤라드란 이유로 화형을 당했다. 그리고 브라드베라는 롤라드 출신 재단사가 있었는데, 로마 카톨릭 당국자들은 그를 기름통 안에 집어넣고 구워서 죽였다. 런던의 감옥을 롤라드 탑으로 불렀는데, 그곳에서 수많은 롤라드들이 죽어갔기 때문이다. 로마 카톨릭 집단의 잔혹함을 생생하게 증명해 주는 기념탑이기도 하다.

 

당시 롤라드들에게 있어서 영어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것은 생명을 담보한 위험한 행위였다. 그들은 영어 성경을 읽다가 발각되어 죽을 위험을 감수하고 성경을 읽었다. 위클리프의 제자요, 서기였던 존 퍼비는 위클리 성경 번역에 공헌한 사람이었다. 그는 1421년 투옥되었고, 비참할 정도로 궁핍함과 극단적 고통을 견디다가 감옥에서 순교하였다. “30명의 영향력 있고 유력한 롤라드 지도자들이 무자비하게 죽음을 당했다.”

 

1519년에 여섯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화형대에 묶여서 불에 타죽게 되었는데, 그들의 죄목은 자기 자녀들에게 영어로 된 주기도문과 십계명을 가르쳤다는 것이었다.

 

롤라드들은 열정적으로 성경을 사랑한 사람들이었다. 당시는 인쇄기가 발명되지 않았었다. 이때는 손으로 필사하여 성경을 옮겼는데, 한 권의 성경을 필사하는 데 일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 때문에 성경의 값이 너무나 비싸서 성경을 소유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성경을 사랑했던 그들은 성경 중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몇 장을 얻기 위해서 많은 양의 건초더미를 성경을 가진 사람에게 건네주고, 성경을 하루 동안 빌렸다. 그리하여 밤을 세워가며 자기가 좋아하는 부분의 성경을 필사하여 간직하곤 했다. 그렇게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필사한 생명같이 소중한 영어 성경이 악랄한 카톨릭 당국자들에게 발각되어 손과 발이 화형주에 묶여 순교당할 때, 순교자들과 함께 그 수많은 필사본 영어 성경도 같이 불태워지곤 했다.

 

롤라드들은 그 금지된 책인 영어 성경을 집 천정에 감추어 두고 비밀리에 읽었다. 그들은 목숨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성경을 읽었다. 또 그들은 밤을 세워가면서 성경을 읽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다가 불시에 들이닥치는 보안관들을 피하기 위해서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읽었다. 또 그들은 인적이 없는 깊은 숲속이나 광야로 나아가서 성경을 읽었고, 성경에 대해서 토론했다. 그들은 성경을 읽기 위해서 양떼를 몰고 먼 들판으로 나가기도 했으며,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는 그곳에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성경을 마음껏 읽곤 했다.

 

롤라드들에게 성경은 자신들의 생명보다 더 소중했다. 그들은 주로 밤에 모여서 성경을 읽었고, 글을 모르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성경 읽는 옆에서 두 귀를 활짝 열고 경청했다. 신약 성경 번역본은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어 널리 널리 퍼져나갔다. 가난한 사람들은 성경을 구입하기 위해서 동전을 모았으며, 여러 사람이 어울려 공동 출자하여 신약 성경 한 권을 구입하였다. 당시 신약 성경 필사본 한 권이 일꾼 6개월 치 품삯에 해당하였다.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필사된 베드로 서신서나 바울의 서신서 몇 장을 얻기 위해서 많은 양의 건초더미를 기쁨으로 제공했다. 참으로 그들은 영적으로 굶주려 있었다. 그들은 사슴이 시냇물을 사모하였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다.

 

1417년 크리스마스 때에 요한 올드캐슬 경이 하나님 말씀에 대한 사랑과 로마 당국의 권위를 부정함으로 인해서 잔인하게 순교를 당했다. 그는 수많은 위클리프 성경을 만들었고, 진리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을 하였다. 그는 롤라드들의 복음 전파를 사랑했고 핍박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었다. 그는 헨리 4세가 총애하던 인물이었다. 헨리 4세가 죽자 하나님의 말씀의 원수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체포하여 죽였다. 요한 올드캐슬경은 죽으면서 외쳤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라. 그리고 그리스도의 삶과 모범에 반대될 때는 그러한 가르침은 단호하게 거절하라.” 복음의 원수들은 죽도록 그를 미워했고, 극한 분노로 그를 사슬에 묶어서 산채로 통닭구이 만들듯이 태워서 죽였다. 이외에도 성경을 사랑했던 수많은 롤라드들이 로마 카톨릭 당국자들에게 붙들려서 악질적인 방법으로 처형을 당했다. 카톨릭 교도들은 롤라들들의 뺨에 불도장을 찍기도 했다.

 

많은 롤라드들이 이 극한 핍박을 견디다 못해서 독일로, 프랑스로, 스페인으로, 포르투갈로 그리고 스코틀랜드로 도망을 갔었다. 헨리 5세 치하에서는 롤라드에 대한 법률이 더 강화되었다. 영국 보안관들에게 롤라드들을 붙잡으면 구금한지 10일 이내에 불태워 죽이도록 명령이 하달되었다. 그 당시 롤라드들에게 어떤 자비도 허용되지 않았었다.

 

그때부터 이 운동은 지하 운동으로 전향되었고, 영국의 인구가 많은 지역 여기저기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기존 성직자들에게 많은 번민을 안겨주었고, 종교개혁 시기에 신앙을 위해 적지 않은 순교자들을 낳기도 했다. 계속되는 박해 속에서도 롤라드 운동은 근절되지 않았다. 16세기 초 부흥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그의 추종자들의 대부분이 사형에 처해졌다. 결국 잔류 롤라드주의자들 때문에 그 후 영국의 프로테스탄트 운동은 큰 힘을 얻게 된다. 이들의 개혁운동은 실패했지만 16세기 종교 개혁에서 볼 수 있었던 역동적인 운동들에 동참한 많은 대중들을 준비시키는 의미 있는 씨앗들을 제공했다. 워크맨은 그의 책 종교 개혁의 여명에서 위클리프를 정의함에 있어서,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창시자라고 했다. 위클리프는 자신이 성경을 진정으로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성경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하고 살고자 힘썼던 성경의 사람들, 즉 롤라드의 창시자요, 롤라드들의 스승이었다. 롤라드들 역시 위클리프 사상의 추종자들일 뿐만 아니라,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의 선구자들이라 할 수 있다.

 

김명수, ‘종교개혁의 새벽별’, -존 위클리프와 존 후스의 생애와 사상, pp 112-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