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신앙

옥타비우스 윈슬로우, "십자가 아래서", 7장 십자가 아래서의 진리에 대한 확신 (김영희)

강대식 2020. 4. 19. 22:35

 

7 장 십자가 아래서의 진리에 대한 확신

 

백부장과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27:54)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서 발견되는 놀라운 여러 복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복은, 겸손히 성경을 믿는 성도의 마음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강력한 확신이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도덕적인 우주의 중심이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의 모든 진리는 십자가 안에서 만나게 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는 모든 영광이 찬란한 빛을 뿜어낸다. 신령한 축복들도 모두 십자가에서 흘러나온다. 신중하고 열정적인 지성을 갖춘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가장 명확하고도 포괄적이며 영광스러운 계시와 관점을 경험하게 되는 곳도 바로 십자가 아래 이다. 십자가 주변에 모여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주 예수님을 모욕하고 자신들의 불신앙과 증오심을 만족시키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다른 한쪽에는 그들과 전혀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그곳에서 모든 일을 기이히 여기던 백부장과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의 마음속 깊숙이 진리에 대한 확신이 화살처럼 박히게 되었다.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1.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서만 배울 수 있는 참된 진리

진리를 깨닫기 위하여 열정적으로 매달리는 많은 사람들이 범하는 가장 큰 실수는, 하나님의 진리를 참으로 배울 수 있는 장소, 위치, 그리고 그러한 마음 상태를 그들이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이다. 정작 가야할 곳은 가지 않고, 스승으로 삼아야할 하나님을, 모든 책은 섭렵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책인 성경은 등한시한다.

진리를 추구하는 영적인 학습자에게 꼭 있어야 할 기술은 자신의 지식을 내려놓는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입을 티끌에 대는 것이다. 자연신학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속성들을 보여주고, 눈에 보이는 세상은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을 웅장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도덕적인 진리, 곧 신령하고 복음적이며 영혼을 구원하는 진리는 먼저 그리스도의 참제자가 되어 믿는 마음과 겸비한 마음으로 백부장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앉아 있을 때에만 진정으로 배울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서만 제대로 배울 수 있는 핵심적인 진리들은 무엇인가?

1) 하나님의 살아 계심

창조물만 보더라도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입증해주지만, 그러나 갈보리 십자가처럼 하나님의 존재를 선명하게 입증해 주는 증거를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구속하는 일에서 자신의 무한하고 자존하며 의로운 하나님의 완전한 속성들임을 분명하게 입증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저주의 나무에 매달았다. 십자가에서처럼 하나님이 자신의 존재와 신적인 완전함을 나타내신 곳이 또 어디 있겠는가? 경건한 마음으로 믿음을 가지고 십자가를 연구하라. 십자가에서는 하나님의 성품, , 하나님의 완전함이 완벽한 조화 속에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피조물 전체가 보여 주는 증거를 배웠던 것보다 더욱 많이, 더욱 깊이 배울 수 있다.

 

2) 우리와 화목을 이루신 하나님

우리와 화목을 이루신 하나님에 대한 위대한 진리,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와 맺고 계신 관계에 대한 위대한 진리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떠나서는 결코 배울 수 없다.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긍휼이 무엇인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평안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는 곳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자연에도 계시가 있지만 자연에 있는 계시는 그 어떤 것도 우리 영혼의 가장 중요한 질문,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는 질문에 답을 제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죄책이 우리를 짓누를 때, 죄의 짐이 무거워 허덕일 때, 양심이 전갈의 독으로 우리를 찌를 때, 우리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십자가 아래 서야 한다. 거기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바라보며 창에 찔린 주님의 옆구리에 우리 자신을 숨겨야 한다.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의 고난을 통해서 어떻게 우리와 화목하실 수 있는지를 진정으로 배우게 될 것이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주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우리와 화목하신 성부 하나님의 팔이 우리를 끌어안아 주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3) 예수님의 본질적인 신성

십자가처럼 하나님의 아들의 신성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의 인성이 흑암과 피 흘림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던 바로 그때, 예수님의 신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명확하게 드러났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꿇어 엎드려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저 놀라운 일을 바라보라. 또한 그리스도께서 숨을 거두시는 순간 주변에서 발생한 경이로운 기적들을 하나하나 주목해 보라. 여러분이 심령에도 백부장의 감격스러운 고백이 똑같이 울려 퍼질 것이다.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4) 대속 교리

대속 교리는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서만 볼 수 있고 배울 수 있으며 마음에 받아들일 수 있다. 예수님의 모든 고난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고난이며 예수님의 죽으심도 영원히 죽어야 할 우리를 대신하여 자기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신 대속의 죽음이라는 진리이다. 그리고 자원하는 심령으로 아무것도 아끼지 않고 자기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신 예수님의 죽으심은,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고, 인간을 구원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도덕적인 모든 속성들이 조화를 이루고 통합되게 하려는 목적에서 이루어진 죽음이었다는 진리이다.

믿는 마음과 겸비한 마음을 가지고 십자가로 나아가 깊이 묵상하라. 그리하면 그리스도께서 영웅이나 철학자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도 아니고, 도덕이나 용기를 몸소 실천하는 지도자로 죽으신 것도 아니며, 오직 타락하여 멸망의 길에 서 있는 우리들을 구속하시고 구원하려고 죽으신 것임을 굳게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5-6)

 

5) 삼위일체의 교리

갈보리 십자가 아래서 보게 되는 삼위일체의 증거보다 더 강력한 증거와 예증을 다른 곳에서 발견한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는가? 속죄의 교리를 믿는 순간, 한 분 하나님 안에 서로 구별되는 세 위격이 존재한다는 삼위일체의 교리를 이해하는 것은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반면에 속죄의 다음과 같은 놀라운 말씀을 읽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교리를 믿지 않는 사람은 결코 삼위일체의 교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십자가의 빛이 없으면 이성의 빛은 애굽에 임했던 흑암과 같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십자가라는 중심축에 서게 하라. 그리하면 그 사람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에서 모든 교리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리를 연구할 때, 진리의 가장자리에서 연구를 시작하여 중심에 이르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순서는 중심에서 시작하여 차츰 더 먼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삼위일체의 교리는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것임을 인정한다. 그러하기에 어린아이처럼 순전한 마음으로 갈보리에서 흘러나오는 빛 아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말씀을 읽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는 그로 말미암아(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들이(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2:18)

 

6) 구원에 이르는 길

구원에 이르는 길도 오직 십자가의 빛 안에서만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볼 때, 구원에 이르는 길의 주변에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와 어설프고 복잡한 것들이 모여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십자가가 아닌 다른 관점에서 연구했기 때문에 생긴 부작용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이 좋아하는 신조나 교회나 목사나 신앙경험을 통해서 구원을 바라본다면, 구원방식을 순전하게,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는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값을 매길 수 없는 존귀한 구원의 보화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십자가를 제외한 다른 모든 것들을 일단 지나쳐야 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임재 앞에 서는 것이 늘 우리의 출발점이요 목표 지점이어야 한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동안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찬란한 광채로 인하여 모든 자기 의와 공로와 지성의 교만과 진리에 대한 반감과 적대심은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의 모든 죄책을 말끔히 씻어 주는 그리스도의 보혈, 죄인인 우리의 인격이 하나님 앞에서 옳다 인정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그리스도의 안전한 의, 죄로 인해 고통받는 양심을 평온하게 하는 평강, 마귀가 심어 준 절망을 몰아내는 소망, 우리가 마땅히 들어가야 하는 지옥을 대신하는 천국, 이렇게 완전한 구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7) 하나님의 공의

이것이 엄숙한 결론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을 최종적으로 심판하시고 형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가 안전하게 계시되어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고난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시는 이 일처럼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로우심과 능력을 뚜렷하게 보여 주는 것은 없다. 이 얼마나 참되고 엄숙하며 두려운 결론인가? 우리는 여기에서 교훈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죄가 하나도 없고 순전하며 결백하신 하나님의 아들도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을 때 하나님의 진노를 온몸에 받으셨다. 그렇다면 장차 임할 하나님의 두려운 진노에서 우리를 가려 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를 전혀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죄를 그대로 짊어지고 죽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 두렵고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를 영원히 받아야 하겠는가? 이 두려운 결론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확실한 길은 전혀 없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10:26-27)

여러분 모두의 양심과 판단력에 호소하고 싶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고, 하나님의 보좌는 죄와 상관하지 않는 곳이며,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과 진리는 참으로 엄격하다. 진노의 거친 파도 속에서 허덕이는 불쌍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랑의 하나님은 진노의 깊고 거친 바다 위에 생명의 구조선을 띄워 주셨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그 구조선에 올라타기를 거절하겠는가? 이것은 영원한 멸망을 자초하는 행위이며 도덕적인 자살이다.

 

2.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진리

이 주제를 다루면서 한 가지 내린 결론은, 하나님의 진리는 강력하고 설득력 있으며 불가항력적이라는 사실이다. 백부장은 아마도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조롱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인 진리를 직면하고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 마음에 영접하게 되면, 여러분의 삶은 예수님의 복음에 합당한 삶으로 변화하게 되어 있다.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고 확신을 가지게 되면, 그것은 우리의 지성에만 머무르지 않고 우리의 감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 그것은 우리의 판단력을 밝게 만들어 주는 동시에 우리의 마음에도 깊숙이 스며들어 우리의 마음을 거룩하게 만들어 준다. 그리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이 청결한 자가되어 하나님을 보게 된다.

 

또한 하나님의 진리를 확신하게 되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더욱더 강렬해진다.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라는 불꽃을 활활 타오르게 만들 수 있는 불쏘시개로는 십자가의 제단에서 가져오는 불쏘시개가 최고이다. 이것 외의 다른 것으로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불을 제대로 지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이 뜨거워지기를 바라는가? 그 마음을 갈보리 십자가로 가져가라.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다른 성도들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우리가 얼마나 자주 겟세마네 동산을 걷고, 얼마나 자주 갈보리 언덕을 가는지에 비례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확신하게 되면, 온전한 확신에서 비롯되는 행복과 위로를 경험하게 된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발견되는 확신이 세상에서 가장 견고한 확신이다.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것들을 쥐고 놓지 못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이고도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온전히 확신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순간순간 의심에 빠지는 이유는, 이 세상의 것들을 쥐고 놓지 못하기 때문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가까이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로 가까이 나아가라.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주로 영접하라.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따르라. 제자로서 예수님을 배우라. 성도로서 예수님을 따르고 영화롭게 하라. 그러면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될 것이며, 머리끝이 곤두설 정도로 기쁨을 누릴 것이고, 정오의 햇빛처럼 밝은 소망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온 세상이 놀랄 정도로 큰 감격을 표현하게 될 것이다.

진실로 주님, 저는 당신의 종이요 당신의 자녀이며 당신의 제자입니다. 당신이 저를 피로 사셨으니 저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 살고 죽어도 당신의 것이옵니다아멘!