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존스, '교리강좌 3', 12장 다니엘서 9:24-27(칠십 이레)의 해석
12장 다니엘서 9:24-27의 해석
1. 앞으로 다룰 내용
나의 해설이 유일하고 옳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문제에 대해 흔히 나타나는 경솔함과 독단적 주장을 조금이나마 흔들어 놓을 수 있다면 그 이상 기쁜 일이 없겠다.
사람들이 이 문제를 새롭게 고찰할 징조가 나타난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다.
그것은 교회 역사에서 축복의 시기의 전조가 될 것이다.
1) 연구의 대상이 될 성경 본문들
다니엘서 9장
마태복음 24장과 25장
살전 4장과 5장 일부
살후 몇 구절
요한 계시록
2) 다양한 견해를 비교해 보아야 하는 이유
가능한 한 서로를 돕는 것이 가르침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하고 싶은 한 가지 해설만 제시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다른 견해들도 제시하고 그것들을 평가해 볼 수 있도록 가능한 많은 지침과 도움을 드린다.
2. 에드워드 어빙과 다비가 제시한 새로운 해석
1830년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해석학파
무디는 다비의 가르침을 채택했고 즉시 유행하게 되었다.
스코필드 성경의 출간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복음주의 진영들이 이 견해를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
3. 다니엘서 9장의 배경
단 9: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그후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알고 싶어한다. 천사 가브리엘이 그에게 대답을 준다. 22-27절까지에 기록되어 있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구약학자인 에드워드 영의 해설을 주로 따른다.
구약 전체에서 가장 어려운 본문 중 하나이다.
4. 일흔 이레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1) 일흔 이레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레”라고 언급된 기간이 있으며, 장차 그 특정한 “이레”가 일흔 번 있을 것이다.
일흔 이레는 490일을, 예언서의 하루는 1년이므로 490년을 의미한다는 사람도 있다.
2) 예언을 해석할 때는 ‘감추어진 명확성’에 주의해야 한다
“일흔”과 “이레”를 정확한 용어로 간주하는 것은 지혜롭지 않다는 것이 저의 결론이다.
예언에서는 숫자가 상징적인 것임을 말씀드리고 싶다.
그것은 정확한 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개념을 전달하고 있다.
지난 세기의 가장 위대한 복음주의 주석가 헹스텐베르크의 말을 인용하려 한다.
그의 책을 만나게 되거든 무조건 사서 탐독하시라!
이 숫자들이 '감추어진 명확성'(concealed definiteness)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놀라운 문구다. 그 숫자들은 명확하다. 그렇지만 어떤 일이 언제 시작하여 언제 끝나는지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는 의미의 명확성은 아니다. 일종의 확실함이 있지만 동시에 불확실함도 있다. 사람들이 명확성의 숨겨진 부분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해석의 역사에 등장한 수많은 위대한 인물들이 도출한 명확한 결론이 역사에 의해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었음이 드러나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 때가 언제인지 하나님의 마음 속에서는 명확하다는 것, 우리 주님의 재림은 명확한 시간에 일어나리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과 저는 절대로 정확한 날짜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 원하신다. 그 정확성이 우리에게는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사람들의 땅에 떨어진 명성의 파편들이 예언의 역사 위에 흩날리고 있다.
3) 일흔 이레는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성경에서 일곱은 언제나 완전한 수를 상징하며 열이라는 숫자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칠 곱하기 십, 곧 일흔은 완전한 시대, 완전한 기간을 나타내며, 그것은 다시 일곱이라는 숫자가 나타내는 완전한 기간들로 나뉘어진다. 이 숫자들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대신 상징적인 것으로 여겨야 한다는 개념을 고수할수록, 성경을 읽을 때 더 기쁨을 느낄 것이며, 오류에빠져 예언 전체를 욕되게 할 위험이 더 적어진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다.
4) 일흔 이레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24절)
세 가지 소극적인 일.
① “허물이 그치며”-허물을 치우다
② “죄가 끝나며”- 죄가 사함을 받으리라. 죄가 해결되어 끝날 것이다. 봉인될 것이다.
③ “죄악이 용서(화해)되며”- 그 결과이다. 죄악을 치워버려 사람과 하나님이 화해한다.
적극적인 일
①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의가 나타나야 한다.
②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이상과 예언이 끝날 것이다.
③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5) 이 일들은 언제, 어떻게 일어날 것인가(25-27절)
25절,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
“영이 날 때부터”- 고레스 원년이면 주전 538년, 아닥사스다 왕 20년이면 주전 445년?
우리가 아는 것은 명령이 내려졌을 때 이 일이 시작했다는 것뿐이다. 가장 분명한 해석은 하나님이 고레스에게 처음으로 명령을 내리신 때라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그 때 그 명령이 시행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아니다. 정확한 날짜를 정하려 하는 것은 얼마나 위험스런 일인지요! 우리가 아는 것은 이에 대해 처음으로 말이 나온 때로부터 메시아 곧 왕이 오시기까지는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의 기간이 지나야 한다는 것뿐이다.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라는 말에 주목하라.
일흔 이레는 일곱 이레, 예순두 이레, 한 이레로 나누어진다.
처음 일곱 이레는 파괴된 예루살렘 성을 실제로 재건하는 데 걸리는 기간이다.
이어서 왕이신 메시야가 오시기까지 예순두 이레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강림.
26, 27절에 대한 엇갈리는 해석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그에게 속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리라는 것. 그것은 메시아가 끊어지고 죽임을 당할 때 그분은 완전히 혼자라는 것을 시사한다. 모두가 그를 버린다.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전통적인 개신교와 개혁주의적 해설은 이것이 분명 주후 70년 디도 황제 치세 때 로마군이 예루살렘성을 멸망시킨 사건을 말한다고 한다. 26절에서 메시아가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말 직후에 이 말이 나오는 것을 주목하라. 하지만 1830년에 시작된 새로운 학파에 의하면 이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어떤 일에 대한 언급이다.
27절,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여기서 시사하는 것은 언약은 이미 존재하고 있으며, 그가 그 언약을 굳게 하리라는 것이다. 그는 언약을 확증할 것이다. 그것을 효력있게 만들 것이다.
27절,“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니라”
“미운 물건의 날개 위에” 혹은 “미운 물건의 꼭대기에”라는 말은 분명 성전의 파괴에 대한 언급이다. 제일 꼭대기로부터 시작해서 성전은 완전히 파괴될 것이다.
6) 논쟁의 핵심: 일흔 번째 이레
26절은 일흔 번째 이레에 일어날 사건을 묘사한 것인가
“예순 두 이레 후에” 일어난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본문은 그 사건들이 일흔째 이레에 일어난다고 말하지도, 그 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본문이 말해 주는 것은 단지 그 일이 예순아홉 이레가 지나간 후에 발생한다는 것 뿐이다. 그것이 일흔 번째 이레를 의미할까? 중대한 질문이다.
27절의 “그”는 누구인가
26절에 나오는 메시아인가, 아니면, 26절 후반부에 나오는 왕을 말하는가
7) 에드워드 어빙과 다비의 견해
유대인들이 특별한 지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견해다.
“이레는 한 주 더 정확히는 칠 년으로 구성된 한 주다. 즉, 각각 칠 년을 의미하는 이레가 일흔 번이라는 뜻이다. 이 이레들 안에 민족적 징계가 끝나고 나라는 영원한 의로 회복되어야 한다.” 즉시 의문이 생겨난다. 영원한 의 가운데 나라가 세워질 것이라는 말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유대인들이 특별한 방법으로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유의 이론에서 보면 그렇게 도입할 수 밖에 없다.
“교회시대가 끝나고 일흔 번째 이레가 시작될 때 --” 이 말은 예순 아홉 이레의 끝과 일흔 이레의 시작 사이에 적어도 이천 년이라는 거대한 간격이 있다는 것.
“그 기간은 칠년이어야만 한다.”
그들은 27절의 “그”를 26절에 언급된 장차 올 왕이자 적그리스도라고 주장한다.
“그의 백성인 로마가 주후 70년에 성전을 파괴했다. 그는 7장에 나오는 작은 뿔과 같은 인물이다. 그는 한 이레 동안 성전의 제사를 회복하기로 유대인들과 언약을 맺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간의 중간에 그는 언약을 어기고 단 12장과 살후 2장을 성취할 것이다. 메시아가 끊어진 예순아홉 이레와 단 7장의 작은 뿔이 무시무시한 일을 진행할 일흔 번째 이레 사이에 교회 시대 전체가 들어간다. 27절은 일흔 번째 이레의 마지막 삼 년 반을 다루는데, 그것은 마 24장에 나오는 대환난, 단 12장에 나오는 환난의 때, 그리고 계 3장에 나오는 시험의 때와 동일한 기간이다.”
8) 일흔 이레 해석의 핵심 쟁점들
24절에 개략적으로 나와 있는 계획은 이미 수행되었는가?
26절에 나온 일들은 어떠한가?
27절 첫 머리에 나오는 “그”는 누구인가?
26절에 묘사된 사건들은 일흔 번째 이레에 일어났는가? 아니면 예순아홉 이레의 끝과 일흔 이레의 시작 사이의 간격이라고 추정되는 시기에 일어났는가?
예순아홉 이레와 일흔 이레의 시작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는가?
다비의 해석 체계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과 다가오는 천국에서 유대인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고 예루살렘 성전이 다시 세워질 것과 피의 제사가 다시 한 번 도입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들은 적그리스도에 대한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적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미래의 일로 간주하며 이것을 계시록에 대한 비슷한 해석과 연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